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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ug 08. 2021

메이 브릿의 노래 (3)

이제는 1976년 12월 3일생, 김수정


https://brunch.co.kr/@jay147/148


우선 사무실의 문부터 잠갔다. 애먼 직원에게 공연한 불똥이 튀는 것은 미리 막아야 했다. 찬물을 한 컵 받아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다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사진을 확대한 다음,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빠짐없이 확인했다. 홀트의 직원이 마산 애리원이라는 힌트를 준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었던가? 제기랄,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 해도 이건 전혀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버젓이 기록이 있는데도 왜? 도대체 왜?


수용자 대장


메이 브릿이 마산 애리원에 맡겨지던 날 만들어진 서류였다.


2009년, 메이 브릿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홀트는 그녀와 관련된 기록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심지어 홀트가 준 힌트를 들고 마산 애리원, 마산 시청, 마산 경찰서를 찾았던 날, 그 어디에도 그녀의 기록은 없었다. 심지어 애리원의 실장님이 홀트에 전화를 걸어 재차 확인했음에도 그들은 딱 잘라 말했다.

“그녀의 자료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겨우 한 달이 지난 지금, 홀트가 뜬금없이 애리원의 수용자 대장을 메이 브릿에게 보낸 것이다. 홀트는 과연 어떻게 그것을 발견했을까? 혹시 원래 가지고 있(었는데 숨겼)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녀가 두 번째로 한국을 다녀간 시점에 정말 우연히 찾아낸 것일까? 메이 브릿이 한국에 오지 않았더라도 그 서류를 찾아 친절하게 보내주었을까? 애매했다. 어느 것도 내가 함부로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은 메이 브릿에게 서류의 내용을 설명해줘야 했다. 한글이 가득 적힌 사진을 보고는 그녀도 꽤나 당황했을 것이다. 그녀의 주위에 한글을 아는 지인이 당연히 있겠지만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설명을 듣게 될 메이 브릿이 우선 염려되었다.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고 했던 자료가 오늘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도 적잖이 당황스러운 일인데, 그 내용이라는 것 역시 '그녀'를 새로 규정하는 것들이라면 과연 그녀의 심정은 어떠할까?


잠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 서류의 내용을 그녀에게 직접 말해주기로 했다. 대충 기계적으로 번역한 다음 타이핑으로 회신하는 것은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잠시 연결음이 들리더니 딸깍, 저 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메이 브릿, 저예요. 잘 지냈어요? 메일은 잘 확인했습니다. May Britt, it's me. How have you been? I checked the mail you sent.”

“Jay, it's been a while. How have you been? What is the content of Holt's file? I'm really curious. 제이,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홀트가 보낸 파일은 대체 무슨 내용인가요? 정말 궁금합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녀가 재차 나를 부를 즈음에 다시 말을 이었다.




1976년 10월 22일 출생. 이름은 김수영.

서울에서 태어난 직후 버려졌고, 서울의 고아원에 잠시 맡겨졌다.

1977년 봄, 홀트 재단을 통해 덴마크의 가정으로 입양되었다.


자신의 출생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메이 브릿이 알고 있던 정보는 이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2019년 5월 7일, 홀트가 메이 브릿에게 보낸 한 장의 서류는 그녀의 출생과 관련된 전혀 새로운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나씩 천천히 설명했다.


이것은 당신이 애리원에 맡겨졌을 때 작성된 수용자 대장이다. 문서 번호는 23이다.

당신은 1977년 1월 14일, 마산 중앙동 2가 5번지 최재옥 씨의 집 앞에서 발견되었다. (친모가 양육 능력이 없어서 아기를 버리는 것이라고 쓴 메모지도 함께 발견되었다. 서류 뒷면에 적힌 문장이 그것이다)

1977년 1월 14일, 마산시청 부녀과가 애리원에 대해 당신을 수용해 줄 것을 신청했다.

당신은 1977년 1월 14일에 애리원에 수용되었다.

당신을 애리원으로 보낸 사람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다.

