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거짓말

by 진우


“어이, 계병철이. 거짓말쟁이.”

점심 도시락을 꺼내는 병철이 옆에 복만이가 히죽거리며 섰다.

"거짓말쟁이? 니, 누구보고 하는 소리고?”

찬우가 먼저 말을 받았다.

"찬우야, 병철이 이 자식이 저그 아버지, 회사원이라 했나, 안 했나? 니도 들었제? 그날 떡볶이 묵으면서.”

그 말에 찬우가 병철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회사원이다, 임마. 왜?”

병철이가 화난 얼굴로 복만이를 올려다보았다.

“이 거짓말쟁이.”

갑자기 복만이가 병철이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무슨 싸움이라도 하나 싶어 아이들이 이 쪽을 쳐다보았다.

“미쳤나, 이 자식이.”

병철이도 복만이의 멱살을 잡았다. 복만이는 병철이의 손을 홱 뿌리치면서,

“임마, 너그 아버지, 아랫동네 집 짓는 공사장에서 일하더라, 임마.”

라고 소리쳤다.

병철이는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뭔가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이 자식이 밥 묵는데.”

찬우가 복만이를 떠밀었다. 아이쿠, 하면서 복만이가 뒤로 나자빠졌다. 그 바람에 책상 위의 도시락이 바닥에 쏟아졌고, 옆에서 밥을 먹던 여자 아이들이 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닌데, 아닌데. 우리 아버지는 회사원인데.’

병철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병철아, 신경 쓰지 말고 밥 묵자. 점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거다.”

아섭이가 병철이를 잡고 앉혔다.

“복만이, 이 자식아.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찌그러져서 밥이나 묵어라. 알겠나?”

찬우가 화를 내면서 쓰러진 복만이를 노려 보았다. 복만이는 손을 툴툴 털고 일어났다.

“찬우 니도 점마 편, 그만 들어라. 내 말이 맞는지 안 맞는지 나중에 직접 가 보라매. 아랫동네 동 사무소 옆이더라. 거짓말이나 하는 놈하고 나는 밥 같이 안 묵는다.”

그러고는 복만이가 교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병철이는 밥 먹을 생각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병철아, 나중에 가 보자. 그라모 되잖아. 에이, 이게 머 하는 짓이고.”

찬우가 바닥에 쏟아진 밥과 반찬을 손으로 쓸어 담으며 말했다.

“그래, 신경 쓰지 마라. 복만이 저 녀석, 순 나쁜 놈이다. 성냥 불이나 붙일 줄 알지, 공부도 못하는 돌대가리. 자, 숟가락 받아라. 내 거, 갈라 묵자.”

아섭이가 병철이를 달래려고 애를 썼지만, 병철이는 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병철이는 그날 오후 수업을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청소가 끝나자 병철이는 복만이에게 끌려 나오다시피 학교를 나왔다. 찬우와 현광이가 뒤를 따랐다.

“복만이 임마. 그 손 놔라.”

찬우가 병철이의 옷을 움켜쥔 복만이의 손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그라고 병철이 아버지가 회사원이든 아니든 니하고 무슨 상관있노?”

“몰라서 묻나? 선생님이 머라 하시더노? 세상에서 도둑놈보다 나쁜 게 거짓말하는 거라 안 하시더나? 하여튼 병철이 니는 오늘부터 우리 반 거짓말 왕이다, 왕.”

“니는 선생님 말하는 거라면 무조건 다 따라 하나?”

현광이가 복만이를 보며 말했다.

“현광이, 니도 찬우 믿고 까부는데 찬우 없는 날, 내 손에 걸리면 죽는 줄 알아라.”

복만이의 말에 현광이가 곧장 꼬리를 내리고 찬우 뒤로 섰다. 병철이는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말없이 복만이의 뒤를 따라 걸었다.




큰길을 오가던 많은 트럭들이 동 사무소 공터에 줄줄이 서 있었다. 먼지가 많이 나서 입을 가리지 않고는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어데고, 어데? 거짓말이면 복만이 니, 찬우한테 맞아 죽을 줄 알아라.”

현광이가 다시 허공에다 대고 주먹을 날렸다. 복만이가 피식 웃었다.

