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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Dec 31. 2021

가버린 스무 해에게 바침

그래도 버텼으니 그것으로 행복하다


“형님, 그분은 저희 가족과 아주 특별한 관계가 있으시거든요. 집안 대소사를 모두 그 분과 상의할 정도니까 한 번 믿어 보세요. 아니, 그냥 듣기만 하세요.”


뜬금없이 점을 보러 가자는 손 대리의 말에 처음에는 약간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흔하디 흔한 '점'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사주풀이'라는 포장을 앞세웠지만, 그렇게까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의도, 거절도 못하고 있는 사이, 손대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곧 저쪽에서 받는다 싶었는데 나를 힐끔거리며 손 대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보살님, 저예요. 제가 아주 귀한 분을 모시고 가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네네.”


대략 이십여 년 전, 내가 서른세 살이던 2003년의 봄에 그렇게 해서 손대리와 함께 난생처음 ‘사주’라는 것을 보러 가게 되었다. 그날 오후, 사무실 앞에 활짝 피었던 목련 이파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핏덩이 아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온 것은 오직 부처님의 은공恩功 덕분이라며 엄마는 일찌감치 불교에 귀의했다. 엄마의 ‘철학관’ 출입도 그때를 즈음해서 함께 시작된 것으로 안다.

불교와 철학관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통도사’에 다녀오는 길에 ‘밀양 철학관’에도 들렀다는 말을 엄마는 자주 했다.

“철학관 선생님 말씀이, 네가 좋은 대학 간다더라.”

“철학관 선생님 말씀이, 너는 교사 안 하고 장사한다더라.”

“철학관 선생님 말씀이, 지금 사귀는 아무개는 안 되고 나중에 서울 가면 평생 배필을 만난다더라.”


모든 일을 척척 예견할 만큼 그분이 영험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연과 필연의 어디 즈음에서 실제로 나는 사범 대학 대신 상과 대학을 졸업했고, 학교 대신 무역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때 그 사람 대신 지금의 서울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 사실들로 미루어 보면 그분이 완전 엉터리는 아니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점이나 사주를 맹신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는 분명하게 달랐다. 본인의 종교가 천주교이기 때문에 미신을 멀리 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내의 주장은, 점을 봐서 대체 뭐하느냐는 것이었다. 내년 이후에 결국 나빠진다고 하면 지금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내년 이후에 결국 좋아진다고 하면 그때까지의 고생을 과연 어떻게 버티느냐는 것이다. 그저 오늘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아내의 지론이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아내는 점이라든가 사주라든가 꿈풀이 따위를 병적으로 싫어했다. 하지만 어쩌랴. 나는 이미 손 대리가 운전하는 차에 앉아 버린 것을. 오후 동안 연락이 안 되던데라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지? 그쯤에서 머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를 태운 차는 어느 아파트 단지 입구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무개 마을이라고 적힌 걸로 봐서는 고양이나 일산의 어디쯤인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음, 어느 집 앞에 멈춰 서더니 손 대리가 대뜸 문을 밀었다. 여기는 늘 이렇게 열려 있어요. 그의 입 모양이 나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손 대리의 뒤를 따라 현관으로 들어섰다. 누군가가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분명 설거지를 하는 모양이었다. 물소리 때문에 우리의 인기척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손 대리가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쳤다.

“보살님, 저희들 왔어요.”


보살이라 불린 그 누군가가 그제야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우리를 향해 몇 걸음을 옮겼다. 밝은 쪽 아래 섰을 때 비로소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보살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여자였다. 어쩌면 우리 엄마와 비슷한 연령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살님, 이 분이…”

그녀가 손을 살짝 들어 손 대리의 말을 가로막았다. 성큼 다가온 그녀가 바싹 달라붙어서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잠시 후 그녀가 한 말, 그 말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흐음, 저승사자 오셨네?”


저승사자. 바닥에 깔리고도 남을, 낮고 굵은 목소리가 나를 보더니 대뜸 저승사자란다. 갑자기 식은땀이 날 것 같았고 살짝 어지럽기까지 했다.


잠시 후, 그녀의 뒤를 따라 우리는 거실을 가로질러 건넛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쪽 벽에는 작은 절 법당이라 해도 좋을, 불상들과 제물祭物들이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다. 손 대리가 불상을 향해 넙죽 절을 했다. 엉겁결에 나도 따라 했다.

