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기는 조심스럽게 이불속에서 빠져나와 옆에서 잠들어 있는 명수를 내려다보았다. 밤새 두어 번 잠꼬대를 한 것 말고는 다행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명기는 형의 이불을 고쳐 덮어 주고 밖으로 나와서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내리던 비가 밤새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갰다. 졸음이 묻은 하품이 나왔다. 혹시라도 형이 깰까 봐 옆을 지키느라 잠을 설쳤다. 명기는 마루에 서서 한껏 기지개를 켰다.
반장이 마당을 치우긴 했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접시 조각들과 옷가지들이 아직도 널려 있었다. 명기는 마당으로 내려가 그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주워 담았다.
야트막한 담 너머로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기는, 오늘은 아무래도 학교에 가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못한 청소를 오늘 하겠다고 선생님과 약속했는데, 걱정이 되었다.
부엌으로 들어가 쌀을 씻어 솥에 붓고 물을 안쳤다. 반찬 통을 열어 보니 김치만 조금 남아 있었다. 국이 있으면 좋겠는데, 명기는 아직 국을 끓일 줄 몰랐다. 나중에 형이 일어나면 국 끓이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밀린 설거지를 모두 마치고 명기가 마당으로 나오자, 언제 일어났는지 명수가 마루 끝에 앉아서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형. 일어났어?”
“……”
“형,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쌀 올려 두었으니까 곧 밥 될 거야.”
명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명기야, 물 한 잔만 줄래?”
“응, 형.”
명기는 서둘러 부엌으로 다시 들어갔다. 큰 그릇에 찬물을 가득 받아서 조심스럽게 들고 나와 그것을 명수에게 주었다.
명수는 갈증이 났던지 그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우리 형이 물 하나는 시원하게 잘 마신다니까, 헤헤.”
명수가 물을 마시는 옆에서 명기가 까불었다.
그릇을 내려놓은 명수가 또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명기도 조용히 그 옆에 앉았다. 참새들이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떼를 지어 방정맞게 날아다녔다.
한참 만에 명수가 입을 열었다.
“명기야.”
“응, 형.”
“어제는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마당의 저 피들은 다 뭐냐? 저 깨진 접시는 또 뭐고.”
“아, 저, 저거는 피가 아니고 내가 미술 숙제하다가 빨간 물감을 쏟아서……”
“명기야.”
“……”
“어제 또 내가 발작을 한 거구나. 그렇지?”
“……”
명수는 머리를 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안 되겠다, 더 이상 안 되겠어.”
“형, 뭐, 뭐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 나도 나지만, 너도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형, 그런 소리 하지 마. 왜 그래, 또?”
명기는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갑자기 명수가 명기의 손을 잡았다.
“명기야, 형 똑바로 보고, 형 말 잘 들어.”
“무슨 말?”
무슨 말을 할지 명기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다시 듣는 것이 싫었다.
“형이 데리러 갈 테니까.”
“듣기 싫어. 나보고 또 고아원에 가 있으라는 거지?”
“형이 돈 벌어서 너 데리러 갈게.”
“듣기 싫다구. 그만해. 나는 지금도 아무렇지 않단 말이야. 왜 자꾸 나를 버리려고 그래?”
“인마! 버리는 게 아냐. 곧 돈 벌어서 데리러 갈 거란 말이야.”
“그래 놓고 안 오면? 안 오면 나는 어떡해?”
명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임마, 지금 우리 사는 걸 봐. 형이란 놈은 맨날 비만 오면 미쳐서 개처럼 짖어 대고, 이제 겨우 열 살 남짓한 동생이 발작하는 형 수발한다고 학교도 안 가고. 이게 사람 사는 거냐? 응?”
“형,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이제까지 잘 살아왔잖아.”
“잘 살아? 잘 살아? 이게 잘 사는 거야? 임마. 형이 널 버리는 게 아니라 너 데리러 갈 거라 그랬잖아. 이대로 살다가는, 이렇게 살다가는 내가 또 언제 어느 날 정신이 해까닥 돌아서…… 널 죽일지도 몰라. 알겠어?”
“형, 그런 말 하지 마, 제발. 형, 나 고아원에 가란 말은 하지 마, 제발.”
명기는 명수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형, 내가 이렇게 빌게. 내가 날이 흐리면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을게. 형, 내가 있으면 비가 와도 아무렇지도 않잖아. 응? 형. 내가 잘못했어. 내가 이렇게 빌게. 형, 제발. 나 버리지 마. 아버지, 엄마도 없는데 형마저 없으면 난 어떻게 살라고, 형. 이렇게 빌게. 형, 절대 안 버린다고 약속해, 응? 형.”
“학교도 안 가고 미친 형이나 지키고 있겠다고? 밤새 어떻게 될지 몰라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그래도 형이랑 있겠다고? 안돼, 더 이상은 안돼.”
“형, 나 학교 안 가도 돼. 진짜야. 잠 안 자도 돼. 그냥 형이랑 살게만 해 줘. 형, 응? 내가 더 말 잘 들을게. 부탁이야, 형. 제발. 엉엉.”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명기의 목을 타고 내렸다. 이번에는 정말로 형이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기는 고개를 숙이고 빌고 또 빌었다.
