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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Jul 21. 2020

우리는 '졌잘싸' 해야한다

소설 [승부] 리뷰

승부
줄거리

냉정한 체스의 세계.

아무도 이기지 못한 거리의 체스고수에게 처음 보는 젊은이가 도전장을 내민다.

고수에게 참패를 당했던 사람들은 모두 젊은이를 응원하고,

그런 압박 속에서 고수는 신중에 신중을 가해 체스를 두기 시작한다.


우리는 '졌잘싸'해야 한다
숨은 의미 찾기
"인생은 레이스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에서 바이러스 교수는 말한다. 그렇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경쟁한다. 심지어 엄마 뱃속에서부터 우리는 승리해야 했다. 가장 빠르고 날렵하며 강한 정자가 바로 나다. 그렇게 우리는 태어나는 과정부터 승부를 겨루게 된다.

소설에서 구경꾼들의 기대는 모두 젊은이에게 가 있지만, 어쩐지 압박을 받는 것은 고수이다.

우리는 보통 반대의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등에 짊어진 나머지 자신을 잃고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이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반대이다. 구경꾼들이 자신이 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건 그동안 고수가 새로운 도전자들과 체스 승부를 겨룰 때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늘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을 터이다. 사람들은 그가 거만한 체스 초짜들을 내내 가볍게 이겼으리라 생각하지만, 사실 그의 승리 뒤에는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체스는 그에게 있어 늘 이겨야 하는 당연한 진리와도 같았을 테니까. 승리하면 후련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승리의 기록을 쌓아갈 때마다 다시 이겨야 할 적이 새로 생겼으니까. 압박감은 그를 짓눌렀다. 더 이상 '체스의 제왕'은 없었다. 그저 이기기 위한 처절한 싸움을 하는 외롭고 고독한 체스쟁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는 승부에서 한 번도 체스를 즐긴 적이 없었다.

이번 승부를 통해 그는 '이겼지만 지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젊은이는 자신이 뻔히 지는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여유만만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그가 엄청난 체스 선수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굴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한 수, 한 수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자신의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설렁설렁 나이트고 퀸이고 남발한다.

"관종인가...?"

책을 읽는 내내 젊은이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젊은이는 모두가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식이다. 자신에게 열광하는 것을 즐기기는 하지만, 자신이 꼭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 따위는 갖지 않는다. 어차피 재미로 즐기는 건데 뭐가 그렇게 진지해? 라는 식의 그의 행동은  'Why so serious?'를 외치는 조커를 연상 시킨다.

젊은이가 이긴 진짜 이유는 휘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구경꾼들을 대신해 고수를 이겨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체스를 두는 움직임이 초보자와 같았던 것을 보면, '어? 나도 체스 둘 줄 아는데 한 판 할래?'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것 같다. 그러니까 그는 애초에 체스에 대해 많이 알지도 못했고, 자신이 아는 선에서 체스를 '즐긴' 것 뿐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경쟁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90년생이 온다'에서 느꼈지만, 90년생들은 늘 승부사여야만 했다. 그들의 삶은 전쟁이었다. 옆의 짝꿍과도 경쟁해야 했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죽는 전쟁터였다. 그런 그들에게는 승부를 통해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지면 패배자, 2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1위만이 살아남는다."

우리는 늘 이런 방언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왔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서는 그렇게 살아가선 안 된다. 우린 경쟁이 아니라 공생해야 하는 사이다. 경쟁을 하더라도 자신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하지, 이겨야만 하는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소설 속 젊은이는 우리가 앞으로 취해야 할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우리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해야 한다.

승리여부와 상관없이, 진심으로 겨루는 종목을 즐기고 사랑해야 한다. 물론 이기면 좋겠지.이기면 내가 열심히 노력해온 과정들이 좋은 결과를 낸 것이니 당연히 좋겠지. 하지만 지더라도 우리는 괜찮아야만 하는 것이다.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에 또 승부를 겨룰 수 있는 에너지를 비축해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서 우린 '졌잘싸'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부디,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승부에서는 포커페이스가 중요하다'고 착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승부가 아닌 놀이
감상평

짧고 간단한 소설이지만 나도 모르게 거북목이 되어 책 속으로 빨려들어갈만큼 집중하게 된다.

승부에서는 늘 이기거나 지는 결과가 나오지만, 그 결과가 늘 맞을까? 늘 승부에서 이긴 자만이 이긴 것일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천재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던가. 무언가를 승패와 상관없이 그저 즐길 수 있는 자의 마음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이기기 위한 발악과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몇이나 되던가.


늘 승패에 목숨을 거는 나는 이겨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이기면 고생한 만큼의 뿌듯함을 얻기야 하겠지. 하지만 이기지 못하면 그만큼의 분노와 짜증이 나를 지배하게 된다. 사실 상대방은 승부라고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을 말이다. 별 것도 아닌 게임, 재밌자고 하는 놀이에 목숨을 걸고 싸우는 나를 보는 순간 가끔은 허무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그저 글이 좋아서 썼는데, 학교를 다니면서는 그러지 못했다. 누가 더 잘 쓰는지, 누가 더 교수님에게 칭찬을 많이 받는지를 두고 늘 승패를 겨뤘다. 그렇게 좋은 성적은 얻었지만, 글을 글로서 즐기지는 못했다.

과거의 그런 나를 돌아보면 참 씁쓸하고 허무한 글쓰기를 해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이제는 그렇게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쓰면서 좋은, 내가 쓰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 모든 일을 승패가 갈리는 승부가 아니라, 이 순간 내가 즐길 수 있는 즐거운 놀이로 여길 수 있다면 좋겠다. 어떤 일을 해도 늘 즐겁고 싶다. 짧지만 우리 일상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풍자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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