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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30. 2015

9. 그들 모두가 좋은 기분을 찾아 나선다.

<무의미의미무미의무> 아홉 번째 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런데 자신이 무슨 일을 좋아하는지 알기는 하는 걸까?) 밥벌이를 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는 학업을 마친 후, 자신의 독창성이나 생각, 재능이 아니라 다만 지능, 즉 산술적으로 측량 가능한 능력, 각 개인들에게서 오로지 양적으로만 구분되는, 어떤 이는 더 있고 어떤 이는 덜 있는, 알랭은 더 가지고 있는 편인 그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고, 그리하여 월급을 많이 받았으며 때때로 아르마냐크 브랜디를 살 수 있었다.


-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



@지난주 토요일 화재가 발생한 세운상가 골목길.

 

 모든 것은 소멸된다. 그리고 이내 사라진다. 예측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고, 돌연 마음이 떠나 멀어지기도 한다. 멀어지면 그뿐. 세상에 온정이라는 것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죽음과 이별,  끝이라는 듣기만 해도 삭막한 느낌의 단어들만이 이 세상에 죽지 않고  살아남아있는 것 같다.


@Ji Lee 작업실


 아쉽게도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지 않고 성장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자들의 싸움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을 테다. 그러니 누군가는 누군가를 밝고 올라간 경험담을 자랑처럼 늘어놓기도 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그렇게 삶은 계속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간다. 이런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Show Must Go On. 


@여섯 번째 무의미 장한빛 작업 설치 하는 날.


 우리들의 무의미한 Show도 벌써 여섯 번째 전시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는 패션 사진을 전공하고 패션 사진가를 꿈꾸는 한빛이 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작업을 하고 그 위에 페인팅을 하는 그런 작업 방식으로 제작되어진 작업들. 물감 속에 감춰진 얼굴들이 어쩌면 비로소 진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빡통도 가면을 쓰라고 요구하고 있는 세상이 아니던가. 참 트렌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핳.


@멘탈붕괴된 한빛
@이미지 셀렉중


 몇 번을 붙이고 다시 붙여도 작업 설치가 마음에 안 드는지 꽤 오랜 시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교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참 큰 위안이 된다. 아직 우리끼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거나 기대기엔 조금 더 많은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구세주 등장

 

 내일이면 L.A.로 ROAD SHOW를 떠나시는 교수님께서, 오늘도 역시나 수업을  마치시자마자 전시장으로 달려와 주셨다. 사진의 컬러와 종류가 다양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추려 나갈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전수해 주셨다. 흐흐. 아마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면서 헤매었던 설치가 아닐까 싶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말이지. :) 


@스승님은 돌쇠가 되어 디피를.. 그 뒤에서 마님은 코를 파고 계십니다.


 일단 정말 걸고 싶은 작업들과 그렇지 않은 작업을 분류하고 가장 큰 그림부터 위치를 잡기 시작했다. 나랑 빛이는 색깔 별로 모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니었나 싶다. 레드 계열의 컬러를 가진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걸 모았던 게 가장 헤매게 된 큰 원인임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뭐 그래도 정해진 답은 없다.


@작은 사진들을 배열하는 비시


 일단 커다란 숙제들을 해결하고 나니 다음 작업들은 빠르게 배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지저분하거나 난잡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는데, 다음날 완성된 모습을 보고 제법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감각이 나의 감각을  뛰어넘은 순간이라는 생각에 또 스스로 깨어지고 만다. 



@주인장 교체
@여섯 번째 무의미, 장한빛 





월요일 설치는 여기까지. 

내일 오전에 조금 더 다듬고  손님맞이만 하면 된다는. :0

긴 하루가 끝났다! 





 오프닝 Day :


이날은 오프닝이 조금 썰렁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장님이 L.A.로 가셨기 때문이지. 하핳.

매년 재미있는 ROAD SHOW를 하고 계셔서 참 부럽기도 하고 작게  만들어지는 책도 궁금해진다. 

기록물이 젤 재미있단 말이지. ㅎㅎ


@세운명품상가의 현판이 떼어지고 비시 간판으로 교체. 맘에 들었나 보다.
@작가의 Statement 대신 만든 페인팅된 엽서들.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왠지 세운상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짬뽕을 먹어야 할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반장인 다운이가 그렇게  배고파하는 거 처음 봤다. 자매 육회 3호점 찾아갈 때의 눈빛 보다 매서웠다. - -+. 빛이의 작업은 작가의 Statement대신 더 어울리는 알록달록하게 페인팅 된 엽서로 대신하기로 했다. 굳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 보다 차라리 패션스럽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엽서가 잘팔려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반장님도 뒤늦게 합류하여 엽서를 뒤적뒤적.


