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통해 배워가니까
둘째 딸 소이가 중1이 되었을 때
큰 딸처럼 따돌림을 당하였다.
따돌림을 관계적 공격성이라고 하는데,
소이가 또래 친구와 관계를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따돌림을 안이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해자의 신체적 공격이 없다 하더라도
엄연히 공격성의 표출이다.
소이에게 벌어진 따돌림을
단번에 쳐낸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나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유치원 원감으로 근무할 때
함께 근무한 교사의 sns에
학부모가 악플을 달았다.
교사는 모욕죄로 신고를 결심했고,
결과는 학부모에게 벌금형이 내려졌다.
벌금형이 가벼워 보이는가?
천만의 말씀!
벌금형 이상의 범죄는 경찰 데이터상에
평생토록 전과로 남는다.
학부모가 재범을 일으킨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 고소건으로 인해
경찰서에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이때 알게 되었다.
모욕죄의 성립요건 3가지를 말이다.
1. 공연성
2. 모욕성
3. 특징성
공연성은 날 가지고 무대에 올려
공연-험담-을 했는지 여부이고,
모욕성은 그 공연이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는지 여부이며,
특징성은 그 공연에서
험담의 대상이 나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나는 평소 버릴 경험은 없다는 주의다.
이번 역시 그랬다.
소이는 절친인
유진이와 다투게 되었고,
유진인 SNS 상에서
소이를 헐뜯기 시작했다.
카**나 페이** 뿐만 아니라
단체 채팅에서도 그러했다.
버릴 경험은 없다.
나는 모욕죄 성립요건을 떠올려
증거물을 수집해갔다.
단체 채팅에서 벌어지는
소이의 험담 내용을
소이 초등학교 때 친구가
캡처하여 보내주어
1번 공연성이 성립되었다.
채팅 내용이 충분히 굴욕적이라
2번 모욕성도 성립되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진 대화이기 때문에
그 험담 대상이 소이라고
지칭하는 내용이 없었다.
3번 특징성
증거를 잡기 위해 기다렸다.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채
칼만 갈고 있었다.
이때쯤 소이는 등교거부를 했고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촛불 같아 보였다.
나는 울음을 삼키느라
목이 메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딸의 정서부터 살폈다.
유아교육 석사,
놀이치료사,
유치원 원감인 나는
소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했다.
지금 제일 힘든 건 딸이기 때문에
소이의 분노, 화, 슬픔을 인정해주고
맛있는걸 많이 해 먹였다.
소이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해하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모든 게 해결되어
학교에 다시 등교하는 것이 베스트이나
설령 자퇴를 하더라도 괜찮다.
그때의 딸은
바람 앞의 촛불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소이가 우리 곁에 있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소이 이름이 채팅에 거론됐다.
모욕죄 성립 조건이 모두 갖춰진 것이다.
그동안 모은 증거자료를 모두 인쇄했다.
대략 20장쯤 되었다.
인쇄된 증거물을
공연성, 모욕성, 특징성
3파트로 분류하고 라벨도 붙였다.
경찰서로 바로 가지 않고,
담임선생님을 먼저 찾아뵈었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경찰서를 가려다가
선생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게
예의인 거 같아 뵙자고 했어요.
모욕죄 성립요건 3가지가
모두 있으니 보시면 아실 거예요.
유진이가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내고
다시 친해지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지금 이 시간부터
사과도 하지 말고,
다시 친해지려고도 하지 말고,
SNS에서 소이 험담을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유진이와 유진이 어머님께
말씀드려주세요.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냥 신고하겠다고 전해주세요."
과연 여기서 멈춰졌을까?
처음엔 험담이 잠잠해졌고,
몇몇 다른 친구들이
소이에게 안부를 물어와
딸도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사람 쉽게 변하는 거 아니라더니..
다시 험담 내용이 페이**에 올라왔다.
이번엔 정말 꼭지가 돌았다.
그러나 내 자식이 피해자라 해서
유진이를 직접 만나선 안된다.
잘못하면 되려
내가 아동학대에 걸릴 수 있다.
그래서 유진이 엄마와 통화를 했다.
거의 반 정신을 놓고
악다구니를 써가며 쏟아냈다.
"갈 때까지 가보자는 거예요?
유진이 핸드폰을 뺏든
계정을 탈퇴시키던지 해서
험담을 못하게 막으시라고요.
당장 지우지 않으면
내일 바로 경찰서에 갈 거니까
알아서 하세요. "
내가 미친년이 되자 끝이 났다.
더 이상의 악플도 따돌림도 없었다.
용기를 낸 소이는 학교에 등교를 했다.
중학교 올라오면서
반이 갈린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다 와서 소이를 챙겨줬다.
급식도 같이 먹으러 다녔다.
차츰 소이네 반 아이들도
소이를 이전처럼 대했다.
그리곤 딸은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이리도 파란만장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