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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r 31. 2021

조교의 추억

네, 저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연대장이 가버리면 얼차려는 금방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옆에서 굽신거리며 섰던 중대장이 연대장과 함께 시야에서 사라지자 마치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조교 김태한 병장이 사열대로 뛰어오르며 또다시 소리쳤다.


전부 대가리 박아, 이 새끼들아!!


1992년 3월, 논산 훈련소.


그날도 아침부터 무심無心한 눈발이 흩날렸다. 하지만 낯선 눈을 감상할 여유란 훈련병들에게는 애당초 없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막사 전체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김태한 병장의 고함과 욕설은, 정작 그 날의 사격 훈련을 앞둔 우리들보다 본인이 더 긴장한 듯 보이게 만들었다. 중대 막사 앞에서부터 시작된 조교들의 기합과 얼차려는, 사격장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서도, 그리고 영점零點 사격장 교장敎場에 도착해서까지도 끝날 줄을 몰랐다.


그만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사격 훈련인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피알아이 교육을 받으면서부터 노리쇠 후퇴 고정, 조정간 안전, 그 소리마저 잠꼬대처럼 할 정도였으니 우리 중 누구 하나라도 그런 말도 안 되는, 훈련소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재연 배우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피.알.아이 교장 (사진출처:경향신문)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은 꼭 나에게 일어난다.


소대 고문관 상규. 제 차례가 되어 사로射路에 엎드린 채 사격 신호를 기다리던 우리 분대 상규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이거, 당겼는데 왜 총알이 안 나가지? 어? 어? 타아앙! 순간, 사격장 슬레이트 지붕 한 구석이 와르르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내렸다. 난데없는 총소리에 몇몇은 재빨리 엎드리고 또 몇몇은 이미 교장 밖으로 몸을 굴렸다. 다들 번개 같은 몸놀림이었다.


오발 사고였다.


격발이 안 된다며 상규가 총을 제멋대로 들어 올린 것이었다. 그리고 젠장, 하필이면 내가 상규의 부사수였다. 상규의 옆에 탄피 받이를 들고 앉았던 나는 놀랄 겨를도 없이 우선 상규의 총을 휙 낚아챘다. 그리고 조정간 안전.


준비된 사수로부터 격발 (사진출처 : NEWS1)


사격장은 난리가 났다.


스피커를 찢는 듯한 지휘 장교의 욕설과 우리에게로 미친 듯 달려오는 사격장 조교들, 훈련병을 이끌던 우리 중대의 조교, 특히나 선임 조교 김태한 병장은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천만다행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이후의 모든 훈련은 중단되었고 우리 중대를 포함해서 제 차례를 기다리던 교장의 훈련병 모두가 맨땅에 머리를 박고, 꽁꽁 얼어붙은 그 위를 굴러야 했다. 당사자 상규는 사격장 구석에서 철모가 벗겨질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무아지경으로 상규의 총을 빼앗은 나 역시, 칭찬은 고사하고 부사수라는 이유로 상규에 버금갈 정도로 얻어터져야 했다.


너는 이 새끼야, 부사수란 놈이 옆에서 뭐했어? 너 소대장 아냐?


그랬다. 나는 28 연대 3중대 2소대, 훈련병 소대장이었다. 나는 김태한 병장의 군홧발에 차여 땅에 굴렀다. 3월의 논산, 아침부터 내린 눈에 추적추적해진 땅의 한기寒氣가 옷 속으로 파고들었지만 그걸 불평할 때가 아니었다. 맞고 넘어지고, 일어나면 또 얻어맞고 있는데 사고 소식을 들었는지 그때 연대장의 지프차가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자 겨우 김 병장의 매질이 멈추었다.


상황 파악을 마친 연대장은 모든 훈련병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다. 연대장님, 제발 오래오래 연설해 주세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빌었다. 그러나 연대장은 그날따라 유독 말이 짧았다. 우리는 또다시 진흙탕 위를 굴러야 했다. 그 날, 어떻게 부대로 복귀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평소보다는 엄청 오래 걸렸던 것 같다.




힘든 하루였다. 여느 때와 달리 꽤나 길었던 일석점호 시간의 훈시까지 마치고 겨우 모포를 깔고 있는데 행정반에서 연락이 왔다. 일직 사령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하필 김태한 병장이 일직을 서는 날이었다. 미처 덜 때려서 화풀이라도 하려나? 에라, 모르겠다. 때리면 맞자.


