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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Nov 05. 2021

매일 만두

혼자 먹다가 둘이 죽어도 좋을


미처 동이 트기 전부터 아버지는 출근을 서둘렀다. 근로 기준법이라든가 적정 근로시간 따위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건설 노동자의 하루는 새벽을 다투었다. 달그락달그락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눈꺼풀 위에 쌓인 잠을 털어내려고 애썼다.

우리 밥상에선 볼 수 없는 계란 프라이가 결코 내 목적은 아니다.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현관에 앉아 신을 신으려고 할 때까지 조용히 이불을 사수하며 기다리는 것이 포인트다. 끈을 동여맨 아버지가 끄응하는 낮은 신음 소리와 함께 일어서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내 계획을 실현할 최적의 타이밍이다. 튕기듯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아버지를 향해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며 달려간다. 아버지 앞에 선 다음, 허벅지에서 착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손을 갖다 붙이며 차려 자세를 한다. 그리고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큰소리로 외친다.

“아버지, 잘 다녀오세요.”

그 모습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는 내 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내색도 않고 주머니를 뒤져 오십 원짜리 동전 하나를 꺼낸 다음, 엄마 몰래 내 손에 쥐어 주었다. 운이 좋으면 백 원일 때도 있었다. 철컹, 대문이 닫히고 나면, 그제야 나는 다시 이불로 돌아와 미처 적정량을 채우지 못한 잠을 찾기 시작했다. 행여 놓칠세라 아버지가 준 동전을 손에 꽉 쥔 채로 말이다.


그렇게 해서 일주일 즈음 지나면 서랍 속 상자에는 대략 이, 삼백 원이 모였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명수는 코 묻은 백 원짜리를 슬며시 꺼내 보이며 오락실에 가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새벽잠과 바꿔가며 어렵사리 모은 소중한 용돈을 겨우 전자 오락 따위에 쓰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다. 갤러그와는 비교도 안될, 더 소중하고 더 큰 계획이 내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만두였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기억 속의 날들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그날도 역시 비가 내렸던 것 같다. 우산을 받쳐 들고 집을 나섰다. 명수랑 마하사에 놀러 간다고 엄마에겐 둘러댔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무슨 절에 가냐며 엄마는 미덥잖은 표정을 지었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죄송해요, 부처님.


느린 걸음으로 대략 십여분, 집에서 머지않은 마을 시장 입구에 그 가게가 있었다. 출입문 앞에 서서 잠시 한숨을 골랐다. 벌써부터 좋은 냄새가 풍겨 나왔다. 목구멍을 넘어가던 침이 내게 속삭였다. 폼은 그만 잡고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 그래, 알았어. 너도 되게 먹고 싶구나? 그걸 말이라고 하니, 이 녀석아?

주렁주렁 구슬이 달린, 축 늘어진 발이 딱 내 머리 높이였다. 간지러웠다. 그것을 한쪽으로 걷으며 가게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이한 냄새, 이것저것이 막 섞인 그러나 그지없이 매혹적인 향기가 서둘러 마중을 나왔다. 반가운 나머지, 약간 어질할 정도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 같았다. 분명 사장님일 것이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인사를 해야 하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사장님 아저씨'가 먼저 말했다.

“야, 우리 배달 안 뽑는다. 가라.”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청소년들이 진학을 포기하고 가장 손쉽게 취업할 수 있는 곳이 당시의 중국집이었다. 한쪽 손에 무거운 철가방을 든 채 한쪽 발로는 자전거 페달을 밟던, 우리 또래의 어린 배달부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때였다. 그들의 아프고 힘든 속사정은 까맣게 모른 채, 쟤들은 매일 짜장면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며 명수와 나는 한없는 부러움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일요일, 그것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른 아침에 가게로 들어선 나를 본 아저씨 역시 배달 일을 구하는 불쌍하고 가련한 어린이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짐짓 큰 소리로 말했다.

