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Jun 30. 2021

친구의 추억 (3)

어느 날 그렇게 헤어졌다


“구두를 빌려 달라고? 그런데 니 발에 맞겠나?”


아버지는 이유를 묻는 대신 발에 맞는 구두가 없을 것을 우선 염려했다. 신발장을 열었다. 목수인 아버지에게 제대로 된 구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나마 적당해 보이는 구두를 골라 발을 밀어 넣었다. 발가락 끝이 꽉 지만 신고 나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상관없었다. 나보다 발이 작다는 것이 아버지의 잘못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일요일 아침, 남포동 부산 극장 앞에는 먼저 도착한 우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대로 ‘브랜드’였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우현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반면에 나는,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발이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아버지의 구두는 집에서 신어볼 때와 달랐다. 그나저나 구두는 왜 신고 오라고 한 건지. 청바지와 어울릴 턱이 없는 빨강 구두가 쓸데없이 번쩍거렸다.


우현이가 입장권을 미리 사 두었다. 영화 제목은 ‘백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였다. 오랜만에 보는 재미난 영화였다. 극장을 나서던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다 침을 튀겨가며 영화 제목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빽! 투! 더! 퓨! 쳣!


이제 뭐 할 거냐고 묻자 뜻밖에도 내게 옷을 사주겠다고 했다. 다시 그 서랍이 생각났다. 싫었다. 한사코 거절했다. 돈 자랑은 딴 데 가서 하라며 일부러 화난 척을 했다. 사실 나는 발이 너무 아팠기 때문에 어디라도 좋으니 우선은 앉아야 할 것 같았다. 옷 대신 점심을 사라고 했다. 우현이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언저리에 있는 경양식 집(상호가 ‘풍차의 집’이었던가?)으로 들어갔다. 우현이는 그곳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가격은 쳐다보지도 않고 메뉴판의 이것저것을 마음대로 주문하는 모습이 솔직히 부러웠다. 꽤 많은 가짓수의 음식이 차례로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몰래 구두를 벗고 있었다. 뭉쳤던 발이 풀리면서 이젠 저려왔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녀석이 한참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가진 돈을 속으로 헤아려보다. 당연히 턱없이 모자랐다. 집에 전화라도 해야 하나? 나는 간이 작았다. 한참 만에  열리더니 우현이가 들어왔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우현이가 선 채로 불쑥 상자를 내밀었다. 이 뭔데?


“이걸루 바꿔 신어.”


상자를 열었다. 케쥬얼 구두였다. 자기 것과 똑같은 구두를 사 온 것이었다. 역시 ‘브랜드’였다. 당연히 청바지에 잘 어울렸고, 신기하게 내 발에 꼭 맞았다. 어떻게 내 사이즈를 알았던 걸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 좋기도 했다. 그러나 순순히 받고 싶지는 않았다. “야, 임마. 그래도...” 하려는데 우현이가 말을 잘랐다. “알아, 알아. 신고 있다가 집에 갈 때 돌려줘 그럼.” 녀석의 입꼬리가 피식하며 올라갔다. 그게 밉지 않았다.


(구두를 갈아 신고) 식당을 나온 뒤, 우리는 부산 타워에 올라갔다. 친구들과 몇 번 오기는 했어도 언제나 팔각정까지만이었다. 돈을 내야 하는 전망대는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 온 이후로 처음이었다. 발아래 보이는 도심과 저 멀리 바다 여기저기를 가리키면서 우현이는 쉬지 않고 떠들었는데, 무슨 이야기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렇게 수다스러운 녀석이 그동안 어떻게 참았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


다시 비둘기가 모이를 쪼고 있는 광장으로 내려왔다. 우현이가 택시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가 주세요.” 기사가 말을 받았다. “하이고, 서울에서 놀러왔는갑네. 학생들, 윽수로 멋지네.” 돈 아깝게 왜 택시를 타냐 하려던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꽤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섰던 우현이가 또 어디론가 뛰어갔다. 화장실에 가나보다 했는데 잠시 후 비닐봉지 하나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자기를 따라오란다. 도착한 곳은 광안리 방파제였다. 해일을 막기 위해 쌓아 둔 테트라포드가 바닷물을 받아치고 있었다.


적당히 평평한 곳에 자리를 잡고는 우현이가 털썩 주저앉았다. 저 흰 바지 어떡하나? 봉지 안에 담긴 것을 하나씩 꺼냈다. 캔맥주 두 개, 콜라 하나, 새우깡 한 봉지, 그리고 빨간 말보로 담배 한 갑이었다. 나는 행여 바닷물이라도 튈까 싶어 주전부리를 담아온 비닐봉지 안에다 구두를 넣었다. 우현이가 그걸 보고 씩 웃었다.


