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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성 Aug 21. 2023

가장 많이 성장할 때는?

개발자에게 꾸준한 성장 경험은 중요하다. 아니 모든 사람에게 성장은 중요한 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상황일 때 가장 많은 성장과 배움을 만들 수 있을까?


나는 2000년 12월에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2년 9월까지 거의 12년을 개발자로 살았다. 2012년 9월부터 현재까지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으니 교육자의 삶 또한 11년이 되어간다. 개발자로 산 시간과 교육자로 산 시간이 비슷해지고 있다. 총 23년의 경력을 쌓으면서 많은 배움과 성장을 만든 순간을 정리해 보려 한다. 성장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각 순간을 관통하는 부분이 있는지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쓴다.


비개발자 -> 개발자

직장인에게 '가장 많은 배움과 성장을 한 때는 언제냐?'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신입 때부터 2, 3년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나는 3개월간 학원을 다닌 후 개발자로 취업했기 때문에 취업에 성공한 후 2, 3년의 성장 경험은 23년 경력에 있어 가장 높았다.


개발자라는 전문가로 취업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개발자로 인정하기도 힘든 상태였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대부분의 용어들이 낯설었으며, 요구하는 기능을 기간 내에 마무리하는 것도 어려웠다.


프로그래밍 역량을 높인다는 명목하에 많은 것을 희생했다. 결혼도 하고, 첫째 아이도 있는 상태였는데 회사 생활 외의 모든 시간은 프로그래밍 관련 학습에 투자했다. 그렇게 2, 3년을 정말 열심히 살았다. 프로그래밍 역량을 쌓아, 연봉을 높이는 것이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미래가 나아질까? 가끔씩 밀려드는 이런 막막함과 불안감. 그런 막막함과 불안감 속에서도 프로그래밍 역량을 높이기 위해 학습에 투자하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었다. 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믿고 의지하는 가족들이었다.


개발자 -> 리더

첫 번째 팀장 제안을 거절했다. 두 번째 제안을 받았을 때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만 6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나는 리더의 역할을 맡는 순간 개발자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팀장이라니... 내게 팀장 제안을 한 것은 리더십 역량이 뛰어나기보다 나이 순으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마음속 한편에는 '팀장이 하는 일이 뭐가 있나?', '하는 일 없이 월급만 많이 받는 것이 리더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팀장 자리를 수락하기는 했는데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 몰라 막막했다. 한 명의 팀원일 때는 나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잘 성장하고 성과를 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팀장을 맡는 순간 내가 직접 성과를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물론 초반에는 팀 리딩도 하면서 나만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발악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는 회의와 팀원들의 코칭 때문에 도저히 내가 직접 성과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나지 않았다.


많은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다. 팀장인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팀에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 나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팀원일 때, 한 명의 개발자일 때 가졌던, 맞다고 생각했던 생각들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성장만을 생각하다 내가 아닌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이런 마음가짐이 리더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맞다. 단순히 머리로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팀장의 역할에 대해 의식적으로 노력했지만 회사 일이 재미없어지면 불현듯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내가 잘 살고 있나?', '나의 경쟁력을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리더로 성장하는 것인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이 고통과 힘듦 때문이었을까?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팀원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역할이고,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시나브로 가슴까지 이어졌다. 고통이 따르고, 고민이 많았던 만큼 나는 리더로서의 역량을 키워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리더 -> 교육자

프로그래밍이라는 일은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일이 어떤 의미를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너무 즐겁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내가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는 만큼 특정 기업의 부만 늘리고, 빈부격차를 키우는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고, 지쳤다는 느낌이 들어 한 달 휴직을 냈다. 휴직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일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운명의 장난일까? NEXT라는 새로운 교육 기관이 생기는데 현장 경험이 풍부한 개발자를 교수로 초빙한다는 소식이었다. 틈틈이 책을 쓰고, 강의를 하면서 지식을 나누고 공유하는 것의 즐거움과 의미를 느끼며 살아왔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비전공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의 현장 경험과 활동을 인정받아 합격했다. 그렇게 개발 리더에서 교육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리더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5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막상 교육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지만 리더를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이 막막했다. 짧은 특강과 한 학기 과목을 맡아 교육을 해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2년 과정의 웹 백엔드 전담 교육자로서의 역할은 달랐다. NEXT는 기존 교육과는 다른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 기관이다. 나 또한 그 점에 마음이 끌려 동참했다. 이에 교육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교육 자체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다.


6년 전 리더의 길을 걷기 시작했을 때와 같은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풀이되었다. '교육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NEXT에서 나는 어떤 교육자로서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 'NEXT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만들고 싶은 지향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어떤 교육이 의미 있는 교육인가?' 


