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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an 03. 2022

건투를 빈다

스스로 공부를 하겠다는데


“아빠, 이젠 저도 공부를 해야겠어요.”


아들의 전화를 받은 것은 지난해 가을, 11월이 얼추 끝나가던 주말 즈음이었다. 그 며칠 동안 연락이 뜸해서 무슨 일인가 궁금해하던 참에 마침 화면에 뜬 아들의 전화번호가 새삼 반가웠다. 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인사도 없이, 공부를 하겠다는 말부터 다짜고짜 시작하니 순간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잠시 당황한 것도 사실이었다. 고등학생이니까, 2학년 진급을 앞두었으니까 공부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만 제 입으로 공부를 하겠다는 아들의 각오를 듣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래들보다 한글을 일찍 깨치고 혼자서 책을 줄줄 읽는 모습에 감탄을 한 적도 잠시 있었다. 그러나 아들의 학교 성적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등수가 확인되지 않는 초등학교는 그나마 나았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 다달이 전해지는 성적표를 확인할 때마다 아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아빠 노릇은 해야겠기에 아들을 내 방으로 불러 짐짓 야단치는 척을 했다. 눈을 몇 번 껌뻑인 다음, 소리를 낮춰 조용히 물어보았다.

“반에서 몇 등 정도 했니?”

“아마 십 등 정도는 될 걸요?”

십 등? 그럼 아주 못한 건 아니잖아? 걱정 마, 아빠가 네 편이 되어 줄게. 피고인의 진술을 근거로 승소의 확신을 얻은 변호인은 곧장 원고 측 검사, 황여사에게로 달려가 묻고 따졌다.

“반에서 십 등은 했다는데 왜 그래?”

그 말을 들은 검사는 피고 측 변호사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십 등? 십 등?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요? 요즘 한 반이 몇 명인 줄 대체 알기나 해요?”


한 반이 몇 명? 적어도 사오십 명은 되지 않나? 우리 때는 칠십 명이 넘었었거든. 이학기가 되어도 이름이 헷갈리는 친구들은 늘 한둘 있었단 말이야. 가을 소풍 때는 급기야, 너도 우리 반이냐며 선생님이 확인을 거듭하는 경우마저 흔했어. 그런 상황에선 십 등이면 공부를 꽤 잘하는 거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


준비된 의견을 채 피력하기도 전에 나는 곧 검사로부터 호된 질책을 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은 많아야 스무 명이란다. 스무 명 중에 십 등이라. 아뿔싸, 내 이 놈을. 변호를 당장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날 가볍게 야단을 치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아들에게 평소에도 딱히 학교 공부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다니고 싶어 하면 학원을 보냈고, 싫다 하면 즉시 그만두게 했다. 적어도 공부는, 남이 시켜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신 다양한 책과 함께 지낼 것을 권유했다. 다행히도 아들은 아내와 나를 닮아 책을 좋아했다. 시험이 당장 내일모레였지만 나미야 잡화점을 들고 있었고, 완전히 망쳐버린 성적표를 앞에 두고도 아들은 삼국지를 펼쳤다. 이 성적으로 어떻게 대학에 갈래. 아내는 오 분 동안 야단친 다음, 한 시간이 넘도록 아들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었다.

코피를 쏟아가며, 잠을 쫓아가며 제가 찾아서 공부를 하지 않는 이상, 억지 공부는 절대 필요 없다고 우리는 믿었다. 학업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슬픈 뉴스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는 한편, 적어도 우리 집엔 저런 비극은 없을 거라며 바보 셋은 해벌레 웃음을 나누곤 했다.


시대가 달라졌다며 지인들은 우리의 교육관을 걱정했지만, 시대가 달라졌으니 공부에 대한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고 나는 강변했다. 또한 아들이 살아갈 미래 역시 지금과는 또 다를 것이니 지금의 잣대로만 아이를 평가할 것이 아니라, 아들이라는 그릇에 과연 무엇을 담아줄까 고민하는 것이 부모로서 더 중요하지 않겠냐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아들은 붙임성이 좋아서 낯을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친구도 잘 사귀고 여자 친구도 많다. 누굴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사교성의 기반이 바로 책이다. 책에서 얻은 지식들을 하나씩 꺼내놓으면 또래 친구들은 그걸 신기해하다가 아들을 재미있어하고 나중엔 친해지는 모양이었다. 집에 놀러 온 아들의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와, 너희 아빠는 이런 책도 읽게 하시니? 넌 정말 좋겠다. 우리 집에선 꿈도 못 꿔.”

그것이 무슨 책인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련다. 때가 되면 읽게 될 책인데 굳이 숨기거나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아들의 판단을 믿는다. 아들의 판단력은 우리의 물리적 나이보다 앞서갈 것이며,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 가장 현명한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책 속에서 꾸준히 성장해온 아들의 지성을 우리 부부는 변함없이 믿는다.


그런 아들이 이제, 드디어 공부를 하겠단다. 반에서 겨우 십 등을 하시는 독서광 아들이 말이다.

당연히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락하려고 준비하는 홍 판서처럼 아들에게 물었다.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니? 너, 공부 별로 안 좋아하잖아?”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늘 좋은 것 하고만 살 수는 없으니 때론 싫은 것도 안아주라고.”

말은 청산유수다. 본인이 생각한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은 말하지 않았고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아들은 자기의 결심과 맞닿아있는, 공부의 필요 조건을 말했다. 나름대로 꽤나 오랫동안 고민했을 흔적들이 내게 전달되었다.

'일학년 과정을 복습하면서 이학년 과정을 예습하고 싶다. 집에선 안될 것 같다. 정신이 번쩍 드는 스승이 필요하다. 이번 경험을 학교 생활에도 적용하겠다. 결과가 좋다면 다음 방학 때도 그렇게 할 것이다...'


아들의 조건은 명확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후배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후배의 말에 따르면, 겨울 방학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는 곳이 많단다. 그런데 시월 즈음이면 거의 마감이 된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다들 공부에 그렇게 극성인 거야?

후배는 자리가 있을지부터 걱정했다. 나는 선배표 갑질 필살기를 꺼냈다. 오 년 전 내가 너한테 강남에서 밥이랑 술 사준 거 기억하냐고, 그거 갚는 대신 우리 아들이 공부할 자리 하나 마련하라고, 사랑하는 조카가 공부를 하겠다는데 능력있는 삼촌이 그런 것도 못해주냐고 농 섞인 압박을 했다. 착한 후배는 영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그것을 굳이 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늘 오전 방학식을 마친 아들은, 후배가 주선해준 학원에 예정대로 입소했다. 앞으로 꼬박 4주 동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화 연락도 되지 않는단다. 해가 서쪽에서 뜰 거라며 놀리던 황여사도, 자식 공부에 신경을 안 쓰냐는 지청구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던 장모도, 막상 열일곱 살 임군이 한 달 동안 집을 떠난다 하니 엊저녁부터 꽤나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제가 원해서 하는 공부니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설령 제가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을 생각이다. 인생의 의미는 도전에 있다. 헛발질하면서 오십 년을 살아온 내가 얻은 삶의 결론이다. 그 결과가 헛발질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가 비록 남의 비웃음을 사더라도, 도전 그 자체를 폄훼해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아들은 깨달은 바가 있어 스스로 도전한다. 어떤 결론을 얻든지 그것은 고스란히 아들의 소중한 재산이 될 것임을 믿는다. 임군 주니어, 그러니까 재미있게 공부해라. 그리고 건투를 빈다, 아빠의 진심이다.


때마침 합격 소식도 전해졌다




Image by harutmovsisya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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