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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ug 15. 2021

매치 걸 : 깨어난 포스

MATCH GIRL : The Force Awakens


“이제 정신이 좀 드나 보군.”


그 소리 때문에 잠을 깬 것인지, 아니면 잠을 깼을 때 그 소리를 들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눈을 뜨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잠은 자지 않아도 좋으니 눈을 감은 채로 조금만 더 누워 있고 싶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느껴보는 것이 얼마만의 일인지 모른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삐걱거리는 나무 침대, 발목이 훤히 드러날 만큼 짧은 누더기 이불, 차갑게 식어버린 고철 난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흔들어대는 매서운 칼바람. 그것들은 이전까지 로사와 함께 했던, 꽤 오래된 밤의 풍경이었다.

그때는 자지 않고 버티는 편이 차라리 나았다. 그렇게 잠들었다가는 자칫 얼어 죽을 수도 있다며 윗집 제레미 할아버지는 늘 걱정을 했다. 바람이 매서웠던 그날도 그랬다. 창문마저 떨어져 나간 요란한 밤, 여기보다는 큰길에 있는 쇼윈도의 조명 아래가 오히려 따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미 늦어버린 시각에 겨우 나선, 서툰 밤길이었다. 기억이 그즈음에 다다르자 로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더 이상 그날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베개 깊숙이 얼굴을 파묻었다.


잠시 후 뚜벅뚜벅, 지이잉, 철컥하는 소리가 차례로 멀어졌다. 아무런 대답이 없으니 결국 밖으로 나가버린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든 지금은 상관없다. 부드럽고 편안하며 따뜻하기까지 한 이 감촉을 로사는 우선 즐기고 싶을 뿐이다.




얼마나 더 잤을까? 어림으로도 사흘은 족히 지난 것 같다. 이번엔 스스로 잠에서 깼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한 기분이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색 천장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촘촘하게 박힌 전등이었다.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그 덕에 방 안은 그지없이 환했다. 아마도 여기는 지체 높으신 귀족 나리의 저택인 것 같았다. 코펜하겐 성城 안의 부자들은 한밤중에도 온 집을 대낮처럼 밝힌다고 제레미 할아버지가 그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불도, 베개도, 침대도, 천장도, 벽도, 그리고 바닥도 하얗다. 입고 있는 잠옷뿐만 아니라 심지어 침대 아래서 신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슬리퍼마저도 하얀색이었다.

저쪽 반대편으로 창문이 보였다. 저기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제레미 할아버지의 낡은 이층 집 열 개보다 이곳이 훨씬 더 넓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퍼를 신고 한쪽 발을 내디뎠다.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팔꿈치와 무릎이 아팠다. 그날 밤, 길바닥에 쓰러질 때 다친 것 같았다. 뚱보 영감이 뺨을 후려쳤던 직후였다. 볼을 살짝 만져보았다. 아직은 약간의 붓기가 남았다. 공연히 눈물이 핑 돌았다.

'성냥이 몇 개만 더 있었다면 할머니를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을 텐데.'


천장과 바닥과 마찬가지로 온통 하얀 벽을 조심스레 더듬어 가며 창가에 다다랐다. 창문 밖으로 푸른 들판이 넓게 펼쳐졌다.

'우리 마을에는 여전히 눈이 쌓여 있는데 여기는 벌써 봄이 왔나 보다. 대체 어딘 걸까?'

저 멀리 산자락 아래에선 느릿느릿 풍차가 돌아가고, 길게 이어진 길 양쪽에는 꽃들이 울긋불긋 곱게 피었다. 젖소와 양 떼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옆으로는 맑은 강이 흐르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창가에 붙어 서서 바깥 경치를 구경하던 로사는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랐다.

‘들판과 풍차와 젖소가 왜 저렇게 작게 보이는 거지? 설마, 내가 지금 공중에 떠 있는 거야? 그리고, 제자리에 멈춰있지 않고 내 발아래로 휙휙 사라진다는 건?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그렇다면 귀족 나리의 이 저택이 하늘을 날고 있다는 거야?’

순간 제레미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로사야, 사람이 죽으면 말이다, 하늘을 날아서 천국으로 간단다.”

'아, 설마 내가….'


로사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생각보다는 체력이 약한 걸? 하기야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만 잤으니 그럴 만도 하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사는 급히 몸을 일으키려다 통증을 느꼈다. 오른쪽 팔에 주사 바늘이 꽂혀 있었다. 남자가 천천히 다가와서 바늘이 꽂힌 부위를 확인했다.

