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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성 Aug 28. 2023

흔들리는 삶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중심을 잡으면서 외부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며 살려 노력했다. 아니 거의 발악 수준이었다. '나이 마흔(40)이 되면 불혹이라 하여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가 된다.'라는데 마흔이 넘어도 자주 흔들렸으며, 쉰(50)이 넘은 지금도 가끔씩 흔들린다.


집과 돈

40대까지 나의 가장 큰 흔들림의 원인은 집이었다. 아니 더 큰 원인은 돈이었다. 나는 빚 없이 사는 삶을 지향했다. 빚이 있으면 빚을 갚기 위해 회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내가 원하는 기회가 왔을 때 자유롭게 결정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나의 생각을 솔직히 말하기보다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조만간 집 값이 떨어질 거야?'라는 말로 아내를 설득했다. 하지만 떨어지는 듯싶었던 집 값은 다시 오르고, 다시 떨어지는 듯싶었던 집 값은 끊임없이 올랐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 누가 집을 샀는데 몇 억이 올랐다는 아내의 말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자.'는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아내의 눈치도 받지 않았을 테고, 그만큼 재산도 늘었을 것이다.


집 값이 오르고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참 많이 흔들렸다. 아내의 잔소리뿐이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양가 부모님, 친척들, 주변 친구들로부터 듣는 '집을 왜 사지 않느냐?', '누구는 집을 사 몇 억을 벌었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는 나를 많이 힘들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경험을 쌓고, 나만의 길을 선택해 묵묵히 걸어갔지만 주변 환경은 참 많이도 힘들고, 흔들리게 했다.


개발자의 길

나는 2000년 겨울에 개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벤처 붐이 꺼지기 직전이었다. 벤처 붐이 꺼지면서 일거리가 적어져 첫 회사 6개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아무 경험도 쌓지 못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껴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첫 시작부터 힘든 길이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프로그래밍이 적성에 잘 맞았다. 힘들지만 지금 이 순간이 지나가면 좋은 때가 금방 오리라 믿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중요성은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랐다. 몇 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는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낮아졌다. 개발자는 3D 업종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컴퓨터 공학과는 공대에서 커트라인이 가장 낮은 과가 되었다. 프로그래밍이 좋고,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것이 좋아 이 길을 계속 걸어갔지만 개발자에 대한 인식이나 처우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가끔씩 흔들릴 때가 있었다.


교육

의미 있는 교육, 좋은 교육은 어떤 교육일까? 나는 좋은 개발자가 되는 과정에 쉽고, 편한 지름길은 없다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성장을 하려면 그만큼의 고통스러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습법이 맞다면 고통이 따르는 만큼 비례해 의미 있는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에 대한 이 같은 철학으로 넥스트스텝을 통해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은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교육 사업을 하는 곳은 효율성과 속도를 강조하고, 취업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마케팅에 집중하는 교육 기관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그에 따라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빠르게 성장해 가는 다른 교육 기관들을 보면서 '내가 교육 사업을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흔들리는 삶

우리네 삶은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대다수가 선택하는 평범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갈 때 더 많이 흔들린다. 나만의 길을 걸어가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을 만났을 때 나는 흔들린다.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길어질 때 나는 흔들린다. 한 고비를 넘어 다른 고비를 만날 때 나는 흔들린다.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해도 해결책을 찾지 못할 때 나는 흔들린다. 우리 삶은 끊임없는 흔들림의 연속이다.


흔들리는 삶이지만 점점 더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중심을 잡으려면 상당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집과 돈에 대한 흔들림에서 중심을 잡게 된 계기는 주변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2020년 초에 집을 샀다. 결혼하고, 회사 생활을 시작한 후 20년이 지났을 때이다. 대출을 싫어한 만큼 대출 없이 집을 샀다. 집을 사고 2년이 지난 2022년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다. '주변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출 금리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데 오히려 예금 금리가 올라 좋다.'라고 아내가 한 마디 건넨다. 아내는 집을 빨리 사 많은 재산을 축적한 것은 아니지만 집 한 채가 있고, 대출 금리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며 살고 있다. 20년 이상의 시간. 참 오래 걸렸다. 하지만 오래 걸렸더라도 내가 집과 돈에 대해 생각했던 방향이 꼭 틀린 것이 아님을 인정받을 수 있어 고맙다.


2000년 이후 바닥을 치던 개발자에 대한 인식과 처우는 201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나아지기 시작했다. 한 해가 지날수록 서서히 좋아지더니 2020년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되면서 급격히 좋아졌다. 처우도 빠르게 높아졌고, 취업이 잘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개발자에 대한 지망생도 많아졌다. 올해(2023년) 엔데믹이 오고, 투자가 줄면서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이번은 지난 15년에 비해 훨씬 더 짧은 시간 내에 회복할 것으로 예상한다. 15년이라는 다소 긴 시간이 걸렸지만 개발자로, 개발자를 양성하는 교육자로 살아가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때이다.


이 두 번의 경험 때문일까? 교육 사업에 대한 외부의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더라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내가 교육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사업을 지속한다면 미래의 언젠가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리라 믿는다.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흔들려야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연습을 할 수 있다.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잡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찾고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삶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지 않을까? 흔들려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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