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명희

by 진우


명희네 집은 찬우네 집에서 백여 미터쯤 떨어진 언덕배기에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워서 빨리 다녀오려는 생각에 달음질을 쳤더니 숨이 가빴다.

“박명희, 박명희.”

찬우가 문을 두드리면서 명희를 불렀다.

“누군데?”

안에서 명희의 목소리가 들리고 문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내다, 강찬우.”

“어, 찬우야.”

문이 열리면서 환하게 웃는 명희의 얼굴이 보였다.

명희의 집은, 길에서 문을 열면 조그만 쪽마루와 함께 안방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다. 열린 문 사이로 틀어 놓은 텔레비전 화면이 보였다.

“무슨 일인데, 찬우야?”

“할매 계시나?”

“머 땜에 그라는데?”

명희가 궁금하다는 듯 찬우를 뚫어지게 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이거, 너그 할매 갖다 드리라 하더라.”

“이게 먼데? 잠시만 있어 봐라. 할매, 할매. 찬우 왔어예.”

그러자 허리가 굽은 명희 할머니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문 앞으로 나왔다.

“어, 찬우 왔나? 이기 머꼬?”

“안녕하십니꺼, 할매요. 우리 아버지가 이거 할매 갖다 드리라 하시데예. 오늘 제사 지냈습니더.”

“아이고, 맞다. 오늘이 너그 엄마 제사제? 아이고, 그냥 너거나 묵지 머 할라꼬 이 늙은 할매까지 신경을 쓰노? 제산 줄 알았으면 고사리라도 무쳐서 갔을 낀데. 늙으니까 내 이름도 까 묵는 까마귀가 되어 뿠다. 이거를 고마워서 우짜노? 아이고, 많이도 담았네. 찬우야, 아버지한테 고맙다고 꼭 전해라이, 알겠제?”

명희 할머니는 음식이 담긴 봉지를 들고서 연신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라모 저는 가 볼랍니더. 안녕히 계시소.”

“할매, 내 잠깐 나갔다 와도 되제?”

갑자기 명희가 따라나서려고 했다. 할머니의 대답은 상관없다는 듯 명희는 벌써 쪽마루 끝에 앉아 발로 신을 찾고 있었다.

찬우가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서는 것을 보며 명희 할머니는 혼잣말을 했다.

“아이고, 참말로 불쌍하데이. 에미도 없는 어린것이.”


“니는 늦었는데 머 할라꼬 따라 나오노, 이 밤중에. 가시나가 간도 크다. 무섭지도 않나?”

“무섭긴 머가 무섭노? 니가 있는데.”

명희가 잠바에 팔을 끼우며 하얀 이를 활짝 드러냈다.


명희의 집 옆에는 조그만 놀이터가 있었다.

옛날에는 이 자리에 큰 우물이 있어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바글바글 모여 빨래를 하던 빨래터였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해 여름인가 아랫동네에 사는 아이 하나가 우물가에서 놀다가 우물에 빠지는 사고가 났다. 급히 달려온 어른들이 부랴부랴 아이를 건졌지만 이미 죽어 버린 다음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그 아이의 아버지가 우물을 메우고 터를 밀어 버렸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재작년에 구청에서 사람들이 나와 그 빈 터에다가 그네와 철봉, 미끄럼틀 따위를 세우고는 ‘동네 놀이터’라는 뜬금없는 간판까지 달아 두었다.

그렇지만 동네 사람들은 이곳을 여전히 우물 터라고 불렀다. 미끄럼틀과 그네를 타며 노는 것은 대체로 동네 코흘리개들이나 여자 아이들이었고 찬우와 또래들은 공을 차거나 말 타기를 하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한쪽에 있는 계단에서 구슬 따먹기 따위를 하며 하루를 보냈다. 자기 또래의 아이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찬우는 한낮에도 소름이 끼쳤지만, 명희는 달도 없는 한밤중에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와, 여기도 영산홍을 심어 놨네.”

우물터 담장 아래의 작은 텃밭에 앉아, 명희가 신기한 듯 말했다.

“그거, 너그 할매가 작년에 심어 놓은 거 아이가.”

“아, 맞나? 망울진 거 보니까 곧 꽃이 필라 하네. 예쁘겠다, 여기도 꽃 피면.”

