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 엎드려 산수 숙제를 하고 있었다. 몽당 크레파스로 신문지에다 낙서를 하던 여동생은 이미 잠든 지 오래였다.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는 곧 졸음을 불렀다.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지려던 참이었다.
철컹하며 대문이 열렸다.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나였고, 평소보다는 이른 시각이었다.
누나야, 하며 일어서려니 누나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당으로 들어선 누나의 두 손에 작은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나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누나야, 이거 뭔데?”
누나는 대답 대신 상자 안을 들여다 보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 눈을 질끈 감고 상자로 가까이 가는데 낯익은 소리가 그 속에서부터 먼저 들려왔다. 삐약삐약 뾱뾱뽁.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애써 소곤거리듯 말했다.
“와아, 누나야, 이거 병아리 아이가?”
틈새로 들여다본 상자 안에는 솜털이 아직 보슬보슬한 노랑 병아리 두 마리가 들어있었다. 누나가 나를 내려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문을 나서는데 담벼락 아래서 병아리를 팔던 아저씨가 마지막 떨이라며 두 마리를 한 마리 값에 주더라는 것이었다. 담아온 상자는, 말하자면 덤이었다. 삐약삐약 소리를 들었는지 잠에서 깬 여동생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그지없이 따뜻했던, 1980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은 허약해서 며칠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누나는 엄마의 그런 염려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병아리를 담아온 종이 상자를 깨끗이 닦아낸 다음, 그 안에다 깨끗한 신문지를 구김 없도록 깔았다. 플라스틱 반찬 통 한 개를 가져와 한 칸에 물을 담고, 다른 칸엔 좁쌀 한 움큼도 채웠다.
바깥 날씨가 아직은 춥다며 엄마는 현관 신발장 아래 빈 공간에다 상자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물을 먹고 좁쌀을 쪼아대는 병아리를 한참 동안 보고 있다가 나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아버지 팔에 안겨 마루에서 방으로 옮겨질 때에도 삐약삐약 뾱뾱뾱 소리를 얼핏 들었다.
엄마의 말이 맞았다. 사흘이 채 지나기 전에 한 마리가 죽어버렸다. 데려오던 날부터 그 녀석은 먹는 모습이 시원찮았다.
죽은 병아리가 불쌍하다며 여동생은 눈물을 찔끔거렸다. 누나는 오히려 덤덤했다. 죽은 병아리를 깨끗한 종이에 잘 싸서 집 앞 공터의 가장자리에 파묻었다. 햇볕이 잘 드는 곳이었다. 채로 걸러낸 흙을 덮고 잔돌을 올려 제법 모양이 나도록 돋우었다. 우리 셋은 그 앞에 서서 묵념을 했다. 물론 누나가 시키는 대로 한 행동이었지만 나름 꽤나 진지하고 엄숙했다.
나는 속으로 그렇게 빌었다. ‘다음 세상에는 좀 더 건강한 닭으로 태어나렴.’ 그날 일기에는 병아리 이야기만 한 바닥 가득 적었던 것 같다.
병아리가 빨리 죽은 이유에 대해서 누나는, 우리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승사자가 어쩌다 정신없이 바쁠 때면, 정해진 숫자를 채우기 위해 이름이 없는 생명체부터 마구잡이로 데려간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저승사자란 말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나는, 반나절 동안 병아리의 이름을 짓느라 그 좋아하는 축구도 마다했다.
삼 남매의 고민 끝에 병아리의 이름은 결국 ‘달구’로 정해졌다. 우리 고향에서 닭을 ‘달구’로 불렀기 때문이다.
기왕에 암탉이면 더 좋지 않았겠냐며 엄마가 아쉬운 소리를 했다. 계란 하나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달구는 왜 알을 낳지 못하냐고 누나에게 물었다가 머리를 쥐어 박히기도 했다. 어쨌거나 달구는 무럭무럭 자랐다. 먼저 떠난 친구의 몫을 대신하기라도 하려는 듯,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다.
더 이상 현관에 둘 수 없을 만큼 달구가 컸을 때 아버지는 모처럼 실력 발휘를 했다. 공사 현장에서 가져온 판자를 슥슥 자르고 뚝딱뚝딱 못질해서 근사한 닭장 하나를 금세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것을 옥상 한편에 올려두고 달구도 곧 그곳으로 안아 옮겼다. 우리 집에 온 지 넉 달 만에 달구는 새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때를 즈음해서 달구는 제법 닭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눈도 부리부리해졌고 볏도 깃도 제 색깔을 갖추었다. 그리고 새벽이면 시간을 맞추어 정확하게 울었다. 엄마는 달구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침을 준비했다. 때를 맞추어 이웃들도 하나둘 부엌의 불을 켰다. 작은 발자국 소리 하나도 층간 소음이라며 싸움박질을 해대는 요즘이라면 도심 한가운데의 가정집 옥상에서 닭을 키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 해 가을, 운동회가 끝난 직후부터 때아닌 가을장마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는 우산도 속수무책이었다. 절반은 피하고 절반은 맞으며 서둘러 집으로 왔을 때였다. 아버지와 같이 일하는 친구분들이 집에 와 있었다. 비가 많이 와서 현장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담배를 피우러 마당에 나와있던 수옥이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많이 컸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백 원짜리 동전 한 개를 슬쩍 쥐어 주었다. 예상치도 못한 횡재에 기분이 확 좋아졌다. 하지만 우선은 달구부터 살펴야 했다. 닭장 안에 비가 들이쳤으면 그것 또한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달구야, 달구야. 어딨노?”
