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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작가 Jun 30. 2020

누구나 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영화 [프리즌 이스케이프] 리뷰


프리즌 이스케이프
줄거리

197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곳에서는 유색인종의 인권을 짓밟는 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싸우던 팀과 스티븐은 각각 12년형, 8년형을 선고받아 프리토리아 감옥으로 가게 된다.

감옥에서 썩을 수 없었던 팀과 스티븐은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탈옥을 감행하기로 한다.


열쇠가 있다면 누구나 문을 열 권리가 있다
숨은 의미 찾기

  팀 젠킨은 대담하지만 섬세한 천재 탈옥수였다.

  자기 방부터 시작해 가장 바깥 문까지. 교도관들의 허리춤에 달린 열쇠들과 열쇠구멍을 곁눈질해서 나무조각으로 열쇠를 만든다. 그야말로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법 아닌가. 누군들 숟가락으로 땅굴 파서 탈옥하는 상상 한 번도 안 해봤을까. 그런 구닥다리 방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멀쩡하게 문을 통해 두 발로 걸어나가는 행위는 단순히 그가 천재라서 그런것만은 아니다.


"이건 우리가 치뤄야 할 대가야."

  먼저 감옥에 들어왔던 정치범 데니스는 그들에게 포기하라고 말한다. 여태껏 많은 이들이 탈옥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데니스를 따르는 원로한 정치범들은 감옥에서의 억압과 탄압, 자신들에게 향하는 차별의 칼날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팀과 스티븐, 레너드는 순순히 감옥에서 썩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세 사람은 자신들의 행동이 처벌받을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 믿음 안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단순히 감옥에서의 생활이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다. 가족이나 연인을 보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주장인 셈이다. 자신들이 옳다는 것, 이 처벌을 내린 이들이 틀렸다는 것, 계속 저항하고 정의를 위해 투쟁하겠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증명하기 위해 탈옥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탈옥하기 위해 '문'이라는 평등한 수단을 선택한 것이다.

  굳건하게 닫혀있는 듯 보이는 문도, 결국에는 열쇠를 꽂으면 열리게 되어있다. 그래서 문은 평등하다. 팀은 '모든 인권은 평등하다'는 자신의 신념을 문에 투영한 것이다. 열쇠가 있다면 누구나 문을 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유색인종의 열쇠를 빼앗는다.

  그런 억압과 탄압 속에서도 열쇠를 만드는 팀의 행위는, 행위 자체만으로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이들을 당황케 한 것은 마지막 문이었다.

  39개의 열쇠 중 어떤 것도 맞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팀과 스티븐이 돌아가자고 판단한 그 때, 늘 불만투성이었던 레너드는 문틀을 부수기 시작한다. 어떤 기회도, 권리도 보장되지 않는 탄압 속에서 차별당하던 이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을 보여준다. 문이 열릴 때까지, 문틈 새로 스며드는 빛은 그들로 하여금 희망을 잃지 않게 한다.

  기어코 마지막 문까지 열고 나와 그들은 '유색인종 전용' 택시를 타고 탈출한다. 그들을 감옥에 넣은 것은 백인이지만, 그들이 감옥에서 나와 도주하도록 도운 것은 유색인종이었다. 세 사람은 인종과 상관없이 평등하게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별받는 이들을 위해 운동한 그가 결국엔 차별받는 이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다.

인종과는 상관없이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베푸는 세상.


  한편, 데니스는 감옥에 남아 세 사람의 탈옥을 도왔다.

  본인도 나갈 수 있었고 나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 남아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길을 택했다. 그 덕분에 팀과 스티븐, 레너드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이는 인권운동의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데니스는 단순히히 자신이 치뤄야 할 대가라고 생각해서 수감생활을 견디기로 한 것이 아니다. 다음 세대로 인권운동이 이어지길 바라며 희생을 감내한 것이다. 죄수 간의 갈등이나 에피소드가 도드라지지 않았던 이유다.

신념을 표현하고 주장하는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의 목표는 같았기 때문에.

  또한, 감옥에서 잡일을 도맡는 흑인 남성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팀과 눈짓신호를 주고받길래 엄청난 일을 돕는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할이 도드라지지 않아서 실망한 사람들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흑인을 그저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비록 활약을 하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백인들조차 흑인의 편을 들었다고 감옥에 쳐넣는 마당에 흑인들에 대한 탄압은 오죽했을까? 아마 그게 그들이 처한 현실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운 이들이 있었다.

  자신들의 피부색에 숨어 편한 삶을 영위하고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불행함과 고통을 자진해서 끌어안은 자들이 있었다.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는데도 남이 빼앗긴 것에 대해 대신 분노해줄 수 있었을까.

고민해보게 되는 영화였다.


그냥 탈옥영화가 아니다
감상문

  영화 보는 내내 조마조마해서 나도 모르게 숨을 참는 장면들이 있었다.

  감옥 안에서의 생활이나, 수감자끼리의 이야기보다는 오로지 탈옥에 집중한 영화였다. 탈옥의 과정을 주도면밀하고 세세하게 보여주었던 덕분에 영화를 보는 관객 역시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 했겠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 실화 바탕이니만큼 실제 탈옥 과정에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시국을 돌아보게 만든다. 얼마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 연결된다.

  영화 배경은 1978년이다. 시대적으로도 그 때와 멀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때에 머물러있다.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단순히 백인과 흑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 것,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하는 것,
그 마음이 사라져야 한다.


사실 영화 중반 쯤에 만든 열쇠로 중간점검을 해보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때 갑자기 너무 웃겼다.

다니엘 레드클리프라는 배우의 이미지가 강렬한 건 있었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살금살금 계단을 오르내리는 그 긴장된 순간에서 왜인지 모르게 해리포터가 보였다. 밤 늦은 시간에 기숙사에서 나와 선생님들 몰래 마법 지팡이를 들고 돌아다니는 학생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순간 몰입이 깨졌었다...ㅋㅋ

그 부분이 지나고 나서는 다시 집중하긴 했지만. 여하튼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았지만 일부러 신념이나 가치관을 부각시키지 않고, 상징적으로 표현해낸 영화여서 좋았다. 단순하면서 심오한 느낌이랄까. 나중에 또 한 번 보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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