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상처

by 진우


명기는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의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 뉴스에서는 오후 늦게나 되어야 비가 온다고 했는데,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4교시가 되기도 전에 비를 퍼부을 기세였다.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마침내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울렸다. 명기는 책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서둘러 신주머니를 챙겼다.


“야, 채명기.”

“으, 으응?”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교실 뒤편에 화영이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 머스마야. 니는 오늘 청소 당번인데 또 어데로 내뺄라꼬 가방부터 챙기노?”

“화, 화영아. 그게 아니고.”

“이 서울내기 다마네기가 또 꼼수를 부릴라 하네. 진짜 얍삽하데이. 니 선생님한테 확 일러 뿐다. 빨리 빗자루 안 드나?”

소문난 여장부답게 화영이는 목소리부터가 우렁찼다. 웬만한 남자아이들은 상대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아이들은 화영이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니 빨리 책상 안 옮기나?”

“그, 그래. 알았어.”

명기는 어쩔 수가 없었다. 화영이의 기세에 잔뜩 주눅이 든 데다 선생님께 말할 거라는 화영이의 엄포에 은근히 겁도 났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김명숙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아이고, 김 선생님.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헤.”

하며 머리가 훌러덩 벗어진 서무 과장이 교무실에서 나왔다. 김 선생님은 인사를 받는 듯 마는 듯하며 비켜섰다. 선생님은 서무 과장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육청의 공문을 받고 교장 선생님의 결제까지 마친 일에 대해서도 별의별 되지도 않는 이유로 경비 지급을 미뤘다. 교장 선생님이 여러 번 호되게 질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행동하기 일쑤인 서무 과장은,

“내가 이 학교의 주인이지. 이 학교 살림은 내가 사는 거라고. 그게 바로 주인 정신이라는 거 아니겠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결국 학교의 공식적인 일인데도 개인적으로 찾아가 사정을 하고 부탁을 해야, 그제야 선심 쓰듯 비용을 내어 주는 서무 과장이, 김 선생님은 얄밉기까지 했다.


“비가 오려고 하는데 빨리 가셔야죠. 데이트라도 하셔야 되지 않나? 올해 국수 먹게 해 주시려면, 헤헤헤.”

서무 과장의 불쾌한 농담을 듣는 순간, 선생님은 기분이 나쁜 것보다 비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내가 그걸 깜빡했구나.’

김 선생님은 오던 복도를 되돌아 서둘러 교실로 뛰어갔다.


반 아이들은 이미 돌아가고 당번들만 남아 교실 청소를 하고 있었다.

“명기야, 명기 어디 있니?”

선생님의 다급한 목소리에 청소를 하던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화영이가 나섰다.

“선생님, 채명기, 걸레 빤다고 화장실 보냈는데예.”

“그래, 그럼 화영아. 빨리 가서 명기 좀 오라고 해 줄래?”

“예, 선생님.”

화영이는 교실 뒷문에 서더니 문을 한 손으로 잡고 복도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야아, 채애며엉기이, 선생님이 오오라아신다아.”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 저 멀리서 명기가 뛰어 오는 것이 보였다. 부르러 가는 것보다 서서 부르는 것이 더 빠른 화영이를 보면서 선생님도 조금은 놀랐다.


“선생님, 찾으셨어요?”

“그래, 명기야.”

선생님은, 청소를 하던 다른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명기를 돌려 세운 다음 조용히 말했다.

“명기야, 청소는 그만하고 빨리 집으로 가라.”

“선생님, 저 오늘 청소 당번이에요.”

“그래, 알고 있어. 그런데 밖을 봐라. 비가 올 것 같다.”

“……”

“걱정하지 말고 빨리 가. 화영이한테는 선생님이 잘 말해 둘게.”

“고맙습니다, 선생님. 오늘 못한 청소는 내일 청소 당번들과 같이 하겠습니다.”

명기는 인사를 꾸벅하고 서둘러 자기 자리로 가서 가방을 멨다. 자신을 보고 있는 선생님을 향해 교실 문에서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명기는 재빨리 뛰어갔다.

씩씩대는 화영이를 달래면서 창 밖을 내다보니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명기의 모습이 보였다. 김 선생님은 측은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달렸더니 숨이 가쁘고 다리가 아팠다. 앞으로도 오 분은 더 뛰어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한 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명기는 마음이 급해졌다.

