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친 후, 찬우는 병철이를 데리고 우물터로 갔다. 문방구 앞에서 서성이던 아섭이와 현광이가 따라붙었다.
우물터에 가자마자 현광이가 바닥에 가방을 내던지고 후다닥 달려가더니 철봉을 두 손으로 잡고 거꾸로 돌아 올랐다. 그런 다음 다리를 두어 번 흔들고는 다시 멋지게 땅에 내렸다.
아섭이가 이죽거렸다.
“점마는 또 잘난 체하네. 임마, 니는 커서 체조 선수될 거가? 어릴 때부터 철봉 많이 하면 키 안 큰다 하더라.”
현광이는 아섭이에게 주먹 감자를 날렸다.
“병철아, 니 인자 괘않나?”
병철이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찬우가 병철이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바보같이 울기는 와 우노? 여자 애들도 보고 있는데……”
“채우 그 새끼만 가만있었어도 되는데, 씨이. 선생님은 우리 아버지 직업 아시니까 그냥 작년 그대로라 하면 됐는데, 씨이. 채우 새끼.”
“그래, 그 새끼는 나중에 내가 죽도록 패 줄 테니까 걱정 마라.”
찬우는 병철이를 계속 달랬다. 그러지 않으면, 또 언제 닭똥을 쏟아 낼지 모르는 일이었다.
“찬우야, 나는 진짜 우리 아버지가 싫다. 밉다.”
“아버지가 미우면 우짤 낀데? 싫으면 도망갈 거가?”
“아이다. 내가 말했제? 나는 친부모가 있다. 곧 나를 찾으러 올 거다.”
“또 친부모 타령이가?”
아섭이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찬우가 눈에 힘을 주고 아섭이를 째려보았다.
병철이가 훌쩍거리며 가방을 열고는 그 속에서 또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리고 말없이 아섭이의 눈앞에 스케치북을 펼쳤다.
[친부모를 찾습니다. 이제 저를 데려가세요, 제발!]
“찾으러 안 오면 우짤 끼고?”
“응, 안 오면 내가 찾으러 갈 거다.”
“어데로? 어데 있는 줄 알아서?”
“……”
“봐라, 니는 갈 데도 없잖아.”
“파출소 가면 안 되나? 지난번에 텔레비전 보니까, 경찰 아저씨들이 어릴 때 집 잃어버린 아이들, 잘도 찾아 주데. 아니면 택모 아버지한테 말해도 될 낀데.”
발로 흙을 차며 현광이가 무심코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들 하지 마라. 경찰들이 그렇게 할 일이 없겠나? 멀쩡하게 친부모랑 잘 살고 있는 아가 갑자기 파출소에 와서 진짜 부모 찾아 달라 한다고, 아이고, 불쌍하데이. 내가 너그 부모 찾아 줄게, 하겠나? 병철아, 지금 아버지가 니 진짜 아버지다. 니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면 같이 안 논다, 알겠나?”
찬우가 화를 내자 겨우 멎었던 병철이의 눈물이 다시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고, 나도 어데선가 현수처럼 부자 아버지가 짠, 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현광이, 니 죽을래?”
하며 찬우가 버럭 짜증을 냈다. 그러자 현광이는 금세 웃으며
“아이다, 농담이다.”
하고 손사래를 쳤다.
병철이를 달래느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찬우도 속으로는, 어쩌면 나도 엄마가 죽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살고 있다가 나중에 내가 크면 나를 찾아 올 지도 몰라하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아버지 말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면, 나중에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가 무척 기뻐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찬우야.”
현광이가 불렀다.
“와?”
“니는 소원이 머꼬?”
“소원? 갑자기 무슨 소원이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니는?”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우리 학교처럼 큰 집을 사는 게 소원이다.”
“와, 그 정도 사려면 돈 억수로 많이 벌어야 될 낀데.”
눈물을 닦으며 병철이가 말했다.
“그렇게 큰 건물 사서 머 할라꼬?”
“응, 1층에는 우리 아버지 살고, 2층에는 우리 엄마, 3층에는 동생 현자, 가만, 그 가시나는 나중에 시집갈 거니까, 3층은 비워 놓고, 4층엔 내가 살 거다.”
“와, 그렇게 크면 문 열어 주러 나가는 데도 한참 걸리겠네.”
“그렇게 넓은 4층에서 니 혼자 머 할라꼬?”
현광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응, 비 오는 날에도 비 안 맞고 축구할 거다.”
아섭이가 낄낄거리며, 웃다가 무릎을 꿇고 쓰러져 죽는 척을 했다. 찬우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현광아, 니는 축구가 그렇게 좋나?”
“응, 나는 이다음에 꼭 차범근 같은 축구 선수가 될 거다.”
“축구 선수는 돈 별로 못 벌 건데? 빨리 끝나잖아? 보니까 야구는 세 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축구는 대충 한 시간 하니까 호각 불어 뿌던데? 당연히 경기를 오래 하는 야구 선수가 돈 더 많이 안 벌겠나?”
아섭이가 아는 체를 했다. 잠시 생각하던 현광이가 말을 했다.
“그럼 항상 연장전 하믄 되지.”
“연장전? 아이고. 그기 니 맘대로 되나? 이기고 있어도 자살 골 넣어서 연장전 할 끼가? 이 바보 새끼야.”
아섭이가 또 주먹 감자를 발사했다. 현광이가 피하는 시늉을 했다.
“아섭아, 그러는 니는 소원이 머꼬?”
“내 말이가? 나는 음……”
아섭이가 대답을 하지 않고 한참 뜸을 들였다. 다들 아섭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나는 사실 현광이하고 좀 비슷한데, 나는 그렇게 큰 집 지어서 변소를 많이 만들 거다.”