구구 하는 소리를 내며 닭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달구가 없었다. 대신 여기저기 달구의 (것으로 보이는) 깃털이 흩뿌려져 있었다. 도둑고양이가 덤빈 것일까? 하지만 이 장대비에, 심지어 대낮에 그럴 리는 없다. 오늘 아침, 밥을 챙겨 올라왔을 때까지만 해도 멀쩡히 폼을 잡고 앉아 있던 달구였다. 옥상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나하나 빠짐없이 장독 뒤도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달구는 없었다. 혹시 옆집 옥상으로 건너갔나? 우산을 치켜들고 반장 집 옥상을 건너다보려는데 그때 아저씨들의 웃음소리가 아래로부터 들려왔다.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버지가 잘못했다. 어서 문 좀 열어라.”
누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았다. 한참을 타이르던 아버지가 짐짓 화난 척까지 해보았지만 누나의 방에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끝내 타박을 했다.
“그러게 차라리 시장에 가서 손질한 닭을 사 오자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어요?”
아버지는 화를 버럭 냈다.
“시끄럽소. 수옥이가 몰래 가서 저질러 버렸는데 내가 막을 도리가 없었잖소!”
엄마가 만든 부침개를 안주 삼아 아버지의 친구들이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때였다. 수옥이 아저씨가 옥상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를 우연히 들었던 것이다. 형님, 저거 잡읍시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우리 큰딸이 애지중지 키우는 닭이라고 말해주었다. 새로 만든 안주가 삼계탕보다 나을 것이라며 엄마도 수옥이 아저씨를 한사코 막았다. 하지만 장난기 많은 수옥이 아저씨의 날랜 몸놀림을 부모님은 막을 수 없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수옥이 아저씨가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다. 일은 그때 벌어진 것이다.
방문을 두드리며 누나를 달래는 아버지를 나는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무심코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다. 뭔가가 만져졌다. 백 원짜리 동전, 낮에 수옥이 아저씨가 준 것이었다. 그 동전 위로 누나의 얼굴과 달구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갑자기 화가 났다. 아저씨 때문에, 아저씨 때문에. 나는 마당을 향해 그것을 힘껏 던져버렸다. 저만치 구석에서 땡그랑 하는 소리가 났다.
잠결에 오줌이 마려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누나의 방 앞에 상이 놓여 있었다. 밥상보가 덮인 그대로였다. 누나가 손을 댔을 리가 없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갑자기 누나 방에 불이 켜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이불속으로 숨었다. 누나의 방문이 빼꼼히 열리는가 싶더니 잠시 후엔 삐그덕 현관문이 열렸다. 그리고 또 얼마 후엔 대문이 철커덩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저승사자가 누나를 데려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없으면 데려간다고 했다. 나는 누나의 이름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달구의 이름도 백 번이 넘게 부르고 또 불렀다. 잠은 완전히 달아났다.
한참 만에 다시 대문이 열렸다 닫히고, 현관문이 열렸다 닫히고, 누나의 방문이 열렸다 닫혔다. 참말 다행이었다. 누나가 무사히 돌아온 것은 모두 내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제야 나는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당연히 달구 시계는 울리지 않았다. 엄마는 늦잠을 잤다며 아침을 차리는 손이 전에 없이 분주했다.
며칠 만에 맑게 갠 하늘이 고개를 내밀었다. 학교에 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에 병아리를 묻었던 자리로 갔다. 역시나. 작은 흙더미 하나가 새로 생겼다. 아직은 제대로 다져지지 않은 채였다. 누가 만든 것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무덤의 주인은 물론 당연히 달구였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누나는 닭 요리 근처에는 얼씬도 않았다. 심지어 계란도 먹지 않았다. 어쩌다 엄마가 정성 들여 계란말이를 해서 도시락에 담아 보내도 그것은 결국 저녁 식사 때 고스란히 우리의 몫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버지가 가끔 퇴근길에 전기구이 통닭을 사 와도, 내용물을 확인한 누나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 역시 억울하게 죽은 달구가 불쌍하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코를 간지럽히는 고소한 냄새를 거부하기엔 열 살짜리 코흘리개의 인내심이란 백지장보다 얇았던 것이다. (집어던졌던 백 원짜리는 다음날 새벽에 겨우 찾았다)
짜장면을 먹기로 약속한 지난 주말, 누나와 시내에서 만났다. 단골로 즐겨 찾는 중국 요릿집 바로 옆에는 새로 생긴 치킨 가게 홍보가 한창이었다. 무심코 전단지를 받아 들고는 누나를 흘깃 보았다. 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누나는 등짝을 때리려는 손 모양부터 했다. 짐짓 피하는 시늉을 하며 우리는 중국집 안으로 들어섰다.
메뉴를 훑는 누나를 보고 있으려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사십 년이 지났어도 누나의 철칙은 여전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치킨만은 절대로 안된다. 그것은 분명 달구, 달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