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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Mar 31. 2021

얼굴의 추억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오 학년 봄 소풍을 앞둔, 꼭 이맘때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료한 수업 시간이 꽤나 지루하셨던지 김명숙 선생님은 우리들 중 몇몇을 지명하시더니, 교과서에 실린 것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앞에 나와서 불러보라고 하셨다. 그렇잖아도 새로 담임이 된 선생님 눈에 들고 싶어 안달이 났던 데다, 봄 소풍 장기 자랑의 예선이다 싶었던 녀석들은 제 차례와 관계없이 저요, 저요 하며 손을 흔들어대기까지 했다.


어떤 녀석은 겨우 열두 살 주제에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며 절절한 한恨을 쏟아냈고, 또 아무개는 어서 빨리 부산항에 돌아오라고 울부짖었던 것 같다. 몇 명이 더 노래를 부르고 나서, 그다음 차례로 지명된 여학생이 조용히 일어서더니 교탁 앞으로 나가지 않고 굳이 자기 자리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첫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여태 창밖만 바라보고 계시던 선생님도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바라보셨다.


https://youtu.be/hqz1VMrbOBk

* 저작권 관련 표기는 하단에 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슬픈 노래가 있었을까 싶었다. 그리고 노래가 2절로 이어질 무렵엔, 저 아이가 언제부터 우리 반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에는 별로 말도 없고 함께 어울려 놀았던 기억도 없는, 그저 조용한 아이였다. 충격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아이의 노래에 윤수일도, 조용필도 그저 말없이 앉아 있어야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때 그 아이가 노래 부르던 모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육 학년이었다면 졸업 앨범에서 이름이라도 찾을 수 있을 텐데, 당시 같은 반이었던 내 친구들은 그 아이가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조차 기억을 못 한다.


살다 보면 문득문득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얼굴에 매칭 되는 그 이름까지 기억하려 애쓰다가 끝내 포기하게 된다. 얼굴은 생생한데 이름이 죽어도 생각나지 않는 것은 때로는 꽤나 답답한 일이다. 이것은 기억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답을 찾지 못하는 그리움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어젯밤 내린 비에 앞마당 벚꽃이 꽤나 많이 떨어졌다.


차 지붕을 덮은 꽃잎을 하나씩 치우다가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렸고, 또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생각에 꼬리를 물고서 보고 싶은 얼굴들이 하나씩 둘씩 또 떠올랐다. 굳이 이번엔 모두의 이름을 엮으려 하지는 않았다. 떠오른 얼굴들만으로 이미 충분히 즐겁고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노래 Face (얼굴)

아티스트 Yun Yeonseon (윤연선)

앨범 Yun Yeonseon (윤연선)

YouTube 라이선스 제공자 KBS Media (Music)(jigu record (지구레코드) 대행) 및 음악 권리 단체 3개

본 영상은 유튜버 가을나그네로부터 링크된 것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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