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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성 Jul 23. 2021

근원적 변화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나이를 먹으면서 아침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재택근무라 출근에 대한 부담도 없어 더 자려고 잠을 청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일찍 잠이 깨면 아침 운동을 하거나,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는다.

오늘은 일어나기 싫어 빈둥거리다 갑자기 이전에 읽었던 "뉴타입의 시대"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이미 읽었던 책이라 큰 기대감은 없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자는 마음으로 제목이 끌리는 부분만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읽어 나가다 우연히 책의 마지막 장인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다시 쓴다.' 제목 아래에 있는 체 케바라 글에 이끌렸다.


누군가 내게 구제불능의 몽상가요, 이상주의자라고 한다면, 또는 되지도 않을 일을 꿈꾼다고 한다면 골백번이라도 외치겠다. 그래 맞아. 그렇고 말고!


이 장의 제목과 체 케바라 글을 보니 '저자가 마지막 장을 어떻게 마무리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빈부격차를 확대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며 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어떻게 변화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해결책인가?


잘못된 시스템을 다른 시스템으로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은 매우 쉽고 간편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고 등장했던 공산주의 시스템은 '잘못된 시스템'을 '더욱 잘못된 시스템'으로 대체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위와 같이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단순히 시스템의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어떤 시스템으로 바꿔야 문제가 해결될까?'만을 이야기하지만 시스템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달라지지 않는 한, 시스템이 평화나 부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과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앗, 이 말은 내가 클린코드 강의를 할 때 하는 이야기와 비슷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자들이 프로젝트를 유지 보수하다 보면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다. 프로젝트가 더 이상 유지 보수하기 힘든 상태가 되는 순간 프로젝트를 재설계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개발자의 원대한 재설계의 꿈의 결과는 어떨까?


생산성이 0에 수렴해 가는 시점에 개발자들은 재설계를 요구함.

프로젝트 관계자 또는 리더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함.

레거시 프로젝트와 새로운 프로젝트가 병행하면서 경주를 시작

새로운 프로젝트는 기존 프로젝트의 기능을 따라잡아야 함. 

기존 프로젝트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

새로운 프로젝트는 기존 기능 + 새로 추가한 기능 따라잡아야 함.

끝나지 않는 반복


프로젝트 품질을 높여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원대한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쌓아 놓은 똥 덩어리에 새로운 똥(기존보다 더 큰) 덩어리를 추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십상이다. "뉴타입의 시대" 책의 시스템을 프로젝트로 바꾸면 다음과 같이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레거시 프로젝트를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은 매우 쉽고 간편하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나도 이 주장에 동의한다. 일시적으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전의 프로젝트와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유지 보수하기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려면 안정적으로 레거시 코드를 리팩터링 하면서 높은 품질을 추구하는 개발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순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빠르게 무엇인가를 만드는 역량은 쌓이겠지만 레거시 코드를 리팩터링 하는 역량은 쌓기 힘들다. 기존의 레거시 프로젝트를 유지 보수하면서 점진적으로 품질을 높여 나가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이 길이 힘들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용기 또한 필요하다.


다시 "뉴타입의 시대"의 시스템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저자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의 시나리오를 다시 써야 할 때라 주장하고 있다.


결국 시나리오를 다시 쓰려면 무대 위에서 적절하게 행동함으로써 발언권과 영향력을 높이는 동시에 시나리오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잃지 않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이중성을 문제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시스템 개선을 주도할 뉴타입이라고 할 수 있다


위 글이 이 책의 끝이다. 이중성을 소화하며 시스템 개선을 주도하는 뉴타입을 진정한 리더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한참을 생각했다. 점점 더 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지금까지 당연하다 생각했던 삶의 방식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써봐야겠다. 


지금까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더 집중하며 살아온 것 같다. 레거시 프로젝트를 버리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보다 레거시 프로젝트의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며 프로젝트 참여자의 생각과 문화를 바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느끼듯이 사회 시스템 문제 또한 같이 접근해야겠다. 앞으로의 삶은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더 집중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자로 사는 삶은 참 의미 있고 감사한 삶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새로운 시나리오를 쓴다는 의미가 막연할 수 있어 마지막으로 이 책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글을 맺는다.


오늘날에는 교육을 잘 받은 엘리트들 중에도 '이런 잔혹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하는 얕은 관점으로 지표를 설정하는 사람이 많다. 만약 우리 사회가 잔혹하다면 교육받은 엘리트가 정말로 고민해야 할 과제는 '잔혹한 사회에서 어떻게 이기느냐' 같은 비천한 것이 아니라 '왜 우리 사회는 잔혹한가?', '어떻게 하면 공평한 사회가 될 것인가?'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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