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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들파파 Feb 16. 2022

돈을 좀 벌어야 하는 이유

불편함 해소를 선택하고, 돈보다 본인의 안전을 더 중요시하기 위함이다.

  1999년 수능시험을 2주 정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집 근처 독서실에서 수능 막바지 공부를 하다가 잠시 밖으로 나왔다. 하필 그날 동네 양아치들을 맞닥뜨렸다. 가진 돈이 있으면 달라고 한다. 나도 친구도 가진 돈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그런데 그 양아치가 내 주머니를 뒤진다. 아뿔싸 내 뒷주머니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이 나왔다. 앗 무슨 돈이지... 잠깐 생각했다. 모의고사 문제집을 산다고 낮에 어머니한테 받은 돈이다.


  피 같은 돈이다. 부모님이 남의 옷을 세탁해주고 건당 천 원, 이천 원씩 벌어서 모의고사 문제집을 사라고 주신 돈이다. 그 생각을 하니까 너무너무 뺏기기 싫었다. 돌려달라고 했지만 양아치들은 때릴 것처럼 하며 안 주려고 했다.


  뛰어서 선빵을 날렸다. 한참 뒤엉켜 싸우는데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며 '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돌아보니 양아치 한 명이 형광등을 들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친구와 줄행랑을 쳤다. 알고 보니 머리에 피가 난다는 것이었다. 싸우는데 다른 양아치가 벽돌로 내 머리를 내려쳤다고 한다. 몰랐다... 안 아팠나...


  군대 제대 후 2004년 복학을 했다. 군대를 다녀왔으니 그 전보다 철은 더 들어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한테 하루에 용돈 5천 원만 주시면 그걸로 생활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학교 식당에서 점심, 저녁을 해결하고 중간에 자판기 커피 한 잔 정도 마시면 딱 맞는 돈이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점심을 학교 밖에서 먹어야 되는 날도 있었다. 그럼 저녁을 해결할 돈이 없었다. 근데 그때는 학생식당을 2~3명이 가서 식권을 끊고 리필을 해가면서 5~6명이 먹을 수가 있었다. 그렇게 저녁을 해결할 수는 있었다. 그때 식권을 끊고 빌붙기를 허락해준 친구들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취업을 해야 하는 대학 4학년을 앞둔 2005년의 가을이었다. 어학연수가 가야 되나 싶었다. 형편상 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호주로 가서 일해서 돈을 벌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았다. 초기 비용이 이삼백 정도는 든다고 한다. 어학연수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적게 드는 거라고 생각해서 어머니께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시간이 좀 지나서 의사결정과 제반 비용 지급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이삼백도 지원해주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등록금도 매번 학자금 대출로 내고 있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포기를 하고(지나고 나서 보니 잘한 결정이었다) 방학 때 남산도서관에 처박혀서 혼자 토익공부를 열심히(?) 했다. 당시에 취업 턱걸이라는 8 백점대를 겨우 넘기고 영어공부는 접었다. 다행히 지금의 N대형증권사 인턴생활을 거쳐서, K중형증권사로 여름방학에 취직을 했다. 4학년 2학기의 시작부터는 직장인 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으로 겨우 출발은 했다.


  돌이켜보니 늘 돈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흔히 벌어지는 일이지만 가족, 친척간의 불화도 돈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어머니가 세탁소 일을 하시다가 허리를 심하게 다치셨는데 돈 때문에 병원을 안 가셨다. 돈이 아까워서 평생 실손보험 하나도 가입하지 않으셨다. 보험은 가입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세탁소를 안 하시는 지금도 고물을 주으러 다니신다. 운동삼아 한 푼 두 푼 버시는 게 즐거우시다나...


  오천 원짜리 모의고사 문제집, 한 달 10만 원 남짓한 용돈, 보다 넓은 세상에서의 경험을 시작하기 위한 이삼백만 원이라는 돈은 각각의 목적을 위해서 꼭 필요하고, 없으면 불편하다. 병원을 가서 병원비를 내고 치료를 받지 않으면 회복기간이 길어진다. 너무 가혹한 가난을 경험하게 되면 평생 나이나 건강상태와는 상관없이 푼돈이라도 버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 일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원하는 재화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최소한 필요한 만큼보다 몇 배는 더 벌어야 한다. 그래야 필요할 때 편하게 쓸 수가 있다.


  돈을 좀 많이 벌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대단한 어떤 것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불편함을 해소하는 선택을 거리낌 없이 하기 위함이다. 내 자식이 원하는 바를 나에게 표현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내 자식이 돈보다 본인의 안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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