언덕배기 윗길로 접어들 때 우물터에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돌아보니 병철이었다. 그 옆으로 찬우와 현광이, 그리고 아섭이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미안해, 애들아. 오늘은 같이 놀 수가 없어.’

명기는 속으로 생각하며 언덕 끝까지 한달음에 달렸다.


집 앞 골목에 들어섰을 때 이미 제대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명기는 덜컥 겁이 났다.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명기는 신주머니를 들어 머리로 떨어지는 비를 막으며 조심스럽게 집으로 한 발짝씩 다가갔다. 후우, 하고 숨을 가라앉혔다. 대문 옆에 서서 천천히 마당 안쪽을 보았다. 혹시 오늘은 아무 일이 없는 것은 아닐까, 제발 그랬으면, 하는데 갑자기 집 안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아.”

명기는 놀라서 바닥에 그만 주저앉아 버렸다. 눈을 질끈 감고 귀를 틀어막았다. 정말 지긋지긋한 저 소리.


“탕탕탕, 이 새끼들아. 내 총을 받아라.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으아악. 살려 주세요. 이 나쁜 개 같은 놈들,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야압.”

비가 쏟아져 내리는 마당을 명수가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벌써 난장이 벌어졌는지 빨랫줄에 걸려 있던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마당에 내팽개쳐져 있고, 깨진 그릇들도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명기가 아끼는 로봇 장난감도 산산조각이 나서 그 모양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명수가 발을 뗄 때마다 붉은 발 도장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리고 그 발 도장들은 비에 씻겨 수채 구멍까지 붉은 물줄기를 만들고 있었다.

“으허허, 이 자식들아. 우리 부모님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인 거야. 야압. 내가 오늘 네 놈들을 갈기갈기 찢어 주마. 으아아악.”

명수가 마당을 뒹굴었다. 날카로운 접시 조각들이 명수의 어깨를 할퀴었다. 거기에서 붉은 피가 또 흘렀다.

명기는 겁이 났다. 더 힘주어 귀를 막았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명수의 비명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형,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아저씨. 저 광주 사람 아니에요. 보세요, 저 이렇게 서울 말하잖아요. 아녜요, 아녜요.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광주 사람 아니에요. 아저씨, 제발 살려 주세요. 네, 끓어 앉았어요. 시키는 대로 꿇어앉았어요. 아저씨. 똥도 핥아먹을 테니 제발 살려 주세요. 멍멍, 멍멍멍, 으르릉.”

명수가 두 손을 싹싹 빌다가 갑자기 바닥에 엎드리더니 이번에는 네 발로 마당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기어 다니며 개처럼 짖었다. 그 소리는 비에 묻히지도 않고 담을 뛰어넘었다.


한참 동안 들리던 울부짖음이 갑자기 그쳤다. 쏴 하며 지붕과 마당에 떨어지는 세찬 빗소리만 들렸다.

마당 안이 조용해지자 명기는 귀를 막았던 손을 조심스럽게 뗐다. 머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비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가만히 마당 안을 들여다보니 명수가 마당 한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이제 괜찮아졌나 보다.

명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바닥에 그릇 조각들이 흩어져 있어서 발을 딛기가 쉽지 않았다.

“형, 나 왔어…… 이제 괜찮아? 나야, 형……”

명기가 조심스럽게 명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명수가 천천히 돌아서서 명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옅은 웃음을 지었다. 명기도 그런 명수를 보면서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형, 하면서 손을 잡으려는데, 갑자기 명수가 명기의 목을 틀어 쥐었다.

“이 새끼. 너만 아니었으면, 너만 아니었으면 아버지도, 엄마도 죽지 않았을 거야. 이 나쁜 새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죽지 못하는 거야. 네, 아저씨. 제가 이 놈을 죽여 버리겠어요. 이 새끼, 죽어. 죽어. 죽어 버리라고.”

명수가 이제는 명기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혀……형. 켁켁…… 형, 숨막……숨……숨……”

명기가 발버둥을 쳤다. 점점 더 숨이 막혀 왔다. 목을 조르는 명수의 손을 풀어 보려고 했지만 손가락을 비집어 넣을 만큼의 작은 틈도 없었다.

“혀……형……살……려……줘.”

“죽어, 죽여 버릴 거야, 이 자식아.”