“동네 개들이 따 묵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찬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명희가 한참 꽃망울을 보다가 일어서서 그네 줄을 잡으며,

“엄마 제사는 잘 지냈나?”

하고 그네에 앉았다. 찬우도 옆 그네에 걸터앉아 대답했다.

“어.”

“숙제는 다 했나?”

“어, 아까 학교에서 다 하고 왔다.”

“찬우야, 니 오늘 같은 날, 너그 엄마 진짜 보고 싶제?”

“본 적이 없는데 머가 보고 싶겠노?”

“맞나? 나는 우리 엄마 보고 싶다.”

명희가 그네를 흔들었다.

“니는 엄마가 살아 있잖아. 아버지도 있고.”

“있으면 머 하노? 1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는데. 그것도 장사가 잘 돼야 설, 추석으로 보지. 올해는 설에도 안 왔더라.”

“어디서 장사하시는데?

“마산. 마산 신포동에서 식당 한다 아이가.”

“마산은 여기서 머나?”

“터미널에서 시외버스 타면, 한 시간이면 간다.”

“요새 장사가 잘 안 되는갑네?”

“머, 장사도 장사지만, 선영이 언니가 인자 고등학교 가야 되니까 언니 뒷바라지한다꼬 정신이 더 없겠지.”

“부산에 와서 장사하면서 언니 뒷바라지하면 안 되나?”

“몰라. 가게 옮기기가 그래 쉬운 거는 아닌갑더라. 그라고, 부산은 뺑뺑이 돌려서 아무 학교에나 가는데, 마산은 머라더라? 아, 맞다. 평준화! 평준화 그기 아직 안 돼서 좋은 학교는 따로 시험 쳐서 간다 하데. 우리 언니도 좋은 학교 갈라꼬 밤 열 시가 넘어야 집에 온단다. 인자 겨우 중학생인데.”

“언니가 공부를 잘 하는갑네?”

“몰라. 근데 언니가 좋은 학교 가는 것도 다 좋은데, 그라믄 머 하노? 나도 자식인데, 씨이.”

명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눈에 금세 눈물이 고였다.

“올해 장사 잘 되면 가을에 추석 때나 아니면 니 생일에는 오시겠지. 조금만 기다리라.”

“아, 맞다. 이 바보, 내 정신 좀 봐라. 하하하.”

명희가 갑자기 큰소리로 웃었다. 찬우가 명희를 쳐다보았다.

“니가 생일 이야기 안 했으면 깜빡 잊고 도로 갖고 갈 뻔했다. 찬우야, 오늘 니 생일이제?”

갑작스러운 명희의 말에 놀라 찬우가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데, 명희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명희가 그것을 쑥 내밀자, 찬우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았다.

“이, 이기 먼데?”

“암말 말고 받아라.”

찬우는 명희가 준 상자를 멍하니 들고 있다가 명희의 채근에 포장을 뜯었다. 그 안에는 카드 한 장과 샤프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샤프네?”

“그거, 흔들어 샤프다. 흔들면 심이 나온다. 그거 좀 비싼 건데, 헤헤.”

“……”

“카드도 빨리 열어 봐라, 히히.”

명희의 보조개가 깊게 팼다. 찬우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명희는 마치 자기도 처음 보는 것처럼 궁금한 눈빛으로 카드를 뚫어져라 보았다.

찬우가 조심스럽게 상자에서 카드를 꺼내 펼쳤다. 카드에는 색연필과 사인펜으로 꽃과 무지개, 양초가 꽂힌 케이크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찬우야, 생일 축하한다. 명희가.]

라고 씌어 있었다.

“고맙다, 박명희. 니가 어떻게 내 생일을 다 아노?”

“야이 머스마야. 그걸 와 모르노? 일 학년 때부터 쭈욱 같은 반 했는데. 니는 맨날 니 생일날 너그 엄마 제사 지내고 우리 할매한테 음식 갖고 왔다 아이가. 내가 바보가? 그것도 모르게.”

“어쨌든 고맙다. 박명희.”

“근데 찬우야, 있다 아이가.”

명희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나는 커서, 꼭 니한테 시집갈 거다.”

하며, 명희가 땅을 밀고 그네를 차 올렸다. 그네가 한참 높이까지 올라갔다.

“머? 시집?”

