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서 오는 전환점
부족하구나. 바꿔야겠다. 내일은 달라져야겠다.
중학교 3학년의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부모님과 내가 한 방에서 자던 시절이었다. 잠들기 전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대학을 가도 등록금을 지원해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이셨다. 부모님이 세탁소를 함께 운영했었다. 수입이 많지가 않았던 것이다. 가난까지는 아닌데 4년 후에 아들이 대학에 입학을 하고 다니는 동안에 학비를 낼 자신이 없으셨던 것이다. 물론 학자금을 은행에서 빌려서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도, 나도 몰랐다.
어쨌든 그때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반에서 상위권 턱걸이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던 나였다. 책을 읽는 것은 꽤 좋아했던 것 같다. 성적에 욕심이 많지는 않았다. 어린 마음에 대학을 못 가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보다 공부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자금 대출 제도는 몰라도 장학금은 알고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이 되자마자 선생님께 찾아갔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점수를 얻어서 외국어고를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좀 많이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학원을 다닐 형편은 되지 못했다. 구할 수 있는 문제집 같은걸 활용해서 열심히 했다. 그때 처음으로 공부에 진심이었다. 그때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봤다. 200점 만점에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어야만 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었다. 결과는, 아깝게 떨어졌다. 젠장...
내가 사는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쓸데없이 여유 있게 입학했다. 그래도 공부를 진심으로 열심히 해 본 덕분에 얻은 게 있다. 공부를 해서 좋은 시험성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았다.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반에서 1등. 점점 성적이 좋아져서 고등학교 2학년쯤에는 문과에서 전교 1등. 성적을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은 이후에 뼈저리게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그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더 잘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에 관한 것이다. 아버지가 등록금을 지원해주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기 때문일까. 그 말씀이 방아쇠가 된 것은 맞다. 하지만 총을 어디로 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학비를 지원받으며 대학을 다닐 수 없다면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다른 선택을 해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랬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매번 선택이다.
계기가 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부족함, 결핍, 그로 인한 위기가 왔다는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결핍에서 오는 위기의 순간이 내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끌고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것을 수도 없이 느꼈다. 앞으로 내가 써 나갈 글의 내용에서 이 전환점에 대한 부분은 계속 언급이 될 것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전환점이다.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일 것이다. 당신이 자녀에게 어떤 부분에서 부족함을 호소해야 하는 부모님일 수 있다. 성실하게 살아왔음에도 수입이 적을 수 있다. 열심히 산다고 여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담담하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라. 너무 미안해하지 마시라. 자녀에게 부족함을 호소하고, 자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당신이나 자녀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다.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는 이후 당신과 자녀의 몫이다. 선택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과정이고 노력이다.
당신이 자녀로서 부모님으로부터 당신의 미래를 지원해주기가 버겁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수 있다. 아니면 당신이 보기에 부모님의 삶이 너무 버거워 보여서 당신의 미래를 지원받기가 어렵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친구들보다 빨리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앞으로 살면서 운이 중요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을 것이다. 당신의 부모님 덕분에 당신은 운 좋은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 어제처럼 오늘을 살았다면, 내일은 오늘과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당신을 큰 선물을 받았다.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명확해졌다. 당신이 스스로 노력을 통해서 채워야 할 부분이 생겼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도 알게 되었다(성인이 되어서도 뭐라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제 행동하면 된다. 분명히 성과를 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친구들보다 먼저 이런 일련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후에 발생할 수 없이 많은 문제 상황에서도 더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더 해야겠다. 아니면 내가 무엇인가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해 주는, 상황이 주는 부족함, 결핍이 주는 위기의 순간은 이토록 감사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