“변소? 더럽구로 변소는 많이 지어서 머 할라꼬?”
“아이고, 말도 마라. 지금 우리 주인집 아줌마가 내보고 변소 자주 쓴다고 난리 아이가.”
“정훈이 엄마 말이가?”
현광이가 아는 체를 했다.
“저거는 어데 변소도 안 가나? 울 엄마, 맨날 그런 걸로 속상해하던데. 그래서 나는 나중에 큰 집을 지으면 방보다 변소를 더 많이 만들 거다.”
“그라모 너그 집에는 똥 냄새 많이 날 텐데? 놀러 안 갈란다, 나는.”
“머라꼬 임마!”
현광이의 놀림에 아섭이가 발끈하며 서로 주먹 감자를 날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임마들아, 너그는 주먹 감자 좀 그만 날리라. 배 불러서 저녁도 못 먹겠다.”
찬우가 두 녀석의 뒷머리를 잡아당겼다. 녀석들은 머리가 뒤로 꺾인 채 죽기 살기로 서로에게 주먹 감자 총을 쏴 댔다. 병철이는 그 모습을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어? 근데 저거 누고?”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으며 병철이가 말했다. 우물터 윗길로 달음박질하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거 명기 아이가? 명기야아, 채명기이이.”
병철이가 손을 모아 입에 대고 큰 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명기는 잠시 여기를 돌아보는 듯하더니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려갔다.
“어 맞네? 명기네. 채명기.”
현광이가 아섭이의 목을 팔로 감아 쥔 채 말했다. 명기는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를 저렇게 바쁘게 뛰어가노?”
찬우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너거 모르나? 하늘 봐라.”
현광이에게 붙들린 아섭이가 컥컥거리며 말했다.
“하늘?”
아섭이의 말에 현광이는 그제야 팔을 풀고 하늘을 보았다. 아섭이가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다시 말했다.
“비 올라 한다 아이가.”
“비?”
“너거, 친구 맞나? 명기 집에 자기 형, 명수 형 말이다. 그 행님, 비만 오면 발작한다 아이가. 작년에 못 들었나?”
그러고 보니 배산 위로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비를 가득 머금은 구름이 금세라도 퍼부으려는 듯 시커멓게 내려앉고 있었다.
다들 그렇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부타타타타타타타, 하고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누군가 현광이를 불렀다.
“현광아아.”
찬우는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아버지이.”
현광이가 반갑게 소리쳤다. 하얀 헬멧을 쓴 현광이 아버지가 빨간 오토바이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토바이의 짐받이에는 어른 키보다 높게 과자가 쌓여 있었다.
현광이가 한달음에 아버지에게 달려왔다.
“아버지, 어데 가는데?”
“응, 아랫동네 가게에 과자 배달 간다. 니는 집에 빨리 안 가고 여기서 머 하노? 또 늦게 왔다꼬 엄마한테 혼날라꼬.”
현광이 아버지가 현광이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며 말했다.
“친구들하고 놀고 있다.”
“아, 그렇나? 찬우도 있네. 병철아, 아버지 잘 계시제?”
현광이 아버지가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십니꺼?”
찬우와 아섭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병철이는 어정쩡하게 서서 들릴 듯 말 듯 우물거렸다.
“현광아, 니 이거 친구들 주고, 니는 아버지랑 집에 가자. 가는 길에 내려 줄게.”
“응, 아버지.”
현광이 아버지가 짐받이에서 소라 과자 몇 봉지를 빼서 현광이에게 주었다. 그것을 들고 찬우에게로 오면서 현광이가 한 봉지를 뜯더니 제 입에 대고 조금 털어 넣으며 말했다.
“내는 먼어 가에. 어여에 우에하어 아에, 하우야.”
과자를 받아 들고 찬우와 아섭이는 현광이 아버지에게 또다시 꾸벅 인사를 했다. 병철이는 이번에도 엉거주춤 서 있었다.
“현광아, 잘 잡아라이.”
현광이는 아버지의 옷자락을 꽉 잡았다. 부타타타타타타타. 현광이를 태운 오토바이가 우물터 옆길로 미끄러지듯 달려 내려갔다.
“찬우야, 인자 우리도 가자. 진짜 비 올란갑다.”
“병철아, 니도 가방 들어라. 가자.”
아섭이가 벗어 두었던 가방을 둘러메고는 소라 과자 한 봉지를 날름 뜯었다.
“아버지, 참 신기한 일도 다 있다.”
“머가?”
현광이가 오토바이에서 내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비만 오면 정신이 나가는 사람이 있다는데, 진짜가?”
현광이 아버지는 헬멧을 벗다 말고 현광이를 쳐다보았다.
“그럼 장마나 소나기 오면 죽어 뿌는 거 아이가?”
“현광아.”
“응? 아버지.”
현광이 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거는 함부로 말하는 거 아이다. 사람마다 다 남들이 모르는 자기만의 사정이 있는 기라. 그라고 그렇다고 해서 너거 명기한테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알겠나?”
“어? 아버지가 우째 명기를 아노? 명기 저그 형이 비만 오면 미친 사람처럼 발작을 한다 하던데, 왜 그런 건데, 아버지?”
현광이 아버지는 당황한 듯했지만 곧 현광이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단디 들어라, 현광아. 사람마다 말 못 하는 아픈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니는 절대로 명기한테 말도 함부로 하지 말고, 찬우나 병철이한테도 잘해야겠지만 명기한테는 더 잘해 주야 된다, 알겠제?”
현광이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아버지가 저렇게 진지하게 말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현광이가 집 안으로 들어간 다음, 아버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플라스틱 추녀 위로 투둑투둑 소리를 내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계속]
* Image by � Mabel Amber, who will one day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