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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pr 28. 2021

직접 찍어 먹어봐야 압니다

백문이 불여일찍


간만에 저녁을 밖에서 먹는 것이 어떨까 하길래 흔쾌히 아내를 따라나섰다.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아내는 우리가 가는 곳이 얼마나 자주 방송에 소개되었으며, 블로그에는 어떤 평가가 나와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유명한 맛집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말해 주었다.




아내의 설명처럼 유명세가 대단한 식당 앞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무색한 장면이었다. 식당을 홍보하는 플래카드와 입간판이 멀리서부터 펄럭거렸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 옆을 조심스레 비껴가려는 차들로 가게 앞은 어수선했다. 그러나 정리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난감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까 눈으로 묻는 것이었다. 내가 답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기다렸다가 식사하고 가자. 별로 춥지도 않네 뭐.”


얼추 한 시간은 더 기다린 것 같았다. 차례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분명 우리보다 늦게 도착했는데 먼저 입장했다. 예약했겠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시비를 가리거나 불평을 해서 아내를 자꾸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 만에 결국 우리 순서가 되었다.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대뜸 내게 그런다. “뭐 드실 건데요?” 다분히 공격적이다. 잠시만요, 아주머니. 우선 자리에 좀 앉구요. 홱 돌아서는 아주머니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있다.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 주문을 하려는데 이젠 아주머니가 오지 않는다. 탁자에 붙은 벨도 무용지물이다. 곁을 지나치는 아주머니의 옷깃을 잡아당겨 겨우 주문을 했다. 알았다는 말도 없다.


아내의 표정이 이미 굳었다. 일부러 웃긴 이야기와 말장난을 섞어 가며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잘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실내가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다.


식당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아내가 그래도 예의상 이리저리 사진을 찍더니 곧 한 숟가락을 떴다. 그런데 곧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걸 보고 나도 따라서 음식을 조심스레 먹어본다. 어이쿠야. 아내가 방금 찍었던 사진을 삭제하는 것을 얼핏 보았다. 서둘러 일어나던 아내가 혼잣말처럼 그랬다.


"에이, 속았네."




매운 소스를 잔뜩 두른 쌀국수의 국물을 모두 비우고 나서야 아내의 표정이 비로소 밝아졌다. 실내는 조용했고, 직원은 친절했으며, 음식은 맛있었다. 이런 집은 왜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여유가 생긴 아내가 물었다.


나는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궁색하게 답안을 제출했다. “지금 우리에게만 원효 대사 해골물, 그런 것 아닐까?” 아내가 말없이 내 답을 몇 번 되짚는 것 같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댄다.


“맞는 답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그나저나 여기 쌀국수, 믿을 만하네?”




식당 한 곳, 음식 한 가지를 고르는 데에도 다른 사람의 평가를 먼저 확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을 읽기 전에 서평을 확인하고, 영화를 보기 전에 감상평부터 읽는다. 재미있다더라, 재미없다더라 정도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애교다.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고, 보지 않아도 본 것 같다. 대충 알고 난 다음에 비로소 읽기 시작하고,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평가가 내려진 상태에서 책과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나만의 주관적인 생각 따위는 저만치 밀려나고, 오로지 그들의 평가가 옳은지 그른지를 검증하는 방향으로 때론 관점이 달라진다. 이 집의 음식이 맛있네, 맛없네가 아니라 그 사람 말이 맞네 틀렸네로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혼자서 불평한다.


“에이, 속았네.” 


역시 같은 관점에서, 아내가 첫 식당에서 무엇에 속았다고 말했는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굳이 묻지는 않았다. 쌀국수를 믿을 만 하다고 했으니 그걸로 충분한 답이 된 것 같았다.


그 날 저녁 아내와 내가 먹은 쌀국수는, 이전에 맛있다고 말한 사람도 없었지만, 또한 이전에 맛없다고 말한 사람 역시 없었다. 결국 우리가 직접 느낀 것, 그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절대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아서 실패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일단은 직접 찍어먹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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