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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Nov 16. 2021

그래도 스미마셍

세 번째 만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제가 진우 상 さん 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해도 될까요?”


하마터면 커피를 을 뻔했다. 뭐, 뭐라구요? 특별한 사람이라구요?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레이코 礼子 선생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까 마신 막걸리 때문인지 선생의 얼굴은 좀 전보다 더 발그레해져 있었다. 머리가 어질 했다. 눈앞의 탁자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선생님, 갑자기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시선을 둘 곳이 없었다. 벽을 올려다보았다. 모나리자 아줌마, 묘한 표정 그만 짓고 뭐라도 좋으니 말 좀 해 봐요. 네? 레이코 선생님이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한참 만에 모나리자가 시익 웃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좋겠다, 짜식.”




합격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시험은 시험이었다. 힘든 수험 생활 끝에 드디어 시험을 마쳤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교수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때로부터 꼬박 사흘을 내리 앓았다. 그래서 대입 합격자 발표장에도 아버지가 대신 가야만 했다.

자리에 누워 있는 동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중에 사회로 진출했을 때, 과연 무엇이 나의 필살기가 될 수 있을까? 그때 내가 내린 답은 이것이었다.


외국어, 운전, 컴퓨터


이 세 가지를 미리 준비하자. 지금 생각해 보면 그지없이 유치한 것이지만 열아홉 살이던 당시의 내게 있어 그 세 가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꽤나 심각한 선택이자 중요한 결정이었다.

겨우 기력을 되찾은 이튿날, 아버지의 도움으로 운전 학원에 등록을 했고 전자 상가에서 컴퓨터도 샀다. 손때 묻은 자습서를 간추려 성문 기본 영어와 함께 끈으로 동여매는 순간, 그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다, 일본어. 일본어를 배우는 거다.'




학교 앞에 위치한 심번 외국어 학원을 선택한 것은 다른 특별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거기에 그 학원이 있었을 뿐이다.

‘90학번 신입생 일본어 특별 할인’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서 유난히 펄럭이는 현수막이 내 팔을 와락 잡아당겼다.


기초 과정은 아이우에오부터 시작하는 문법 수업이었다. 한국인 강사가 담당했다. 입시는 끝났어도 뇌는 여전히 고등학생 때 그대로였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난생처음 보는 신기한 낱말들머릿속에 들어와 각자 알아서 착착착 쌓다.

삼월의 시작과 함께 입학식을 했고 나는 정식으로 대학생이 되었다. 일월과 이월, 두 달 동안의 문법 과정을 마치고 이어서 회화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문법과 달리 회화는 원어민에게 직접 배우는 것이 훨씬 좋다는 학과 선배들의 조언을 따랐다. 원어민 과정으로 서둘러 과목 신청을 변경했다.

그때 나의 수업을 맡게 된 사람이 바로 카타오카 레이코 片岡礼子 선생이었다. 대략 백육십 센티미터 정도의 아담한 키에다 얼굴은 작고 귀여웠다. 피부는 눈에 띄게 흰 편이었고, 대개의 일본 여성들이 그렇듯 레이코 선생도 덧니가 인상적이었다. 검은 테 안경을 낄 때도 있었지만, 책상에 내려두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한국인 강사와 달리 원어민 교사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전공 강의를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오직 일본어 공부에만 매달렸다.

매주 토요일마다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갔다. 백사장 한편 저만치에서 보고 있다가 일본인 관광객이 맞다 싶으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일본어로 준비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는 부산의 대학생입니다. 직접 일본인들을 만나 배운 것을 복습하고 싶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서 저를 도와줄 수 있으실까요?"

두 번 생각할 필요 없이 그것은 꽤나 무례한 행동이다. 즐거운 여행을 온 관광객들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철이 없던 그때의 나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판단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것을 마치 젊음의 패기인 것처럼 착각했다.

충분히 난처했을 버릇없는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관광객들은 다행히 그리고 흔쾌히 내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틀린 발음을 고쳐 줄 뿐만 아니라, 남자가 쓰는 단어, 여자가 사용하는 낱말 등 특별한 첨삭 지도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연락처를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해서 짧은 수업이 끝나면 나는 허리를 접어가며 몇 번이고 인사를 한 다음에야 돌아섰다. 그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일본어 공부를 했으니 실력이 느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레이코 선생은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혹시 진우 상은 비밀리에 일본어 특별 과외라도 받는 건가요? 정말 놀랍습니다.”