당신의 이름은 김수영이 아니라 김수정이다. 생일은 1976년 10월 22일이 아닌, 12월 3일이다. (친모가 직접 쓴 메모지가 아기와 함께 발견되었다. 이것 역시 서류 뒷면에 기록되어 있다)

그전에 살았던 주소는 알지 못한다.

수용 신청 번호는 2이다. (다른 수용자가 한 명 더 있었다)

애리원에 갔을 때 특별한 소지품은 없었다.




메이 브릿은 결국 마산의 가정집 앞에서 발견되어 마산 시청 부녀과의 조치로 애리원에 보내진 다음, 서울을 거쳐 덴마크로 입양되었던 것이다.


설명을 마쳤을 때 메이 브릿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헬로우라고 두어 번 부르자 그녀가 힘든 호흡을 겨우 내뱉었다. 그녀에게 내가 말한 것을 다시 기록해서 보내겠다고 했다. 먼저 전화를 끊어주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어, 인사말을 꺼내려는데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My mother eventually abandoned me? Until now, I believed my mother would have lost me. 나의 어머니는 결국 나를 버렸던 것이군요? 지금까지 나는, 어머니가 나를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믿었거든요.”


아무 답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메이 브릿이 다시 말을 이었다.

“My name was also Kim Soo-jung, not Kim Soo-young. I didn't even know my birthday. Jay, who am I? 내 이름도 김수영이 아니라 김수정이었어요. 생일 역시 잘못 알고 있었어요. 제이, 과연 나는 누구일까요?”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어도 되겠냐고 그녀가 내게 양해를 구했다. 물론 고맙다는 인사를 덧붙였다. 그러자고 했다.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나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그날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집에 가더라도 쉽게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메이 브릿에게서 다시 메일이 온 것은 이틀이 지난 저녁이었다. 차분한 어투였으나 애써 화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 절절히 느껴졌다.


친애하는 제이,

당신의 따뜻한 연락,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나는 사실 홀트에게 가장 실망했어요. 그들은 입양아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절차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특히나 1970년대에 그들이 해외로 보낸 수백 명의 아이들에게 말입니다. 그 시절에는 바로 아기들의 수출 시장이 있었고, 그늘진 일들이 반복되었습니다. 많은 입양아들이 자신들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할 때, 여전히 바보로 취급되었습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 그들은 거짓말에 속았고, 잘못된 정보를 받아왔으며, 진짜 이야기와 배경을 발견하기 위해 스스로 몇 년을 보냈습니다.

과거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입양아들에게 있어, 홀트 조직은 해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신처럼 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나를 화나게 합니다.

내가 느끼기에 그들은 과거 한국에서 행했던 일들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아기를 가지고 돈을 버는 공장을 만들었던 사실에 대해 말입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계속하고, 그것과 관련된 정보를 숨기는 것은 더 이상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중의 많은 입양아들은 현재의 홀트 직원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그 당시에 그곳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서 거짓말 대신 존경심으로 대우받기를 기대합니다.

제이,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훌륭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다정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내 인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전혀요. 그리고 나는 내 어린 시절이 너무나 고맙고 행복합니다.
그러나 홀트에게는 실망했습니다. 왜 입양아들을 돕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십만 명이 넘게 수출된 아기들은 언젠가는 성인이 되어 돌아올 것이고, 자신의 배경을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홀트는 그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제이, 홀트에게서 다시 연락이 오면 나머지 이야기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의 진짜 이름과 생년월일이 과연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건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며, 난 그것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합리적이고 따뜻한 조언으로 저를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살루티, 알프레도
베스트, 메이

Dearest Mr. Jay,

Thank you so much for your warm felt contact. I’m so happy to have met a person like you.

I’m actually mostly disappointed in Holt. They are the one covering up things for adoptees and they are the ones, who doesn’t’t have the format to make things right, for the many hundreds of children that they sent away, especially in the 1970’s - it was an export market of babies, and shady things went on. Many adoptees have been kept as fools, when trying to get information about their backgrounds. On many occasions, they’ve been lied to, and they’ve received misinformation and they’ve spent years to discover their true story and background.