작은 밥상을 사이에 두고 보살과 마주 앉았다. 하얀 종이와 펜을 집어 든 그녀가 무언지 알아보기 힘든 한자들을 슥슥 휘갈기기 시작했다. 이름이나 생년월일, 이런 건 미처 말하지도 않았다. 손 대리의 눈치를 보았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눈짓이 돌아왔다.


긴 한숨과 함께 보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달리 상당히 높은 톤이었으며 꽤나 빠른 어조의 설명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에 본인은 그저 입만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낯설고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시종일관 눈을 감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이 내가 느끼고 있는 기괴함을 더욱 배가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말을 단 한마디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불쌍한 영혼이다. 죽었다 살아났구나. 무덤이 있어. 자꾸만 저 쪽에서 너를 오라고 하네. 용하다, 용해. 엄마의 노력으로 너를 살렸구나. 할머니들이 너를 감싸고 있어. 그래서 한 번 아프면 자주 아픈 거야. 머리는 좋아. 그래서 오라는 데가 많아. 좋은 여자를 만났어. 그것도 네 복이야. 너한테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은 할머니들이 미리 처냈을 거야. 그런데, 그런데 이게 뭐야? 이것들이 왜 여기에 달라붙어 있어?”

한참 동안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보살이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무서웠다. 겁이 덜컥 났다. 보살이 내게 몸을 기울였다. 방금 전과는 또 다른 어투였다. 나긋나긋한, 그리고 조용하게 깔리는 목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처사님.”

처사?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네.”

“제 말, 잘 들으세요.”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고개가 먼저 끄덕였다.

“올해 서른셋이니 마흔까지는 승승장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흔한 살부터는 고비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움은 십 년 동안 이어질 것입니다. 죽을래, 아니면 죽을 만큼 고생할래? 그중에서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2021년까지 이어질 것이며, 2022년이 되면 비로소 그 터널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2003년의 봄날에 이십여 년이나 남아있는 2022년의 말을 듣다니. 당황스러웠고 난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죽음과 비견할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예견에 마음이 적잖이 불편했다.

이어진 설명 중에는 다른 소소한 것들도 몇 가지 들어 있었으나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일어설 즈음, 복채라는 걸 드려야 하나 잠시 고민도 했지만 내 눈치를 읽은 보살이 먼저 사양의 말을 했다.

“시간이 지나 그때가 되어서 내 말이 옳았다 생각 들면, 귤이나 한 박스 사 주세요.”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손 대리가 담배를 권했다. 그는 죄인이나 다름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형님, 이런 이야기 들으려고 온 아닌데, 그냥 올해나 내년 운세 정도 물어보려던 것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자꾸만 미안해하는 손 대리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으나 정작 나는 신경이 꽤나 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툴툴 던지고 잊어버리기에는, 지금이나 그때나 나는 너무도 소심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십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굳이 하나하나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다며 남들이 축하해줄 때, 한편으로는 곧 있을지도 모를 추락을 걱정했고, 좌절과 포기의 상황에서도 이 어려움이 끝날 것이라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달랬다. 지방의 오일장 한 모퉁이에서 소주와 농약으로 이번 생에 대한 마감을 결심했던 때도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다시 시작되는구나 따스하게 내민 손에 눈물로 감사했던 날도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이십여 년이 지났다.


오늘에 와서 굳이 그 보살이 했던 말을 돌이켜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녀가 특정했던 한 해가 저물고 그녀가 언급했던 새해가 시작되고 있으니 새삼스레 스쳐 지나간 날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과연, 나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통과했던 것일까? 나의 지난 이십여 년은 과연 성공이었을까, 아니면 실패였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저 한 가지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절대로 질 수 없다, 포기해선 안 된다, 이겨내자, 그 생각만으로 버텼던 것 같다.


호텔을 출입하는 손님들과 덕담을 주고받던 중에 문득 올해의 마지막이 예년의 마지막과는 조금은 다름을 실감하게 된다. 쉽게 말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다. 2022년이라...터널을 빠져나간다라... 물론 요행을 바라지는 않는다.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딱히 크게 달라질 건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말고 지금까지처럼, 어제처럼 내일도 변함없이, 그저 버텨볼 작정이다.


조용히 거울 앞에 다. 그리고 거울 안을 조심스레 들여다본다.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린 중년의 남자가 그 안에 서 있다. 그는 빙긋이 웃고 있다. 그러다 제 어깨를 슬며시 툭툭 친다.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 보는 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넨다.  


"진우야,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다. 이십 년을 버티느라, 참말로 욕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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