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유니버스

by 진우


어머니가 차려 준 저녁을 먹고 병철이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어찌나 많이 읽었던지 이제는 문장뿐만 아니라 쪽 번호까지 줄줄 외우는 책을 다시 펼쳤다.

“오빠야, 니 뭐 보노?”

동생 민희가 궁금한 듯 무릎걸음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응, 소공녀.”

“소공녀? 그게 먼데?”

“응, 부잣집 딸이 저거 아버지가 죽은 줄 알고 엄청나게 고생하고 있다가 나중에 복수해서 돈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병철이는 민희에게 엉터리로 알려 주었다. 그래도 민희는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와, 직이네. 근데 오빠야, 니는 이 책 다 외우지 않나? 맨날 이거만 보네.”

“응, 그래도 이 책이 제일 좋다, 나는.”

그때 초인종 소리가 났다. 병철이가 후다닥 이불을 덮으면서 말했다.

“민희야, 니가 가서 아버지 문 좀 열어 드리라. 오빠는 잔다 해라.”

민희는 별말 없이 문을 열어 주러 나갔다. 곧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이고, 병철이는 자는갑네? 아버지가 병철이 선물 사 왔는데, 우짜지?”

병철이는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다가 선물이라는 말에 뻘쭘해져서 어설픈 하품을 하며 이불 밖으로 기어 나왔다.

“아함, 아버지, 오셨어예?”

아버지가 웃으면서 병철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거 함 열어 봐라.”

병철이는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아버지가 건넨 비닐봉지를 받아 들었다.

“그기 멉니꺼?”

부엌에서 아버지의 저녁 상을 차리던 병철이 어머니가 궁금해서 문을 열고 물었다.

“이거, 병철이 신을 신발이다.”

“병철이 신발 멀쩡한데 머 할라꼬 또 사 왔습니꺼?”

어머니의 불평 섞인 말에 아버지는 셔츠를 벗으며 말했다.

“버스 정류장에 내렸는데 리어카에서 싸게 팔데. 모양도 예쁘고, 튼튼해 보여서 사 두면 오래 신겠다 싶더라고.”

병철이는, 그러나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버지 때문에 아이들에게 받은 창피를 당장 만회하려면, 아버지가 사 와야 할 신발은 나이키나 프로 스펙스여야만 했다. 아니, 적어도 타이거는 되어야만 했다. 나이키나 프로 스펙스, 적어도 타이거가 아니면 그것은 신발이 아니었다.


“리어카에서 샀다고예?”

“그래, 삼천 원이나 줐다.”

병철이 아버지는 큰돈 썼다는 듯 어머니에게 말했다. 거금 삼천 원을 들여 아버지가 사 왔다고 하는 신발은, 포장 상자도 없이 예쁘지도 않고 그저 튼튼해 보이기만 하는, 신발 모양을 하고 있는 고무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뒤축에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큰 글씨로, 그것도 한글로, ‘유니버스’라고 적혀 있었다.

마뜩잖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새 신발이니 신겨라도 볼 요량으로 어머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맞는지 신어 보자, 안 맞으면 내일이라도 바꾸러 가야 되니까. 버스 정류장, 그 영감님 파는 리어카 맞지요?”

하며 어머니가 병철이의 발을 잡아 끄는데 갑자기 병철이가 어머니의 손길을 홱 뿌리쳤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다.

“싫어요, 싫다 말입니더. 누가 이까짓 고무신 신는답니까? 나는 신발도 싫고, 아버지도 싫고, 다 싫어요.”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병철이는 그 달음으로 마루 밑에 놓인 신발을 발에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구겨 신고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병철아, 하고 부르는 어머니의 소리를 얼핏 들었지만, 병철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랫동네로 내달렸다.


“병철이 아버지……”

“됐다. 놔 나라. 쯧, 다 내가 못난 탓 아이가.”

병철이 아버지는 옷을 벗다 말고 한숨을 쉬며 천장을 보았다. 민희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병철이 어머니가 치맛자락에 마른 코를 팽하고 풀었다.




무작정 뛰쳐나오는 바람에 입고 있는 것이라고는 속옷 위에 얇은 셔츠가 전부였다. 게다가 비가 그친 뒤라 밤공기는 더욱 차가웠다. 엉겁결에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병철이는 학교에서 신는 실내화 한 짝과 다 헤진 축구화 한 짝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볼 위로 눈물 자국이 말라 붙었다.

‘춥다.’

몸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이가 딱딱딱 부딪히는 소리도 났다.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 집을 이렇게 나와 버리면, 우리 친부모가 나를 찾으러 와도 나를 못 만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지금 돌아가면 어머니한테 혼쭐날 것은 고사하고, 보기 싫은 아버지를 다시 봐야 하고, ‘유니버스’를 신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가고 싶지 않았다.


집을 나온 지 얼추 두어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몸을 덜덜 떨면서 버스 정류장 옆 길가에 앉아 있는데 마침 그 앞으로 경찰차 한 대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그것을 보자 병철이의 머릿속에는 현광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파출소에 가 보자. 가서 우리 친부모를 찾아 달라고 하믄 되겠네.’


파출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작년까지 다니던 큰길 건너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독수리 표식이 번쩍거리는 파출소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병철이는 파출소 앞에 이르러서 크게 숨을 들이쉬고, 헛기침을 몇 번 한 다음 일부러 울상을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저씨예.”

“무슨 일로 왔노?”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순경이, 짝짝이 신발에 놀라서 고개를 들고 병철이를 보며 물었다.

“저, 저……”

“그래, 말해라. 괘안타. 멀 도와줄까?”

병철이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아저씨, 우리 친부모님 좀 찾아 주이소, 예?”