나는 맥주를 마셔본 적도, 담배를 피워본 적없었다. 녀석이 이것을 어떻게 하려나 지켜보았다. “걱정 마, 너 안 줘.” 그러면서 맥주 캔을 땄다. 치익, 거품이 밀려 나왔다. 우현이는 주저 없이 그것에 입을 가져다 댔다. 나는 콜라를 집어 들었다. 맥주를 내려놓더니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나 불을 붙일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시비를 걸 요량이었던지 옷차림이 껄렁해 보이는 녀석들 두엇이 다가왔다가 우현이의 얼굴을 보고는 금방 가 버렸다.


일요일 오후 치고는 주위가 조용했다. 테트라포드부딪히는 파도 소리, 갈매기들 끼룩거리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던 우현이가 한참만에 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 사람…… 아버지 아냐. 그날 술 취해서 너한테 욕 하던 사람, 내 아버지 아니라고.”


나는 우현이를 향해 돌아 앉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초여름의 바닷바람이 후욱하고 불어왔다.




엄마는 내가 일곱 살 때 결국 집을 나갔어. 아버지의 매질을 끝내 견딜 수 없었던 거지. 아버지는 노름에다 알코올 중독자였거든.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선 살림을 때려 부수고, 엄마를 때리고, 나를 때리고.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 엄마가 그렇게 사라진 뒤로 아버지는 잠깐 동안 정신을 차리는 것 같더니 다시 노름에 손을 댔어. 딱히 맡길 데가 없으니까 노름판에 나를 데리고 다녔지. 아버지는 화투를 치고, 나는 옆방에서 숙제를 하고. 그래도 학교를 보낸 걸 보면 참 신기해, 그지?


아버지는 노름판에서 맞아 죽었어. 아마 열 살 때쯤이었나? 노름판에서 시비가 붙었나 봐. 다른 노름꾼들한테 아버지가 엄청 맞았어. 그리곤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어. 응, 맞아 죽었어. 신기한 게, 아버지가 죽었는데도 눈물이 하나도 나지 않았어. 차라리 잘 죽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왜냐하면,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엄마는 오지 않았어. 대신, 아버지 장례식장에 삼촌이 나타났지. 삼촌 얼굴을 그날 처음 봤어.


그때부터 삼촌과 같이 살게 된 거야. 처음엔 삼촌이 나한테 정말 잘해 줬어. 아냐, 친삼촌 맞아. 옷도 사 주고, 맛있는 것도 챙겨주고. 알고 보니 삼촌도 노름을 하던 사람이었어. 삼촌 말로는 우리 아버지 때문에 자기도 노름을 시작하게 된 거래. 하지만 삼촌은 급級이 달랐어. 아버지가 흔한 노름쟁이였다면 삼촌은 전문 도박꾼이었어. 그것도 사기도박.


허구헌날 다락방에 처박혀서 이상한 약품들을 만들었어. 그걸 화투에 바르고 늘 실험을 했지. 그게 뭔지는 잘 몰라. 혼자서 웃다가 욕하다가 그랬어. 한 번 집을 나가면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지. 혹시나 삼촌마저 나를 버렸나 싶어서 대문 앞에서 밤을 새운 적도 많았어. 삼촌마저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데 삼촌이 돌아오는 날은 오히려 더 무서웠어.


돈을 잃고 오는 날엔 나를 무지막지하게 때리는 거야. 그러면서 아버지 욕을 했지. 아버지 때문에 자기가 그렇게 되었다고. 나는 매를 맞으면서도 도망갈 수가 없었어. 갈 데가 없었거든. 두어 번 도망쳤다가 잡혀왔는데, 그 는 생각하기도 싫어. 그런데 나를 때리고 나면 삼촌은 항상 돈을 줬어. 미안하다며. 어떨 때는 십만 원을 주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이십만 원을 던져 놓기도 했지. 맨날 때리기만 한 것은 아냐. 밖에서 큰돈을 따면 기분이 좋은가 봐. 그때는 돈다발을 막 주는 거야. 내가 혼자서 셀 수도 없는 그런 큰돈 말이야.


어느 날, 그 여자를 데리고 왔어. 그래, 네가 우리 집에서 마주친 그 여자. 그 여자가 오던 날, 삼촌이 이제부터 자기를 아버지로, 그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래. 나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지. 그날도 엄청 맞았어. 죽기 직전까지 맞았어. 결국 삼촌과 그 여자를 아버지, 엄마로 부를 수밖에 없었어, 안 맞으려면. 하지만 엄마라는 말은 죽기보다 싫었어. 우리 엄마는 엄연히 살아 있는데, 물론 어디 계신지는 모르지만.


삼촌은 그 여자를 술집에서 만났대. 그런데 평범한 술집이 아니었던 거지. 일본 영감들이 부산관광 오면 졸졸 따라다니면서 술 시중도 들고, 몸도 파는 것 같았어. 술에 취한 삼촌이 그 여자와 싸울 때면 그랬거든. 이 X같은 년아, 쪽발이들한테 다리나 쫙쫙 벌리고 사는 주제에 무슨 잔말이 그렇게 많아? (우현이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사실, 그 여자가 나한테 딱히 잘못한 것은 없어. 나름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 그런데 차마 엄마라는 소리는 안 나오더라. 숙모? 그래도 얻어맞는 건 똑같았을 거야.


