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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n 05. 2021

부모 자격 있습니까?

미안하다, 아들


아내는 단단히 화가 났다. 밤 열두 시가 되도록 아들이 집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면 오히려 화가 덜 났을 텐데, 그날도 아들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열 시에 학원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전화를 했다. 수업을 마쳤는데 중학교 때 친구가 학원 앞에 기다리고 있어서, 삼십 분만 만나고 가겠다고.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러나 열한 시가 어도 아들은 오지 않았다. 걱정하던 아내가 결국 전화를 했다. 지금 어디냐고. 아들은 말했다. 집 앞이라곧 가겠다고.


그러나 아들이 현관에 들어선 것은 열두 시 반을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아내는 아들을 앉혀놓고 얼추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야단을 쳤다. 야단의 핵심은, 늦은 귀가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방점이 찍혔다. 옆에 앉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지적이 모두 옳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내의 꾸지람을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제 잘못을 아는 것 같았다. 한참 만에 아내가 일어섰다. 더 혼내주지 않고 왜 여기서 끝내냐고 몇 마디를 보태는 것으로 나는 소심하게 아내의 편을 들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며칠 동안 집안 분위기가 조금은 냉랭했다. 아들은 평소처럼 웃으면서 말을 걸려고 했지만 아내는 작정한 듯 굳은 얼굴로 일관했다. 일종의 암묵적인 체벌이었을 것이다. 그 바람에 나도 덩달아 아내의 눈치를 봐야 했다. 아들이 도와달라는 신호를 내게 보냈지만, 선뜻 나설 수는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서먹함이 꽤나 낯설었다.


오늘 아침, 방에서 나온 아들이 뜬금없이 제 전화기를 아내에게 건넸다. 무슨 일이냐고 눈짓으로 묻는 아내에게 아들이 말했다. “지훈이 어머니가 바꿔 달라셔요.”


지훈이는 아들의 중학 친구였다.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던, 아들의 잘생긴 친구의 이름을 내가 기억한다. 아내는 전화기를 받아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통화 내용이 궁금했지만 잠시 참기로 했다. 한참 만에 다시 밖으로 나온 아내가 조금은 당황한 얼굴로 전화 내용을 내게 말해주었다.




아버지에게 심하게 야단을 맞은 지훈이가 가출을 결심했다. 야단 중에 튀어나온 심한 욕설이 화근이었다. 참을 수 없었던 지훈이는 무조건 집을 나가기로 했단다. 그러나 그전에 꼭 봐야 할 친구가 있었다. 그게 아들이었다.


학원이 끝나기를 기다려 만난 아들은, 그러나 지훈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모님을 이해해야 된다, 사소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출하면 안 된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각오라면 떠나도 좋다, 하지만 네가 사라진 다음에 부모님의 심정을 생각해봐라, 등등. 그래도 쉽사리 가출 의지를 꺾지 않는 지훈이를 달래고 달래다가 결국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 와서야 겨우 설득에 성공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 지훈이를 굳이 집에 데려다주고, 그리고 현관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아들은 돌아왔다. 그 바람에 그날 귀가가 늦어진 것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모두 알게 된 지훈이 어머니가 감사의 뜻으로 아들을 불러 점심을 사주겠다고 한다. 아들 덕분에 지훈이가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고, 지훈이 어머니가 특별히 고마워하더라는 말도 아내가 전했다.




“아니, 그러면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을 할 일이지. 그걸 왜 숨겨?”


아내가 아들을 다시 거실로 불러냈다. 지훈이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게 맞니? 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날밤에 사실대로 말했으면 너도 야단맞지 않았을 것 아니니? 그러자 아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비밀로 하기로 약속했거든요, 지훈이랑.”


약속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는 아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자꾸만 부끄러워졌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현관에 엉거주춤 서 있던 우리는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우리는 부모 노릇을 꽤나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잘 재우고, 또 잘 가르치고 있으며, 다른 부모들보다 훨씬 더 개방적으로, 그리고 훨씬 더 융통성 있는 대화를 통해 아들을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해서 아내와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지금 당장 말이다.



Image By GHIBLI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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