“아, 아저씨는 누구세요?”

잔뜩 겁에 질린 로사가 팔을 빼며 물었다. 남자는 녹색 유리병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속도를 꽤나 능숙한 솜씨로 조절했다.

“아저씨, 여기는 어디예요? 저는 정말 죽은 건가요?”

남자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대신 몇 걸음을 옮겨 허리를 약간 숙이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섰다. 그의 두 손에는 작은 쟁반이 들려 있었다.

“질문은 나중에 하고 우선은 이것부터 좀 먹도록 하지. 일주일 넘게 굶었으니 배가 상당히 고플 거야.”

남자는 그것을 로사의 무릎에 내려놓았다. 쟁반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와 보드라운 결이 살아있는 빵, 그리고 하얀 우유가 있었다. 그때까지 잊고 있던 허기가 갑자기 밀려왔다. 로사는 남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서둘러 수프 그릇에 입을 대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입술을 타고 들어왔다. 빵을 한 조각 뜯어 쥐고 우유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남자는 팔짱을 낀 채 멀찌감치 앉아서 로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마지막 우유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는 것을 본 다음에야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로사는 입가를 닦으면서 이번엔 제대로 그를 쳐다보았다.

잔털 하나 없이 깨끗하게 밀어버린 머리, 큰 키와 갈색 피부, 멋지게 다듬은 콧수염. 특이하게도 남자는 한쪽 눈에 검은 안대를 덧대었고, 안대에는 알파벳 G가 적혀 있었다. 또한 몸에 착 달라붙는 정장 속에는 오랫동안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로사는 본인이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네, 그게 무슨…?”

“그날 밤 말이야. 로사는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거야, 그렇지?”

그날이 얼핏 떠올랐다. 로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원래대로였다면 마지막 성냥을 사용했을 때, 로사는 당연히 마법의 힘을 얻어 곧장 조이 플래닛으로 갔을 거야. 거기엔 로사의 할머니가 살고 계시거든.”

“네? 할머니라구요?"

“하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지. 대신 난데없이 뚱뚱한 늙은 영감이 나타나 로사를 때렸을 거야, 그렇지?”

“그걸 어떻게?”

남자는 처음부터 로사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건 모두 게차반 놈들의 짓이야!”

“네? 게차반이라니요?”

“뚱보 영감이 나타나 로사를 때린 것도, 할머니가 있는 조이 플래닛으로 가지 못한 것도 모두 게차반 때문이라구.”

모든 것이 처음 듣는 생소한 말이었다.

'이 남자는 어떻게 나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상세하게 알고 있는 걸까? 조이 플래닛은, 또 게차반은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할머니가, 그리운 할머니가 살아 있다니, 그게 정말일까?'


남자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대낮처럼 환하던 방이 갑자기 깜깜해졌다. 천장으로부터 하얀 스크린이 스르륵 내려왔다. 그 위로 곧 일련의 움직이는 그림들이 비쳤다. 잠깐 숨을 고른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질 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아주 오래전 옛날, 은하계 저 편에 조이 플래닛 Joy Planet이라는 행성이 있었다. 그 별의 주인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사랑해 온 동화책의 주인공들과 등장인물들이었다. 아침이면 새가 지저귀고 낮에는 무지개가 피어오르며 저녁에는 모두 모여 웃으며 노래하는, 그야말로 평화로 가득한 곳이었다.


조이 플래닛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이모셔널 파워 Emotional Power라고 불리는 에너지였다. 그것은 세상의 어린이들로부터 나왔다. 어린이들이 동화책을 읽으면서 기쁨, 분노, 사랑, 즐거움 등의 감정을 느끼면, 그것은 곧 이모셔널 파워로 변해 조이 플래닛의 익스트림 큐브 Extreme Cube에 모두 모였다. 이것은 또다시 채리티 파워 Charity Power가 되어,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그들이 스스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한 의지력의 근본이 되었다. 즉, 어린이들이 동화책을 읽을 때마다 강력한 이모셔널 파워가 한 곳에 모였고, 익스트림 큐브는 그 힘을 모아 지구의 어려운 아이들에게 채리티 파워로 다시 되돌려주고 있던 것이다.


평화롭기만 하던 조이 플래닛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그 시작은 크루얼 스쿼럴 Cruel Squirrel이라 불리는 다람쥐 형제였다. 이들은 언제나 이야기의 맨 앞부분에 등장해서 애교와 재롱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이끌던, 일종의 동화책 속 바람잡이였다.


