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생일

by 진우


병철이는 우물터 계단에서 신발을 닦고 있었다.

호랑이 줄무늬 사이에 낀 모래를 빼내려는데 누군가 뒤통수를 쳤다.

“머꼬, 씨.”

고개를 돌려 보니, 찬우와 아섭이었다. 아섭이가 이죽거렸다.

“임마, 신발 다 닳겠다. 고마 해라.”

“타이거가 그렇게 좋나? 그라모 신지 말고 집에 놔두고 다녀라. 가방에 넣고 다니든가.”

찬우가 웃으면서 다시 놀렸다.

“모르는 소리들, 하지들들들 마세요오, 이게 얼마나 비싼 건데요오.”

병철이가 신발을 고쳐 신으며 능청을 떨었다.

“근데 찬우야, 니도 갈 거제?”

“어데를?”

찬우가 아섭이를 쳐다보았다.

“어? 니 아직 못 들었나? 아까 현광이가 집에 가면서 오늘 이수아 생일잔치한다고 오라 하던데. 이수아가 니한테는 말 안 했는갑네?”

“이수아? 그 서울내기 백설공주 말이가? 오늘 생일인갑네?”

병철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3교시를 마치고 찬우가 칠판을 지우러 가는데, 수아가 찬우를 불러 세웠다.

“찬우야.”

“어, 이수아. 왜?”

“오늘 있잖아.”

그때 화영이가 교실로 들어오면서,

“찬우야, 선생님이 니 교무실로 오라 하더라.”

하는 바람에 제대로 듣지를 못했다.

그게 생일잔치 초대를 말하려는 거였나, 하고 찬우는 생각했다.


“우짤래, 갈래?”

아섭이가 물었다.

“가자. 머, 같은 반 친구들인데 가서 축하해 주야 안 되겠나?”

병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임마, 니는 이수아하고 별로 안 친하잖아. 그저 묵을 거 있으면 지구 끝까지 찾아가는 묵고잽이.”

“아니에요. 저는 오래전부터 우리 친구 이수아하고 친했어요.”

병철이가 어설픈 서울말을 흉내 냈다.

“미친놈.”

아섭이가 또 병철이에게 주먹 감자를 날렸다.

“찬우야, 니도 가자. 니, 이수아 좋아하잖아.”

찬우가 병철이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좋아하기는. 근데 가더라도 선물은 하나씩 가져 가야 안 되나?”

“선물? 나는 돈 없는데, 그냥 가자. 선물은 무슨.”

“그래도 생일이라는데……”

“그냥 가자, 임마. 빈 손이면 다 같이 빈 손이어야지. 아섭이, 니도 그냥 갈 거제?”

“당연한 말씀입니다요, 대감마님.”

아섭이가 손을 싹싹 비비면서 병철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그, 그러면 집에 가서 좀 씻고라도 가자. 지금 우리 꼴이 말이 아니다.”

“그래. 그건 돈 안 드는 거니까 할 수 있지. 그럼 가자.”

“그래, 찬우는 이수아 좋아하니까 깨끗이 씻고 예쁜 옷도 갈아입고 온나. 히히.”

병철이의 놀림에 찬우는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찬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빈 손으로 가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준 용돈이 있었지만, 지금 선물을 사러 간다고 하면 보나 마나 아섭이나 병철이 녀석이 놀려 댈 게 뻔했다.

찬우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색연필 한 다스가 있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버지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찬우는 그것을 잠바 주머니에 넣으면서, 다녀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서 똑같은 걸로 사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와, 찬우 니, 목욕했나?”

대문 앞에는 현광이도 와 있었다.

“잘 보여야제. 좋아하는 공주님 생일인데.”

“병철이 니가 인자 살 만 하구나. 잔소리하지 말고 가자, 빨리.”

찬우가 걷기 시작했다.

“니는 빨리 가라. 우리는 천천히 갈란다.”

병철이가 일부러 느릿느릿 양반걸음을 했다.

“그라모 니는 천천히 온나. 우리는 빨리 가서 떡이고 케이크고 먼저 묵어 삘 끼다. 니는 손가락이나 빨아라.”

하며 아섭이가 갑자기 쏜살같이 내달렸다. 덩달아 찬우와 현광이도 뛰었다.

“야, 야. 같이 가자. 이 놈들, 내 타이거가 얼마나 빠른 지 보여 주마.”

병철이가 소리를 치며 뒤를 따랐다.




“여기 맞나?”

“맞다. 수아 양장점.”

어른 키만 한 유리문 너머로 역시 어른 키만 한 마네킹들이 폼을 잡고 서 있었고, 그 위로 하얀 간판에 ‘수아 양장점’이라고 씌어 있었다.

“들어가자.”