“명기야.”
명수가 명기를 와락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형이 미안하다. 명기야.”
“형. 제발 날 버리지 마, 형. 으아앙.”
명기는 명수의 품에서 엉엉 울었다. 명수도 그런 명기가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대문 밖에서는 반장이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반찬 통이 들려 있었다.
“찬우야, 병철이는?”
아섭이가 교문을 나서면서 물었다.
“감기가 심해서 집에 누워 있다 하더라.”
“요새는 결석하는 기 유행이가?”
“그러게. 명기도 오늘 결석했던데.”
“씨이, 나도 어데 좀 안 아프나? 하루 종일 누워서 만화책이나 좀 보게.”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임마. 아픈 게 머 좋노?”
찬우가 화를 내자 아섭이의 코가 쏙 들어갔다.
“선생님이 아까, 명기 이사한 집 물어보시던데 가실라꼬 그라나?”
“안 그렇겠나? 그런데 선생님이 가도 먼 뾰족한 수가 있겠나?”
“명수 형은 도대체 와 그라노?”
아섭이는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글쎄, 내도 잘 모르겠다. 그냥 옛날에 사고가 났는데 그 충격 때문에 비만 오면 그런다 하더라. 지난번에도 명수 형이 칼 들고 명기 죽인다꼬 난리 쳐서, 경찰도 오고 뒤집어졌다 카더라.”
“그라모 그냥 명기는 고아원 가면 안 되나?”
아섭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고아원?”
“그래, 저 옆에 자애원 있다 아이가?”
“그래도 저그 형하고 사는 게 낫지. 고아원이 머가 좋노?”
“그래도 고아원은.”
“야, 쉿!”
찬우가 급히 말을 막았다. 아섭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와 그라노?”
찬우는 대답 대신 눈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문방구 앞에 정미와 대식이가 서 있었다.
“아하, 정미하고 원다이비어네? 자애원 고아들이네.”
아섭이가 조용조용 말했다.
“원다이비어? 나는 정미는 알겠는데 점마는 처음 보는데?”
찬우가 물었다.
“응, 점마는 원래 이름이 김대식인데 좀 바보다. 글도 모르고 자기 이름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번에 자연 시험 치는데, 이름 쓰는 칸이 세 칸인데 김 대식이라고 안 쓰고 원다이비어, 라고 썼다 하데. 그게 지가 아는 글자 전분갑더라. 그래서 그때부터 애들이 대식이를 원다이비어라고 부른다 아이가.”
“덩치는 우리보다 훨씬 크네.”
“응, 진짜 나이는 우리보다 한 살 많다 하던데 그런데도 지금 2학년이다. 우리 반 정미가 대식이 데리고 다녀야 된다 하더라. 근데 조심해야 되는 기, 혹시라도 자애원 애들을 고아라고 놀렸다가는 6학년 창수 형한테 뼈도 못 추린다 하더라.”
“창수 형? 아, 자애원 대빵 말이가?”
아섭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찬우는 정미와 대식이를 보았다. 대식이는 누런 코를 물고 서서 정미가 문방구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가자, 찬우야.”
“으, 응. 그래.”
찬우는 문방구 앞을 지나치면서 장호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정미를 흘깃 쳐다보았다.
오래간만에 국을 끓이고 몇 가지 밑반찬을 만들어 둔 다음, 오래간만에 삼겹살을 구웠다. 명기가 고기를 맛있게 먹는 걸 보니 명수도 기분이 좋았다.
저녁 상을 치우고 나서 부엌에서 물을 데워 명기를 씻겼다. 원래는 같이 동산탕에 갈 생각이었으나 마침 정기 휴일이라 할 수 없이 집에서 목욕을 해야 했다.
어제 그 난리를 치고, 오늘 아침에도 눈물 콧물을 다 뺀 명기는, 배불리 저녁을 먹은 데다 형이 직접 씻겨 주는 호사를 누려서인지 일찌감치 잠이 들었다. 어제 자기 때문에 명기가 잠을 설친 것을 생각하면 명수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명수는 곤히 잠든 명기의 얼굴을 보고서도 결심을 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명기가 잠든 옆에서 명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주머니에 들어 있던 편지를 꺼냈다.
명수야, 형이 꼭 데리러 올게.
아침에 이 편지를 보면 반장님을 찾아가서 말씀을 드려라.
좋은 분이시니 너를 잘 보살펴 주실 거다. 꼭 다시 만나자.
명수 형이.
그리고 명수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그것을 하얀 봉투 속에 편지와 함께 넣은 다음, 그 봉투를 명기의 머리맡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벽장문을 열어 가방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고 마루로 나와서 방문을 조용히 닫았다.
둥근 보름달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명기야, 미안하다. 형이 꼭 데리러 올게.’
명수는 명기가 잠들어 있는 방을 한 번 더 쳐다 보고는 마당으로 내려섰다. 소리가 나지 않게 뒤축을 들고 조심스럽게 대문 손잡이를 잡았다. 끼이익. 철문이 듣기 싫은 쇳소리를 냈다.