어느 날, 이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화 속에서 자신들의 역할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 그 구실이었다. 심지어 각자의 이름조차 없다는 명백한 사실은 자신들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증거라고 항변했다.

다람쥐 형제는 결국 조이 플래닛의 임금님을 찾아가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했다. 임금님은 다람쥐 형제의 말을 듣고 나서 우선은 그들을 설득하려 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고유한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들은 임금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실망을 넘어 분노가 극에 달한 크루얼 스쿼럴 형제는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에 동조한 무리들은, 마찬가지로 동화책 속에서 조연들로 등장하던 종달새, 사슴, 부엉이와 올빼미, 심지어 조약돌과 연어도 있었다. 그전까지 무명無名이었던 그들의 숫자는 실제로 어마어마했고, 하루아침에 공격적인 성향으로 변해버린 그들의 전투력 역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정부군의 초반 진압을 가뿐하게 물리진 이들은 동화 연합군을 단번에 격퇴하고 익스트림 큐브를 탈취한 다음, 자신들의 본거지를 조이 플래닛이 아닌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옮겼다. 그리고 자신들을 게차반 Gecha Bahn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존의 모든 것을 걷어내고 스스로 반대의 자리에 올라선다는 뜻이었다.


코펜하겐을 점령한 게차반이 맨 처음 한 일은, 전 세계 어린이들이 동화책을 읽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익스트림 큐브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유해 콘텐츠를 대량으로 제작, 그것들을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지게 했다. 스마트 폰을 손에 쥔 아이들은 게차반의 바람대로 더 이상 동화책을 읽지 않았다. 동화가 아니더라도 재미있는 콘텐츠가 얼마든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게차반에 열광했고 점점 몸도 마음도 게차반이 되어갔다.

크루얼 스쿼럴 형제는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동화의 원작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마 마음속 깊은 곳에 할머니가 읽어주던 옛이야기를 간직했던 사람들조차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동화의 내용이 왜곡되기 시작했다. 조이 플래닛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 희생양이었다.

왕자님과 행복하게 살기로 되어있던 어여쁜 공주는 졸지에 물고기의 하반신을 가지게 되었고, 눈의 여왕은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평생을 차디찬 얼음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손톱만 한 크기로 작아져서 평생을 튤립 속에 살게 된 엄지 공주뿐만 아니라 만백성 앞에서 난데없이 알몸을 드러내는 망신을 당하게 된 임금님까지, 모두가 게차반과 크루얼 스쿼럴 형제의 애꿎은 희생자였다.


결말이 비극으로 변한 동화를 읽은 아이들은 책을 덮고 울기 시작했다. 절망적인 비극은 이제 더 이상 어떠한 이모셔널 파워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조이 플래닛은 그렇게 해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게차반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타깃은 바로 성냥팔이 소녀, 로사였다. 마지막 성냥을 켜서 할머니 곁으로 가는 것이 원작이었는데, 뚱보 영감에게 얻어맞고 차가운 길바닥에서 결국 눈을 감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로사마저 그렇게 당한다면 조이 플래닛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모든 동화의 운명과 함께, 아쉽지만 말이다.




남자의 오랜 이야기가 끝났다. 다시 방 안이 환해졌다. 그는 컵을 들어 입을 적셨다. 그리고 로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로사, 나를 소개하지. 나는 안데르센 재단 Hans Christian Andersen Foundation의 실무 책임자, 그림첵 Grim Check 국장이야.”

엉겁결에 로사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상기된 표정의 그림첵 국장이 로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로사를 극적으로 구해낼 수 있었어. 게차반의 횡포에 무작정 당할 수만은 없었지. 지금이라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영원히 엉망인 채로 끝나 버리고, 조이 플래닛도 결국 붕괴되고 말 거야. 게차반을 반드시 물리쳐야 해. 로사, 당신이 마지막 희망이야. 도와주지 않겠어?”

로사는 국장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성냥팔이일 뿐인 어린 제가 어떻게, 무엇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요?”

국장은 여전히 로사의 손을 잡은 상태였다.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모든 준비는 안데르센 재단에서 이미 마쳐둔 상태니까. 자네가 지금 타고 있는 것은, 브런치 Brunch 라는 비행선이야. 이 정도면 우리의 기술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겠지?”