현광이가 양장점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어? 너희 누군데?”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수아 친구에요.”

당황했는지 현광이도 뜬금없이 서울말을 했다.

“아, 그래? 어서 와. 나는 수아 고모야.”

“예, 안녕하십니꺼?”

찬우와 아섭이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수아 생일이라고 왔나 보네.”

“아직 다 안 묵었지예?”

아섭이가 앞으로 나서며 서둘렀다. 수아 고모가 그 소리를 듣고 웃었다.

찬우가 아섭이의 등을 쿡 쑤셨다. 창피해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응, 여기는 가게고, 저 옆으로 나가서 골목 안집 2층으로 올라가. 문은 열어 놨으니까. 근데 애들 벌써 많이 왔더라. 빨리 안 가면, 너희 먹을 것도 없을 거야.”

하며 수아 고모가 또 깔깔거렸다. 으, 아섭이 이 자식.


“이수아, 이수아.”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줄줄이 서서 병철이가 큰 소리로 수아를 불렀다.

곧 문이 열리더니 수아가 웃으면서 나왔다.

“어, 너희들 왔네. 어서 와. 어? 찬우도 왔네? 아까 말을 못 해서 지금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 잘 됐다. 빨리 들어와.”

“가시나야, 니는 우리는 안 보이나?”

하며 맨 아래 계단에 섰던 아섭이가 후다닥 올라와 수아를 밀치고 방으로 들어갔다. 찬우는 창피해서 또 얼굴이 붉어졌다.




아이들이 둘러앉은 방 가운데는 상이 놓여져 있고, 상 위에는 양초가 꽂힌 동그란 케이크와, 오징어 땅콩, 초코 파이, 새우깡 같은 과자들과 송편, 잡채, 음료수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어, 너거 왔나?”

미리 와 있던 애들이 아는 체를 했다. 진복이, 복만이, 채우, 현수, 희정이, 화영이, 그리고 명희가 앉아서 아이들을 올려다보았다.

병철이가 얼른 아이들의 틈새를 비집고 앉았다. 찬우는 어디에 앉을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야, 찬우야. 니는 여기 앉아라.”

하며 자리를 만든 명희가 옷을 잡아당겼다.

“아냐, 거기는 모서리라서 불편할 거야. 찬우야, 넌 여기에 앉아.”

이번에는 수아가 자기 옆 자리를 찬우에게 내주었다.

“어, 어, 알았다.”

거의 엉덩방아를 찧듯이 찬우가 수아의 옆에 앉았다. 모서리에 앉은 명희의 볼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다.

“와, 이거 니 방이가?”

아섭이가 신기한 듯 말했다. 그제야 찬우도 방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에 가지런히 책들이 꽂혀 있고, 분홍빛 커튼이 쳐져 있는 창 너머로 멀리 배산이 보였다. 전과와 사전, 교과서가 잘 정리된 책상 위에는 빨간 모자를 쓴 양배추 인형이 스탠드 조명 옆에 앉아 있었고, 수아가 그린 것 같은 풍경화 액자와 파란 벽시계 위에는 예수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와, 방 직이네.”

“저거는 침대가? 와, 끝내주네. 이수아, 니는 진짜 공주네, 공주.”

현광이는 연신 멋지다는 말을 내뱉었다. 찬우가 보기에도 멋진 방이었다. 나도 언제쯤이면 내 방을 이렇게 멋지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다 왔으니 시작하자. 엄마.”

수아가 자리에 앉으며 어머니를 불렀다.

그 소리에 방문이 열리더니 한쪽에서 수아 어머니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머리를 곱게 빗어 뒤로 묶은 수아 어머니는 한눈에 봐도 정말 세련된 미인이었다.

“우와아, 직인다.”

찬우는 현광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라, 임마.”

그 소리를 들었는지 수아가 웃었다.

“엄마, 우리 반 친구들이야. 얘가 찬우.”

“오, 네가 찬우구나. 이야기 많이 들었다.”

“아, 안녕하십니꺼? 강찬웁니더.”

“잘 생겼구나.”

찬우는 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우리도 다 잘 생겼습니다, 아줌마.”

아섭이가 너스레를 떨었다. 수아 어머니가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그래, 그래. 다 잘 생기고 예쁘구나. 오늘 수아 생일에 와 줘서 고마워. 많이들 먹고 재밌게들 놀아. 모자란 것 있으면 또 이야기하고, 알겠지, 수아야?”

“응, 엄마.”

수아 어머니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병철이가 벌떡 일어서며,

“예수님, 하느님. 내한테도 저런 엄마를 주십시오. 으윽.”

하고 바닥에 쓰러져 죽는시늉을 했다. 그걸 보고 아이들이 깔깔깔 웃었다.

