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지금 어데 갔다 오노?”
병철이 어머니가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시간이 몇 신데 이제 오노? 찬우도 니 어데 갔는지 모른다 카던데, 어데 갔었노?”
병철이는 말없이 어머니 앞에 섰다.
“야, 병철아. 니 신발 우쨌노? 니, 와 맨발이고?”
어머니가 놀라며 병철이의 등짝을 쳤다.
“……”
“신발 어쨌냐 말이다. 그 비싼 거를.”
“……뒷산에 놀러 갔다가 자애원 형들한테 다 뺏겼어예.”
“머라꼬? 자애원? 저 위에 고아원 말하는 거가? 내, 이 놈들을 당장, 가자. 앞장서라.”
“가도 소용 없어예. 신발 벌써 다 팔아 묵었을 거라예.”
“뭐?”
어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병철이를 쳐다보았다.
병철이는 수돗가에서 발을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돌부리에 차였는지 발이 군데군데 까져 조금 쓰라렸지만, 병철이는 약도 바르지 않고 자리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썼다.
잠시 후 아버지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밖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병철이 아버지가 급히 방문을 열었다.
“병철아, 그래도 밥은 묵고 자라. 아버지가 내일 회사 갔다 오는 길에 신발 다시 사다 줄게. 알겠제? 자나?”
병철이는 자는 척을 했다. 아버지는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방문을 닫았다.
‘회사 갔다 오는 길, 회사 갔다 오는 길……’
이불속에서 병철이는 또 울었다.
병철이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조용히 일어나 마루의 시계를 보니 새벽 네 시가 다 되었다. 살그머니 안방 문을 열고 들어 갔다. 아버지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그 옆에 어머니도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고단한 것 같았다.
병철이는 살금살금 아버지의 머리맡으로 가서, 고이 놓여 있는 서류 봉투를 열었다. 입구를 벌리고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에 봉투의 속을 비추었다. 그 안에는, 목장갑과 깨끗이 빨아서 갠 빨간 수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몸을 뒤척였다. 병철이는 급히 방문을 닫고 제 방으로 건너왔다. 누고, 하는 어머니의 잠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병철이는 이불자락을 들어 그것을 깨물었다.
“어이, 거짓말 대왕. 타이거 우쨌노?”
다음 날 오후, 교실 청소를 마치고 휴지통을 비우러 소각장에 갔는데, 복만이가 또 시비를 걸어왔다.
“잃어버렸다.”
“와? 타이거가 거짓말쟁이 싫다고 산속으로 도망갔나?”
“됐다, 니하고 말하기 싫다. 꺼지라.”
병철이는 복만이를 외면하려고 돌아섰다.
“어이, 찬우 꼬붕. 거짓말 대왕. 너그 아버지, 어느 회사 다니신다 캤노?”
“이 자식이.”
병철이가 홱 돌아서면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허공을 내지를 뿐이었다. 복만이는 여유 있게 뒤로 물러서면서,
“그래, 니, 오늘 찬우 없는 데서 내한테 맛 좀 봐라.”
하며 발을 뻗었다. 병철이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 위로 복만이의 주먹과 발길질이 쏟아졌다.
“이 거짓말쟁이, 말해라, 거짓말쟁이라고, 말해라, 말해라.”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은 구경을 할 뿐, 어느 누구도 복만이를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코가 시큰했다.
“야, 병철이 코피 터졌다.”
아이들 중 하나가 그렇게 소리쳤다.
병철이는 손으로 코를 쓰윽 훔쳤다. 시뻘건 피가 소매에 묻어났다.
"이, 씨이......"
병철이는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엎드려서 맞으면서도 주위를 더듬었다. 손에 무언가 잡혔다. 그것을 들고 복만이를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퍼억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구경이나 난 듯 다른 반 선생님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병철이 어머니는 연신 복만이 어머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애가 그렇게 험하냐고, 애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복만이 어머니는 교무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큰 소리를 쳤고, 김 선생님이 그런 복만이 어머니를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복만이는 팔에 깁스를 한 채 일부러 더 아픈 시늉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애 삼촌이 경찰인데, 저 자식, 버릇을 확 고쳐줄까 하다가 내, 담임 선생님 봐서 참는 건 줄 아소.”
병철이는 복만이 어머니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복만이 어머니가 말했다.
