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정환경 조사

by 진우


“자, 사 학년 육 반. 작년에도 재미있게 생활했으니까 올해도 즐겁게 지내보자, 알겠지?”

“네에에에에.”

김명숙 선생님의 힘찬 다짐에 아이들은 교실이 떠나갈 듯 목청을 높여 크게 대답했다.

“아유, 귀청 떨어지겠네. 하여튼 좋다. 씩씩한 우리 반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되어서 선생님은 기분이 참 좋아. 자, 그럼 지금부터 가정환경 조사를 할 테니, 선생님이 부르는 사람은 손을 들어 대답하고 나머지는 자습하도록, 알겠지?”


새 학기가 시작되면 으레 가정환경 조사를 했다.

집이 어디며, 누구와 사는지, 전화기가 있는지, 냉장고는 있는지 하는 것에서부터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하는 것에까지 담임이 직접 확인을 하는, 일종의 연례행사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아이들의 집을 일일이 직접 방문해서 조사를 했겠지만, 부모들이 적잖이 부담스러워할 뿐만 아니라 올해는 작년에 맡았던 아이들이 그대로 다시 한 반이 되었으므로 김 선생님도 굳이 아이들의 집을 다시 방문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자, 다음은 아버지의 직업을 조사할 테니까 선생님이 부르는 사람은 아버지의 직업을 말하도록.”

아버지의 직업을 조사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병철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1번, 김재윤.”

“회사 다니시는데 회사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예.”

“회사 이름은 말하지 않아도 돼.”

하며 선생님이 웃었다.

“2번, 최형식.”

“연미 시장에서 철물점 하시는데요.”

“3번, 권중석.”

“장갑 공장에 다니십니다.”

“4번, 황택모.”

“우리 아버지, 경찰입니다.”

그 말에 몇몇 아이들이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물론 택모의 아버지가 경찰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없었지만, 기분이 좋아진 택모가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아버지를 졸라 경찰차를 태워 주는 일들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 그런 기대를 또 했던 것이다.

택모가 으쓱하며 반 아이들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 와중에도 병철이는 책상에 바짝 엎드린 채 고개만 들고서 제 차례가 언제 오나, 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입술이 말랐다.


“17번, 강찬우.”

“대양 고무 다니십니더.”

“자, 다음 18번, 계병철.”

“……”

“병철이, 어디 갔니? 병철아.”

선생님이 잠시 고개를 들고 병철이를 찾았다.

“임마. 선생님이 니 부르잖아.”

옆에 앉은 아섭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책상에 납작하게 엎드린 병철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병철이, 일어서 봐. 어디 아프니?”

병철이는 할 수 없이 몸을 배배 꼬며 일어섰다.

“병철이, 어디 아파?”

“아니예.”

“그래, 그럼 선생님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해야지. 아버지 직업 바뀌셨니?”

예라든가 아니오라든가 무슨 말이든 빨리 해야 하는데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눈길이 전부 제 얼굴에 와서 꽂히는 것 같았다.

마른 입술에 침을 묻혀 가며 눈치를 살피는데, 그때 5 분단 제일 구석에 앉아 있는 촐랑이 채우가 끼어들었다.

“선생님, 아시잖아예. 병철이 아버지, 노가답니더.”

순간 하하하, 하는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찬우가, 웃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주먹을 쥐고 눈을 부라렸지만 고개를 숙이고서도 킥킥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선생님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병철이의 귀를 후벼 파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랬다.

병철이의 아버지는 노가다였다. 늘 흙먼지를 덮어쓰고, 허리에는 못 주머니를 두른 채 망치질을 하면서 벽돌과 시멘트를 져 나르는 공사장의 노가다였다.

병철이도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이 아버지의 직업을 깔보며 낮춰 부르는 말인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

어느 날 우연히 뒷집 윤철이가 빵점 시험지를 들고 길바닥으로 쫓겨나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윤철이 엄마가 마당에서 소리쳤다.

“니 그렇게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하믄, 나중에 커서 노가다 된다. 이 노무 자슥아.”

그제야 병철이는 그 말이 가진 엄청난 멸시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병철이는 일요일이 싫었다. 병철이에게 그것은 단순히 빨간색으로 표시된 또 하루일 뿐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달력에 표시된 일요일이란 없었다. 그저 새벽부터 비가 오면 그날이 일요일이었고, 저녁부터 비가 오면 그다음 날이 일요일이었다. 한여름에 장마라도 지면 그날부터 한 달 내내 일요일이 이어졌다. 일 년에 두 번인 설과 추석, 긴 장마, 그리고 그 장마보다 더 긴, 추운 겨울이 아버지의 일요일이었다.

아버지에게서는 언제나 먼지 냄새, 흙냄새가 났다. 병철이는 그게 더 싫었다. 아버지가 머리를 감아도, 목욕을 해도, 물기를 말려도, 심지어 엄마의 화장품을 발라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병철이는 우연히 학급 문고에서 동화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가난하고 어려운 집에서 힘들게 고생하며 사는 주인공이, 알고 보니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잣집 아이였고 친부모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들고 아버지의 친구가 찾아온다는 내용이었다.

병철이는 책을 덮고 생각했다.

그래, 나에게도 반드시 친부모가 따로 있을 거야. 그것도 아주 부자인. 지금 내가 이 집에 사는 것은, 처음부터 부자로 살면 돈을 흥청망청 쓸까 봐, 가난이 무엇인지 고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 위해 우리 친부모님이 일부러 이 집에 맡겼기 때문일 거야.


일요일 아침이면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 간다고 자랑하는 대수 녀석에게 주먹 감자를 먹이면서, 병철이는 오늘이야말로 정말 내 친부모가 반드시 나를 찾으러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부모가 바쁘면, 적어도 아버지의 친구라도 꼭 올 것이라고 믿고 또 믿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유원지에 갔던 대수네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아버지의 친구는커녕, 그 흔한 길을 물어보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기운이 빠져버린 병철이가 스케치북을 접고 집으로 털레털레 들어왔다.

그럴 때면 또다시 흙먼지 냄새와 함께 아버지가 돌아왔다. 병철이는 일요일만큼 아버지가 싫었다.


“병철아, 너 왜 우는 거야? 다들 조용, 조용!”

선생님이 탁자를 탁탁 쳤다. 병철이의 큰 눈에서 금세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선생님은 채우에게 벌을 세우고는, 노가다라는 것은 잘못된 일본말이며 옳지 않은 표현이라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칠판에 건설 노동자라고 쓰면서 세상에는 좋은 직업과 나쁜 직업이 없다는 등의 말을 했다.

그냥 넘어가면 차라리 좋으련만,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병철이는 그런 선생님의 배려가 오히려 야속하기조차 했다. 아무리 좋은 단어를 고르고 어떤 유식한 말로 표현한다 한들 아버지의 직업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병철이는 이런 창피함을 주는 아버지가 정말 원망스러웠다.


[계속]



* Image by Gosia K.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