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우 Mar 31. 2021

다이다이의 추억

김일이랑 이노키랑 붙으면


다이다이


맞짱이라고 했건, 일대일이라고 불렀건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그저 ‘다이다이’였다. 그것이 일본말 다이다이 たいたい, 對對에서 유래했으며 ‘우열 없이 대등하다’라는 뜻임을 알게 된 것은 훨씬 이후의 일이지만 피 튀기는 일대일 맞짱, 우리에게 그것은 무조건, 다이다이였다.


김일이랑 이노키랑 다이다이 붙으면 누가 이기겠노. 태권브이하고 마징가하고 다이다이 뜨면 우째 되겠노. 그리고 북한 공산당하고 우리 대한민국하고 다이다이 깨면 누가 작살 나겠노.


누런 코를 벌름거리던 우리들은 저마다의 기라성 같은 전사戰士들을 교실 구석으로 불러내 다이다이 시키느라 쉴 틈이 없었다. 우리는 갖가지 엉터리합리적 근거를 대어가며, 생각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전투의 결과를 예측하곤 했다.


김일 박치기하는 거 못 봤나? 맥주병도 깨더라 아이가. 웃기고 있네. 이노키는 원더우먼한테도 이겼다 카더라. 태권브이가 아무리 빨라도 마징가 로케트 주먹을 피할 수 있겠나? 니는 일본 놈이 이기면 좋겠나. 김일성이 대포 쏘면 미국이 가만있겠나? 임마, 다이다이 하는데 미국이 왜 끼어 드노, 그건 반칙이지.


우리는 아쉬움에 늘 입맛을 다셨다. 조오련과 거북이라면 모를까, 나머지 치열한 싸움들은 그저 우리의 입과 머릿속에서만 처절한 공방을 벌였을 뿐, 직접 눈으로 그 결과를 확인할 방법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82년 봄, 우리가 열두 살이 되던 그 해 봄에 그 일이 일어났다. 평소처럼 왕자 파스 김일과 잠자리 연필 이노키를 책상 위에서 다이다이 시키던 명수가 뜬금없이 그랬다.


근데 제이야, 장호랑 승주가 다이다이 깨면 누가 이기겠노?

뭐라꼬? 장호랑 승주?


장호와 승주는 당시 우리 반 아이들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 집 아들인 장호는 동성 태권도라는 글자가 떡하니 박힌 츄리닝을 언제나 입고 다녔다. 태권도 검은띠라고 했다. 덩치 큰 6학년 형들도 장호한테는 함부로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반면, 승주는 유도를 했다. 어떻게 읽는지는 몰랐지만 세 글자의 한자漢字가 멋지게 새겨진 운동복을 자주 입고 다녔다. 그리고 가끔씩은 누런빛이 감도는 두툼한 도복을 학교에 가지고 올 때도 있었다. 무슨 대회에 나간다고 했던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장호와 승주가, 아니 태권도와 유도가 다이다이를 한다고?


유도는 손으로 잡기만 하면 이긴다 카더라. 태권도는 돌려차기 하나로 게임 끝이다 아이가. 반 아이들의 예상은 백중지세였다. 교실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그때 장호와 승주가 어떤 이유로 해서 그 다이다이에 동의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굳이 되짚어보자면, 아마도 누군가 무심코 던졌던 그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기는 사람이 기정이 남자 친구 하면 되겠네.


기정이는 우리 동네 강남 한의원 손녀딸이었다. 당시 우리 반 여학생 중에 키가 제일 컸고, 공부도 제일 잘했으며 그리고, 제일 예뻤다.


물론 장호와 승주가 그 조건, 즉 승자勝者가 기정이의 남자 친구가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 맞붙기로 결심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정이는 그 조건을 결코 승인했을 리 없다는 것이었다.


故김기찬 선생님. 골목 안 풍경


어쨌거나 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토요일 방과 후, 학교 옆 배산 공터에서 역사적인 다이다이가 진행되었다. 다시 말해 유도와 태권도, 태권도와 유도가 서로 승부를 겨루는, 이종 격투기의 첫 경기가 대한민국 부산시 동래구 연산동 배산 공터에서 거행된 것이다.