“마, 만두 먹으러 왔는데요.”

굳이 돈은 왜 꺼내 보였는지 지금도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만두를 먹으러 온 손님이라는 것을 알리는 데에는 그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저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쪽에 앉아라. 무슨 만두 먹을래?”

“군만두요.”


찐만두를 시킬 걸 그랬나? 짧은 후회는 곧 사라졌다.

잠시 후 내 앞에는 두툼한 갈색 엽차 잔이 먼저 놓였다. 내 머리보다 큰 노란 주전자를 들고 온 아저씨가 잔에다 물을 부어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잔을 쥐고 호호 불면서 뜨거운 물을 후릅후릅 조금씩 마셨다. 비 내리는 가을 아침의 한기寒氣가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다.

그제야 여유가 생긴 나는 조심스럽게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벽에 붙은 글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군만두, 찐만두, 왕만두, 고기만두, 야채만두, 떡만두, 만두, 만두. 온통 만두 천국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집 아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다음 세상에는 만둣집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아냐, 그럴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만두 가게를 하자고 졸라봐야겠다. 그러면 아버지도 힘든 공사장에 가기 위해 매일 아침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엄마도 매일 하루 세 번씩이나 힘들게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또 나도 매일 만두를 실컷 먹을 수 있으니, 그것이야말로 일석삼조 아닌가? 명수는 일주일에 한 번만 놀러 오라고 해야겠다. 무슨 음식이든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 치우는 명수 녀석이 우리 집에 매일 온다면 결국 손님들에게 팔 수 있는 만두라곤 한 개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 뻔하다.


“자, 만두 먹어라.”

우리 가게가 망하기 직전에 아저씨가 가까스로 구해주었다. 아까보다는 부드러운 말투였다. 단무지 종지와 함께 아저씨는 노릇노릇 잘 구워진 만두 한 접시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눈을 감고 냄새부터 코로 빨아들였다. 한 점의 냄새도 놓치지 않을 거라는 각오는 과연 남달랐다. 흐으으읍. 만두의 향기가 곧 만두滿頭했다.

접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살펴보다가 가장 만만해 보이는 만두 한 놈을 작은 접시로 옮긴 다음, 젓가락을 양손에 나눠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만두의 배를 갈랐다. 추루룩 하며 끈끈한 육즙이 흘렀다. 잘 다져진 알록달록 화려한 만두의 속살이 곧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 이걸 내가 과연 먹어도 되는 걸까? 미안하다, 만두야. 만두의 반 토막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바로 앞에 왔을 때 입을 벌려도 되는데 젓가락이 만두를 집을 때부터 입을 한껏 벌린 채였다. 고인 침이 아슬아슬했다. 행여나 속살의 한 톨도 흘리지 않겠다는 두 번째 각오였던 셈이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젓가락의 도움을 받아 공중으로 떠오른 만두가 내 입술을 통과한다. 들어갑니데이. 혀가 마중을 나간다. 어서 오이소. 윗니와 아랫니가 행여나 싶어 문을 걸어 잠근다. 편한 시간 되이소. 혀가 재빨리 밖으로 나가서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훑은 다음 서둘러 돌아온다. 다른 일행은 없으시네요. 자, 불 끕니데이. 비로소 황홀한 탐미探味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만두를 다 먹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입 속으로 한없는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눈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아쉬움을 헤아리고 있었다. 괜찮아, 다음 주에 또 올 거니까. 마지막 만두를 파티장으로 들여보낸 아쉬움을 단무지로 겨우 달랬다. 괜찮아, 진우야. 난 언제까지나 너의 친구로 남을 거야. 만두 열 개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모습에 깜짝 놀란 단무지가 노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다독였다.


“니, 만두 억수로 좋아하는갑네.”

