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미무미의무> 아홉 번째 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데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밥벌이를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는 학업을 마친 후, 자신의 독창성이나 생각, 재능이 아니라 다만 지능, 즉 산술적으로 측량 가능한 능력, 각 개인들에게서 오로지 양적으로만 구분되는, 어떤 이는 더 있고 어떤 이는 덜 있는, 알랭은 더 가지고 있는 편인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리하여 월급을 많이 받았으며 때때로 아르마냐크 브랜디를 살 수 있었다.
-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
모든 것은 소멸된다. 그리고 이내 사라진다.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돌연 마음이 떠나 멀어지기도 한다. 멀어지면 그뿐. 세상에 온정이라는 것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죽음과 이별, 끝이라는 듣기만 해도 삭막한 느낌의 단어들만이 이 세상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있는 것 같다.
아쉽게도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지 않고 성장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들의 싸움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을 테다. 그러니 누군가는 누군가를 밝고 올라간 경험담을 자랑처럼 늘어놓기도 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렇게 삶은 계속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간다.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Show Must Go On.
우리들의 무의미한 Show도 벌써 여섯 번째 전시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패션 사진을 전공하고 패션 사진가를 꿈꾸는 한빛이 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업을 하고 그 위에 페인팅을 하는 그런 작업 방식으로 제작되어진 작업들. 물감 속에 감춰진 얼굴들이 어쩌면 비로소 진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빡통도 가면을 쓰라고 요구하고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참 트렌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핳.
몇 번을 붙이고 다시 붙여도 작업 설치가 마음에 안 드는지 꽤 오랜 시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교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참 큰 위안이 된다. 아직 우리끼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거나 기대기엔 조금 더 많은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내일이면 L.A.로 ROAD SHOW를 떠나시는 교수님께서, 오늘도 역시나 수업을 마치시자마자 전시장으로 달려와 주셨다. 사진의 컬러와 종류가 다양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추려 나갈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흐흐. 아마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헤매었던 설치가 아닐까 싶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말이지. :)
일단 정말 걸고 싶은 작업들과 그렇지 않은 작업을 분류하고 가장 큰 그림부터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나랑 빛이는 색깔 별로 모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니었나 싶다. 레드 계열의 컬러를 가진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걸 모았던 게 가장 헤매게 된 큰 원인임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뭐 그래도 정해진 답은 없다.
일단 커다란 숙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다음 작업들은 빠르게 배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저분하거나 난잡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다음날 완성된 모습을 보고 제법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감각이 나의 감각을 뛰어넘은 순간이라는 생각에 또 스스로 깨어지고 만다.
월요일 설치는 여기까지.
내일 오전에 조금 더 다듬고 손님맞이만 하면 된다는. :0
긴 하루가 끝났다!
오프닝 Day :
이날은 오프닝이 조금 썰렁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장님이 L.A.로 가셨기 때문이지. 하핳.
매년 재미있는 ROAD SHOW를 하고 계셔서 참 부럽기도 하고 작게 만들어지는 책도 궁금해진다.
기록물이 젤 재미있단 말이지. ㅎㅎ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왠지 세운상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짬뽕을 먹어야 할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반장인 다운이가 그렇게 배고파하는 거 처음 봤다. 자매 육회 3호점 찾아갈 때의 눈빛 보다 매서웠다. - -+. 빛이의 작업은 작가의 Statement대신 더 어울리는 알록달록하게 페인팅 된 엽서로 대신하기로 했다. 굳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 보다 차라리 패션스럽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작은 기쁨이랄까. 나도 전시장 가면 항상 작은 도록들과 엽서 같은 기념품들을 챙겨오곤 한다. 그리곤 집 어딘가에 잘 보관하다가 한 번에 정리하기도 하는데 필요할 때 찾으면 꼭 없어지는 그런 머피의 법칙. 다른 작가들이 만든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 고로 잘 챙겨야 한다는 공자 님의 말씀.
김도균 교수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오늘따라 조용한 전시장에서 오랜 시간 서성이다 추운 날씨로 인해 조금 자리를 일찍 떠났다. 덕분에 오랜만에 다 같이 밥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 금보와 여진이가 학교로 일찍 돌아가서 아쉽긴 했지만, 다음에 또 함께 하기를 :)
여섯 번째 무의미, 장한빛 전시도 무사히 오픈 완료!
1. 이지은 - 2. 김금보 - 3. 김다운 - 4. 최인호 - 5. 이재준 - 6. 장한빛 - 7. 전여진 (Coming Soon)
사실 이번 주는 비가 계속 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랜 시간 바이오리듬이 다운되어 있다. 이상하게 카톡방도 조용하고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가장 추웠던 시기로 남아있는 12월. 개인적으로 나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주변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가장 먼저는 광고로 1400 정도의 견적서를 써본 것과 없어지면 불편한 물건을 두어 개 잃어버렸다는 점, 그리고 저 뒤로 깊숙이 밀어둔 나의 짐들과 내 주변에 쌓여있는 짐들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주 내내 아마 가장 무겁게 나를 눌러 내렸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시작이 그러했듯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으로부터 시작된다.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굳이 이렇게 까지 생각 안 해도 되겠지만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사실 그리 큰 무리 없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때문에 사람끼리 관계가 불편해지고 서먹서먹해지는 것이 꼴 보기 싫어 머뭇머뭇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오늘 아침엔, 누군가 길게 싸놓은 똥을 보고 괜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괜히 똥을 똥으로 깔보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내가 이런 생각을 왜 하고 있지 고민하다 보니 조금 몸이 떨려왔다. 시작은 그렇게 다들 했겠지 하는 마음에 괜히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정작 가만히 서서 멀뚱멀뚱 부른 배를 두 둥기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면서.
아무튼,
세운상가를 통해서 참 좋은 사람들을 또 많이 만나게 되었다. 지난 토요일엔 김인숙 작가님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속으로 뜨끔하기도 했고 앞으로 잘 되기를 응원해 주시기도 하고 12월엔 새로운 프로젝트에 함께 합류하게 되었다. 무슨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조만간 나에게 주어진 일들 남산 졸업전시, 도록 작업, 라운드 테이블 등 마무리를 잘 하기를 바라며. 겨울을 잘 이겨내고 새로운 여행길에 나서야겠다.
오늘 밤도 마왕의 고스트 스테이션을 다시 들으며 내일의 해가 뜨기를 기다려 봐야지! 고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요즘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 -
이 글은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사진전공 졸업생 6명과 실내 디자인 전공 졸업생 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전시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노트입니다.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조금 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삶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투른 글을 남깁니다. 아홉 번째 기록. 끝. (사진/글 이재준)
글을 쓰면서 찾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기록하는 것.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 함께 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게 생겼다는 것.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사소한 것 들 바라보기. 밤. 텅스텐 조명의 붉은빛. 트럭 탐내는 중. 전시장에서 반가운 얼굴들 맞이하기. 조금은 우울한 날들. 고스트 스테이션.
매주 수요일 발행하려고 노력 중이나 목요일 새벽에 겨우 발행되는 중.
이제 여진이의 전시가 끝나면 딱 한편의 글만 남았다. 조금 더 많은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더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