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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22. 2021

둘리 이모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영도 이모, 304호실 청소 부탁드려요. 진아 이모! 이모는 4층!”


호텔 입구까지 나가 배웅 인사를 마친 매니저 준현 군은 프런트로 돌아오자마자 인터폰으로 청소 요청을 했다. 그때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네네, 하는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이모'들의 소리다.


오전 열한 시, 지난밤의 흔적을 지우고 호텔이 새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불과 오십여 개의 객실에 불과한 작은 호텔이지만 아침의 분주함만큼은 특급 호텔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 수건, 가운들이 트럭에 실려 나가고 새로운 비품이 담긴 상자들이 순서를 앞다투어 도착한다.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히는 출입문과 그곳을 통해 드나드는 사람들의 싱싱한 활기가 그대로 전해져서, 나 역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야 함을 깨닫게 해 주는 새삼 고마운 시간이다.




형의 부탁으로 호텔 운영을 맡은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갓 내린 커피를 준현 군에게 건네주면서 내가 물었다.  

“그런데 왜 다들 이모라고 부르는 거죠?”

“네?”

준현 군은 내 질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직책이나, 아니면 각자의 이름이 있을 텐데 굳이 이모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요?”

잠시 생각하던 준현 군이 조심스레 답했다.

“뭐, 그냥 예전부터 그렇게 불러왔으니까, 그게 편하고 익숙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사장님?”

“에이, 또 그런다. 사장님 아니라니까. 그냥 매니저라고 불러요.”

여러 번 되풀이된 내 부탁을 이번에도 깜빡했나 보다. 머쓱해진 표정으로 잠시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준현 군이 다시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둘리 이모, 507호 손님 외출하셨어요. 객실 정리 부탁드립니다, 이모.”




식당에서의 ‘이모’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이모, 잘 지내셨어요? 이모, 여기요. 이모, 잘 먹고 갑니다. 이모, 또 올게요. 마치 오랜 단골인 듯 각별한 친숙함으로 어색함을 덮고 싶을 때에 ‘이모’만한 호칭이 없다. 어릴 적 나와 잘 놀아주며 늘 엄마를 도와주고 언제나 우리 편이었다는 선善의 이미지가 이모라는 말속에, 우리들의 잠재 의식 속에 특별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텔에서는 다르다. 여기는 엄연한 직장이다. 단골손님과 식당 종업원의 관계도 아닌데, 프런트 매니저가 객실 청소 담당 직원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옳지 않은 것 같았다. 호칭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준현 군이 슬며시 고개를 돌려 내게 말했다.


“사장, 아니 매니저님. 그러면 이모 대신 고모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영도 고모, 진아 고모, 그리고 둘리 고모.”




원칙을 따르자면 ‘룸메이드’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러나 메이드 MAID에 담긴 ‘하녀’라는 뜻을 나는 싫어한다. 그렇다면 이모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호칭으로 뭐가 있을까? 하루 정도의 고민 끝에 우선은 ‘여사님’이라고 불러 보기로 했다. 그분들의 노동에 대한 존중과 나름의 격식을 담은 것이다. 이모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런트 직원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어제까지의 ‘이모님’들은 오늘부터 ‘여사님’이 되었다.


“영도 여사님, 205호 체크 아웃입니다.”

준현 군이 수화기를 내려놓은 지 일분도 채 되지 않아 영도 ‘여사님’이 프런트로 달려 내려왔다.

“준현이 삼촌.”

그 말에 준현 군이 내 눈치부터 살폈다.

“삼촌이라 하지 말고, 매니저라고 부르세요, 이모님, 아니 여사님.”

영도 여사님이 나를 슬쩍 쳐다 보고는 다시 준현 군에게 말했다.

“좀 전에 뭐라캤능교? 뜬금없이 여사님이 뭔교? 손발이 근질근질하다 아이가. 그냥 하던 대로 이모라 부르이소 고마. 우리가 무슨 여산교?”

준현 군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분명 내게 전하려는 말이었다. 달라진 호칭이 싫다는 표정은 아니었으나 어색함만큼은 결코 참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상관없었다. 말을 마치고 서둘러 계단을 올라가는 영도 여사님을 보면서 준현 군이 씨익 웃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려 보였다.




새로운 호칭 때문에 며칠 동안 크고 작은 실랑이도 있었고, 새 사장이 엉뚱한 짓을 한다는 뒷말도 들려왔지만 ‘여사님’이라는 말은 우리 호텔에서 그런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과 동시에 또 다른 불편함이 내 속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영도 여사님은 집이 영도니까 그런 것이고, 진아 여사님은 자기 이름, 아니면 따님 이름일 테고, 그렇다면 둘리 여사님은 왜 어쩌다가…?’


결국 핵심은 이름이었다. 적합한 호칭과 함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먼저 여사님들의 본명부터 확인해야 했다.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탓했다.

서둘러 이력서 파일과 급여 기록부를 찾았다. 정답이 쉽게 보였다. 영도 여사님의 이름은 박봉애, 진아 여사님의 성명은 고영자, 그리고 둘리 여사님은 김춘희였다.




다음 날 아침, 프런트 직원들에게 다시 한번 달라진 호칭에 대한 설명을 했다. 모두들 이번에도 내 말을 잘 이해해주었다.

“오늘부터 박봉애 여사님, 고영자 여사님, 그리고 김춘희 여사님으로 부르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하지만 문제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생겼다.


시계가 열한 시 반을 가리키고 있을 때였다. 김춘희 여사가 프런트로 내려왔다. 나를 찾았다.