동전 이백 원을 건네받은 아저씨는 롯데 껌 하나를 주면서 웃었다. 부끄러웠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아저씨가 문 앞까지 따라 나왔다. 거듭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아쉬움 가득한 발길이었다.

지금쯤은 아저씨가 들어갔겠지 싶어 저만치에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보았다. 여전히 흔들리고 있는 발 위로 커다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만두’. 그래요, 아저씨, 저도 매일 만두 먹고 싶어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매일 말이에요.




대학 졸업 후 서울로 거처를 옮길 때까지 연산동 매일 만두는 그렇게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속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아침 인사를 아버지에게 하던 때부터, 참고서를 다시 사야 한다며 엄마를 속이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여기가 내 첫 경험 장소라는 농담과 함께 여자 친구를 데려갈 때까지, 매일 만두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당연히 매주 만두, 어떨 땐 매월 만두가 되기도 했지만 내 마음속 만두는 하루도 빠짐없이 노란 기름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잊지 않고 찾아오는 꼬마 단골을 귀엽게 여겼던지 아저씨는 어쩌다 만둣국을 서비스로 주기도 하고, 찍어먹을 양념장을 맛있게 만드는 환상의 비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러나 만두를 공짜로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아마도 아저씨의 최소한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을 하곤 한다.




기억이 흠씬 묻은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아보는 것이 꽤나 즐거운 취미가 되어버린 요즘이다. 부산에 온 다음, 매일 만두가 그 첫 번째 장소였음당연한 일이다.

일부러 주말 아침 시간에 맞추어 시장으로 갔다. 어린 시절과는 달리 그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장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만두가 있던 자리에는 꽤나 번듯해 보이는 중국 요릿집이 낯선 간판을 달고 떡하니 들어서 있었다.

어린 시절 내 머리를 간지럽히던 치렁치렁 발 대신 손을 대기도 전에 저절로 열리는 자동문이 나를 맞이했다.

“군만두 주세요.”

앉기도 전에 주문부터 했다. 중년의 여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오려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만두를 기다리는 동안 실내를 둘러본다. 과거의 흔적이 있을 리 없다. 저쯤 어디에서 고개를 내밀던 사장님 아저씨는 지금은 어디에 계실까?

이젠 물도 직접 가져다 마셔야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엽차가 얼핏 생각이 났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으며 여직원에게 애써 아는 체를 해 보았다.

“옛날에, 저 어릴 때는 여기가 만둣집이었는데요.”

“어? 그걸 아시네요?”

무뚝뚝해 보이던 여직원이 내 말에 반색을 했다.

“네, 매주 거르지 않고 여기 와서 만두를 먹었거든요. 특히나 군만두.”

“그러셨어요? 저희 아버님이 젊으셨을 때 여기서 만두 가게를 하셨어요.”

아, 그렇구나. 금세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닌 아버님이라는 걸로 봐서는 시아버지, 그리고 이 분은 어쩌면 며느린가 싶었다. 근황을 물어보려는데 여직원이 먼저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저희한테 일찌감치 그 가게 물려주시고 지금은…”

다음 말이 궁금했다.

“요양원에 계세요. 몸이 조금 안 좋으시거든요.”


하긴 벌써 사십 년이다. 사장님 아저씨의 연세, 아마도 아흔에 즈음할 것이다.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나이다. 곧 만두가 나왔다. 당연히 그 시절의 맛은 아니었다. 맛있게 잘 먹었다며 계산을 치르고는 어르신께 안부 전해 달라는 인사도 덧붙였다.


이만큼 걸어와서 다시 가게를 돌아보았다. 문 앞에는 우산을 받쳐든 꼬마가 서 있고, 그 아이를 배웅하는 중년의 남자가 보인다. 그들이 나를 향해 돌아서서 손을 흔든다. 그리고는 누군가의 웃음에 묻혀 천천히 사라진다.

한 사람의 역사, 한 사람의 시대, 그리고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 역시 이렇게 사라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Image by PooX2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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