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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Oct 27. 2021

목욕과 짜장면

누나, 우리 누나


느닷없이 쏟아진 공사장 벽돌더미에 머리를 크게 다친 아버지는 결국 대학 병원에 입원을 했다. 사나흘이면 툴툴 털고 집으로 돌아올 거라더니 처음 약속했던 퇴원 날짜는 점점 뒤로 밀렸다. 그런 아버지를 간호하느라 엄마 역시 집을 비우는 때가 많아졌다.

처음 며칠 동안은 나 또한 아버지 걱정에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없는 이 상황이, 익숙해지는 것을 넘어 급기야 좋아지기까지 했다. 그만 놀고 숙제해라, 동생과 싸우지 마라, 옷을 뒤집어 벗지 마라, 그런 엄마의 구구절절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 좋았고, 해가 질 때까지 마음대로 놀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좋았다. 아빠가 보고 싶다며 뜬금없이 눈물을 찔끔거리는 여동생을 주먹으로 쥐어박기까지 했다.




아버지의 입원이 열흘을 넘기던 즈음,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너희 둘, 이리 와 봐!”


중학교에 다니는 여섯 살 터울의 누나가 마루에서 여동생과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묻기 전에 우선 달려 나가야 했다. 부모님의 부재不在와 상관없이 우리 집에서 누나의 위상이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오죽하면 연산동 히틀러라는 별명까지 있었을까.

어쨌거나 영문을 알 리 없는 여동생과 나는 누나 앞에서 차려 자세로 꼿꼿이 섰다. 삐죽이 늘어진 잠옷의 무릎께가 신경 쓰였다. 뒤로 숨긴 손에 회초리를 든 누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

나는 윗니와 아랫니를 꽉 붙이고 누나가 잘 볼 수 있도록 입을 한껏 옆으로 벌렸다. 누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곁에 선 여동생도 작은 입을 오물거리면서 이, 하는 소리를 냈다.

“손톱!”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손등을 착 붙여 누나 쪽으로 내밀며 얼른 미어캣 자세를 했다. 이번에도 누나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곧이어 여러 신체 부위에 대한 호명이 이어졌다. 머리, 목, 손, 발, 뒤꿈치, 종아리.


일요일 아침의 불시不時 용의 검사를 서둘러 끝낸 누나는 조용히 읊조리듯 말했다.

“더러운 까마귀 새끼들!”


엄마가 비운 자리는 우리의 달라진 몰골에서 확연히 드러났을 것이다. 양치질은 고사하고 세수라도 제대로 했을까?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뭔가 잘못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질 체벌이 걱정되어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데 누나는 우리를 부엌으로 데려갔다. 입고 있던 잠옷을 모두 벗긴 누나가 김장 때 쓰는 빨간 고무통 속에 알몸이 된 우리 둘을 들어앉게 했다. 그리고 언제 데워두었는지 적당하게 따뜻한 물로 우리가 앉아 있는 통을 가득 채웠다.

누나 역시 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우리의 잠옷과 속옷을 빨았다. 누나 몰래 살짝살짝 물장난을 치는 동안, 몸에 달라붙었던 때도 우리 몰래 퉁실퉁실 불고 있었다.




한 시간 즈음 지났을 때 여동생이 먼저 통에서 구출되었다. “오빠야, 내 먼저 간다.” 깨끗이 씻어 뽀얗게 된 여동생이 나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이젠 내 차례다. 동생의 고통을 곁에서 지켜본 나는 다시 또 겁이 났다. 여탕에 나를 데려갔던 엄마는 누나에 비하면 차라리 천사였구나. 누나는 비누 거품을 만들어 머리를 감기는 것을 시작으로 내 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씻겨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부위를 씻길 때마다 이 말을 절대 잊지 않았다.

“이게 사람이야, 지우개야?”

새 잠옷으로 갈아입은 동생은 문턱에 걸터앉아 그 말을 듣고 깔깔거렸다. 나는 주먹을 쥐어 내보이려다 들켜서 누나에게 엉덩짝을 맞았다. 찰싹. 찰진 소리가 부엌에 울렸다.


손톱이 뽑히는 고통과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참으며 저승길을 건너고 있는데 우연히 누나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누나의 콧잔등과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는 것이다. 누나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가져가 누나 이마에 묻은 땀을 닦았다.

“누나야, 힘들제?”

그 말에 누나가 놀리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번엔 누나의 손이 천천히 내 볼을 향했다. 비록 아홉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순간, 어쩌면 나는 동화의 한 장면 같은 애틋한 감동이 만들어질 것이라 상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야야야야!”

곧 이어진 장면에서 나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있는 힘껏 내 볼을 쥐고 흔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똑바로 씻을래, 안 씻을래? 이 더러운 거지 두목 놈아!”

감동이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금세 맺혀버린 눈물은 서러움을 거들 뿐이었다.




그날의 고문목욕을 마치고 누나는 우리들에게 짜장면을 시켜주었다. 방금 전까지의 감정이라면 짜장면이 아니라 중국집을 통째로 가져다준다 해도 절대 열리지 않을 화해의 문이었다. 하지만 마루에 놓여지는 양철 배달통을 보는 순간, 좀 전까지 차올랐던 누나에 대한 원망은 눈 녹듯 사라지고, 코를 간지럽히는 고소한 짜장의 향기는 무조건 투항이라는 조건에 자발적으로 도장을 찍도록 만들었다.

우리들 앞에 앉아 단무지를 먹기 좋게 잘라주고, 내 입가에 시커멓게 묻은 짜장을 닦아주며 빙긋이 웃던 누나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꼬집혔던 볼이 조금 아팠지만 상관없었다. 두 볼 가득 짜장면이 들어있는데 그깟 꼬집힘의 고통쯤이야 전혀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일주일 즈음 뒤에 완쾌되어 퇴원을 했다. 여동생과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앞다투어 누나의 선행을 알리고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또 다른 기대가 전혀 없순수한 행동이라면 그것은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짜장면을 먹는 지금의 습관은 어쩌면 그때부터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욕은 죽기만큼 싫었지만 짜장면은 먹다가 죽어도 좋았던 시절이다.

아침 출근길, 아파트 현관에 붙은 중국집 전단지를 보니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그렇지, 돌아오는 주말에는 오랜만에 누나와 함께 짜장면을 먹어야겠다. 당연히 그날의 까칠했던 용의 검사와 처절했던 목욕 이야기도 꺼내볼 생각이다. 누나가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어디선가 짜장면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은 느낌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의 기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Image by 709 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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