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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Aug 17. 2021

엄마의 국수

기본은 삼십 인분입니다만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함성을 지른 것은 당연히 옆에 앉은 내 짝, 명수였다.

“와아, 이게 머꼬?”

명수의 호들갑은 금세 교실 전체로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서 반 친구들이 너도 나도 젓가락을 앞세우고 우당탕탕 내게로 달려왔다. 이미 한 번씩 맛을 본 녀석들이라 오늘도 그 유혹을 이겨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밀치고 당기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직이 말했다.

“똑바로 줄 서라. 안 그러면 국수 안 준다?”


그 해 가을, 두 번째로 국수를 챙겨간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다른 목수들과 함께 조組를 이뤄서 일을 다녔다. 그러나 가끔씩 공사 하나를 온전히 혼자서 도맡을 때가 있었다. 즉, 도목수都木手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면 챙겨야 할 일들이 많아져서 꽤나 힘들긴 했지만, 그만큼 수입은 늘어나게 되므로 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힘든 선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도목수가 되면 엄마까지 덩달아 바빠졌다. 일꾼들의 새참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인부들의 새참은 현장 근처의 식당을 이용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 비용 역시 전체 공사비에서 아버지가 지출해야 했다. 엄마는 그것마저 아끼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두 번 새참을 직접 준비하기로 했는데, 그때 가장 만만한 메뉴가 바로 국수였던 것이다.




“해가 짧으니까 열 시 되기 전에 새참을 준비해 오소.”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고 집을 나서면 엄마는 화덕에 곰솥부터 올렸다. 물이 가득한 커다란 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듬뿍 넣고 뚜껑을 닫았다. 집안에 구수한 냄새가 퍼질 때쯤이면 가게에서 받아온 국수를 한 움큼씩 뽑아서 조심스럽게 솥 안으로 넣었다. 행여 부스러져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모두 내 차지였다. 텁텁하기만 할 뿐 아무런 맛도 없었지만 엄마 옆에 서서 날름날름 주워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꼬챙이처럼 빳빳했던 국수가 실타래처럼 흐물흐물해지면 엄마는 그것을 뜰채로 냉큼 건져서 찬물에 담갔다. 그리고 두 손으로 빡빡 씻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엄마를 따라 목욕탕에 가던 생각이 났다. 나를 뜨거운 물에 한동안 푹 담가 둔 다음, 꺼내서 찬물에 잠시 식히고는 엄마는 때를 박박 밀었다. 찬물을 덮어쓰고 사정없이 씻겨지는 국수를 보면, 그래서 은근한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는 한 손 크기로 예쁘게 똬리를 틀어 국수를 채반에 내려놓았다. 열 개가 넘는 국수 똬리가 각각 채반 세 개에 올려졌으니 새참으로 준비한 국수의 양은 결코 적지 않았다. 위에다 올릴 양념장과 고명까지 마련되면 이제 새참 준비는 끝난 셈이었다.

아버지의 현장은 대개 집에서 일이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짐꾼이나 택시를 부르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진복이네 쌀집에서 리어카를 빌려왔다. 육수가 담긴 통을 끈으로 묶은 다음, 그 옆에 채반과 고명이 담긴 그릇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물 주전자와 , 수저통도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굳이 엄마를 따라나섰다. 겉으로는 엄마를 돕겠다는 명목이었지만, 운이 좋은 날이면 아버지의 동료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용돈 일이백 원을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런 횡재를 기대했기 때문에 엄마의 뒤에서 리어카를 미는 것은 결코 힘들다거나 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


국수에 육수를 부어 인부들에게 차례로 나눠주고, 다 먹기를 기다려 그릇을 도로 걷었다. 집으로 와서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또다시 오후에 먹을 국수를 바로 준비해야 했다. 오전과 똑같은 순서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엄마를 따라나섰다. 뜻밖에 운수가 좋았던 날의 오후라면 더더욱 먼저 나서서 준비를 재촉했다.




달리 변화가 없던 새참 준비에 뜻하지 않은 낭패가 발생할 때가 있었다. 계획보다 빨리 일이 끝나 버리거나 갑작스레 내린 비 때문에 오후 공사 전체가 취소되는 경우였다. 전화기가 있는 집이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새참 준비를 마치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비에 흠뻑 젖은 아버지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후 참은 가져오지 마소. 비가 와서 안 되겠소.”


그런 날이면 우리 식구의 저녁 식사는 당연히 국수였다. 하지만 삼십 인분에 달하는 국수를 다섯 식구가 다 먹기란 처음부터 무리였다. 상을 치우는 엄마에게 나는 큰소리를 쳤다.

“엄마, 내일 도시락에 국수 많이 넣어주세요.”

미안한 표정의 엄마는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도시락 두 개에다 마른국수를 담았다. 소풍 때 메고 가는 물통에는 육수를 가득 채웠다. 간장 양념장을 작은 병에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수가 불어버릴 거라고 엄마는 걱정했지만,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의 입맛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국수가 들어있는 도시락을 열고 육수를 부은 다음, 살살 흔들어주면 국수는 천천히 풀어진다. 거기다 양념장을 한 숟가락 올리면 그걸로 게임 끝이다. 나야 일상처럼 대하는 국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특식이나 다름없었다.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진귀함, 그것이 그 시절 우리들의 촌스러운 입맛을 돋웠다.

저마다 챙겨 온 밥과 소시지, 어묵 반찬들과 바꿔 먹는 조건으로 국수를 한 젓가락씩 먹게 했다. 나의 잔머리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도시락 두 개로 부족할 때가 많았다. 국물까지 싸악 비우고 나서도 아쉬운 입맛을 다시던 명수가 그랬다.

“오늘, 너거 집에 놀러 가도 되나?”




오래간만에 본가本家에 오니 그때의 국수가 생각났다. 국수가 먹고 싶다고 졸랐다. 하필이면 변변찮은 국수가 먹고 싶냐고 엄마는 웃으면서 물을 올렸다.

그런데 국수에 대한 엄마의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언제나 이삼십 인분을 준비했기 때문에 달랑 한두 사람 몫만 요리하는 것은 늘 결과가 시원찮았다. 어제도 그랬다. 국수는 덜 익었고, 양념은 과했다.


표 나지 않는 불평을 알아차렸는지 엄마는 다시 큰솥을 올렸다. 그리고 적어도 십 인 분은 족히 될 듯한 국수 다발이 찬장에서 내려왔다. 친하게 오가는 앞집과 옆집에 나눠줄 계산까지 마친 듯했다. 국수를 저으면서 엄마가 혼잣말처럼 그랬다.

“지긋지긋한 국수, 절대로 쳐다보지 않을 거라 다짐한 적도 있었는데.”

그 말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뒤에서 엄마를 끌어안았다.

“징그럽게 와 이라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엄마가 굳이 나를 밀쳐내지는 않았다. 엄마 냄새가 났다. 국수가 푸욱 익을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Image by han_na Go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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