 역시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작은 기쁨이랄까. 나도 전시장 가면 항상 작은 도록들과 엽서 같은 기념품들을 챙겨오곤 한다. 그리곤 집 어딘가에 잘 보관하다가 한 번에 정리하기도 하는데 필요할 때 찾으면 꼭 없어지는 그런 머피의 법칙.  다른 작가들이 만든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 고로 잘 챙겨야 한다는 공자 님의 말씀. 


@전시장 모습
@바닥에도 - 

  

 김도균 교수님이 안 계셔서 그런지 오늘따라 조용한 전시장에서 오랜 시간 서성이다 추운 날씨로 인해 조금 자리를 일찍 떠났다. 덕분에 오랜만에 다 같이 밥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 금보와 여진이가 학교로 일찍 돌아가서 아쉽긴 했지만, 다음에 또 함께 하기를 :) 




여섯 번째 무의미, 장한빛 전시도 무사히 오픈 완료! 

1. 이지은 - 2. 김금보 - 3. 김다운 - 4. 최인호 - 5. 이재준 - 6. 장한빛   - 7. 전여진 (Coming Soon) 






끄적끄적.

@세운상가의 향기는 어디에나


 사실 이번 주는 비가 계속 내려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랜 시간 바이오리듬이 다운되어 있다. 이상하게 카톡방도 조용하고 연말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가장 추웠던 시기로 남아있는 12월. 개인적으로 나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주변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가장 먼저는 광고로 1400 정도의 견적서를 써본 것과 없어지면 불편한 물건을 두어 개 잃어버렸다는 점, 그리고 저 뒤로 깊숙이 밀어둔 나의 짐들과 내 주변에 쌓여있는 짐들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주 내내 아마 가장 무겁게 나를 눌러 내렸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시작이 그러했듯 누군가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으로부터 시작된다. 잠시 그 사실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굳이 이렇게 까지 생각 안 해도 되겠지만 시간이 돈이 되는 세상에서 사실 그리 큰 무리 없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때문에 사람끼리 관계가 불편해지고  서먹서먹해지는 것이  꼴 보기 싫어 머뭇머뭇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오늘 아침엔, 누군가 길게 싸놓은 똥을 보고 괜한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괜히 똥을 똥으로 깔보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내가 이런 생각을 왜 하고 있지 고민하다 보니 조금 몸이 떨려왔다. 시작은 그렇게 다들 했겠지 하는 마음에 괜히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정작 가만히 서서 멀뚱멀뚱 부른 배를 두 둥기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면서. 


아무튼,  

세운상가를 통해서 참 좋은 사람들을 또 많이 만나게 되었다. 지난 토요일엔 김인숙 작가님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속으로 뜨끔하기도 했고 앞으로 잘 되기를 응원해 주시기도 하고 12월엔 새로운 프로젝트에 함께 합류하게 되었다. 무슨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조만간 나에게 주어진 일들 남산 졸업전시, 도록 작업, 라운드 테이블 등 마무리를 잘 하기를 바라며. 겨울을 잘 이겨내고 새로운 여행길에 나서야겠다.


 오늘 밤도 마왕의 고스트 스테이션을 다시 들으며 내일의 해가 뜨기를 기다려 봐야지! 고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요즘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 - 






 






이번 프로젝트 전시의 로고.



 이 글은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사진전공 졸업생 6명과 실내 디자인 전공 졸업생 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전시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노트입니다.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조금 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삶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투른 글을 남깁니다. 아홉 번째 기록. 끝. (사진/글 이재준)



 글을 쓰면서 찾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 기록하는 것.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것. 함께 하는 것. 꾸준히 하는 게 생겼다는 것.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사소한 것 들 바라보기. 밤. 텅스텐 조명의  붉은빛. 트럭 탐내는 중. 전시장에서 반가운 얼굴들 맞이하기. 조금은 우울한 날들. 고스트 스테이션. 

매주 수요일 발행하려고 노력 중이나 목요일 새벽에 겨우 발행되는 중.


이제 여진이의 전시가 끝나면 딱 한편의 글만 남았다. 조금 더 많은 이야기들을 잘 풀어내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더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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