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이들은 원래 큰길 건너에 있는 연산 국민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주변 지역을 통틀어 학교가 거기 하나 밖에 없던 터라 한 학년이 열 여덟 반에 이를 만큼 학생들이 차고 넘쳤다. 한 반의 학생 수가 육 칠십 명이 넘었는데 그것이 열 여덟 반이고, 또 전부 여섯 학년이니 전교생의 수는 어림잡아도 칠천 명이 훨씬 넘었다.
학생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학교가 크고 교실이 충분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지만, 말이 좋아 한 학년에 열 여덟 반이지 도시락을 가져 가지 않는 3학년 아래로는 한 학년에 아홉 개의 교실이 고작이어서 할 수 없이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같은 교실을 써야 했다. 행여 깜박하고 책상 서랍에 필통이라도 두고 오는 날에는 제 자리에 앉는 다음 반 아이의 양심에 기대지 않고서는, 그것을 되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맞벌이를 하는 등의 이유로 등교 순서를 제대로 확인해 줄 부모가 없는 집의 아이들은, 제가 이번 주에 오전반인지 오후반인지 헷갈릴 때면 무작정 아침부터 학교로 간 다음 오전에 제 담임 선생님이 보이면 들어 가서 수업을 하고, 아무도 없으면 그저 죽치고 놀다가 오후에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가는 것이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는 나름의 현명한 방법이었다.
오전반의 하교와 오후반의 등교가 겹치는 시간이면 저 멀리서도 학교 운동장이 모래 사막처럼 뿌연 먼지로 뒤덮이곤 했다. 학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칠천 명이 떠들어 대는 소리는 그렇다 쳐도 온 동네를 뒤덮는 그 먼지 때문에 빨래도 제대로 널지 못한다며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가을 운동회 때는 가족들을 포함한, 몇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저히 한꺼번에 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1,3,5학년과 2,4,6학년으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운동회를 해야 했다. 연년생을 둔 집이라면 점심 도시락 준비부터 뒤치다꺼리까지 모든 것을 두 번씩 해야 했으니 세탁소 진복이 엄마가 이틀 동안 진복이, 진희 손을 잡고 ‘엄마와 함께 달리기’를 하고 사흘을 앓아 누웠다는 것도 근거 없는 허풍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큰 부모들의 걱정거리는, 아이들이 큰길을 건너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팔십 년대로 접어 들면서 시작된 개발 열풍으로 인해 큰길, 작은 길 가릴 것 없이 집채만한 트럭들이 밤낮없이 지나다녔다. 학교 앞 건널목에 키 높은 신호등이 서 있었지만, 트럭 바퀴보다 작은 밤톨만한 애들을 겨우 그 신호등 하나가 지켜 줄 거라 믿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결국 참다 못한 동네 주민들이 시청에 민원을 넣고, 교육청을 찾아가고, 머리에 띠를 두르고 하는 소동을 여러 해 동안 벌인 끝에 재작년 가을 비로소 분교 허가가 났다.
마침 때를 맞추어 동(東) 여자 고등학교가 남천동에 새로 학교를 지어 옮기자 그 건물을 빌어, 작년 봄에야 비로소 동명 국민 학교가 개교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큰길을 기준으로 건너편에 사는 아이들은 그대로 연산 국민 학교로, 이 쪽에 사는 아이들은 동명 국민 학교로 오게 되었다.
동명 국민 학교는 배산(盃山)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역에서 만든 역사책을 보면 산의 모양이 술잔을 엎어 놓은 것 같아 배산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유래가 나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잔은 무슨, 배나무가 많아서 배산이라는 아이들의 주장이 더 맞다 싶을 만큼 산에는 배나무가 많았다. 급한 연락을 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봉수대가 있을 정도로 옛날에는 높은 산으로 불렸다지만 지금은 머리가 좀 큰 녀석들이라면 한달음에, 그리고 명희 할머니 같은 노인네들도 중간에 한 번만 숨을 돌리면 쉽게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야트막한 산이라 배산 언저리는, 근처에 사는 아이들의 사시사철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봄이면 그 봉수대부터 배나무 밭까지 영산홍이 온통 산을 붉게 뒤덮었다. 겨우내 잠을 자던 뱀이 봄이 되자 땅 위에서 똬리를 풀고 기지개를 켠마냥 꿈틀거리며 번져 내려오는 영산홍 자락은 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으로 이어지는 등굣길 양쪽까지도 길게 꼬리를 뻗었다. 그럴 때면 그 진한 영산홍 향기가 온 동네에 가득 했다.
