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Jul 24. 2021

아내의 속셈

밥을 주지 말랍니다, 세상에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아내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내야 하는 기름 투성이만 아니라면 간단한 설거지 정도는 일상적으로 내 몫이었다. 지난주에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단지, 오늘 아침이 이전과 달랐던 점이라면 딱 한 가지, 새삼스럽지 않은 도움의 일상에서 내가 접시 한 개를 ‘해 먹었다’는 것이다.


손에서 살짝 미끄러진다 싶던 그릇이, 먼저 씻어 엎어둔 접시의 한가운데를 정확하게 찍었다. 그리고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쩡! ‘쨍그랑’이 바닥에 떨어지는 숟가락이라면 ‘쩡’은 무언가 작정하고 깨지는 소리다. 그렇다. 접시가 그만 네 조각이 나버렸다.


그것은 아내를 부르기에 충분히 큰 소리였다. 그래도 우선 기대했던 반응은, ‘괜찮아? 다친 데 없어?’였다. 하지만 아내의 1절은 ‘이걸 어째?’였고, 2절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해?’였으며, 두세 번 반복된 후렴은 ‘저리 가!’였다. 공연한 죄인이 되어 바지춤에 손을 대충 닦고는 소파 끝에 쪼그리고 앉았다.


잠시 후 사진까지 찍어가며 수습을 끝낸 아내가 옆으로 왔다. 그리고 나 들으라는 혼잣말을 한다. "내가 얼마나 아끼는 그릇인데. 어머니가 결혼 기념으로 사 주신 건데." 이쯤 되면 가중 처벌에 확인 사살이다. 아내는 곧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발신음이 들리도록 스피커를 미리 켜는 것을 보면, 전화 상대가 누군지 벌써부터 짐작이 간다. 당연히, 부산의 우리 엄마다.


“어머니, 애비가요 저쩌고 어쩌고 어머니가 사 주신 어쩌고 저쩌고 제가 엄청 아끼는 어쩌고 저쩌고 접시를 있잖아요 박살을 어쩌고 저쩌고…”


아내의 일방적 진술에 현혹된 엄마는, ‘오냐오냐’를 몇 번 반복하더니 서슬 퍼런 명령을 날리며 전화를 끊는다. “오늘부터 밥 주지 마라.” 엄마, 저 오십이예요. 그릇 하나 깼다고 밥을 주지 말라니…. 한껏 신이 난 아내가 이번에는 누나와 여동생에게 깨진 접시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는 눈치다. 어떤 말들을 주고받는 것인지 허리를 젖혀가며 한참을 또 깔깔거린다. 그런 아내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속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내는 엄마와 각별하다. 맞다. 흔히 말하는 고부지간姑婦之間이다. 아내는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딸 대하듯 아내의 이름을 편하게 부른다. 남들이 뭐라든 당사자들은 상관없단다. 아내와 누나 역시 각별하다. 아들의 교육 문제를 비롯해서 나보다도 현직 교사인 누나와 더 많은 상의를 한다. 여동생과는 또 어떤가. 시쳇말로 두 사람은 절친 이상의 아삼육이다. 내가 일주일 정도 해외 출장이라도 가면, 아내는 서둘러 짐을 챙겨 부산의 여동생 집으로 간다. 두 사람은 같은 또래인 데다 취향마저 비슷하다. 그리고 술고래들이다.


네 사람이 더욱 특별한 사이가 된 것은 분명 나 때문이다. ‘내 사업’을 하겠노라며 호기롭게 독립한 이후에 참으로 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더 이상 말아먹을 것이 없는 바닥에까지 추락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최악이란 말조차 의미 없던 그 시기에 세 사람이 결국 아내를 불러 앉혔다. '더 참기 힘들다면 이혼해도 된다. 너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네가 그렇게 결정해도 우리는 널 이해한다.' 하지만, 그저 엄마의 손을 잡고 누나와 여동생 앞에서 목놓아 우는 것이 아내의 유일한 대답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실패들 때문에 만들어진 수많은 고생의 에피소드들은 아내와 세 사람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내에게 세 사람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든든한 ‘남’이었고, 세 사람에게 아내는 그래도 못난 사람 하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주는 유일한 ‘남’이었다.


그런 '남'과 '남'이 죽을힘을 다해 그 어려운 고비를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언제나 빠지지 않는 엄마의 지청구는 “네 아내, 업고 다녀라.”이고, 누나와 여동생의 변함없는 당부는 “네 아내, 모시고 살아라.”이다. 이에 상응하는 아내의 변辯 역시 "세 분이 안 계셨다면..."이다.


억울할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네 사람 앞에서 나는 영원한 죄인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도 교도소에서 밥은 준다. 고 접시 하나 깼다고 단박에 밥을 주지 말라는 것은, 엄마! 이하 생략.




아내는 금세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백화점에 갈 거란다. 같이 가자는 말이 없다는 것은 살 것이 이미 정해졌다는 뜻이다. 깨진 접시 한 개는 새 접시 하나로 충분할 텐데 아내의 셈은 조금 다르다. 깨진 것 하나는 무려 열두 개의 새 것이 들어 있는 '신상' 세트 하나와 바뀔 예정이란다. 차키를 손가락에 걸고 뱅뱅 돌리며 현관을 나서는 아내가 그런다.


“내일도 설거지해 줄 거지? 오케이?”


아내가 나간 후에, 깨진 접시를 다시금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정말 내가 깬 것이 맞는지, 미리 살짝 금이 갔던 것은 아닌지. 그릇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아내는 과연 어떤 속셈이었을까? 찬찬히 헤아려 본다. 흐음, 어렵다. 한계다. 이쯤 되면 국과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문이라도 떠야 되나?


국과수, 저 좀 도와주세요!



All Image by Crying Jin Woo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 이것 좀 고쳐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