아, 이것은 역시 비행기였구나. 로사는 아까 보았던 창 밖의 풍경을 잠시 떠올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전쟁에는 동화의 주인공들만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이지. 행여 일반인들이 전투에 나섰다가는 코스프레 디시즈 Cospre Disease라는 치명상을 입고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 로사, 우리와 함께 싸워주지 않겠어? 로사의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할머니라는 말에 로사는 잠시 숙연해졌다. 그러나 굳이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도 그림첵 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조이 플래닛이 무너지도록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심을 굳히기 전에 로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우리라면, 저 말고도 또 다른 누가 있단 말인가요?”

“당연하지. 로사와 함께 게차반에 맞설 친구들이 지금 저 옆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럼 그분들을 먼저 만나보고 결정하면 안 될까요?”

그림첵 국장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여태 잡고 있던 로사의 손을 그제야 놓아주었다. 로사가 침대에서 내려섰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우선 옷부터 좀 갈아입어야겠어, 로사.”

로사는 난감했다. 옷이라고 해야 달랑 한 벌 밖에 없었고, 잠옷 차림인 지금은 그것마저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난처한 표정을 읽었는지 그림첵 국장이 싱긋 웃었다.


국장이 다시 또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이번엔 벽에서 무언가가 재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옷장이었다. 로사는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국장이 다시 손가락으로 로사를 가리켰다. 그러자 옷걸이에 걸려있던 옷들이 저절로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리고는 차례로 하나씩 로사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피할 새도 없이 그것들은 로사의 몸에 착착 감기듯 입혀졌다. 척척척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로사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혀졌다.


“새 옷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국장이 커다란 거울을 밀고 왔다. 로사는 조심스럽게 거울 앞으로 섰다. 검은 장갑, 검은 부츠, 자로 잰 듯 몸에 꼭 맞는 검은 슈트. 그리고 어깨에서 발목까지 드리워진 검은색 망토. 처음 느껴보는 촉감이었고, 이런 걸 입어보는 것 역시 난생처음이다.

“지금은 조금 어색해도 곧 익숙해질 테니 염려말라구. 참, 그리고 더 이상 로사라고 부르진 않을 거야. 지금부터 자네의 새 이름은….”

뒷말을 듣지 않아도 로사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입고 있는 슈트의 가슴팍에 적힌 글자를 이미 읽었기 때문이다. 촘촘히 새겨져 있는 짙은 자줏빛 글씨, 그것은 바로.


매치 걸 Match Girl이었다.




“야! 수족관! 너, 정신 안 차려?”

스노우 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가 밀쳐내지 않았다면 피쉬 프린세스는 틀림없이 레이저 밤을 정면으로 맞았을 것이다. 피쉬 프린세스가 눈을 찡긋 하며 스노우 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쉴 새 없이 유도 미사일이 이 쪽을 향해 날아왔다.

“고마워, 고드름 언니!”

“닥쳐!”

날아오는 게차반을 향해 스노우 퀸이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커다랗게 만들어진 아이스 스톰 Ice Storm 이 공중을 가로질렀다. 그것을 정통으로 맞은 게차반의 졸개, 치크래기Chikregi들이 속수무책으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좀 전에 열려 버린 브릿지 게이트 Bridge Gate를 통해 치크래기들이 하늘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도대체 이것들은 끝이 없어, 끝이!”

피쉬 프린세스가 게이트를 향해 지느러미를 다시 또 휘둘렀다. 엄청난 파도가 일어나 브릿지 게이트를 향해 치솟아 올랐다. 미처 지구의 공기 맛을 보지도 못한 치크래기들이 게이트를 통과하자마자 파이널 웨이브 Final Wave를 맞고 후두둑 떨어졌다.

“일단 시민들부터 대피시켜. 지구 방위군은 대체 어딨는 거야? 경찰들은 저기 숨어서 뭐해? 젠장.”

빗나간 포탄을 맞은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길가에 섰던 자동차들이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던 시민들도 하릴없이 그 잔해에 깔렸다. 경찰들 몇몇이 공중을 향해 총을 쏴댔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야, 따봉은 어딨어?”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스노우퀸이 물었다. 핑거 프린세스를 찾는 말이었다. 그때 이어 핀 Ear Pin에서 소리가 들렸다.

“언니, 따봉이라 부르면 절교한다 그랬지? 지금 게차반의 모선母船에 숨어들었어. 일단 이것들부터 작살을 내야 한숨이라도 돌릴 듯 해.”


손톱만큼 작아진 핑거 프린세스가 용케도 적의 우주선에 올라탄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크기로 작아졌으니 일단은 믿어볼 만했다.