교육만을 전담하는 교육자의 길은 처음이었고, 조언해 줄 사람도 없었다. 개발자와 리더를 시작했을 때와 같이 여러 시도를 해보고 경험을 통해 하나씩 깨우치고, 배움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여러 질문들을 마음속에 품으면서 하나씩 하나씩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어떤 교육이 의미 있는 교육인지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런 다양한 시도와 고민들이 교육자의 길에 대한, 교육에 대한 나만의 생각과 기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교육자 -> 사업가(ZERO to ONE)

몇 주 전에 NEXT에서 함께했던 교수님을 만났다. 나에게 물었다. "교수님, NEXT가 왜 망했는지 아세요?"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댔다. 그런데 뜻밖의 이야기를 한다. "NEXT는 너무 좋아서, 이상적이어서 망한 거예요. 좋은 것은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너무 이상적이었을까? 순항하는 듯 보였던 NEXT는 2년이 지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만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했다. 교육자의 길을 걷겠다는 큰 결심을 하고 개발자의 길도 포기하고 동참했는데 허무했다. NEXT를 정리한 후 교육자의 길을 계속 걸을 걷인지, 개발자로 다시 돌아갈 것인지 갈림길에 섰다. 개발자의 길로 돌아가기 위해 몇몇 회사들 면접도 보고 합격도 했다. 그런데 막상 개발자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니 지난 5년 동안 쌓은 교육 경험이 너무 아까웠다. 개발자의 길은 내가 원하면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데 교육자의 길은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 같았다. 교육자의 길을 계속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은 프리랜서와 같이 일했다. 교육 제안이 오면 교육을 진행하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다. 그런데 외부 요청에 의해 진행하는 교육에 조금씩 회의감이 들었다. 외부에 의존하는 교육은 지속 가능하기도 힘들고, 내가 원하는 교육을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망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교육을 하고 싶었다. 2018년. 그렇게 NEXTSTEP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사업을 시작했다. 말이 교육 사업이지 교육자 한 명, 개설된 강의 하나의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1인 교육 사업가로 조용히 살고 있던 어느 날 우아한형제들(이하 우형)로부터 의외의 제안을 받았다. 우형이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을 위한 장기 교육 과정을 만들 계획인데 이 교육 과정을 맡아 줄 수 없겠냐는 제안이었다. NEXT 또한 NHN(현 네이버)의 후원을 받아 시작한 교육 기관인데 5년도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이런 경험 때문에 기업의 후원을 받아 진행하는 교육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NEXT를 통해 실현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절대 기업 후원 교육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무엇인가에 이끌려 수락했다. 그렇게 2019년에 우아한테크코스 교육 과정을 만들고 운영하기 시작했다.


2018년 NEXTSTEP(재직자 대상), 2019년 우아한테크코스(취업 준비생 대상). 동시에 2개의 교육 기관을 운영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NEXTSTEP은 1인 교육 사업이고, 기존 교육 경험을 기반으로 지속해 나가면 됐지만 우아한테크코스는 달랐다. 우아한테크코스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ZERO to ONE의 상황이었다. 우형이라는 든든한 뒷 배를 두기는 했지만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키워나가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빠르게 의사 결정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문제는 넘쳐났다. 지난 5년간 교육자로 살며 정립한 교육자에 대한,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이 우아한테크코스의 중심을 잡으면서 일관된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NEXTSTEP과 우아한테크코스라는 2개의 교육 기관을 시작했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불확실함, 고통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미래의 불확실함 때문에 두려움, 불안감이 컸다. 더불어 새로운 일을 맡으면서 추가로 필요한 역량을 쌓고, 그에 따른 질문과 고민도 많은 시간이었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과 섞이면서 나 자신과 상황을 회고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여유를 가지고 돌아보면 가장 많은 성장을 했던 순간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이라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었던 순간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경험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운가? 어쩌면 고통스러운 만큼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지는 성장하는 순간에는 알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불안한 감정도 생기고, 자신감도 떨어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이런 불안함과 두려운 감정이 생길 때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을 보니 잘 성장하고 있나 보다.'라고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을 바꿔보면 고통을 꼭 피할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약간의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우리 삶에 있어 꼭 힘듦과 고통을 피할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해 힘듦과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보통 2, 3년의 시간이 걸렸다.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다. 2, 3년 동안의 힘든 시간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매너리즘에 빠져 새로운 동력을 만들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내 삶의 변곡점을 보면 5, 6년의 사이클로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네 번째 사이클이 끝나가고 있다. 사업가 이후 다음 단계는 어떤 도전을 할까?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이 때문일까? '내가 너무 성장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계속해서 성장하는 경험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어쩌면 다음 단계의 성장은 나 자신의 성장과 배움이 없더라도 삶 자체를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열심히, 잘 올라왔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잘 내려가는 것도 또 다른 성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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