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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ug 16. 2021

잔액이 부족해서 참 다행입니다

설령 그것이 오지랖이라 하더라도


중학교 3학년이던 1986년 가을, 부산시 교육청이 주최하는 미술대회가 송정 해수욕장에서 열렸다. 나는 학교 대표로 그 대회에 참가했다.

그림을 남들보다 늦게 그리는 편인 데다 첫 두어 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에, 마감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완성작을 제출할 수 있었다. 시작은 점심 시각 직후부터였지만, 그림 도구를 챙겨 백사장을 빠져나올 때에는 이미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지친 걸음으로 정류장에 도착했다. 저만치 버스가 오는 것을 보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손에 잡혀야 할 백원이 없다. 다른 주머니도 확인했다. 역시나 없다. 군것질을 한 것도 아닌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적도 없는데, 백원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차비는 60원. 그 돈이 없으면 당연히 버스를 못 탈 것이고, 결국 집에 가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걸어간다고 해도 한 시간 반은 족히 걸릴 테지만, 가로등도 시원찮은 깜깜한 달맞이 고개를 혼자서 넘을 용기는 처음부터 없었다.


스케치북과 미술 도구를 길바닥에 내려놓고 윗옷을 털어가면서까지 구석구석 뒤졌다. 그러나 백 원은커녕 십 원짜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타야 할 버스는 이미 가버렸다. 난감했다. 무작정 버스에 올라 기사에게 무임승차를 간청할 만큼의 배짱도 그 당시의 내겐 없었다. 집에 갈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겁이 나서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니, 아까부터 와 그라노? 혹시 차비가 없나?”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깨끗이 다려 입은 작업복 차림의 아저씨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분명히 주머니에 있었는데….”

“몇 번 버스 타노?”

“오 번 탑니다.”

그 말을 듣고는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윽 쓰다듬었다.

“잘 됐다. 나도 그거 탄다. 내가 버스비 내줄 테니 그것들, 어서 들어라. 저기, 버스 오네.”

아, 정말입니까?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잠시 후 버스가 우리 앞에 멈추고 문이 열렸다. 나는 아저씨를 따라 버스에 올랐다.

“어른 하나, 학생 하나요.”

요금 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아저씨가 이것저것을 물었다. 학교와 나이, 이름 그리고 무슨 일로 송정에 왔는지 등등이었다. 중학생이며 미술 대회에 참가한 거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기특하다며 칭찬을 했다.

질문에 꼬박꼬박 답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차비를 어떻게 돌려 드려야 하나 그것이 내내 걱정이었다. 한참 만에 용기를 내서 물었다.

“아저씨, 버스비 돌려드리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저씨가 허허 웃더니 내 머리를 장난스레 톡 쳤다.

“니, 억수로 맹랑하네. 우리가 또 만날 수 있겠나?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이다음에 차비가 없어서 곤란해하는 사람 보게 되면, 오늘 내처럼 그때는 니가 도와주면 된다. 알겠제?”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버스가 집 앞에 도착했다. 아저씨가 뒷유리창 너머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구십 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버스가 멀어져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정류장에 서 있었다.


그날 일을 가족들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저씨의 도움에 대한 감사와 칭찬보다, 칠칠치 못한 내 행동으로 꾸지람을 들을 것이 분명기 때문이다.




한 달 일정으로 부산에 왔다. 청년 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취업 강의를 요청받았기 때문이다. 교육장 근처의 호텔을 숙소로 제공받았지만, 주말 동안은 그리 멀지 않은 본가本家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오후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삐익, 잔액이 부족합니다.”

분명 내 등 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돌아보니 가방을 앞으로 멘 여학생이 단말기 앞에 서 있었다. 버스는 이미 문을 닫고 출발한 뒤였다. 아마도 교통 카드의 잔액이 부족한 것 같았다. 서둘러 지갑을 뒤져 현금을 찾는가 싶더니 학생이 조심스럽게 기사에게 말했다.

“아저씨, 죄송한데 차비가 없네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릴게요.”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삼십오 년 전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아하, 이런 기분이셨겠구나. 나는 재빨리 다가갔다.

“기사님, 이 학생 요금, 제가 대신 낼게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듯 기사가 한 손으로 버튼을 조작했다.

“네, 카드 대세요.”

삑 소리가 났다. 나는 섰던 자리로 얼른 돌아왔다. 승객 몇몇이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은 상기된 얼굴의 여학생이 곧 나를 따라와서 꾸벅 인사를 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저씨.”

그러고는 서둘러 뒤로 가버렸다. 그 정도의 인사라면 충분했다. 특별한 감사를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나란히 앉게 되었더라도 버스비 대납을 구실로 여학생의 이름이나 학교를 물어보는 행동 따위는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멋진 대사'만큼은 반드시 서울 말로 흉내 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차비 돌려줄 생각은 말아요. 대신, 이다음에 버스에서 곤란해하는 사람을 혹시 만나게 되면, 그때는 학생이 도와주도록 해요. 알겠죠?”


버스에서 내릴 때, 일부러 뒷자리를 쳐다보았지만 그 여학생과는 눈을 맞추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자는 것 같았다. 공부에 지쳤을 것이다.

집으로 걷는 내내, 혼자서 뿌듯했다. 삼십 년도 더 된 오래 묵은 빚을 이제야 겨우 갚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아내에게 그 일을 말하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칭찬은 기대하지 않았거니와 쓸데없이 오지랖을 부렸다는 잔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 여학생의 잔액이 부족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Title image by KH Shin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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