삼촌과 그 여자는 사흘 걸러 한 번씩 싸웠고 그럴 때면 악다구니가 온 집안을 채웠지. 육 학년 때, 아마 봄 소풍 바로 전날이었을 거야. 초저녁부터 다투는 모습이 아슬아슬했는데 결국 칼부림이 났어. 술에 취한 삼촌이 칼을 휘둘렀지. 그때 내가 얼굴을 다친 거야. 여자는 놀라서 밖으로 도망을 가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삼촌이 쓰러져있는 나를 업고 병원에 갔어. 죽지 않은 게 기적이래. 자칫하면 한쪽 눈을 잃을 뻔했다 하더라구.


그때부터 그 여자가 값나가는 비싼 것들을 집에 사들이기 시작했어. 이러면 차마 집어던지거나 부수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 돈은 차고 넘쳤으니까. 나는 차라리 그 여자가 우리 엄마처럼 도망이라도 가길 바랬어. 그런데 절대 안 가더라? 얻어맞고 눈에 시퍼런 멍이 들었어도, 또 어느 날 보면 둘이 끌어안고 별 짓을 다하더라. 젊어 보였지? 맞아. 우리보다 겨우 아홉 살 많아. 엄마는 무슨. 미친년.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본 어른들은 전부 구두를 신고 있었어. 그때 생각했어. 어른은 구두를 신는구나. 구두를 신으면 어른이 되는 거구나.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거든.


우리가 열일곱이니까 이제 이삼 년만 버티면 돼. 반드시 독립할 거야. 어쨌거나 삼촌이 준 돈이 있으니까 일단 그걸로 미국에 가서 얼굴 수술부터 거야. 응, 충분히 그 정도는 돼. 미국은 기술이 좋아서 깜쪽같이 고칠 수 있대. 그리고 엄마를 찾아볼 거야. 그다음은? 글쎄 그건 아직 모르겠어. 엄마를 찾으면 그때 엄마랑 상의해보고 결정하려고. 엄마는 꼭 살아있을 거야.


네가 우리 집에 왔던 날, 그리고 너희 집에 놀러 갔던 날, 나는 또 흠씬 두들겨 맞았지. 인정사정없었어. 돈을 많이 잃어서 기분이 나빴나 봐. 그날 많이 놀랐었지? 미안해, 정말. 어찌 보면 삼촌도 불쌍한 사람이야. 그 여자도 불쌍하고. 물론 내가 제일 불쌍하지, 하하. 그런데 어쩌겠어? 그렇게 살아왔는 걸. 이젠 돌아갈 수도 없어.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그래도 난 괜찮아. 이제 이년만, 이년만 버티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너, 표정이 왜 그래? 꾸며낸 이야기 같지? 그건 나도 그래. 전부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기분 나쁜 꿈이었으면 싶어. 나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어. 정말, 정말이야.




소설 같은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우현이가 들고 있던 맥주를 빼앗아 단숨에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감共感과 위로의 표시였다. 어른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여전히 파도는 발아래서 철썩철썩 소리를 냈고, 갈매기는 머리 위를 끼룩끼룩 날아다녔다. 우현이도, 나도 한참을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우현이가 나를 집 앞에 먼저 내려주었다.


택시가 다시 출발하기 전, 창문 너머로 우현이가 말했다. “오늘 즐거웠다. 고마워.” 녀석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어서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택시가 떠났다. 아차, 깜빡했다. 그때 왜 내게 먼저 인사를 했는지,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했다. 내일 학교에 가면 이번엔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비싼 걸 덜컥 받으면 우짜노?”


아버지는 구두를 보면서 걱정부터 하셨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친구한테 잘해줘라. 아버지는 그렇게 당부하셨다. 네, 잘해주고 싶은데요, 아버지. 그런데요. 밤늦게까지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우현이는 또 결석을 했다.


여러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몽둥이를 든 삼촌이, 욕을 하는 여자가, 그리고 울고 있는 우현이가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몸살을 핑계로 담임의 허락을 받고 자습에서 빠졌다. 일찍 집으로 왔다. 방으로 곧장 가려는데 마침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뒷덜미를 잡아당겼다.


40대 남성이 부부싸움 도중 홧김에 휘발유 통을 들고 아내를 위협하다 불이 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어젯밤 11시 50분쯤 부산시 동래구 연산동의 2층짜리 단독 주택에서 불이 나 남편 전 모씨와 아내 양 모씨가 연기에 질식되어 숨졌습니다. 경찰은, 부부싸움 중 남편 전 씨가 홧김에 휘발유통을 든 채 거실로 나왔다가 아내와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라이터 불이 휘발유 통에 옮겨 붙으면서 불이 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층에서 잠을 자던 부부의 아들 전 모 군은……”


눈앞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4편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Image of North Port Bridge By Jin Woo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의 추억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