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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un 16. 2021

여보, 이것 좀 고쳐줘

아내의 영역


아니, 그것 하나 조립 못 해요?"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아내가 결국 한마디를 했다. 나는 지금 선풍기 부품을 끼워 맞추느라 얼추 삼십 분째 진땀을 흘리고 있다. 거의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봐. 결국 아내의 한숨이 등에 와서 닿는다. 그런데 그 한숨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프다. 그나저나 이 나사라는 놈이 당최 들어갈 생각을 않는다. 콧등 위로 또 땀이 흘러내린다.




아내 말이 맞다. 창피한 말이지만 나는 손재주가 없다. 없어도 어느 정도껏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무全無하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내가 손기술이 없는 것은 아버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그 말에는 약간의 어폐語弊가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손재주로 대변되는 목수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축구 선수 아버지 밑에 축구 선수 아들이 있고, 낚시광 아버지 밑에 강태공 아들이 있듯이 목수의 아들인 나는 당연히 손재주가 좋아야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그 이유는 필시 당신의 직업에 대한 아버지의 극단적인 혐오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건설 노동자로 부산에 정착한 아버지는 행여 내가 당신의 표현대로 ‘빌어먹을 그 직업’에 조금의 관심이라도 가질까 봐 언제나 염려하셨고, 그래서 손을 써서 하는 일로부터 철저히 나를 떼어 놓으셨다. 선천적인 재능이 없다면 후천적인 학습이라도 해야지 싶어 혼자서 몰래 고장 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기라도 하면, 아버지와 엄마는 그것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셨다.


“너는 그런 거 못해도 된다. 공부나 해라.”


그래서 나는 군대에 갈 때까지 내 손으로 무언가를 고쳐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군대에 가서 극적으로 달라졌다는 말도 아니다. 군대식 표현을 빌자면 ‘발생 하자에 대한 복구 미흡’이 생겼을 경우, 그저 고참들의 욕설과 얼차려로 때우는 것이 나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졸업한 후에 부모님 품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손재주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공덕동 옥탑방 시절, 어쩌다 고장 난 것이 있으면 아래층에 들러 주인 어르신께 간단히 부탁만 드리면 되었다. 효창동 반지하로 이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위층에 사시는 아버님께 열쇠를 드리고 출근하면, 저녁에 내가 돌아왔을 때는 말끔히 고쳐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핵심은, 아내의 손재주가 궁극의 최강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세상에 없던 것도 척척 만들어 내는 아내에겐, 하물며 기존에 있던 것의 고장쯤은 그야말로 식은 죽에 숟가락 담그기나 다름없었다. 관리실에 연락하거나 사람을 부르자는 내 채근에도 아내는 일언반구 없이 묵묵히 망치를 들었다. 원래 고장이 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작당한 것인지, 아내가 몇 번 만지기도 전에 그것들은 금세 멀쩡해졌다. 어떨 땐 공구함을 열 필요조차 없었다.


그런 절대 능력자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어디가 고장 났는지, 어쩌다가 문제가 생겼는지 정도를 충실히 고해바치는 것뿐이었다. “자기야, 변기가 이상해. 여보, 불이 안 켜져. 황여사, 세탁기가 안 돌아가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는 특유의 지청구를 날리면서 소매를 걷어 올렸다. “아이참, 오빠는 나 없으면 어떻게 살려고 그래?” 사실 맞는 말이었다. 신혼 초, 아내가 지방 출장을 갔을 때 나는 사흘 동안 껌껌한 방에서 양초를 켜고 지냈던 적도 있다. 물론 아내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게 말이야. 당신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촛불 켜고 텔레비전 볼 뻔했어, 그지?” 자존심 따위는 그렇게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아들도 우리 부부의 그런 사정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엄마, 자전거가 이상해요. 엄마, 컴퓨터가 안 켜져요. 엄마, 글러브 좀 고쳐 주세요.” 내게는 도와달란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엄마는 우리 집 맥가이버, 아빠는 수리와 상극相剋이라는 공식이 아들의 머릿속에 단단히 터를 잡은 듯했다.




지난 주말, 올여름에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올 거라는 뉴스를 듣고 서둘러 선풍기를 꺼냈다. 작년 가을에 부품 별로 나눠서 고이 싸 두었던 것을 다시 꺼내 하나씩 손질하고 재조립을 할 생각이었다. 그것들을 거실에 펼쳐 놓을 즈음에 아내와 아들이 내 뒤 소파에 앉았다. 마치 실기 평가를 치르는 학생과 감독하는 선생님들의 자세였다. 그렇게 삼십 분이 지나고 있었다.


드라이버를 들고 나사를 이리저리 끼워보다가 결국 나는 아내에게 말다. “당신이 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그 말에 아내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저쪽으로 비키라는 턱짓을 다. 턱짓에 자존심이 왜 상해? 이심전심일 뿐인데? 그 모습을 본 아들의 표정 역시 아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빼앗다시피 공구를 가져간 아내가 선풍기를 조립할 동안 아들을 작은 방으로 슬쩍 불렀다.


“사실 아빠도 할 수 있는데, 우리 집에서 기계와 관련된 건 전부 엄마의 영역이잖니? 그걸 존중하지 않으면 엄마 기분이 어떻겠니? 당연히 나쁘겠지? 그래서 그런 거야. 알겠지? 절대 오해하지 마. 아빠도 원래는 잘해.”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방에서 나가버다. 이 자식이 기분 나쁘게! 그러면서 문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선풍기가 씽씽 돌아가고 있다. 역시!

 



아까도 말했지만 사실 나는 못 하는 것이 아니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그깟 수리쯤이야 얼마든 문제없다. 하지만 나는 아내의 영역을 지켜주고 싶을 뿐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저 안 하는 척할 뿐이고, 아내의 자존감을 위해 못 하는 척할 뿐이다. 내 깊은 속을 저 두 사람이 알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당당하게 큰소리로 말한다.


“여보, 이것도 좀 고쳐줘.”


여보, 밥솥에서 가끔 냄새가 난다고 그랬지? 그건 내가 고쳐볼게. 대신, 사무실에 갖고 가서 고칠 건데 이틀 정도 걸릴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구. 완전 새것처럼, 진짜 새것처럼 고쳐서 가져갈게. 날 믿으라구. 그럼 그럼. 내가 누구야?



Image by Free-Photo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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