늦은 봄비라도 내려 꽃이 떨어지면 그것을 청소하느라 아이들의 하루는 정신 없이 바빠졌지만 사 월이 지나도록 향기를 내뿜는 영산홍은 가을 단풍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정말 곱고 예뻐서, 동네 사람들은 벚꽃 구경하러 멀리 나가는 사람들이라도 보이면 돈이 남아 도는구나 하며 이해를 못하겠다고 혀를 차기도 했다.
영산홍 자락이 끝나 버려서 아쉽다 싶은 교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는 장호 문방구가 있었고 그 앞에 성미 문방구가 마주 보고 있었다. 둘 다 그 집 아이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 했다. 대개가 그렇듯 두 문방구에서 파는 것들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는데 처음에는 장호 문방구가 장사가 더 잘되는 것 같았다. 장호 문방구에서 물건을 사면 그 때마다 스티커를 한 장씩 주었는데, 그것이 일정 개수만큼 모이면 공책이나 스케치북 따위로 바꿔 주었다. 그에 반해 성미 문방구는 가게 한 켠에 조그만 손수레를 갖다 붙여서 오뎅이나 떡볶이를 준비해 두고 아이들이 문방구나 장난감을 사면 그 금액에 맞춰 오뎅 몇 개, 떡볶이 몇 개를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물건을 사지 않아도 돈만 있으면 오뎅과 떡볶이를 바로 사 먹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공책이나 스케치북 이런 덤들이 당장에 필요하지 않은 아이들은 자연스레 성미 문방구로 몰렸다.
신기한 것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같은 장사를 하면서도 두 문방구점 사이에는 그 흔한 경쟁자 간의 다툼 따위는 찾아 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장호 어머니와 성미 어머니는 오히려 언니, 동생 하며 친자매 이상으로 우애가 남달랐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때때로 성미파, 장호파 하는 식으로 편을 가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은 두 문방구 내지는 두 여주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고, 나중에 장호 어머니도 오뎅을 팔고 성미 문방구에서도 공책과 스케치북을 덤으로 주는 상황이 되자 두 문방구의 그나마 차이점도 없어진 셈이어서 아이들 사이의 의미 없는 다툼은 결국에는 조용히 사라졌다.
장호 문방구의 바로 옆 모퉁이에는 진복 세탁소가 있었다. 물론 진복이가 사는 집이었다. 진복이 아버지는 사시사철 하얀 러닝 셔츠 차림으로 언제나 다림질에 열중이었다. 치익치익 소리를 내면서 다리미가 옷 위로 지나가면, 그 구김 많던 옷들은 당장 책받침으로 써도 좋을 만큼 순식간에 빳빳하게 펴졌다.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가 유리 문 밖에서 그 모습을 허벌렁하게 보고 서 있으면, 진복이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 사람 좋은 웃음을 씨익 지어 보이고는 했다.
진복 세탁소를 돌아 오른 쪽 길로 내려가면 제법 대문을 갖춘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대문이라고는 하지만 낡고 녹슨 함석이나 양철 문짝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그다지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 집에 대문이 있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문이 있다는 것은, 그 안에는 마당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마당이라고 해 봤자 장독 한두 개를 놓아 버리면 자전거 한 대도 돌려 세우기 힘든 좁은 공간이었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부잣집들이 하나같이 대문과 마당을 갖춘 집으로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작 모양새와 크기와는 상관없이 대문이 있다는 말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우리 집 마당에 말이야 하며 꽤 사는 척하기 좋았다.
그런 대문이 달린 병철이네 집이 진복 세탁소 바로 옆에 붙어 있었고 바로 그 옆이 찬우네 집이었다. 찬우네 집 대문 옆에는 큰 전봇대가 서 있어서 아이들이 술래잡기나 다방구를 할 때면 좋은 기둥 노릇을 했다.
그 전봇대를 지나 몇 집 더 아래로 내려가면 내년부터 복개 공사를 할 예정이라는 도랑이 흘렀다. 햇살이 따가워지기 시작하는 여름의 초입에서부터, 고인 물도 아니었는데 물 위로 장구 벌레가 끓기 시작하고 썩는 냄새마저 진동을 했다. 한여름에 장마라도 지면 물갈이라도 하려는 듯 윗동네에서부터 내려온 물이 차오르고, 때로는 길 위로 넘치기까지 했다. 그래서 집이 자리잡은 땅의 높이로는 위, 아래를 딱히 구별하기 힘들었음에도 사람들은 물이 내려오는 곳이라는 의미로 도랑 건너의 몇 집을 묶어 그냥 편하게 아랫동네라고 불렀다.