“자, 이제 시작할게. 내 생일에 다들 와 줘서 고마워. 먼저 기도하자.”

기도라는 말에 아섭이가 현광이의 귀에다 대고 조용히 말했다.

“기도? 니 할 줄 알제? 니는 교회 다녔잖아.”

“임마, 그건 책받침 받으러 따라갔던 거고. 기도는 할 줄 모르는데.”

“시끄럽다. 너그 소리 다 들린다. 쪽 팔려 죽겠다, 조용히 좀 해라.”

병철이가 면박을 주었다. 아이들이 또 웃었다.

수아가 무릎을 꿇고 상 위에 두 팔을 올리고 손을 모았다. 기도를 할 줄 모르는 몇몇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그런 수아를 따라 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찬우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색해서 수아의 기도를 잘 듣지 못했다. 수아 어머니의 말이 계속 귓전에 맴돌았다. 그것을 생각하니 혼자서 또 얼굴이 붉어졌다.

“아멘.”

기도를 할 줄 몰랐지만 아멘은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눈을 떴다. 그런데 병철이의 볼이 어느새 불룩해져 있었다.

“니 기도할 때 머 주워 묵었제? 아이고, 이 묵고잽이.”

현광이가 병철이의 뒤통수를 때렸다. 병철이는,

“이어 무으아오 우어 아이아.”

하며 상 밑으로 현광이에게 주먹 감자를 보냈다.

수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자, 이제 케이크에 불을 붙여야 되는데.”

그러자 복만이가 성냥을 받아 들었다

“그건 내 전문이다. 우리 아버지 담뱃불, 백 개 중에 구십아홉 개는 내가 붙여 준다. 에헴.”

복만이는 능숙하게 성냥을 빗겨 불을 붙였다.

열한 개의 초에 불이 밝혀졌다.

“수아야, 소원 빌어라.”

화영이의 재촉에 수아가 다시 한번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병철이가 또 무언가를 집으려고 손을 내밀다가 현광이에게 손등을 맞았다. 찰싹 소리가 났다.

잠시 후에 기도를 마친 수아가 눈을 뜨고 말했다.

“자, 이제 불을 끄자. 옆 사람 손을 잡고.”

그러면서 수아가 찬우의 손을 잡았다. 엉겁결에 찬우도 수아의 손을 잡았다.

“다 같이, 하나, 둘, 셋.”

훅, 하며 촛불이 꺼졌다. 다들 박수를 쳤다.

“자, 수아야. 이거 선물.” “이건 내 꺼다.” “이것도 받아라.”

아이들이 저마다 준비한 크고 작은 선물들을 수아에게 건넸다.

“이수아, 우리는 무적의 빈손 부대다, 알제?”

하며 아섭이가 현광이와 어깨동무를 했다. 그 뒤에서 병철이가 브이 자를 그리며 폼을 잡았다. 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찬우는 주머니에 들어 있는 색연필을 몰래 만지작거렸다.

꺼내 줄까, 말까 하는데 자꾸만 명희의 눈치가 보였다. 그렇잖아도 아까부터 명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음료수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찬우는 그런 명희가 신경 쓰였다.

“찬우야, 많이 먹어.”

“그, 그래. 이수아. 고맙다.”

찬우는 수아가 덜어 주는 케이크를 받아 들었다.

그러는 사이, 현광이가 숟가락을 뽑아 들고 일어섰다.

“아, 아. 이번에는 우리 반 가수 중의 가수, 명카수 손아섭 군이 이수아 양의 생일을 정말로 축하하는 의미에서 노래를 한 곡 뽑겠습니다. 제목은, 제목은. 임마, 머 부를 끼고?”

하며 아섭이를 내려다보았다.

“내, 내가 부를 노래는, 우리 어린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아섭이가 엉거주춤 따라 일어서면서 케이크가 묻은 손가락을 쪽 빨더니 숟가락을 받아 들었다.

“윤수일의 아, 파, 트입니다. 빰빰빰 빠바바바밤……”

아이들이 아섭이의 노래에 맞추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찬우도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뼉을 치려는데 상 밑으로 누군가의 발이 찬우의 무릎을 툭 쳤다. 명희였다. 찬우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자 명희가 따라 나오라는 눈짓을 했다.

명희는 갑자기 찡그린 얼굴로,

“아이고 배야. 수아야. 화장실이 어데고?”

하고 물었고, 수아는 손뼉을 치면서 곁눈질로 바깥을 가리켰다.


“와, 무슨 일인데?”

뒤를 따라 나온 찬우가 물었다.

명희는 팔짱을 낀 채 계단 아래를 향해 서 있었다.

“야, 지조 없는 머스마야. 니가 그럴 수 있나?”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어 찬우는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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