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모某 교육원으로부터 강의 요청이 있었고 그것을 흔쾌히 수락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분명 잘한 일이었다. 남들 앞에서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데다, 꼰대와 라때가 황금 비율로 섞인 훈장질을 하기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말 부부는 고사하고 월말 부부도 쉽지 않을 거라는 아내의 걱정엔 아랑곳없이 내 코는 저 혼자 노래부터 불렀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강의를 시작한 첫 주의 토요일 오후, 의형제나 다름없는 형을 만나러 간 것, 그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었다. 시내 중심가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형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아 지난 일 년 반 동안 거의 혼魂이 나간 채로 살았다고 했다. 상황을 가늠했음에도 이제야 찾아온 내가 오히려 미안할 정도였다.
시국이 안정되고 조금씩 회복의 조짐이 보이려는 시기가 되었지만 재기에 대한 형의 의지는 오히려 맨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오래간만에 부산에 내려온 동생을 과신했던 것인지 형이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재기할 수 있게 시스템 전부를 다시 세팅해 주라. 도와줘. 진심으로 부탁한다.”
친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형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거리를 두고 지냈던 호텔 운영을 다시 맡게 되었다. 작정하고 덤벼드니 과연 손볼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정신없는 며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저녁 식사 중에 형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진우야, 사실은….”
“말해요, 형.”
“그게 말이다, 실은, 호텔이 하나 더 있다.”
언제나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형이 유난히 힘들어했던 이유를 그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본인의 소유가 아닌, 전세로 운영하는 작은 호텔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 사태 직전에 맺은 계약이라고 했다. 손님은 없는데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이 만만찮았을 것이다. 형의 다음 말은 듣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결국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상이 내게도 시작되었다.
아침 여섯 시에 집을 나와 첫 번째 호텔로 출근해서 전반적인 사항을 점검하고, 오후 한 시가 되면 두 번째 호텔로 이동, 또다시 운영 상태를 확인해야 했으며, 저녁 여섯 시부터는 교육원에서 강의를 해야 했다. 밤 열 시가 되어 수업이 끝나면 첫 번째나 두 번째 호텔에서 형을 다시 만나 당일의 일과 내일의 과제를 두고 열띤 토론을 했다. 잔뜩 움츠린 형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 일과를 마치고 부모님이 있는 본가로 돌아갔을 때, 시각은 이미 새벽 두 시를 훌쩍 넘겼다.
부모님은 두 분의 수려한 외모 대신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는 성실성만을 내게 물려주신 것 같다. 체력이 그나마 받쳐주니 의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당연히 불만은 없었다. 빡빡한 일정이었으나 조금씩 개선되는 호텔의 운영 상태,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점차 회복되는 형의 컨디션.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 좋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열의가 좋았다. 쓰러지듯 눕자마자 잠드는 밤이었지만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먼저 움직였다. 보람은 차고 넘쳤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었다.
마음대로 글을 읽을 수 없고 자유롭게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지난 삼월부터 나의 일상에 녹아든 글쓰기와 글 읽기는, 내가 호텔에 관여하는 순간부터 하루아침에 멈춰버렸다. 매거진을 운영하는 소중한 글벗들이 없었다면 그 허접한 글쓰기마저도 완전히 손을 놓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두어 달의 시간이 지나고 형과 마주 앉았다. 내가 슬쩍 운을 띄우려는데 형이 먼저 말했다.
“고맙다. 덕분에 다시 궤도에 올라온 것 같다. 호텔 한 개는 이제 내가 할게.”
아니, 형. 두 개 다 하라니까. 전부 형 것이잖아. 왜 한 개야? 형은 대답 대신 웃음 가득한 얼굴로 소주잔을 들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정신없었던 일과의 한 조각, 아침 시간을 나의 것으로 돌려받았다.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켜고 워드를 열었다. 머릿속에 글감은 차고 넘쳤다. 분주하게 보낸 일상에서 빠짐없이 챙겨두었던 글감들이 번호표를 뽑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전까지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좋은 글감이 떠올랐다 싶을 땐 재미난 구성들이 제 알아서 순서를 만들었고, 멋진 문장 하나를 생각해내면 그것에 맞는 앞 줄기와 뒷 잎사귀들이 절로 따라붙었다. 퇴고는 언제나 즐거웠다. 발행 버튼을 누르는 순간의 짜릿함, 김혜자 배우처럼 나도 그랬다.
“그래, 이 맛이야.”
당연히 이번에도 그러려니 했다. 간절함이 컸으니 더욱 자연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차고 넘치는 싱싱한 글감과 어서 빨리 꺼내 달라는 물 좋은 표현들이 상자에 갇힌 채로 버둥거리기만 했다. 애써 첫 문장을 시작해도 다음에 이어진 것은 주어主語부터 어색했다. 서술어의 합은 맞지 않았고 구성은 억지스러웠다. 결국 한 시간 동안 뱉어낸 겨우 두세 문장, 어느 구절 하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우라질 리오데자네이로 마추피추 썅파울로.
아뿔싸, 바삐 보낸 두 달 동안, 나의 글 쓰는 감이 완전히 떨어져 버린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글쓰기에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다름 아닌 ‘꾸준함’ 임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완전히 감이 떨어질 정도로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글쓰기보다 보람 있는 일을 했음은 별개의 변명이다.
어떤 글을 쓰더라도 ‘글쓰기’ 행위 자체에 대한 글만은 쓰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 적이 있었다. 차라리 안 쓰고 말지, 글이 안 써지네, 글감이 없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네 따위의 글은 내가 먼저 창피해서라도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런 글을 쓰고 있다. 글이 내 뜻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투덜거림, 창피한 독백, 굳이 남이 알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몹시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도 없는 잡문을 굳이 이렇게 주절거리는 것은, 떨어진 감을 되살리기 위한 시동始動이며 예전의 루틴을 되찾기 위한 몸글부림이라 우겨본다. 뭐라도 써야 그 느낌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누가 밟기 전에 그나마 먹을 수 있는 것만큼이라도 건져보려던, 감나무 아래 코흘리개의 간절함, 그것이 지금의 내 심정이라 해도 틀림이 없는 말이다. 유난히 수준 낮은 글이라는 비난은 당연히 그리고 기꺼이 감수할 작정이다. 그 감은 떨어지더라도 이 감만큼은 절대로 떨어져선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