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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우 Jan 05.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1)

기적은 없다


97년생 나혜가 집을 나온 것은 그녀 나이 열세 살 되던 해, 초겨울이었다.


아버지의 무시무시한 가정 폭력이 그 원인이었다. 변변한 직업이 없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 부류의 인간 말종들이 대개 그러하듯 술을 마시면 아내를 때렸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날에는 숨겨둔 돈을 내놓으라며 세간살이를 닥치는 대로 부숴댔다. 귀를 틀어막고 나혜가 비명을 지르던 그 순간에도 그녀의 어머니는 바로 옆 안방에서 아버지로부터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부엌칼을 꺼내 든 네 살 터울의 오빠는 우선 그녀를 다그쳐 집 밖으로 내몰았다. 잠근 현관문을 등지고 오빠가 그녀에게 소리쳤다. 어디든 좋으니 멀리 가 있으라고, 저 인간이 찾아내지 못할 어딘가로 피해 있으라고, 며칠 후에 반드시 연락하겠노라고.

짐을 제대로 꾸릴 겨를도 없었다. 추위를 막기에는 턱없는 가을 점퍼 한 개와 손에 잡히는 대로 책꽂이에서 뽑아 담은 교과서 서너 권이 나혜가 챙긴 짐의 전부였다. 초인종을 부서져라 눌러댔지만 옆집, 아랫집, 윗집 모두는,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그 어떤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정신없이 길을 내달려 동네 입구에 있는 파출소 안으로 뛰어들었다. 경찰을 보자 눈물이 제대로 터져 나왔다. 자세한 설명을 미처 하기도 전에 경찰차의 경광등이 먼저 요란한 소리를 냈고, 나혜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 만에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던 것은 처음 보는 중년 여성이었다. 임시 보호자라고 자신을 설명한 그녀는, 나혜의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자세히 말해주지 않았다. 나혜도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이 되는 일이었다. 분간은 자기와 같이 살게될 거라는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엄마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그날로부터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당분간 서로 떨어져 살아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어린 나혜에게는 어떠한 선택권도 없었다. 위기의 가정을 보호한다는 우리나라의 법이 얼마나 부실하고 엉터리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친부모였으면 좋았을 몇몇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중학교를 겨우 마쳤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따금 엄마와 연락이 닿아서 얼굴을 대할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같이 살 수 있는 여건이 아직은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오빠가 어디 있는지 물었지만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절대 궁금하진 않았으나 아빠라는 작자의 행방도,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알아두어야만 했다. 하지만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환경이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나혜는 홀로 지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저녁엔 아르바이트를 했다. 좋은 사람도 많았지만 아빠라는 인간과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짐승들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견디고 버텨야 했다. 우선은 살아야 했고, 적은 돈이지만 조금이라도 모아서 엄마와 같이 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오빠도 함께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엄마가 나혜를 찾아왔다. 엄마의 옆에 오빠가 서 있었다. 그날 밤, 세 식구는 변두리 모텔 방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밤새도록 울었다. 이제는 다 함께 지낼 수 있다. 이제는 우리도 남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다시는,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희망에 부푼 나혜의 가족은 다음 날부터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미친 듯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곧 자그마한 원룸을 구할 수 있었고 두 해가 지나지 않아 부엌이 딸린 방 두 칸짜리 다세대 주택의 전세로 옮길 수 있었다. 그 집으로 이사 가던 날, 나혜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는 어디 있나요? 이번에도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두 번 다시 그 '인간'을 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혜는 굳게 믿었다.


성인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 취직하게 되었다. 싹싹하고 매사에 열심이던 나혜를 두고 본사 담당자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음 좋은 키다리 아저씨 같은 본사 부장은 나혜를 장차 정직원으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릴 적, 엄마와 같이 제주도에 갔을 때를 떠올렸다. 고작 몇 번 되지 않는 가족 여행에서 나혜의 마음속 깊이 자리한 것은 다름 아닌 호텔에서 근무하는 언니들의 모습이었다. 곱게 빗어 넘긴 머리에 단정하고 깔끔한 유니폼,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선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프런트 직원들에게서 그녀는 잠시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나혜는 오래전에 가졌던 꿈을 이루기로 마음먹었다. 백화점 매니저와 본사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사표를 냈다. 그리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며 호텔 직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내가 강의를 하고 있던 교육원에 마침내 등록하게 된 것이었다.  


첫 날부터 나혜는 이를 악물었던 것 같다. 저녁 여섯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일주일 내내 계속되는 고된 수업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낮에는 휴대폰 대리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교육원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혜는 한 번도 졸거나 지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호텔 업무와 강의까지 하려니 힘들지 않냐며 나를 위로할 정도였다.

