삶이 의무라면, 행복은 우연한 사고다

소설 [곰탕] 리뷰

by 담작가
곰탕
줄거리

몇 번의 쓰나미로 폐허나 다름없는 부산.

돈이 있는 자들은 쓰나미 걱정없는 높은 집을 샀고, 돈이 없는 자들은 다시 쓰나미가 몰려올 폐허에 집을 지었다.

2063년, 멀쩡한 가축이 없어 인위적으로 만든 노린내나는 짐승을 먹어야 하지만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미래.

마흔 중반의 이우환은 늘 그래 왔듯이 작은 식당에서 보조 일을 하며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중, 이우환의 식당 사장이 예전에 먹던 곰탕이란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오지 않겠느냐 제안한다.

이우환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 2019년의 부산 여름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사장이 그려준 약도의 '부산 곰탕'은 곰탕 끓이는 비법보다도 더 큰 비밀을 품고 그 자리에서 우환을 기다리고 있다.


진실은 사실보다 진하다
숨은의미찾기

※약간 스포있음※


"행복해야 되는 게 당연한 건가. 죽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고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 작가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들은 말이다. 이 말은 무언가 뇌리에 와서 박히면서 알아내려고 애쓰던 마음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이우환은 삶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영문도 모른 채 고아원에 맡겨져 자라면서,행복하게 회상할만한 추억이 그에게는 없다.그다지 특별하게 남은 기억도 없다. 그래서 살아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를 위험한 시간여행에 동의한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사나, 거기서 그렇게 죽으나, 그에게는 삶 자체가 별로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우환은 과거에서 과거가 자신의 현재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게 된다. 자신이 그곳에 꼭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 그건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우환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박종대, 아니 박종대로 불리우는 남자는 이우환과 정 반대의 인물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으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살고자 함이 남을 죽일 지경에 이른다는 점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서 살아가는 그는 자신이 살기 위한 일이라며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듯 보인다.

어떻게 보면 우환과는 성격적으로도 반대적인 면모가 있다.우환은 우유부단하며 충동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종대는 계획적이고 결단력이 있다. 그 결단력 덕분에 종대는 모든 면에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냉정하고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다.

그와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람이 김화영이다. 그를 움직인 것이 돈이기 때문이다.

아마 사람들이 소설을 다 읽은 후에 눈치챌 지는 모르겠지만, 화영을 과거로 보낸 것은 박종대였다. 박종대는 이우환을 막기 위해 김화영을 '고용했다'. 그리고 양창근은 이순희를 막기 위해 이우환을 '보냈다'. 이 지점에서 박종대는 양창근과도 대립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우환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복을 원했다.

그러나 박종대라는 탈을 쓴 남자는 이미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을 버리고 남의 자리에서 행복을 탐하는 자의 말로는 어떠한가. 죽을 때까지 만족하지 못한다. 영원히 자기 자신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빼앗은 것은 자신이 직접 일군 것이 아니다.

'나'로 인정받고 싶지만, 영원히 그럴 수 없다. 영원히 '남'으로서 인정받아야만 한다.그럼 그 자리가 주는 행복과 만족감은 누구의 것인가? 그 행복은 진정 내것일 수 있는가? 평생 자신의 진짜 이름으로 불리워보지 못한 남자의 모습은 그런 의문을 던지게 한다.

비록 이우환은 흘러가는대로 살아왔지만,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한 점을 반성할 줄 알게 된다.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자신의 삶을 참고 버티고 기다릴 수 있게 된다. 행복을 위해 발버둥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기로 한다. 자기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행복을 깨달은 이우환에게는 이제 미래가 남았다.

살아있기만 한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생기는 건 아니다. 어떤 이는 계속해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며 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우환은 적어도 타인의 이름으로는 살지 않기로 한다. 이우환이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있기로 했다. 그렇기에 여전히 살아가며 떠올릴 행복한 몇 가지의 추억이 생겼다. 과거의 추억은 현재의 나를 살아가게 하고, 현재는 다시 추억이 되어 내 미래를 살아가게 한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는 결국 하나의 단어로 대변된다.

바로 '나'
삶이 의무라면, 행복은 우연한 사고다
감상평

비록 현재가 행복하지 않아도 참고 견디자는 말이 아니다.

행복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기에 어딘가 머물지 않는다. 행복이란 어떻게 보면, 취사선택할 수 있는 삶의 요소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행복은 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진부한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다만, 행복은 결국 살아있는 자의 것이라는 점을 명심할 뿐이다.


어느 때인가, 나는 자살을 꿈꿨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이유없이 모든 것이 우울했고 지겨웠고 버거웠다. 세상이라는 짐이 나를 짓눌러서 숨이 막혔다. 내가 나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 나도 고를수만 있었다면 더 나은 나로 태어나길 바랐을 것이었다. 아니, 아마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겠지. 그럼에도 나는 이미 태어나 있었다.

부모는 내 육체만 만들었을 뿐, 영혼까지 만든 것은 아니다.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지금의 나를 만든 데에 대한 지분을 따지자면, 결국 나의 지분이 클 수 밖에 없겠다고. 물론 주어진 환경이 모두에게 동일하지는 않다. 그렇기에 나는 지분이 클 뿐, 내 지분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 지분은 크다. 간혹 어떤 경험들을 통해, 나는 틀린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틀렸다는 것은 내가 바뀔 수도 있는 기회가 있었다는 증거다. 나는 내가 만들어왔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그 말은 행복은 결국 살아있는 자의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 닮아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살 필요는 없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 행복할 수도 있다. 물론 괴로움이 더 많겠지만. 어쨌든 그냥 살아가다 보면 가끔 인생이 나에게 "이것도 행복이지 않을까?"라고 질문한다. 그 때 내가 "그래, 이것도 행복이야."라고 대답한다면그건 행복이 된다. 그래서 행복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요소에 불과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이 생각난다.

나는 운명이 요구하는 대로 순순히 살아주지만은 않았다. 거센 저항을 한 적도 있고, 무릎 꿇고 빌며 회유한 적도 있고, 눈물 쏟으며 간곡히 부탁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 왔기에, 나라는 사람 그대로 살아 보기로 했다.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 언제나 완벽한 행복이란 없다. 이런저런 아픔과 고난이 섞인 탁한 행복도 결국 행복이다. 그 탁한 추억들은 나로 하여금 수동적으로 살지 않게 해준다.

삶이 의무라면 행복은 우연한 사고이다.

삶이 가혹한 이유는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 의무 때문에 우리는 고통에 부딪히고 발버둥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삶이 있기 때문에 행복은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삶이라는 식에 대입하는 한, 행복은 필연이다. 의무를 지키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우연한 사고. 의무를 지키지 않은 시체에게는 행복이라는 우연이 일어날 수 없다.









그렇게, 오늘도 살기 위해 살아간다.
그러다보면 가끔 행복이라는 사고가 내게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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