칭찬이 쑥스러웠지만 나는 학습 비법을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삼 개월 코스의 기초 회화 반을 한 달 만에 끝내고, 레이코 선생의 조언에 따라 중급반 과정으로 옮겼다. 중급반에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 한 명과 얼추 비슷한 연령대의 아주머니 한 명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친해지고 나서 알게 된 것이지만 두 분 모두 일본을 오가며 장사를 한다고 했다. 일본어에 열심인 나를 보며 아저씨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임 군, 진짜 대단하데이. 사람이나 생선이나 대가리가 중요하다 아이가. 대가리는 싱싱할 때 써 묵어야 된다, 알겠제?”

아마도 아저씨는 일본과 수산물 거래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월 중순이 되자 학교에서는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축제를 열었다.

중급반 수강생들, 그러니까 나를 포함한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수업이 끝난 뒤, 축제 구경을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막걸리는 자신이 사겠다며 아저씨는 큰소리부터 쳤다. 어떻게 알았는지 레이코 선생이 그때 우리 일행을 따라나섰다.

연신 들이킨 막걸리 때문에 금세 얼굴이 불콰해진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남기고는 서둘러 일어섰고, 아주머니 역시 남편과 내일 다시 와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결국 레이코 선생과 나만 남게 되었다. 선생이 술을 깰 겸 자신이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흔쾌히 따라 일어섰다.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는 정말 좋았던 거다.




선생은 자신이 스물여섯 살이며 일본 구마모토가 고향이라고 했다. 구마모토가 어디 있는지 내가 알 바 아니었다. 고향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잠시 하다가 일월에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한국어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서 어느 정도 쓰기는 흉내 내지만 말하기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좋다. 구마모토도 좋고, 부산으로 온 것도 좋고, 우리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도 좋고, 다 좋다. 그런데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해도 되냐니, 대체 그게 무슨, 제비가 놀부 다리 부러뜨리는 소리냔 말이다.


레이코 선생은 자기가 왜 내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참 동안 내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날 선생과 어떻게 헤어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금 늦은 시각이었지만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대충 손만 씻고 거실로 나왔다. 잠시 망설이다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 아버지.”

“응, 무슨 일이고?”

“혹시, 있다 아입니꺼.”

“뜸 들이지 말고 말해라. 답답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다음 말을 꺼냈다.

“혹시, 국제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꺼?”

“국제결혼?”

놀란 눈으로 아버지가 되물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다.

“국제 결혼이라카믄, 어데 보자, 근데 어느 나라고?”

“이, 일본입니다.”

나의 대답에 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조용히 달그락거리기만 하던 부엌에서 갑자기 터엉 하 부엌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내 방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나는 학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멀찍이 떨어진 다른 일본어 학원 중급반 과정을 새로 등록했다. 며칠 남은 수강료가 아깝다는 생각도 얼핏 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겁이 많았다.


그 해 여름, 나는 엽서 한 장을 받았다. 레이코 선생이었으며, 방학이 되어서 구마모토 고향집으로 잠시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내가 학원 등록할 때 기록했던 집 주소를 따로 적어 둔 것 같았다. 판다 그림이 앞장을 섰길래 처음엔 중국 여행 중인가 싶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나 굳이 답장을 하지는 않았다.


레이코 선생을 다시 만난 것은 시간이 꽤 지난, 97년 가을이었다.

나는 회사원이 되었고 부산에서 파견 근무를 하던 때였다. 평소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편지 한 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레이코 선생이었다. 부산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는 사연이 깨끗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자신의 귀국 일정과 함께 연락처를 큰 글씨로 표시해 두었다. 그때 나는 잠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학원 근처에서 선생을 만났고, 커피도 마셨다. 꽤나 늦게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즐거웠다. 이번에는 그때처럼 머리가 빙빙 돌거나 어지럽지는 않았다.




2010년, 일본 출장을 가게 되었다. 도시바 연구소에 시료 분석을 의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연구소는 하필 구마모토에 있었다. 사흘 간의 일정을 순조롭게 마쳤다.


내 손엔 엽서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레이코 선생이 오래전 내게 보냈던 것이다. 이번에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래 따질 필요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탔다. 기사에게 엽서의 주소를 보여 주었더니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잠시 후 기사는 나를 주소대로 어느 집 앞에 내려주었다. 멀어지는 택시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일본 만화에서 자주 보았던, 그래서 기시감 가득한 전형적인 일본의 가정 주택이었다. 엽서에 적힌 주소와 알림판을 다시 한번 맞추어 보았다. 틀림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한 걸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벨을 눌렀다. 딩동도 아닌, 딸랑도 아닌 꽤나 경쾌한 부저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탈캉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곧 누군가가 나왔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낯익은, 변함없이 반가운 얼굴이었다.





Image by DeltaWork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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