“아이고, 저 자슥 눈빛 보레이. 야 임마, 공부는 안 하고 주먹질만 하믄 그라믄, 니 나중에 커서 머 되는 줄 아나? 깡패 아니면 노가다 된다, 아나?”
병철이 어머니는 별다른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단지, 병철이의 손에 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쥐어 주면서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고 할 뿐이었다.
병철이는 그날, 수업을 마치고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다. 찬우와 아섭이, 현광이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벌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혼자 해야 했고, 그러면 자기도 복만이를 패고 같이 청소를 하겠다는 찬우를 현광이가 겨우 말렸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몸에 화장실 냄새가 밴 것 같았다. 그래서 병철이는 양팔을 벌리고 혼자서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았다. 늦게까지 공을 차던 아이들도 돌아가 버린 아무도 없는 운동장 한편에서 병철이는 그네를 흔들며 앉아 있다가 학교를 나섰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지금도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병철이 아버지는, 아래에서 병철이가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못질에 열중이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오후 햇살에 번들거렸다.
아버지는 입에 못을 몇 개 물고서는 왼손 엄지와 검지로 그것을 하나씩 빼서 나무에 댄 다음, 재빨리 오른손에 쥔 망치로 정확하게 박았다. 못을 다 박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병철이는 아버지가 망치질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못질을 다하고 나무가 제대로 붙었는지 확인한 다음 만족한 듯 웃는 것을 보자, 병철이는 동사무소 마당을 나와 아버지를 더 잘 볼 수 있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입에 손을 모아 나팔을 만들고 크게 소리쳤다.
“아버지이이이이.”
그런데 다른 인부들 몇이 병철이를 힐끗 볼뿐, 아버지는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병철이는 다시 한번 크게 소리쳤다.
“아버지이이이이.”
뒤늦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병철이 아버지는 마침내 저 아래에 서 있는 병철이를 보았다. 아버지는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망치를 든 채로 병철이 앞에 선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병철이의 입은 자꾸만 실룩거렸고 눈앞은 또 흐려졌다.
“아버지.”
병철이는 조용히 아버지에게 다가가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아버지에게서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한 먼지 냄새가 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숨을 쉴 때마다 짙은 땀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병철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안하데이, 병철아. 미안하데이.”
아버지는 병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꾸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병철이는 아버지가 무엇을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지 솔직히, 몰랐다.
병철이 아버지는 그날 일을 일찍 마쳤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 아버지 옆으로 나이가 지긋한 영감님이 다가와서는,
“일마가 계 목수 아들인갑네. 참 공부 못하게 생겼데이.”
하고 놀렸다.
“어데요, 그래도 반에서 중간은 합니다. 니, 평균 팔십은 넘잖아, 맞제? 그라모 세탁소 진복이보다는 잘하는 거 아입니꺼.”
병철이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병철이는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를 좀 더 잘할 걸, 하는 생각도 했다.
병철이는 아버지의 작업복 가방을 받아 들려고 했지만, 도리어 아버지가 병철이의 가방을 받아 한 쪽 어깨에 둘러멨다. 그리고 병철이에게 말했다.
“우리, 짜장면 묵으러 갈래?”
짜장이 묻어 화덕 구멍처럼 시커멓게 된 입으로 단무지를 쪽쪽 빨고 있는 병철이 앞에다 아버지는,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를 두 손으로 쫘악 갈라 초간장을 살짝 묻힌 다음, 입으로 두어 번 후후 불어서 내려놓는 식으로 만두 열 개를 보기 좋게 두 줄로 세웠다.
아버지는 꽃 그림이 그려진 두꺼운 물컵에 보리차를 부어 주면서, 만두를 먹느라 정신이 없는 병철이를 보고는 씨익 웃었다. 병철이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씨익 웃었다.
아버지는 집에까지 병철이를 업고 걸었다. 역시 아버지는 양복을 입어도 땀 냄새와 먼지 냄새가 나는구나.
어머니가 집 앞에 나와 있다가 아버지에게 업혀 오는 병철이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버지는 아무 말하지 말라며 병철이 어머니에게 눈짓을 했다.
병철이는 아버지 등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아버지랑 타이거 찾으러 갔는데 못 찾았어예.”
그 말에 아버지가 큰 소리로 껄껄껄 웃었다.
4월이 시작된 첫날밤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