What makes me the most upset is actually, that Holt. org are playing God with the identity of other people, who has the human right, to know what has happened to them.
I feel, like they are ashamed of what happened in Korea at that time: making money factories with babies, but to keep lying and hiding information about it, doesn’t’t make it better. Many of us adoptees, are not blaming the current staff in Holt - we know that they didn’t work there at that time - but we do expect to be treated with respect and not being lied to.

I am a lucky person. I have a great family and I grew up in a loving family. I don’t have issues about how my life turned out. Not at all. I’m so appreciative and happy about my childhood.

I’m just so disappointed in Holt, and I don’t understand why they don’t help us adoptees. With a baby export of more than many, many hundreds of thousands babies, they should know, that someday, those babies would return as adults, and would wish to find out about their backgrounds.

Mr. Jay, I’ll be back once I hear from Holt, so I can resolve the rest of my story. I want to know what happened to me, and what my real name and birth date is. It’s basic, and I have a need to know.
 
I thank you from the bottom of my heart, for helping me - always with a rational and warm input of the situation.
Thank you so much

Saluti from Alfredo
Best, May


애리원에서 호텔로 돌아오던 차 안, 내가 메이 브릿에게 물었다. 이름과 생년월일에 대해서 집착하는 이유가 뭔지. 그때 그녀가 이렇게 답했다.


“부모가 나를 잃어버린 건지, 일부러 나를 버린 건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도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을 절대 원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나의 정체성이란, 진짜 이름과 진짜 생일이다.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는 힘든 상황에서 그 두 가지는 나를 증명해 주는 유일한 사실이다. 이것은 모든 입양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수용자 대장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나는 마산 애리원에 알리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방문한 어떤 기관에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나서서 설칠 일은 아니었다. 오직 메이 브릿만이 결정할 사항이었다. 나는 그저 옆에서 거들뿐, 다만 진심을 다해서 돕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메이 브릿과는 이후로도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다. 2020년 봄, 다시 한국을 방문할 일정까지 의논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때, 예기치 못한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을 방문했을 시점의 자가 격리와 덴마크로 돌아간 뒤의 안전 격리 기간을 포함하면 얼추 한 달을 허비해야 하는 것이었다. 덴마크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메이 브릿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 난국이 지나갈 때까지 당분간 기다리기로 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래 예정대로 메이 브릿이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면, 우리 모두는 더욱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자기의 과거에 대해 한발 더 다가가는 신나는 여행이었음에 틀림없다. 갑자기 하늘길이 막혀버린 그 당시에는 실망감이 꽤 커서 서로가 몹시 아쉬워했다.




2019년 봄, 나는 우연처럼 그렇게 한 입양인을 만났던 것이다. 처음엔 섣부른 동정심도 있었다. 선입견 때문이었다. 돕고 싶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것은 도움이 아니라 배움이었다. 만 하루 동안 그녀와 그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리고 그녀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해외 입양인에 대한 나의 생각 역시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메일이나 어쩌다 전화, 그리고 매일의 SNS에서 오늘도 그녀는 변함없이 활기차다. 첫 화면 들머리에서부터 자신이 한국계(Korean-Danish)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있는 메이 브릿 코드 May Britt Koed, 한국명 김수정. 소주 한 잔에 발그레해진 그녀의 노래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녀의 행복한 내일을 변함없이 응원한다. 또한 오늘의 기록이 그 응원의 증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메이 브릿 코드 May Britt Koed

Owner @ Il Grappolo Blu & L´Osteria del Grappolo Blu

Copenhagen, Denmark


맨 뒷줄 알프레도, 가운데 왼쪽부터 이다, 마리, 메이 브릿, 로사. 앞줄 노라. 호텔 매니저들 그리고 얀.




* 사실성을 기하기 위해 대화를 가능한 한 영문으로 표시했고, 메일은 원문 그대로를 옮겼습니다. 행여 불편하셨다면 이해를 바랍니다.

* Image of Yul-dong Park by J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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