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다. 이 글에 공감할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의 나였다면 절대로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글이다. 아니 말도 안 된다. 부족함이 많은데 좋다니.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나는 강원도 양양의 정말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외부와의 소통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환경 탓도 있었지만 나의 내향적인 성향도 크게 한몫했다.
집에 처음으로 전화기가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전화기를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해 다들 이 집 저 집 전화하기 바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 대화한다는 것이 너무 낯설고 부끄러워 한 동안 전화를 하지 못했다. 집에 나 혼자 있을 때 전화기가 울리기라도 하면 여간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집안 환경 때문이었을까? 나는 참 사회에 불만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강릉에 있는 대학의 학생들이 우리 동네로 농활을 왔다. 대학생 형, 누나들이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공부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친구들은 대학생 형, 누나와 매일 저녁을 잘 어울려 놀았다. 그런데 나는 뭔지 모를 반항감 때문이었을까? 대학생 형, 누나들의 그런 친절함이 싫었다. 함께하기 싫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동네에 같은 학년의 남자 친구는 한 명도 없고, 여자 친구들만 5명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동생과 참 다양한 놀이를 하며 놀았다. 나는 유독 운동 신경이 부족하고 느렸다. 그 때문인지 돌로 밤을 따다가, 불어난 물에 떠가는 페트병을 맞추다가 몇 번이나 동생의 머리를 깨트렸다. 동생의 머리에는 아직도 흉터가 남아 있다. 한 번은 큰집 형들이 새를 잡기 위해 화살을 쐈는데 우연히 함께 걸어가고 있던 나와 동생에게로 날아왔다. 그런데 운동 신경이 좋았던 동생은 피했지만, 아무 생각 없던 나의 어깨에 화살이 꽂혔던 일도 있다. 물론 그 일로 내가 아닌 큰집 형들이 크게 혼났지만 나는 그만큼 운동 신경이 부족하고 느렸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여러 면에서 부족함이 많았던 아이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변 어른들로부터 "저 성격에 사회 생활할 수 있을까?",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참 많이도 들으면서 자랐다. 공부는 내가 좀 더 잘했지만 항상 동생보다 더 많은 걱정 어린 말을 들었다. 그런 경험이 쌓여서였을까? 나는 20대 중반까지 정말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다. 부족함도 많고, 자존감도 낮고,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많은 상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었던 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커뮤니티 활동하는 것에 집중했다. 커뮤니티를 통해 온라인으로 강의 문서를 만들고,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활동은 내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좋은 창구 역할을 했다.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면 온라인 활동에 집중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3년 동안 온라인으로 꾸준히 활동하다 보니 출판 제의를 받아 몇 권의 책도 출간했다. 책을 냈더니 관련 주제로 강의를 제안하는 곳도 있었고, 만남을 제안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런데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모든 요청을 거절하고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집중했다. 그렇게 5년이 이어졌다.
사람 만나는 것을 힘들어했던 나의 부족한 성향이 5년 동안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었다.
5년 동안 온라인으로만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너무 재미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생겼다. 어쩌면 회사 생활을 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프라인 활동의 첫 시작으로 스터디에 참여하면 좋겠다 생각했다. 여러 스터디를 찾아봤는데 내가 원하는 주제로 스터디를 진행하는 곳이 없었다. 주제도 그렇지만 형식이나 여러 측면에서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만들자니 스터디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끄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스터디를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그렇게 몇 달을 허송세월했다.
이미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일까? 전날 먹은 술기운이 남아 있던 어느 날 내가 생각하고 있던 주제와 방향을 정리한 후 스터디원 모집을 시작했다. 특별히 많은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로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스터디는 대 성공이었다. 스터디에 참여하는 개발자들은 정말 적극적이었고, 토론은 끝이 없었다. 나의 삶에 있어 '오프라인으로 사람을 만나 직접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활동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첫 경험이었다.
내가 주도해 시작했고, 어떤 모임보다 즐겁고 참여도가 높은 스터디였기 때문일까? 새로운 모임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모임을 리딩하고 운영해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이 경험은 부족함이 많고,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한 나에게 상당히 큰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다.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보니 책을 쓰자는 제의를 많이 받아왔고 지금도 종종 받는다. 그런데 책을 쓸 때마다 나의 삐딱함이 드러났다. 나는 내가 읽기 싫어했던 형식으로 글을 진행하거나, 이미 특정 주제의 책이 많으면 책을 쓰기 싫었다. 내가 책을 쓰지 않아도 이미 참고할 좋은 책이 많은데 굳이 내가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벌고 싶었지만, 아니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돈만 생각하며 책을 쓰는 것이 너무 재미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지만 그 속에서 내 나름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일을 시작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쓰더라도 기존의 형식과는 다르게 내가 원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
사회의 많은 부분을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나의 시선이 책을 씀에도 다름을 만들었다. 새로운 형식의 책은 다수의 지지자와 소수의 비판자를 만들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기존의 정해진 틀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다름을 만들어 가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내향적인 성격 탓인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참 힘들어했다. 그런 힘듦에도 불구하고 스터디를 리딩하고, 회사의 팀장이 되고, 교육자의 삶을 살다 보니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나의 영향력을 확대해 함께 일을 해나가려면 1:1 면담은 중요했다.
