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미의무의미무> 첫 번째 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
벼랑 끝에 내몰린 모든 것들은 그렇게 진심을 가득 안은채 누군가 바라보아 주기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득한 벼랑 끝 너머로 곤두박질 칠 때 날개를 펼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예술대학 전문학사를 마친 우리들은 일 년을 학교에 더 머물렀다. 4년제 학사 졸업장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누구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불안한 학생 신분을 더 이어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모순적이다.) 하지만 한 학기를 무의미하게 흘려 보낸 우리들은 저마다 생각했던 학교생활과는 점점 멀어져감을 느꼈고, 불안 속에서 다가올 다음 학기를 마주해야 하는 현실에 떨고 있었다. (학교라는 곳은 언제나 그렇듯 배움을 배신한다. 진작 떠나야 함을 알면서도 떠나지 못한 겁쟁이의 변명만이 남아 있을 뿐.)
반 학기가 끝나갈 무렵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학교에서 프로젝트 팀을 만들어오면 원하는 교수님을 멘토로 수업을 개설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목소리를 내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성 강한 예대인에게서 그런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에 속하는데, 나는 지금도 이는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결국 우리들은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여러 교수님들, 학과장님과 몇 번의 만남 후에 2학기 때 수업을 개설하게 되었고, 매주 수요일 오후 7시에 성수동 교수님 작업실에서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여러 번의 회의와 학교를 설득하기 위해 PPT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은 고된 작업이었지만 그 누구도 쉽게 불만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본능은 그 어떤 거대함을 압도할 수 있는 강한 의지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머리와 육체,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스스로 길을 찾아 걷게 만드는 무언의 힘이다. 그리고 진실하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꺼져가는 우리들의 계절에 기분 좋은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불안하지만 혼자가 아닌 함께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막연한 안개 속을 걷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서 낼 수 있는 용기들.
무기력했던 삶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이 생겼다. 의미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자 익숙하지 않은 자판을 두드린다. "현재에 살아라, 걱정을 하면 걱정만 늘어난다, 우리가 하는 고민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거나 쓸모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를 믿지 않는다. 그렇게 똑똑하거나 현명하지 도 않거니와 부지런을 떨며 살기엔 너무 부족한 깜냥이다. 단지 기록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한 가지는 알고 살기 위해서..
이 글은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사진전공 졸업생 6명과 실내 디자인 전공 졸업생 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전시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노트입니다.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조금 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삶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투른 글을 남깁니다. 첫 번째 기록. 끝. (사진/글 이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