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철이 어머니는 죽을 떠 먹여 주면서도 계속 병철이를 나무랐다.
“아이고, 이 철없는 것을 내가 머 할라꼬 키우노?”
병철이는 못 들은 척 입만 오물거렸다.
감기로 드러누운 지 사흘이 지났다. 이젠 감기도 거의 다 나은 것 같은데, 내일이면 다시 학교에 가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왔다.
다시 자려는 요량으로 눈을 감았다. 얼핏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가 손에 동전을 쥐어 준다.
병철이가 눈을 살며시 떴다. 아버지였다.
“병철아, 일어났나? 아버지 출근한다. 어떻노? 멋지나?”
병철이는 깜짝 놀랐다. 병철이는 눈을 비비고 다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일 년에 한두 번 입을까 말까 한 양복 차림으로 아버지가 서 있었다. 게다가 한 손에는 서류 봉투까지 들고 있었다. 아버지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인자 노가다 안 한다. 회사원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병철이는 그저 놀란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약간 어지러웠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병철이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만들었다. 이 놀라운 변화를 당장 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알려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 집에 하루 더 있는다 안 했나?”
잠옷 차림으로 가방을 챙기는 병철이를 보며 어머니가 놀라 물었다.
“아니예, 빨리 학교에 가야 됩니더. 인자 다 나았습니더.”
병철이는 어머니가 흰 봉투에 넣어 준 결석계를 들고 교무실로 갔다.
“병철아, 하루 더 쉬어야 된다고 어머니께서 그러시던데, 정말 괜찮니?”
“예, 선생님.”
“그래, 그래도 약은 며칠 더 먹고 완전히 나아야지?”
선생님이 병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 선생님. 저……”
“응, 무슨 할 말 있니?”
선생님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병철이를 보았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 말입니더.”
“응, 아버지가 왜?
“우리 아버지, 오늘부터 노가다 아니고 회사원입니더.”
“……?”
“우리 아버지 직업 적어 놓은 거, 빨리 바꿔 주이소.”
옆 자리의 다른 반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듯 병철이를 쳐다보았다. 김 선생님은 잠시 말없이 병철이를 보다가, 알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펼친 학급 경영록에는, 아버지의 직업이 ‘노동’으로 되어 있었다. 병철이는 노가다의 고상한 표현이 ‘노동’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노동’ 위에 빨간 볼펜으로 두 줄을 그은 다음, 작은 글씨로 회사원이라고 적고는 도장을 찍었다. 병철이가 그제야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무슨 회사지? 회사 이름은 아니?”
“음, 그런 건 아직 몰라도 우쨌든 오늘부터 양복 입고 출근하셨습니더.”
“녀석.”
선생님이 살짝 웃었다.
병철이는 그날 저녁, 꿈에도 그리던 ‘타이거’를 신게 되었다. 비닐봉지에 아무렇게나 담긴 ‘유니버스’가 아니라, 호랑이 얼굴이 그려진 하얀 상자에 담긴 진짜 ‘타이거’였다. 물론 나이키가 아니라서 조금은 서운했지만 상자 위의 타이거는, 한글로 쓰인 유니버스를 한 입에 집어삼킬 듯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그걸로 됐다.
병철이는 신을 신고 온 방을 뛰어다녔다.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어나가 찬우와 아섭이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지만 한밤중이라 겨우 참았다. 좋아서 깨춤을 추는 병철이를 보면서 아버지도 모처럼 크게 웃었다.
‘타이거’에 맞고 튀어 나간 공은 정확하게 쭉쭉 뻗었다.
채우 녀석이 걷어 내려던 공은, 병철이의 발, 아니 병철이의 타이거에 맞고 정확하게 골대에 꽂혔다.
방과 후 벌어진 5반과의 축구 시합에서 병철이는 무려 세 골을 넣었다. 축구왕 현광이도 혀를 내둘렀다. 아이들은 신발이 좋으니까 공을 더 잘 차는 것이라고 했다. 병철이는 모두가 자기의 신발만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물구나무를 서서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내기 시합에서 딴 돈으로 병철이는 아이들과 성미 문방구 앞에서 오뎅과 떡볶이를 사 먹었다. 양념이 묻어 벌게진 입으로 아섭이가 물었다.
“병철아, 너그 아버지, 진짜 회사원 된 거 맞나?”
“그래, 임마.”
“머 하는 회산데?”
찬우가 물었다.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아주 큰 회사다.”
“맞다. 그러니까 타이거도 사 주신 거제.”
하며 현광이가 미어터지려는 입에 오뎅을 또 쑤셔 넣었다.
병철이는 선생님과 친구들이 아버지의 회사에 대해 궁금한 게 많구나, 하며 집에 돌아가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회사인지 아닌지 아직 잘 모르는데 그냥 큰 회사라고 해 버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쨌든 아버지는 회사원이니까.
퇴근을 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서는 아직도 먼지 냄새가 나긴 했지만, 그건 아버지가 너무 오랫동안 ‘노동’을 해서 그런 것이라고 병철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셔츠를 다리면 그 옆에 엎드려서 풀 냄새를 맡았다.
병철이는 잠들 때까지 아버지의 넥타이를 만졌다.
회사원이 된 아버지가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회사원이 된 아버지가 너무나 좋았다.
[계속]
* Image by Olga Oginskaya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