팀장이 되고 1:1 면담의 중요성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화에 대한 어려움 때문인지 항상 망설여지는 활동 중의 하나였다. 어쩌면 1:1 면담을 하면서 팀원들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몫했으리라.
1:1 면담에 대한 부담감과 고민을 가지고 살던 어느 날 '나의 단점을 활용하면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담, 대화 관련 책들을 보면 좋은 면담은 리더(교육자, 코치 등등)가 많은 말을 하기보다 잘 듣는 경청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상대방의 고민에 공감해 주고, 문제의 방향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도록 열린 질문만 잘해도 좋은 면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대화를 잘하고 즐겨하는 성향도 아닌데 이 성향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내가 가진 성향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관점을 바꾼 이후로 1:1 면담에 대한 부담감은 많이 줄었다. 내가 그리 호응과 공감을 잘하고 위로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진정성을 담아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학교 공부는 정말 하기 싫었다. 가만히 앉아 듣는 강의식 수업 또한 싫었다. 하지만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싫지만 할 수밖에 없는 그 상황 자체가 싫었다. 어쩌면 그런 환경이 사회, 사람, 어른들에 대한 반항심을 만들었을 수 있다.
교육자의 삶을 시작하며 내가 싫었던 교육 환경은 정말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강의식 교육 밖에 없었다. 달리 어떤 교육을 하는 것이 좋은 교육인지, 의미 있는 교육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냥 막막했다.
무작정 다양한 교육 관련 책을 읽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침묵으로 가르치기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부터 말이 말도 안 된다. 침묵으로 가르친다니 가능한 일인가? 지금까지 역량 있는 교육자는 강의를 잘하는 것이 기본이고, 강의를 잘하는 것의 기본은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교육자의 가장 중요한 역량은 말하기라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어떻게 하면 긴장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면서 말할 수 있을까?'에 집중하면 살았다. 그런데 침묵으로 가르칠 수 있다니.
좋은 교육이란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즉, 강의를 통해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다. - 침묵으로 가르치기 중에서
위 글을 읽는 순간 내가 지향해야 할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아니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이때부터 교육 효과가 있는 방식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무수히 많은 실패를 했고, 어쩌다 한 번씩 작은 성공을 맛봤다. 그렇게 나만의 교육 철학을 만들면서 점점 더 단단한 교육자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말을 잘하고,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기존과 같이 말을 잘하는 강의식 교육 방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내가 다른 교육 방식을 찾고, 나만의 교육 모델을 만들게 된 이유는 나의 부족한 점 때문이다.
1:1 면담을 하다 보면 자신의 삶에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다. 이 원인을 찾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주변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끼고, 열심히 노력해도 주변 사람들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상태로 학생 시절을 보낸 후 사회로 진출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부족함, 단점을 인식하고 관점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했더니 오히려 나의 좋은 점, 장점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점과 단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면 그 부족함과 단점을 주변 사람들에 비해 다른 점이 많은 사람으로 생각하면 어떨까? 다른 점을 활용해 나만의 학습 방법, 글쓰기, 말하기, 사회생활 잘하기 등등으로 만들어 간다면 나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만의 경쟁력을 만들다 보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살아보니 부족함과 단점이 많은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여러 면에서 뛰어나고 잘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빠르게 일정 수준에 도달하다 보니 삶이 무료해지는 경우도 종종 본다. 특히나 사람의 수명이 점점 더 길어지는 상황에서 너무 빠른 성취, 성공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다. 현재는 내가 부족한 점이 있지만 이 부족함을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해 가는 과정은 삶의 커다란 즐거움을 만들고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나 또한 운동 신경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신체의 변화에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1000일간의 운동 기록 참고 ). 느려도 너무 느리다. 솔직히 지금보다 조금은 더 빠르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ㅋㅋㅋ
지금은 좀 부족한 점이 있으면 어떤가? 속도가 좀 느리면 어떤가? 내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성장하고 전진하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삶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