반 조무래기들 여럿이 모인 가운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내가 심판을 맡게 되었다. 규칙은 간단했다.


먼저 코피가 터지면 진다. 먼저 울면 진다. 그리고 절대로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다.


비장한 표정의 장호와 승주가 맞섰다.


요시~땡! 나의 시작 신호와 함께 두 녀석이 거리를 두고 제법 잰걸음으로 서로를 노려보며 뱅뱅 돌았다. 그러더니 이내 멱살을 붙잡고 한데 엉겨 붙었다. 몇 번 밀고 당기는 것 같더니 그러다가 갑자기 두 녀석이 부둥켜안은 채로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풀풀 났다.


우리 모두가 기대했던 멋진 돌려차기나 호쾌한 업어치기 따위는 아예 없었다. 오른쪽으로 두어 번, 왼쪽으로 서너 번 뒹굴던 녀석들은, 한 번은 승주가, 한 번은 장호가 서로의 위에 걸터앉았다가 아래에 깔렸다가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또 몇 번 주먹질을 주고받으며 툭탁거리는 것 같았는데 갑자기 퍼억 소리가 났다. 그리고 위에 걸터앉았던 장호의 코에서 무언가 주르륵 흘렀다.


코피다! 장호 코피 터졌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밑에 깔렸던 승주가 장호의 양쪽 귀를 잡고 머리로 코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난감했다.


박치기, 유도에 그런 기술이 있나? 저거 반칙 아이가?


명수가 조용히 물었다. 아이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그러나 일단 코피를 먼저 흘린 것은 장호였으니, 승주가 이긴 것이다. 규칙은 규칙이다. 하지만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한쪽의 손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공언해 줄 경황이 없었다. 나는 그저 장호의 코피가 겁났다.


장호와 승주는 주춤주춤 일어나서는 각자의 옷을 털었다. 또 먼지가 날렸다. 장호가 바닥의 흙을 한 움큼 집더니 제 코에 쓱쓱 문질렀다. 코피와 흙이 범벅이 되어 곧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되어버렸다. 잠시 후 별다른 말없이 승주와 장호가 가버리자 둘러섰던 아이들도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명수와 나는 빈 공터에 한참 동안이나 앉아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다시 붙자, 정식으로 겨루자 할 거라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다음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장호와 승주 사이에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승부의 결과를 전해 들었을 것이 뻔한 기정이 역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두 녀석은 전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전과 마찬가지로 우리와 도시락도 함께 먹고, 공도 같이 차고, 수업이 끝나면 어울려 말뚝박기도 했다. 다만, 며칠 후에 기정이가 그 날의 일을 선생님께 일러바치는 바람에 명수와 내가 오후 내도록 벌을 섰던 기억이 난다.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가 궁금하다.


그 시절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를 싸움 붙이지 못해 안달이 났던 것이었을까? 장호와 승주는 어떤 생각으로 아이들의 재촉을 받아들였던 것이었을까? 코피를 흘렸던 장호는 본인이 졌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승주는 장호를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친구들, 장호와 승주를 포함해서 배산 공터에 모였던 다른 친구들은 모두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며 살았을까?




시간이 대략 이십여 년이 흐른 뒤였다.


인터넷으로 옛 동창들을 찾는 것이 유행이던 즈음에, 모처럼의 연락을 받고 나도 반가운 마음으로 그 자리에 나갔다. 오랜만에 장호를 다시 만나서 기뻤다. 승주도 꽤나 어른 티가 났다.


분위기가 제법 무르익을 즈음에 뒤늦게, 뜻밖에 기정이가 도착했다. 그리고 기정이가 장호의 옆에 바싹 앉으며 팔짱을 꼈다. 다음 달에 둘이 결혼할 거라는 말에 그 자리에 모였던 친구들이 와~ 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순간, 오래전 그 날의 다이다이를 떠올린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날, 누가 이겼더라?


나와 눈이 마주친 맞은편 자리의 명수가 씨익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교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