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미무미의무> 열 번째 밤.
오랜만에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타닥타닥 두드린다. 마지막에 여러 가지 일들이 몰아치는 바람에 브런치에 글 쓰는 건 완전 뒷 전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마지막 이야기인 만큼 대충 쓰고 싶지는 않았기에 새해가 밝아오기 전에 꼭 완성하자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일단 지난 아홉 번째 브런치 발행 이후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Short Version]
12월 7일 <전여진 프리뷰>를 마지막으로, 모든 무의미 팀의 전시를 무사히 끝마쳤다.
토탈미술관에서 우리들의 전시를 돌아볼 수 있는 (Round Table) 시간을 가졌다. 신보슬 큐레이터 선생님과 한예종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는 친구들이 함께 해주셨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무엇이 부족했고 아쉬운지 의견을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세운상가에서의 전시를 모두 끝내고 남산예술센터에서 또 한 번의 순회 전시가 있었다.
무의미 팀의 모든 전시를 같은 날, 한 장소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
학교의 예산안 정산 기간에 맞춰 영수증을 제출해야 했으므로 마감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우리들은 1주일간 거의 합숙하다시피 모여서 전시 도록을 디자인하였다. 전시 기간과 동일하게 1주일 동안 작업을 했다는... 별 내용이 들어가지 않은 도록이지만 나름 힘들어 죽을 뻔했다. 아이맥을 들고 매일 동대문을 오가는 피곤함. 이번 겨울에 몸살이 안 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우여곡절 끝에 도록이 나왔다. 그런데 인쇄 업체의 변명인지는 모르겠으나 잘못 나온 곳이 좀 있다. 적은 예산으로 만든 탓인지 접지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쫙 피면 쫙 찢어진다. 하하...ㅜㅜ
대충 요약해 보자면 이런 일들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들은 일상생활에 다시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꿈같은 시간들이 지나고 밀려오는 허한 감정들은 이내 사라지고 빠르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실 이번 전시 프로젝트는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 만큼은 전시와 작품보다는 처음부터 팀의 존재와 지속 가능 여부를 살핀다는 점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려고 의도한 바는 전혀 없었으나 하다 보니 어느덧 전시 자체 보다는 전시의 과정들을 기록하고 남기는 순간에 조금 더 몰두해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멤버들 모두 각자 다른 생각들을 마음에 품고 이 시기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새로운 개인작업에 조금 더 몰두했던 멤버도 있고, 별다른 무리 없이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는 친구도 있었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장르의 형식을 벗어나 해보고 싶은걸 마음껏 해보자 했던 멤버도 있었던 것 같다. 전시에 대한 성격과 기획 부분에 있어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팀과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뒤로 그런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작품 이전에 우리들이 있었고, 우리들이 공생하며 생존하는 과정 자체가 조금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생존하는 방법을 우리는 알지 못했으므로.
그렇다고 우리들이 무의미하다고 외쳤던 전시 프로젝트 자체가 무의미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사실 사람들이 무의미라는 단어에만 익숙하여 우리의 원래 제목인 <무의미의미무미의무> 9글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다른 '유'의미함에 대해서는 소홀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를 놓고 따지긴 뭣 하지만 나름 각자의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다운이는 홍순명 선생님과 함께 5월에 열리는 그룹전에 함께 참여하자는 제의를 받았고, 나도 세운상가를 인연으로 김인숙 작가님의 Continuous Way 2015 in Oryu라는 프로젝트에 참여 작가로 함께하게 되었다. 일회적인 이벤트가 될지도 모르지만 이런 기회들을 통해 다들 하고 싶은 일들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기를 소망한다.
비록 어느 정도의 인연과 성과가 있었다고 치자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함께' 했다는 것이 아닐까. 다운이가 라운드 테이블에서 자신의 소감을 발표했던 말이 생각난다. 모든 말들을 기억하고 있진 못하지만 핵심은 이렇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자신이 작업을 하거나 작가가 되기 위해 하면 된다는 나름의 확신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그렇다. 비록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일들이었지만, 힘든 시간을 함께 지내고 보낸다는 것에는 말할 수 없는 깊은 공감과 연대감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옆에 그냥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실은 우리들은 큰 위로를 얻곤 한다. 이런 사소한 사실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내가 선택한 길과 우리들이 걸어가는 길이 무의미하지 않음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깨닫고 앞으로도 계속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함께 했던 우리 멤버들과 우리를 지도해 주신 김도균 교수님. 무의미 전시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응원해 주신 여러 지인분들과 관객 여러분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2015년 12월 31일이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네요. 우리들은 이제 졸업을 하여 학교를 갈 일이 없겠죠. 아마 졸업식 때 나 볼 수 있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전시가 모두 끝나 세운상가를 자주 가지도 않을 텐데.. 뭔가 매일 같이 가던 곳을 떠나니 서운하고 허한 마음이 가득합니다. :)
해보자 해보자 했던 작은 마음들이 모여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다들 졸업하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겠지만. 함께 하면 되는구나 하는 마음가짐을 얻어서 떠나는 것 같아 마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습니다. 더욱 성장하여 시즌 2로 또 만날지도 모르지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시길!
이 글은 서울예술대학교 학사학위 과정에 재학 중인 사진전공 졸업생 6명과 실내 디자인 전공 졸업생 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전시 과정을 기록하기 위한 노트입니다. 시각 예술을 공부하며 조금 더 우리가 하는 일들을, 삶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서투른 글을 남깁니다. 마지막 기록. 끝. (사진/글 이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