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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Nov 02. 2021

엄마의 퇴고

처음부터 다시


부산에 살고 있는 고향 언니들을 만나기로 했다며 엄마가 꽃단장에 바빴던 것은 지난 토요일 아침이었다.

시월 말이 되어 거리 두기가 점차 완화되고 단출한 모임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는 소식을 들은 엄마는 언니들과의 모임부터 서두르는 눈치였다. 출향出鄕한 지 이미 오십여 년, 객지에서 겪은 크고 작은 서러움을 그나마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그 언니들 덕분이라는 말을 엄마는 그전에도 자주 했었다.

그 모임에서는 엄마가 제일 막내니까 기분 좋게 식사 대접하시라며 내가 따로 용돈을 챙겨 드렸다. 환하게 웃으며 현관을 나서는 엄마를 보니 내 마음에도 가을꽃이 가득 피었다.




그날 저녁, 일기를 쓰려다가 커피 생각이 나서 식탁에 앉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방에서 나와 조용히 내 앞에 앉았다. 그런데 엄마의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진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 모임이 재미없었어요?”

엄마는 대답 대신 식탁 위에 무언가를 슬그머니 올려놓는다. 자그마한 책이다.

“이게 뭐예요?”

엄마가 짧은 한숨부터 쉬었다. 사연은 이랬다.


몇 달 만에 만나는 자리다 보니 서로에 대한 반가움이 컸다. 손을 맞잡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남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거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고마운 나이라고 했다.

든든한 실탄까지 확보해둔 엄마가, 아무런 걱정 말고 오늘은 맛있는 것 많이 먹자며 주문까지 넉넉하게 마치고 난 다음이었다.

내가 평소에도 큰이모라고 부르는 끝선(말선, 末善) 이모가 조용히 몸을 돌려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너거들한테 조금 부끄럽다만...”


진여성은 말선 이모의 법명法明입니다


함께 자리한 일행들에게 말선 이모가 나눠준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표지에 적힌 제목. ‘우리 엄마와 나의 인생’. 그것은 말선 이모의 팔십 년 인생을 기록한 이른바 회고록이었다. 좌중에서 감탄과 환호와 칭찬이 이어졌다.

하지만 책을 받아 들고 누구보다 놀랐던 것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여든이 넘은 말선 이모가 책을 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엄마 역시 우리 가족의 적극적인 성원과 지지를 받으며 지난봄부터 자서전을 써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공한 나의 인생’. 말선 이모의 책과 제목마저 비슷하다.


https://brunch.co.kr/@jay147/110


승부욕이 강한 엄마는 이모가 준 책을 받아 든 순간 질투심을 느꼈다. ‘일등’을 빼앗겼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스스로를 제일 무식하다고 생각했던 엄마는, 출향인 중 가장 먼저 책을 냄으로써 그간의 창피함으로부터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 신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언니가 나보다 먼저 책을 내다니...

하지만 잠시 후 말선 이모의 책을 한 장 두장 읽다 보니 일등을 빼앗겼다는 엄마의 생각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히려 엄마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말선 이모의 책에 견주어 엄마 스스로의 글이 한없이 부족하고 더없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의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참 만에 엄마가 뜬금없는 말을 했다.

“이제 글, 그만 쓸까 싶다.” 거기다 혼잣말을 덧붙였다.

“끝선이 언니는 그래도 국민학교는 다녔으니까 이렇게 잘 쓰는 거지. 나도 학교만 제대로 나왔더라면…”

배우지 못한 아쉬움을 엄마는 또 장탄식에 묻었다. 엄마의 낙담은 꽤나 커 보였다. 엄마는 다른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이럴 때마다 해결사는 내 아내다. 누나와 여동생이 넘지 못하는 선을, 아내 황여사는 자유롭게 넘나 든다.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아내가 이번에도 역시 자기에게 맡기란다. 설득의 여왕, 꼬드김의 절대 지존, 황여사를 나는 전적으로 믿는다.


이틀 동안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던 엄마는 어제저녁부터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책상 위를 흘깃 훔쳐보았다. 원고지 뒷면에 글을 쓰는 송 작가의 특이한 습관은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여전한데, 종이 가장자리에 쓰여 있는 글자가 내 눈에 들어온다.


퇴고


분명 저것은 아내가 엄마를 설득하는 근거로 사용했을 낱말이다. 처음, 사진, 길게, 라는 단어가 함께 적혀 있는 것으로 봐서 엄마의 퇴고는 전에 없이 꽤나 진지한 것 같다.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엄마의 출간 계획은 그래서 내년 봄으로 미뤄졌다. 내용과 분량에 있어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퇴고를 다시 하도록 만들었으니 말선 이모가 엄마에게 좋은 자극이 된 것은 분명하다. 엄마에게 말선 이모가 있듯 내 주위에도 마찬가지로 훌륭하고 좋은 글벗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과연 나는 제대로 된 퇴고를 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스스로의 글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한 적이 있었던가, 엄마처럼 진지하게 글을 쓴 적이 있었던가, 공연한 반성이 줄줄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퇴고라는 말이 머릿속에 한참을 맴돌았던 저녁이었다.




Image by Andreas Lischk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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