“그래그래. 잘했다. 우리 귀염둥이. 손에 닥치는 대로 부수고 뜯어버려, 알겠지? 근데 성냥팔이, 아니 매치 걸, 넌 어디 있는 거야?”

로사는 대답할 겨를도 없었다. 두 팔을 뻗어 정신없이 매치 건을 쏘아댔다. 성냥처럼 생긴 총알이 빗발치듯 적을 향해 날았다. 호롱불에 날아든 나방들이 쫓겨나듯 치크래기들을 박살 내는 중이었지만 그 숫자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 38번가 초이스 빌딩 뒤에 있어요. 누가 좀 도와줘요.”

“알았어, 거기로 갈게. 수족관, 너도 빨리 거기로 가자. 매치 걸, 곧 죽게 생겼다. 그나저나 그림첵, 이 대머리는 여태 어디서 뭘 하길래 안 보이는 거야?”

“브런치 안에서 노닥거리고 있겠지. 나중엔 눈썹도 밀어버리자, 언니!”




매치 걸, 스노우 퀸, 피쉬 프린세스, 핑거 프린세스가 서로의 등을 맞대고 사방을 향해 정신없이 각자의 무기를 퍼부었다. 모선 하나는 겨우 추락시켰지만 끊임없이 브릿지 게이트로부터 날아드는 게차반의 기병奇兵들을 더 이상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철컥철컥. 이런 젠장. 총알이 한 발 밖에 남지 않았다.


“헉헉, 언니, 나 매치 건이 바닥나서 연발이 안돼. 어떡하지?”

“젠장, 아이스 스톰도 이젠 무용지물이야. 쏘자마자 녹아버려. 지구 온난화 때문인가?”

“아이고, 나도 더 이상 파도를 일으킬 힘이 없어. 쓰나미라도 빌려와야 할 판이야. 미치겠군.”

“난 아까 모선이 추락할 때 튤립 건을 잃어버렸어, 큰일 났네.”

“일단 조금만 더 버티자. 국장이 라이킷 Like it을 보낼 거야. 믿을 건 라이킷 밖에 없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정 믿을 수 있는 건 각자의 주먹뿐이었다.

모두는 총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슈트의 버튼을 전투 모드로 바꾸었다. 슈트에서 날카로운 톱니와 날선 비늘들이 일어섰다. 이판사판인 셈이다. 치크래기들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와르르 몰려왔다. 로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떠올랐다.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맨 앞에서 벌떼처럼 달려들던 치크래기들이 갑자기 두 동강이 난 채로 속절없이 떨어져 내렸다. 저 멀리서 닥치는 대로 빔을 쏘며 날아오는 한 무리가 보였다. 망원경으로 그것을 확인한 스노우 퀸이 활짝 웃었다. 그리고 소리쳤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누나들을 몽땅 죽일 셈이야?"
저쪽에서 곧 반가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미안 미안. 오래간만에 변신하려니까 너무 어색해서 연습 좀 하다가 왔어. 꽥꽥.”


미운 오리, 배드 덕 Bad Duck을 선두로 수십만 마리의 스와니 Swany가 뒤를 이어 날아오고 있었다. 참으로 든든한 우리 편의, 정확하게 때를 맞춘 멋진 등장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해 볼만 하다. 로사는 마지막 남은 매치 건을 장전했다. 철컥. 그리고 크게 외쳤다.

“자, 가자!”

그 소리에 맞추어 모두는 힘껏 땅을 박차고 다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동화 수호대 Fairy Tale Guard의 반격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누가 동화를 지킬 것인가! 페리테일 가드!




제공   마을 코믹스 Mar El Comics Presents



제작   케빈 페이 Produced By Kevin Fei

감독   본 감독 Directed By Bon Gam Dok

극본   진우 Screenplay By Mad JinWoo


주연  Starring


그림첵 국장    김 갑슈 Die Again

매치걸           김 양기 Match Seller

스노우퀸        고 도심 Jal Nat Seo Jung Mal

피쉬프린세스  전 두연 Dolgorae

핑거프린세스  박 보형 Toreta

배드덕           김 대영 Misaeng Daeri

제레미  옹      최 불함 Pah

로사 할머니    나 문이 Hobak goguma

뚱보 영감       백 일석 Halbae

크루얼스쿼럴  다람&쥐 No name

치크래기들     악플러즈 Baro Nuh


To be continued in part 2, if you find it interesting!!




Image by Yuri_B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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