“그래, 우리 할매도 그랬단 말이다. 니처럼 착한 남자한테 시집가야 여자가 행복하다꼬.”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라. 시집은 무슨, 인자 열한 살짜리가.”

“그기 와 쓸데없는 소리고? 인자 열한 살이믄 죽을 때까지 열한 살이가? 두고 봐라. 히히.”

“인자 가자. 늦었다. 할매 기다리시겠다.”

찬우가 그네에서 일어섰다.

명희는 뭐가 좋은지 그네에서 팔짝 뛰어내리면서 계속 키득거렸다.

“찬우야, 니 영산홍 알제?”

“영산홍?”

“그래. 저기 심어져 있는 꽃 말이다.”

“안다. 그런데 그기 와?”

“니, 영산홍 꽃말이 먼지 아나?”

“꽃말? 모르겠는데. 먼데? 니는 아나?”

“알지.”

“먼데?”

“안 가르쳐 줄 거다. 히히.”

명희가 계속 깔깔거렸다. 찬우는 영산홍의 꽃말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계속 물어봤자 명희가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에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았다.


“인자 다 왔으니까 빨리 가라, 찬우야.”

“그래, 잘 자라. 오늘 생일 선물 고맙다.”

명희는 찬우를 향해 느닷없이 혀를 쏙 내밀어 보이고는 문을 닫았다. 집 안의 불이 꺼져 있는 걸로 봐서 명희 할머니는 벌써 잠이 든 것 같았다.

찬우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샤프를 다시 꺼내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찬우가 집 앞에 도착해서 대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대문 앞 쓰레기통 옆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찬우는 너무 놀라 숨이 멎을 뻔했다.

“머, 머꼬?”

쓰레기 통 옆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옆집에 사는 병철이었다.

“벼, 병철아. 니 거기서 머 하노? 지금.”

“말도 마라. 내, 우리 엄마 때문에 못 살겠다.”

병철이가 옷을 털며 투덜거렸다.

“와? 너그 엄마가 또 니 때리시더나?”

“그래. 오늘은 좀 많이 맞았다.”

“와? 머 땜에?”

병철이는 대답 대신 옆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들더니 그것을 찬우의 눈앞에 확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친부모를 찾습니다. 이제 저를 데려 가세요, 제발!]

이라고 쓰여 있었다. 삐뚤빼뚤한 걸로 보니 병철이 글씨다.

“쓸라믄 좀 잘 쓰든가.”

“와? 멀리서 잘 안 보이겠나?”

병철이가 스케치북을 멀리 들고 가늠을 했다.

“니, 또 친부모 찾아간다고 했나?”

“응.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아버지, 엄마가 아니다. 내 친부모가 맡겨 놔서 잠시 나를 봐주는 사람들이다.”

“병철아, 제발 정신 차리라.”

“아이다. 열 살까지만 기다리면 된다고 했는데 이제 열한 살 되었으니까 반드시 나를 데리러 오실 거다. 두고 봐라.”

“누가, 열 살 까지 기다리믄 된다 하더노?”

“내가 어려서 누군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갔다. 진짜다.”

병철이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안에서 병철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철아, 니 지금 안 들어오면 오늘 문 안 열어 준다, 알겠나?”

병철이가 대문 안을 향해 손 나팔을 만들어 크게 소리쳤다.

“나는 친부모 찾으러 갑니다. 잘 사세요오.”

그러자 문 안에서 누군가 급히 뛰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병철이가 벌떡 일어서며,

“찬우야, 우리 엄마가 물어 보믄 내,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해라. 알겠제?”

하고는 총알같이 아랫길로 내달렸다.

곧 대문이 덜컹 열렸다. 병철이 어머니였다. 한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내 이 노무 자식을…… 어, 찬우야. 우리 병철이 어데로 가더노?”

“저 아랫길로 도망 갔습니더.”

“그래? 알았다. 오늘 이 놈 잡히기만 하면 내가 다리 몽디를 쌔리 뿌사 뿔 끼다. 병철아, 병철아아. 니 거기 안 서나? 니 죽는다아아아.”

찬우는 아랫길로 달려가는 병철이 어머니를 보면서,

‘그래도 병철이는 저런 엄마라도 있으니까 진짜 좋겠다.’

하고 한참을 서 있었다.


[계속]



* Image by 용한 배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