충성! 육십칠 번 훈련병, 행정반에 용무 있어 왔습니다!


일직 완장을 팔에 두른 김 병장이 의자를 밀어주며 내게 앉으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또 긴장이 되었다. 의자 위에 올라가서 맞는 건가? 침을 꼴깍 삼켰다. 곧 김 병장도 나와 마주 앉았다.


오늘, 힘들었지?


예상치 못한 나긋나긋한, 그리고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였다.


아, 아닙니다. 그, 그리고 죄송합니다, 김 병장님!


나는 한껏 군기軍氣가 들었다.


차아식, 죄송은 무슨. 그래도 네 덕분에 그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그러면서 김 병장은, 책상 서랍에서 작은 봉지 하나를 꺼내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얼핏 보니 초코파이 두 개와 농협 우유 한 통이었다. 심지어 김 병장이 우유팩을 열어 주었다.


이거 먹어라, 천천히. 더 있으니까 모자라면 말하고.


나는 김 병장이 준 우유를 받아 말없이 초코파이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솔직히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김 병장은 그런 나를 잠시 보고 있더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기타를 들어 올렸다.


노래나 하나 듣고 가라.


그 날 김 병장이 부른 노래는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김 병장은 일직을 설 때마다 점호가 끝나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몇 곡씩 불렀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부를 때도 있었고, 박정운의 ‘오늘 같은 밤이면’이 막사 복도에 울려 퍼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어떤 곡들보다 이 노래는 곡조가 구슬프고 가사가 처량해서 심지어 배갯닢을 적시는 훈련병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이 노래의 제목을 한동안 그저 ‘내 동갑 여자’라고만 기억했다.


https://youtu.be/di-3bJQmdPg

(본 영상은 유튜버 JipSy's Music Journey로부터 링크된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상업적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 병장은 며칠 후 군기 교육대에 갔다.


사격장에서의 관리 소홀이 그 이유라고 했다. 영창을 갈 뻔했는데 중대장이 애써 막아주었다는 소문도 들렸다. 우리는 조교 왕고참인 김 병장이 군기 교육대에서 돌아오면 독기가 올라서 훈련병들을 더욱 갈굴 것이라고 수군거렸지만 정작 그런 것은 없었다. 그저 우리가 잘못하면 평소처럼 욕을 했고, 우리가 실수하면 평소처럼 얼차려를 주었으며, 또 자기 차례의 일직이 돌아오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평소처럼.


소문이 빠른 훈련병 몇몇이 듣기로 김 병장은, 입대 전에 KBS ‘짝꿍’ 멤버로 젊음의 행진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가수들 뒤에서 춤을 추었다고 했다. 그리고 전역 후에는 직접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도 했다. 그의 노래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에는 모두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4월 10일, 훈련소를 퇴소하는 날이 되었다. 이제는 제법 군인 티가 나는 훈련병들과 줄줄이 작별 인사를 나누는 중에 역시 내가 김 병장과 마주했다.


야, 소대장. 나중에 나 가수 되면 가요톱텐에 엽서 많이 보내라, 알겠지?


그러면서 김 병장이 한 손으로 내 등을 가볍게 다독거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속에서 뜨끈한 무언가가 쑤욱 올라왔음은, 그 상황을 경험한 예비역들이라면 모두가 쉽게 공감할 일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6주간의 훈련소 생활을 마쳤고 김 병장과도 나는 그렇게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김 병장은 기껏해야 나보다 한두 살 많았을 것이다. 아니, 만일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한 것이라면 나와 동갑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그 시절 그때의 조교, 병장 김태한은, 적어도 내게는 그 누구에게도 비할 바 없는 듬직한 형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김태한이라는 이름의 가수를 이후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딱히 본 적이 없으니 그가 전역 후에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혹시 내가 아주 유명해져서 옛 인연을 찾는 방송에라도 나가게 된다면 모를까, 그 전에는 그를 만날 방법이 딱히 없다.


하지만 나와 관계한 모든 인연이 그렇듯, 그가 어디에 있든 간에 지금도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그것을 핑계 삼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운 얼굴을 또 하나 떠올려보았다. 목련이 떨어지는 오늘, 그가 그립고, 또 그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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