순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순경은, 친부모를 찾으려면 몇 가지를 알아야 하니 물어보는 말에 정확하게 답을 하라고 했다. 병철이는 수업 시간 때보다도 더 열심히 또박또박 대답했다.

몇 가지를 수첩에 적고 나서, 순경은 담요로 병철이의 몸을 덮어 주며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우동 한 그릇을 시켜 주었다. 병철이는 후후 불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동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중에 친부모를 만나게 되면 저 순경 아저씨에게 꼭 상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덜덜 떨다가 뱃속으로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이내 졸음이 몰려왔다.

“아저씨, 여기서 좀 잘 테니까 우리 친부모 오면 내 좀 꼭 깨워 주이소, 예?”

곧 상을 받게 될 친절한 순경은 대답은 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병철이는 눈을 감았다. 아주 오랜만에 느껴 보는 포근함에 금세 잠에 빠져 들었다.


“병철아.”

병철이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혹시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 보았다. 아팠다.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 아, 드디어 친부모님이 나를 찾아왔구나. 내가 평생 기다려 온 나의 친부모. 남자 목소리니까 이 사람이 바로 내 친아버지겠지? 아냐, 친부모님이 사정이 생겨 친구를 보냈을지도 몰라. 정말 고마운 순경 아저씨. 이렇게 쉽고 빠르게 친부모를 찾아 주시다니, 진작에 올 걸. 고맙다, 현광아.

병철이는 흐뭇하게 웃으면서, 다시 자기를 부르면 와락 안길 요량이었다.

“병철아, 일어나라.”

네, 일어나고 말고요.

병철이는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 싶어 몸부터 일으켰다. 내가 바로 병철입니다 라며 안겨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떴다.


“병철아, 빨리 일어나라.”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은, 찬우였다. 병철이는 놀라서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차, 찬우야. 니가 여기 우짠 일이고?”

“잔말 말고 빨리 가자. 안 일어나고 볼을 머 할라꼬 꼬집노? 너그 집에 큰일 났다. 너그 엄마 쓰러지셨다.”

“여기는 어떻게, 내가 여기 있는지 우째 알았노?”

찬우는 대답 대신 책상에 앉아 있는 순경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병철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이기 우째 된 일입니꺼? 우리 친부모는예, 예? 아저씨!”

그러자 순경이 재빠르게 다가와서 주먹으로 병철이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딱! 병철이는 머리를 싸 쥐면서도 원망 섞인 눈으로 순경을 올려다보았다.

“아저씨, 내가 상을 줄라 캤는데, 씨이.”

“상? 무슨 상? 임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라. 빨리 가 봐라. 너그 엄마 쓰러지셨다는데.”

찬우는 자꾸만 창피해서 병철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파출소를 나오면서 찬우는 가져온 잠바를 병철이에게 입혀 주었다.

“찬우야, 니 우째 알았노?”

“임마, 제발 미친 짓 좀 하지 마라. 쪽 팔려 죽겠다. 저 순경 아저씨가 반장님 집에 전화했다 아이가.”

“머, 머라꼬?”

“어떤 애가 친부모 찾아 달라꼬 파출소에 왔는데, 아무리 봐도 그 동네 사는 애 같은데, 하더란다. 그래서 반장님이 너그 아버지한테 연락을 했는데, 너그 아버지가 바로 올라꼬 하다가 너그 엄마 때문에 못 와서, 내보고 빨리 니 데리고 오라 하시더라. 빨리 가자. 너그 엄마, 진짜로 쓰러지셨다.”

“안 된다, 찬우야. 내 지금 집에 가면, 우리 엄마한테 맞아 죽는다. 내 도망 갈란다.”

“야, 이 새끼야. 니 죽고 싶나? 제발 정신 차리라. 그라고 지금, 너그 엄마 진짜로 쓰러지셨다니까. 농담인 줄 아나?”

병철이는 찬우의 손에 장날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끌려갔다.

찬우는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할 말이 없었지만, 병철이를 파출소에서 찾은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병철이가 혹시 제 말대로 도망이라도 갈까 싶어, 찬우는 병철이를 집 안방에까지 데려다 놓고 돌아갔다.


병철이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방 한쪽에 누워 머리에 수건을 올려놓고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병철이는 자기한테 쏟아질 꾸지람과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매질을 걱정하면서 겁을 잔뜩 집어 먹었지만, 그런 병철이의 예상과는 달리 아버지는 계속 긴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말을 했다.

“병철아.”

“……”

“병철아, 니는 이 아버지가 노가다라는 기, 그기 그렇게 싫나?”

그러자마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병철이의 입에서는 말이 튀어나왔다.

“씨이, 맞습니더. 그래요. 나는 아버지가 싫다 말입니더. 아버지가 노가다라는 것도 싫고, 맨날 먼지 냄새나는 것도 싫고, 나도 일요일 날 내 친구들처럼 아버지 손 잡고 성지곡 유원지도 가고 싶고, 운동회 날도 아버지하고 달리고 싶단 말입니더. 난 다 싫습니더. 아버지도 싫고, 유니버스도 싫고. 엉엉.”

“이 노무 자식이……”

누워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일어나 매를 찾았지만, 병철이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말렸다. 손을 잡으려고 팔을 뻗었지만, 병철이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더 큰 소리로 울었다.

“나는 친부모 찾아갈 거란 말입니더. 엉엉.”


찬바람을 많이 쐐서 감기에 걸려 버린 병철이는 결국 나흘 동안 결석을 해야 했다.

중간중간에 약을 먹기 위해 일어나거나, 찬우와 아이들이 놀러 와서 학교 이야기를 해 줄 때를 제외하면 계속 잠을 잤고, 그 꿈속에서도 병철이는 하늘을 날며 친부모를 찾아다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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