아이들은 동사무소 담벼락에 몸을 기대고 살짝 고개만 내밀어 공사장 쪽을 보았다. 복만이는 병철이의 뒤에 서서 병철이의 목덜미를 잡고 앞으로 들이댔다.

모래를 시멘트와 뭉개는 사람들, 삽질을 하는 사람들, 미장을 바르는 사람들, 난간에서 못을 박는 사람들로 공사장은 분주했다. 그 속에서 누가 누군지를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벽돌을 지고 나르는 사람들 사이로 제법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병철이는 그 사람을 계속 보고 있었다.

“없제? 아무도 없제? 그런 사람 없제, 병철아?”

현광이가 자기 일인 양, 흥분해서 병철이를 재촉했다.

“저기, 빨간 수건 두른 아저씨, 벽돌 옆에. 저 사람, 너그 아버지 맞제?”

복만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병철이는 말없이 그 사람을 보았다. 목에 빨간 수건을 두른 채 허리에 커다란 못 주머니를 차고 못질을 하는 사람. 바로 아버지였다.


“니는 내일부터 학교 나올 생각 말아라. 알겠나?”

복만이가 병철이 얼굴에 닿을 듯 주먹을 들이대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꺼지라, 임마. 병철이한테 손대면 니도 내 손에 죽는다.”

찬우가 복만이를 뒤에서 걷어찼다.

복만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휘휘 저으며 가 버렸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울고 있는 병철이를 다독이며 찬우는 동사무소 마당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동사무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찬우와 병철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현광이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찬우야.”

“그래, 안다. 내 애들한테 말 안 할게. 니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현광이 니도, 알제?”

현광이가 일부러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기 아이고, 인자 내, 괜찮으니까 너거는 먼저 가라. 내는 괘안타.”

찬우는 말없이 병철이를 보았다.

“괘않겠나, 진짜로?”

병철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라모 나중에 저녁에 집 앞에서 보자. 니 딴 데 가면 안 된다.”

찬우는 병철이가 충격을 받아서 또 친부모 찾는다고 도망이라도 가 버릴까 봐 걱정이 되었지만, 병철이는 애써 웃으면서 계속 찬우더러 먼저 가라고 했다.

현광이는 그런 병철이를 계속 돌아보았다.




해가 배산 뒤로 넘어가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공사장의 하루도 마무리되었다.

일을 마친 사람들이 이층 칸막이 안에서 하나둘씩, 옷을 갈아입고 일 층으로 내려왔다. 아버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다.

병철이는 혹시나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봐 동사무소 담장 위로 눈만 내놓고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는 한참 만에 일 층으로 내려왔다. 병철이는 머리를 조금 더 숙였다.

일 층으로 내려온 병철이 아버지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또다시 밖에서 보이지 않는 건물 기둥 뒤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다시 나타난 아버지를 보고 병철이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양복 차림이었다.


병철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담벼락 너머로 인부들끼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계 목수, 오늘 제사 있나?”

“와, 저 행님, 양복 입으니까 직이네. 옷걸이 끝내주네.”

“계씨, 요새 연애한다고 온 부산 시내에 소문이 쫙 깔렸던데, 그라니까 노가다가 맨날 양복 입고 다니제. 하하하.”

“아이고, 행님은 무슨 말을 그리 합니꺼? 그기 아이고, 우리 병철이가 내 양복 입은 모습이 좋다 해서 맨날 이렇게 폼 내고 다닌다 아입니꺼?”

“병철이가 누고?”

“계 목수 아들아이가. 니는 그것도 모르나?”

“그래도 불편하구로, 노가다는 그냥 작업복이면 되는 기라. 아들내미 때문에 양복 입는다꼬. 얼라가 철이 없네.”

“그런 말 마이소, 행님. 나는 세상에서 우리 아들이 젤로 좋심니더.”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

병철이는 도랑을 따라 힘없이 털레털레 걸었다. 도랑에서는 벌써부터 퀴퀴한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병철이는 그 자리에 섰다. 그리고는 신고 있던 타이거를 조용히 벗어 두 손에 받쳐 들었다. 잠시 먼 산을 바라보다던 병철이가 타이거를 도랑에 홱 집어던져 버렸다. 또 눈물이 났다.

“우리 아버지 회사원인데, 씨이, 회사원인데……”

병철이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울면 안 된다고, 울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타이거가 물에 반쯤 잠긴 채로 도랑에 떠 내려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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