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아내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 기름 투성이만 아니라면 간단한 설거지 정도는 일상적으로 내 몫이었다. 지난주에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단지, 오늘 아침이 이전과 달랐던 점이라면 딱 한 가지, 새삼스럽지 않은 도움의 일상에서 내가 접시 한 개를 ‘해 먹었다’는 것이다.
손에서 살짝 미끄러진다 싶던 그릇이, 먼저 씻어 엎어둔 접시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찍었다. 그리고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쩡! ‘쨍그랑’이 바닥에 떨어지는 숟가락이라면 ‘쩡’은 무언가 작정하고 깨지는 소리다. 그렇다. 접시가 그만 네 조각이 나버렸다.
그것은 아내를 부르기에 충분히 큰 소리였다. 그래도 우선 기대했던 반응은, ‘괜찮아? 다친 데 없어?’였다. 하지만 아내의 1절은 ‘이걸 어째?’였고, 2절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해?’였으며, 두세 번 반복된 후렴은 ‘저리 가!’였다. 공연한 죄인이 되어 바지춤에 손을 대충 닦고는 소파 끝에 쪼그리고 앉았다.
잠시 후 사진까지 찍어가며 수습을 끝낸 아내가 옆으로 왔다. 그리고 나 들으라는 혼잣말을 한다. "내가 얼마나 아끼는 그릇인데. 어머니가 결혼 기념으로 사 주신 건데." 이쯤 되면 가중 처벌에 확인 사살이다. 아내는 곧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발신음이 들리도록 스피커를 미리 켜는 것을 보면, 전화 상대가 누군지 벌써부터 짐작이 간다. 당연히, 부산의 우리 엄마다.
“어머니, 애비가요 저쩌고 어쩌고 어머니가 사 주신 어쩌고 저쩌고 제가 엄청 아끼는 어쩌고 저쩌고 접시를 있잖아요 박살을 어쩌고 저쩌고…”
아내의 일방적 진술에 현혹된 엄마는, ‘오냐오냐’를 몇 번 반복하더니 서슬 퍼런 명령을 날리며 전화를 끊는다. “오늘부터 밥 주지 마라.” 엄마, 저 오십이예요. 그릇 하나 깼다고 밥을 주지 말라니…. 한껏 신이 난 아내가 이번에는 누나와 여동생에게 깨진 접시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는 눈치다. 어떤 말들을 주고받는 것인지 허리를 젖혀가며 한참을 또 깔깔거린다. 그런 아내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속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내는 엄마와 각별하다. 맞다. 흔히 말하는 고부지간姑婦之間이다. 아내는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딸 대하듯 아내의 이름을 편하게 부른다. 남들이 뭐라든 당사자들은 상관없단다. 아내와 누나 역시 각별하다. 아들의 교육 문제를 비롯해서 나보다도 현직 교사인 누나와 더 많은 상의를 한다. 여동생과는 또 어떤가. 시쳇말로 두 사람은 절친 이상의 아삼육이다. 내가 일주일 정도 해외 출장이라도 가면, 아내는 서둘러 짐을 챙겨 부산의 여동생 집으로 간다. 두 사람은 같은 또래인 데다 취향마저 비슷하다. 그리고 술고래들이다.
네 사람이 더욱 특별한 사이가 된 것은 분명 나 때문이다. ‘내 사업’을 하겠노라며 호기롭게 독립한 이후에 참으로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더 이상 말아먹을 것이 없는 바닥에까지 추락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악이란 말조차 의미 없던 그 시기에 세 사람이 결국 아내를 불러 앉혔다. '더 참기 힘들다면 이혼해도 된다. 너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네가 그렇게 결정해도 우리는 널 이해한다.' 하지만, 그저 엄마의 손을 잡고 누나와 여동생 앞에서 목놓아 우는 것이 아내의 유일한 대답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실패들 때문에 만들어진 수많은 고생의 에피소드들은 아내와 세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내에게 세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든든한 ‘남’이었고, 세 사람에게 아내는 그래도 못난 사람 하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주는 유일한 ‘남’이었다.
그런 '남'과 '남'이 죽을힘을 다해 그 어려운 고비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언제나 빠지지 않는 엄마의 지청구는 “네 아내, 업고 다녀라.”이고, 누나와 여동생의 변함없는 당부는 “네 아내, 모시고 살아라.”이다. 이에 상응하는 아내의 변辯 역시 "세 분이 안 계셨다면..."이다.
억울할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네 사람 앞에서 나는 영원한 죄인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교도소에서 밥은 준다. 고작 접시 하나 깼다고 단박에 밥을 주지 말라는 것은, 엄마! 이하 생략.
아내는 금세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백화점에 갈 거란다. 같이 가자는 말이 없다는 것은 살 것이 이미 정해졌다는 뜻이다. 깨진 접시 한 개는 새 접시 하나로 충분할 텐데 아내의 셈은 조금 다르다. 깨진 것 하나는 무려 열두 개의 새 것이 들어 있는 '신상' 세트 하나와 바뀔 예정이란다. 차키를 손가락에 걸고 뱅뱅 돌리며 현관을 나서는 아내가 그런다.
“내일도 설거지해 줄 거지? 오케이?”
아내가 나간 후에, 깨진 접시를 다시금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정말 내가 깬 것이 맞는지, 미리 살짝 금이 갔던 것은 아닌지. 그릇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내는 과연 어떤 속셈이었을까? 찬찬히 헤아려 본다. 흐음, 어렵다. 한계다. 이쯤 되면 국과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문이라도 떠야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