명기는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하며 눈앞이 온통 하얗게 변한다고 생각한 순간, 퍼억, 하는 소리가 났다. 천천히 세상이 제 색깔로 돌아오고, 도저히 풀 수 없을 만큼 억세게 명기의 목을 움켜쥐었던 명수의 손도 스르르 풀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더 퍼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명수가 바닥에 철퍼덕하고 널브러졌다. 명기는 명수를 밀쳐 내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감싸 쥐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명수의 뒤로 경찰복을 입은 아저씨와 이웃에 사는 반장 아저씨가 서 있었다. 경찰관의 손에는 반쯤 부러진 야구 방망이가 들려 있었다.

아까보다도 더 거센 비가 쏟아졌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이거, 병원에 데리고 가야 안 되겠나, 동생아?”

반장이 명수를 업고 들어와 방 안에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머, 접시 조각이 몇 개 박히기는 했어도 그거 빼고 우선 급한 대로 약이나 발라 두면 될 것 같네예. 근데 행님, 글마 그거보다도 야가 더 많이 놀란 것 같은데예. 봐라, 니 괘않나?”

경찰관이 명기에게 물었다. 명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니, 명기 맞제? 내는 니를 본 기억이 있는데. 내 모르겠나? 내, 너그 반 택모 아버지다.”

그 말에 명기는 경찰관의 이름표를 보았다. 황. 준. 호. 물론 명기는 택모 아버지의 이름을 몰랐지만 택모와 같은 황 씨였다.

명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앞으로 모으고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아저씨. 정말 고맙습니다.”

“하이고, 일마 이거, 어른처럼 인사하네. 인자 됐다. 걱정 마라.”

택모 아버지는 수건을 가져와 명기의 젖은 머리를 닦아 주었다. 명기는 왈칵 울음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명수의 발바닥에 조심스럽게 약을 바르던 반장이 갑자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니미, 이기 어데 사람 할 짓이가? 다 큰 놈이 정신도 못 차리고 비만 오면 이 지랄을 하고. 우짜든동 정신을 차리고 몸을 건사해서 동생을 돌봐야 할 새끼가, 나이가 스물이 다 된 놈이 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이대로 놔두면 안 될 끼다.”

“행님, 그래도 우짜겠습니까? 지금 어데 가서, 야가 와 이래 됐노, 하면 더 혼쭐날 텐데.”

“봐라, 동생아. 말이야 바른말이지, 야들이 무슨 잘못이 있노? 저거 부모가, 서울 사람들이 광주 가서 장사하다가 그 난리 통에 세상을 떠난 건데, 나라에서 야들한테 그 정도 치료도 못해 주나, 어이?”

“행님, 목소리를 낮추이소.”

택모 아버지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반장을 진정시켰다.

“하기사, 동생 니는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이니까 함부로 말할 순 없겠제.”

“……”

“하이튼 이대로는 안 된다. 무신 대책을 세우든지 해야제. 명기, 저 어린 놈이 아무리 속이 어른이라 캐도 인자 겨우 열한 살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동생아, 어이?”

택모 아버지는 말없이 명수의 흐트러진 옷을 바로 입혀 주었다.

대답이 없는 택모 아버지를 잠시 보다가 반장은 마당으로 나가 빗자루를 들었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엉망진창이 되어 있는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인자 가자, 동생아. 고생했다. 명기야, 니는 나중에 날 개면 저 쓰레기들 좀 갖다 버리라, 알겠제?”

반장이 추녀 밑에 서서 어깨에 묻은 비를 털었다. 그러자 택모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명기야.”

“예, 아저씨.”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저 반장님한테 뛰어가라. 만일에 반장님이 없으면, 반장님 집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112에 신고를 빨리 해라, 알겠제?”

신을 신고 일어서서 택모 아버지가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냈다. 그리고 거기에다 다시 천 원짜리 몇 장을 더 보태서 명기에게 주었다.

“아, 아저씨. 저, 돈 있습니다.”

“아이다, 받아라. 어른이 줄 때는 그냥 고맙습니다, 하면서 받는 기다. 머, 고맙다는 말은 굳이 안 해도 된다마는.”

“……예. 고맙습니다.”

명기는 돈을 받아 들고 마루에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반장과 택모 아버지는 바로 나가지 않고 몇 번이고 마당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명기를 쳐다보다가 대문을 닫고 나갔다.


명기는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신을 잃은 건지 자는 건지 알 수 없는 명수가 그렇게 누워 있었다.

명기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솟아올랐다. 명기는 바닥에 엎드려 꺼억 꺼억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봄비라기엔 너무 센 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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