명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돌아 섰다.
“니 어데 가노?”
누군가의 억센 손길이 명수의 어깨를 잡았다. 명기는 너무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누, 누구세요?”
“니 어데 가노? 빨리 말해라.”
명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환한 달빛 때문에 어깨를 잡은 사람이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아, 아저씨.”
반장이었다. 반장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멱살을 잡고 명수를 담벼락에 밀어붙였다.
“명수야. 니 지금 어데 가노, 내가 세 번째 묻는다. 빨리 말해라.”
“저, 저기……”
명수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니 이 자식, 지금 도망가는 거제?”
“……”
“내 그럴 줄 알았제. 혹시나 싶어 초저녁부터 기다리길 잘했지. 아침에 내가 와서 다 봤다 아이가. 들어 보니까네 명기는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니는 머라꼬? 명기보고 고아원에 가라꼬? 이 새끼가 죽을라꼬. 그래, 니는 혼자 도망가서 살고, 저 불쌍한 니 동생 명기는 고아원에 가서 어찌 돼도 모른단 말이가? 어이? 이 나쁜 새끼야, 니야말로 오늘 죽어 봐라.”
반장의 투박한 주먹이 명수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퍽, 퍽 하는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아, 아저씨.”
“입 다물어라. 아저씨라 부르지도 마라. 내는 니 같은 조카 둔 적도 없다. 알지도 못한다. 나는 오늘, 그냥 남의 집에서 물건 훔치는 도둑놈 새끼 하나 잡은 기라. 니 같은 새끼는 오늘 좀 맞아 뒈져야 된다. 저 불쌍한 아가 니 시중든다꼬 얼매나 죽기 살기로 고생했는데, 니는 머라꼬? 고아원?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일어나라. 엄살 부리지 말고.”
말을 하는 동안에도 반장의 주먹질은 멈추지 않았다. 명수는 필사적으로 주먹을 막아보려 했지만 잔뜩 화가 난 반장의 완력을 당할 순 없었다. 명수는 있는 힘을 다해 멱살을 잡은 반장의 손을 뿌리쳤다.
“그, 그만하세요. 아저씨. 제발.”
반장은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이번엔 발을 내질렀다. 명수가 앞으로 쓰러졌다. 명수의 코에서 피가 흘러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아저씨, 제가 지금 안 가면 명기는 평생을 저렇게 살아야 됩니다.”
“듣기 싫다, 임마.”
“매일 미친 형 뒷바라지하느라 제 손의 때도 못 벗기는 앱니다.”
“니가 벗기 주면 되잖아, 자슥아.”
“아저씨……”
“그러니까 니가 빨리 병을 고치야 될 거 아이가? 방법을 찾아야 될 거 아이가, 방법을.”
“아저씨. 제 병은, 치료비가 있어도 보증을 서 줄 사람이 있어야 되는 병입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 니가 도망가는 데서는 누가 보증 서 준다 카더나?”
“우선은 돈을 벌어야지요.”
“여기서 돈 벌면 되지, 도망은 와 가노?”
반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어제도 보셨잖아요. 비 오면 제가 어떻게 되는지. 돈을 벌 동안만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그래도 명기한테는 그게 낫잖아요. 차라리 멀리 가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거잖아요. 날만 흐려도 벌벌 떠는 애를 저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요. 돈 벌면 명기 데리러 올게요.”
“시끄럽다. 아무리 그래도 동생을 놔두고 이 밤에 도망을 치나? 니는 사람도 아닌 기라.”
명수는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반장이 명수의 멱살을 잡고 다시 주먹을 쳐들었다.
“일어나라, 임마. 니는 더 맞아야 된다.”
그때였다. 명수네 대문이 끼이익 소리를 냈다.
반장과 명수는 그 소리에 대문을 쳐다보았다. 안에서 명기가 나왔다.
“며, 명기야.”
명기가 다가와서 반장의 삐져나온 셔츠 자락을 잡고 조용히 말했다.
“반장 아저씨, 제가 우리 형 가라고 했으니까 때리지 마세요. 형, 내가 형한테 편지 썼는데 못 봤구나. 형, 그 가방 안에 내가 넣어 두었는데.”
명기가 애써 웃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명기의 뺨이 달빛에 번들거렸다.
명수는 눈물을 훔치면서 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에는 조그만 종이 들어 있었다. 명수는 숨을 한 번 내쉬고 편지를 펼쳤다.
형,
내 걱정 말고 잘 다녀와.
혹시 나중에 이 집이 없어지거나 나를 못 찾게 되면 매년 형 생일날, 6월 30일 낮 12시에 동명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만나.
동생 명기.
“며, 명기야.”
명수는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명기를 끌어안았다. 명기도 명수를 안았다. 보고 있던 반장도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눈을 감싸며 어깨를 들썩였다.
야밤의 소동에 동네 사람들 몇몇이 무슨 일인가 싶어 창 너머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동네 개가 요란스럽게 짖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