“무슨 일이세요, 김춘희 여사님?”

“사장님요, 내 쫌 보입시더.”

말수가 적은 여사의 평소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의외의 행동이었다. 김춘희 여사의 재촉에 못 이겨 나는 쫓기다시피 사무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여사가 냉수부터 찾았다. 두 컵을 단숨에 비운 여사는 손으로 입을 훔치고선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리고 노려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것 역시 전에 보지 못한 눈빛이었다.

“사장님요.”

“네.”

“사장님이 우리를 존중하고 챙겨줄라카는 거는 잘 압니더. 그거는 참말로 고맙십니더. 하지만 우리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큼은 절대로 하지 말아 주이소. 우리가 부모님이 지어주신 좋은 이름 놔두고 하필이면 영도 이모니, 둘리 이모니 왜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하는지, 혹시 아십니꺼?”

“……”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내는,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남들에게 알려지면 안됩니더. 둘리 이모는 상관없지만 김춘희는 절대로 안됩니더. 내 이름이 알려지면 내는 그때부터 일 못합니더. 사장님, 내 딸이 다음 달에 시집을 갑니더.”

“아니, 여사님. 지금 하시는 객실 청소 일이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전혀 아닌데 왜 그러세요?”

“맞습니더. 이 일은 부끄럽지도 않고 창피한 일도 절대 아입니더. 하지만 사장님은 모릅니더. 아무리 사장님이 좋은 뜻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내가 이 일을 한다는 것은 절대로 남한테 알려지면 안됩니더. 이름이 알려지면 이 일을 한다는 것도 금방 남들이 알게 될 겁니더. 결국 우리 사위가 알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더. 부탁드릴게요, 사장님. 이전처럼 그냥 둘리 이모, 영도 이모라 불러 주시믄 안되겠습니꺼?”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몇 번의 당부를 더한 다음, 김춘희 여사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월급날이라고 청소 이모들 회식시켜주는 사장님은 처음이다, 맞제?”

컵 위로 넘치는 맥주 거품을 입으로 흐릅 훔친 박봉애 여사가 너스레를 떨었다. 고영자 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테이블 끝에 앉은 김춘희 여사는 말없이 소주병을 들었다. 맞은편에서 준현 군이 서둘러 잔을 내밀었다.

“앞으로 이런 자리, 자주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자리 말고, 그냥 돈으로 주시면 안 됩니꺼?”

박봉애 여사의 농담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 달 호텔의 대략적인 매출과 다음 달 예상치를 설명했다. 그리고 급여를 점진적으로 인상할 것임과 실적에 따른 상여를 지급할 것임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코로나 때문에 다들 죽겠다, 죽겠다 하는데 우리한테 줄 돈이 그렇게 되겠습니꺼?”

고영자 여사가 기대 반, 걱정 반인 표정으로 물었다.

“아, 사장님이 준다카는데 그냥 믿으면 되지, 머할라꼬 의심하노, 고영자 여사님아!”

또다시 박봉애 여사였다. 변함없는 분위기 메이커다. 맞는 말이었다. 뱉은 말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것, 그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술이 몇 순배 돌았다. 하지만 김춘희 여사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나는 준비한 것을 꺼냈다.

“사장, 아니 매니저님. 이게 뭡니까?”

준현 군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이거, 명함 아입니꺼?”

발그레진 얼굴의 박봉애 여사가 내게 되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명함을 나눠주었다. 김춘희 여사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개 호텔, 객실 담당 고영자. 와, 여기 내 전화번호도 있네? 이거 진짜 내 명함 맞네?”

똑같은 양식에 이름과 전화번호만 다를 뿐인데도 서로의 명함을 바꿔보며 확인하느라 자리가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고, 영, 자! 내 이름 찍힌 명함, 태어나서 처음 받아 봅니더.”

“이런 명함 말고, 그냥 돈으로 주시면 더 좋은데, 하하하. 근데, 사장님. 진짜로 궁금하네예. 프런트 직원들은 그렇다 쳐도 객실 청소하는 우리한테까지 뭐할라꼬 명함을 만들어 주시는 겁니꺼?”




여사님들 한분 한분을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냈다. 마지막으로 옆에 남은 준현 군이 내게 물었다. 살짝 취기가 묻어있는 말투였다.

“사장님, 이모들 명함은 대체 왜 만들어 주신 겁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그냥요. 여사님들에게 자기 이름이 적힌 명함을, 그냥 만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했다.

늦잠을 잤는지 헐레벌떡 달려온 준현 군이 유니폼으로 갈아입겠다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로비 문을 열고 김춘희 여사가 들어왔다.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김 여사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내게 작은 보온병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여사님?"

“어제 술 드셔서 속 많이 쓰리시지예. 이거 꿀물입니다. 드이소.”

조금 당황스러웠다. 감사하다는 말부터 당연히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여사가 말을 이었다.

“고맙습니더. 어제, 우리 딸한테 야단 맞았습니더. 그리고 사장님이 우리들 명함 만들어 주신 거, 고맙다고 꼭 전하라고 합디더. 정말 고맙습니더, 사장님.”

말을 마친 김춘희 여사가 종종걸음으로 저만치 사라졌다. 보온병을 받아 들고 나는 말없이 서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머리를 단정히 정리한 준현 군이 어느새 옆에 왔다.

“그게 뭡니까, 매니저님?”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꿀물이랍니다. 둘리 이모가 주셨어요, 둘리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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