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왜 밥을 물에 말았어?
아내와 아들과 저녁을 먹으려던 참이었다. 며칠 동안 입맛이 없었던 탓에, 밥그릇을 받자마자 물부터 부었다. 그냥 대충 말아서 간단히 먹고 치울 생각이었다. 그걸 본 아내가 말했다.
“밥을 왜 물에 말아요?”
밥. 을. 왜. 물. 에. 말. 아. 요. 거기에는 질책이나 핀잔 또는 놀림의 낱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기분을 거스를만한 억양도 절대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그리고 글자 그대로, 밥을 왜 물에 마는가 하는 단순한 질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밥을 왜 물에 말아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가 싶더니 나도 모르게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커컥으로 시작해서 끄억끄억, 그러다가 나중엔 대성통곡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왼손엔 밥그릇을, 오른손엔 숟가락을 움켜쥔 채로 말이다. 그렇게 얼추 십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울음이 그쳤다. 휴지를 뽑아 뺨과 턱에 묻은 눈물을 닦는데, 아내와 아들이 미동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뜬금없는 울음이라 나도 놀랐는데 하물며 가족들은 오죽했을까 싶었다. 한참 만에 아들이 그랬다.
“아빠, 콧물도 닦으세요.”
2016년 가을, 그 일이 있은 다음날, 아내와 함께 나는 정신과를 찾았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울게 된 상황을 나름 심각하게 설명했다. 한참 동안 조용히 듣고만 있던 의사는, 우선 비뇨기과에서 소변과 혈액 검사부터 받으라고 했다. 본격적인 상담과 진료는 그 결과가 나온 다음에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신과 상담인데 웬 비뇨기과?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사흘 뒤 상담 시간. 의사 선생님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주로 최근의 심리 상태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솔직하게 답했다.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저 평온한 일상이 어디 있겠느냐, 알고도 참고, 모르고도 참으며 그렇게 지낸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란 괜히 의사가 아닌 것이다. 원래부터 정해진 수순인지, 즉흥적인 유도 심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몇 가지의 추가적인 질문 끝에, 선생님은 결국 내게서 그런 답을 이끌어냈다. "사실 때때로 극단적인 상황을 상상하기도 하고, 해서는 안될 몹쓸 행동에 대해서 돌발적인 충동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말없이 그것을 듣고 있었다.
선생님의 최종 진단과 설명은 이러했다.
나는 지나치게 나 자신을 억누르며 통제하고 있다. 제대로 된 분출구 없이 한쪽에서 틀어막기만 했으니 속은 이미 곪은 상태다. 그것이 갑자기 터지면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유 없이 터지는 눈물은 그 모든 행동의 전조前兆다. 그것은 주로 일에서 비롯되며, 보통은 스트레스라고 표현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잠재적인, 그리고 오래된 심리적인 요소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내 속의 변화를 알지 못한 채 지나치거나, 알면서도 방치하게 되면 그것이 곧 우울증, 그리고 공황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서둘러 병원에 오기를 잘했다고 칭찬까지 했다. 그리고 진료가 마무리될 즈음, 비뇨기과에서 받아온 혈액 검사 결과를 보여주면서 선생님이 덧붙였다.
나이를 감안한 호르몬 수치는, 이미 남성이 아닌 여성입니다.
나는 의사의 처방대로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일상에서 보완할 몇 가지를 빠짐없이 실천했다. 우울증이나 공황 장애의 가능성도 있었다고 했으니, 빨리 검사를 받은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치료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무엇보다도 아내 때문이었다.
병원을 다녀온 다음날부터 아내는, 부산의 어머니와 누나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머니, 글쎄 애비가요, 형님, 저 사람이요, 아가씨, 오빠가요, 글쎄, 알고 보니 여자라네요? 하하하.
상당히 순화되고 각색되었을 것이 뻔한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어머니와 누나의 대답은 똑같았다. “어릴 때부터 걔가 그랬다. 언제부터 울었냐 하면 말이다.” 여동생은 한술 더 떴다. “그 나이 되도록 여탕女湯에 간 이유가 있었다니까요.”
아내의 그런 현명한 수다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는, 나름 심각했던 상황을 꽤나 현명하게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내가 아내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부분이다.
그 날의 밥상머리 눈물을 잊을 리 없는 아내는 지금도 그런다. “언니, 우리 심심한데 마트나 갈까요?” 아내의 놀림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저 말없이 아내를 따라나서다가, 그래도 노파심에서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여 본다.
“그래도 마트에선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네?”
정신과 진료를 겁내지 말자. 예방 주사로 병病을 대비하듯, 정신과 진료도 마찬가지다. 모든 병이 그렇겠으나 특히 정신과 질환은 일단 발병하면 치유가 어렵고, 가족들이 받을 상처 또한 만만찮기 때문에, 그저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코로나 사태가 이어지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