장마가 시작되면, 어른의 손을 잡지 않고는 아이들끼리 다리를 건너지 말라고 할 정도로 물이 불어났는데 병철이가 언젠가 한 번은 돼지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보았다고 했지만 찬우와 아이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윗동네에서 돼지를 키우는 집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찬우네 집 바로 맞은 편이 현광이네 집이었다. 현광이의 동생 현자는 항상 누런 코를 물고 집 앞 대문가에 쪼그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몸이 약해서 한여름에도 감기가 떨어지지 않아 그렇다고 했다. 현자가 코를 흘릴 때마다 아섭이는, 기차가 터널에서 나옵니다, 빠아앙, 하면서 놀렸는데, 가끔 그것에 기분이 상한 현광이가 아섭이를 상대로 주먹다짐을 벌이면 그 다툼은 언제나 현자가 코를 흘리고 있는 옆에서 아섭이가 코피를 흘리고 있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다.
현광이네 집을 등지고 오른 쪽을 보면 아까 말한 성미 문방구가 보이고, 그 왼쪽으로는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그 길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현수 아버지가 하는 목욕탕이었고, 이름은 동산탕이었다. 동산탕의 굴뚝은 정말 높아서, 만일 저 굴뚝이 무너져서 구른다면 우리 동네는 깨끗이 쓸려 나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현수는 학교에서 쫓겨날 것이라며 아이들끼리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현수는, 너희가 죽을 때까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짜증을 냈다.
동산탕에서 두어 집을 건너면 정훈이네 집이었다. 그 집은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이른바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거기에 아섭이네가 세들어 살았다.
그 옆으로는 길에서 문을 열면 방이 바로 보이는 구조를 가진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대개가 슬레이트 단층 집이었다. 그 길의 끝에 명희와 명희 할머니가 살았고, 조금 더 가면 우물터가 보였다. 우물터를 지나서 왼쪽을 바라보면 오양 양지 맨션이 있었는데, 동산탕 현수가 그 맨션에 살았다.
아이들은 처음에 맨션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집 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도 있나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아파트와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말이었다.
양지 맨션의 담벼락에는 조그만 이 층짜리 건물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그것이 자애원이었다. 자애원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고아원이었다. 맨션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 빨리 그 고아원을 없애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그 말이 나온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고 했다.
꽤나 오랫동안 동 여자 고등 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동네를 가리켜 동 여고 마을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미 그 학교가 옮겨 가고 동명 국민 학교가 새로 들어섰지만 웬만해서 동 여고 마을이라는 그 이름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번 들어오면 좀처럼 나가기 힘들만큼 정이 든다는 동 여고 마을 사람들의 자랑은, 어찌 보면 정(情)말고는 나눠줄 것도, 뺏을 것도 없이 고만고만한 그네들의 보잘것없는 살림살이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만큼 동네 사람들의 삶은 힘들고 고단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변함없이 늘 그대로인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더 나눠 주고 서로를 더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하는 힘든 처지였지만 아이들을 보면 그래도 희망이 생겼다. 더구나 이젠 지척에 새로 국민 학교가 문을 열었으니 젊은 사람들도 많이 이사를 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동네가 더 빨리 개발이 되어 자신들의 살림살이도 더불어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삼십 년 동안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해마다 넘쳐 나던 도랑도, 작년에 학교가 문을 열자 그 위를 덮어서 길로 만들려는 측량 공사가 시작된 것 아니냐며 다들 입을 모았다.
그런 어른들의 걱정과 희망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로, 우물터로, 봉수대로 쏘다녔다.
이제는 큰길을 건너서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부모들의 안심보다, 아이들에게는 언니들이 물려 주었든 비워 주었든 예쁘고 새로운 학교가 생긴 것이 더 좋았다. 오전반인지 오후반인지 헷갈릴 필요도 없었고, 학교의 바쁜 사정이야 어찌 되었던 간에 삼 학년 육 반 때의 친구들이 변함없이 그대로 사 학년 육 반이 된 것도 좋았다. 친구들뿐만 아니라 김명숙 선생님 역시 그대로 담임을 맡게 되었다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소식이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항상 웃는 표정의 김 선생님은, 철부지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좋은 누나와 언니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자상하고 다정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저마다 선생님의 눈에 들려고 뒷산 개구리에서부터 엄마의 화장품까지 별의별 상납을 다했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새로운 학교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찬우와 아이들은, 그래서 겨울 방학이 끝나기도 전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 삼 월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 Image by manseok Kim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