준비가 부족하고 가르침이 시원찮은 함량 미달 선생의 말을, 나혜는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적고 또 외웠다. 그리고 충분히 숨기고 싶은, 숨길 수 있는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나혜는 단 한 줄의 과장이나 생략 없이 사실 그대로를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담았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 앞에서 그것을 당당하게 발표했다. 그렇게 솔직하고 당찬 나혜를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교육 과정이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지원서를 내는 날이 되었다. 몇 번의 수정과 최종 확인을 마친 끝에 이력서를 메일로 보낸 다음, 나혜가 내게 물었다.

“제이쌤, 제가 과연 호텔에 취직할 수 있을까요?”

나는 대답 대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네가 안 되면 대체 누가 되겠어, 라는 격려였다. 역시 나혜가 지원서를 보낸 지 하루 만에 면접에 참석하라는 회신이 왔다. 경치 좋은 바닷가에 자리한 5성급 호텔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동기들이 자기 일처럼 축하해 주었다.

겨우 면접 참석일 뿐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낮추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가득한 기쁨을 나는 잘 알 수 있었다. 나혜보다 사실 내가 더 기뻤다. 심지어 그곳에는 나와 오랫동안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호준 형이 근무하고 있었다. 당연히 객관성을 전제로 하는 정식 채용이며 정식 지원이고 정식 면접이다. 하지만 ‘내 새끼’가 도전한다는데, 멍하니 팔짱 끼고 두고 볼 부모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느새 내가 그녀를 친딸처럼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쉬는 시간을 틈타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형님, 그 친구, 진짜 물건이에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와, 천하의 임진우가 이런 청탁을 다하네? 무슨 사인데, 대체 누구야? 일단 알았어. 어떤 앤지 일단 면접에서 유심히 볼게. 시간만 잘 지키라고 해. 우리 전무님도 면접에 들어가실 거거든.”

이제 됐다. 가점加點은 아니라도 최소한 억울한 감점을 받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나혜의 면접날 아침에는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기도를 했다. 성모님, 착한 사람이 복 받아야 합니다. 부처님, 얘는 정말 잘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도 뭘 하셔야 할지 잘 아시겠죠?

예정된 면접 시간이 다가오자 내가 오히려 더 긴장이 되었다. 호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다. 무슨 일이냐고 직원들이 번갈아 물었지만 제대로 답해 주지도 않았다. 슬그머니 다시 한번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기도를 했다. 그것만이 내가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그러던 중에 느닷없이 휴대폰의 벨이 울렸다. 선배였다. 옳지, 그러면 그렇지. 면접이 끝났으니 곧장 결과를 알려주려나 보다.


나는 한껏 밝은 목소리로 너스레를 떨 참이었다.

“네, 사랑하는 형니..."

그런데 예상치도 못했던 성난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선배는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네가 말한 그 애, 강나혜 맞지? 그 , 면접에 안 왔어!”

“네? 설마, 그럴 리가요. 오후 두 시 아니었습니까, 면접이...”

“그래, 안 왔어! 진우야, 그런 근본 없는 애들, 불쌍하다고 무작정 챙겨주면 너만 바보 되는 거야. 여태 한두 번 당한 것도 아니면서! 나, 바쁘다. 끊어!”

미처 인사를 하기도 전에 선배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잠시 동안 멍했다. 면접에 오지 않았단다. 왜, 무엇 때문에 면접에 참석하지 않은 것일까? 딴 사람도 아닌, 누구보다도 열심이던 나혜가 말이다. 즉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그날 저녁 수업에도 그녀는 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학생들이 내 눈치를 슬슬 살폈다. 애써 감추려고 했지만 내 얼굴은 저 혼자서 서운하다며 성을 내고 있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이틀이 지난 토요일 오전이었다. 번호를 확인했을 때, 차라리 받지 말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러나 적어도 면접에 불참한 이유는 알고 싶었다.

“네, 임진우입니다.”

“제이쌤... 저 나혜에요. 죄송해요, 선생님.”

달갑지 않았다. 무슨 변명을 하려고 죄송하다는 말부터 꺼내는 것일까? 하긴, 당연히 죄송하겠지.

“죄송이고 뭐고 간에, 너, 호텔 취업 안 할 거야?"

나도 모르게 반말을 해버렸다. 화를 섞어 작정하고 혼을 낼 생각이었다. 내 기세에 눌려 잠시 동안 말이 없던 나혜가 어렵게 다음 말을 이었다.

“제이쌤... 아빠, 아빠가 나타났어요.”


[2부에 계속됩니다]




* '나혜'는 본명이 아님을 일러둡니다. 양해 바랍니다.

* Image by knollzw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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