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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y 10. 2021

퇴사하려고 입사합니다

진실과 진심 사이


내가 자문을 맡고 있는 회사의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채용 면접을 하려는데 시간이 맞으면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시국에 사원을 채용한다 하니 우선 칭찬부터 할 셈이었다. 그런데, 강 대표의 반응이 의외로 시원찮았다. 알고 보니, 말없이 잘 다니던 직원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통보하듯 퇴사를 해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충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재차 추임새를 넣으려던 목소리도 그 바람에 사그라들었다.




최종 면접 대상자는 세 명이었다.


첫 번째 지원자는, 현재 다른 회사에 근무 중인, 이른바 이직 희망자였고, 두 번째 지원자는 관련 업종에서 일하다가 퇴사한 뒤로 계속 구직 중인 여성 지원자였다. 세 번째는 지난 2월에 졸업한, 말 그대로 파릇파릇한 신입이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재능이나 필수 이력에 대한 것은 강 대표와 팀장이 챙길 사항이었기에, 나는 그저 지원자들에 대한 느낌만을 간략히 메모하면 되었다.


세 지원자들 모두 경험 유무를 떠나 차분하고 조리 있게, 그리고 씩씩한 어조로 말을 참 잘했다. 이런 사람들이 여태 직장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였다. 내가 대표라면 과연 누구를 뽑아야 할지 적잖이 고민이 될 것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강 대표를 쳐다보았다. 강 대표의 얼굴에도 그런 고심이 가득했다.


면접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강 대표가 지원자들에게 각자의 장래 계획을 물었다. 첫 번째 면접자는, 기존의 경험을 ‘우리 회사’에 녹여 성장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두 번째 면접자는, 휴직 기간이 길었던 만큼, 그 간절함을 바탕으로 ‘우리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 지원자는 뜬금없이 꽤나 현란한 수사로 말머리를 장식했다. 내가 잘 모르지만 저명할 것 같은인사의 이름도 서넛 등장했다. 그러다가 어느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힘을 주어 말했다.


“저는 이 회사에 2년 정도 다닌 다음, 여기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더욱 큰 회사로 옮기겠습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나설 자리가 결코 아니었음에도 나도 모르게 “네? 2년 다니다가 그만 둔다구요?"라고 묻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조금의 지체함이나 망설임 없이 다시 큰 목소리로 답했다.


“네, 이삼년 정도 근무한 다음, 더 큰 곳으로 도전할 계획입니다.”


입사 면접 자리에서 지금 퇴사를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묻고 싶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억지로 참았다. 그저, “네~그렇군요.”라고만 말했다. 생각을 물었으니 생각을 답한 것인데, 거기에 대고 시비를 따져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조금 놀라셨죠, 선배님?”


강 대표가 다시 커피를 건네주며 웃었다. “저 정도는 요새 아주 흔한 겁니다. 더 심한 경우도 많아요.” 나는 커피잔을 매만졌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라떼 싫어해.” 내 농담을 금방 알아차린 강 대표가 빙긋 웃었다. 내가 면접을 보던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다른 회사에서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겠습니다. 구한말 우국지사의 심정으로 죽을 때까지 우리 회사에서 일하겠습니다.”

“한 번 직장은 영원한 직장입니다. 제 뼈를 우리 회사에다 묻겠습니다.”

“저는 정년퇴직 후에도 수위로 일하며 제 평생을 우리 회사에 바치겠습니다.”


그랬다. 그때 우리 모두는, 변하지 않는 충성을 저마다의 장래 희망에 앞장 세웠다. 그것이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속마음이야 어떻든 적어도 면접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진심인 척하는 것이 중요했다. 면접관으로 참석했던 회사의 임원들도, 그런 우리의 대답을 흐뭇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과정을 거쳐 만 팔천 명의 지원자 중 스무 명이 선발되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구한말 우국지사, 뼈를 묻은 사람, 그리고 여의도의 귀신을 다짐했던 친구들이 합격자 명단의 윗자리에 결국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 그 회사에 남아 있는 동기는 한 사람도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면접 결과는 굳이 묻지 않았다. 다음 주 즈음에 회사를 다시 방문하면 알게 될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지원자의 말이 맴돌았다. “제가 너무 솔직해서 부담스러우십니까? 속마음을 꾸미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나자 아내가 그랬다.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인데, 사실이긴 한데, 조금 어렵다 그죠?”


과연 나는 그런 속내가 싫었던 걸까, 아니면 속내를 거침없이 말하는 그 행위가 싫었던 걸까? 솔직해선 안되는 순간과 거짓을 말해도 되는 순간은, 서로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렵다.


Title image by dudu19 from Pixabay.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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