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질투

by 진우


현광이와 아섭이가 스탠드에서 과학 상자를 이리저리 끼워 맞추고 있는데 멀리서 병철이가 걸어왔다.

“병철아, 교무실 갔다 오나?”

“응.”

“머라 했는데?”

현광이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머라 하기는. 아버지 직업, 다시 고쳐달라 했지.”

“머로?”

“머긴, 노동이지.”

“해 주시더나?”

“응.”

“안 때리시더나?”

아섭이가 걱정하는 눈으로 병철이의 앞뒤를 살핀다. 어디 맞은 데라도 있는지 살피려는 눈치였다.

“때리긴 와 때리노? 내가 머, 잘못했나?”

“다른 말씀 없으시더나?”

“머?”

“싸울 때는 무기 쓰지 말라고.”

하면서 아섭이가 재빨리 저만치 물러 섰다. 병철이는 웃으면서, 괜찮으니 이리 오라는 손짓을 하다가 금세 주먹을 쥐고 왼손으로 감자 받침을 갖다 댔다.

“머, 잘못한 거는 없어도, 니가 복만이 작살냈잖아.”

그러면서 아섭이가 다가오지는 않고 공중에다 방망이를 휘두르는 흉내를 냈다.

“하긴 우리 반 애들이 니, 다시 봤다 하더라. 복만이는 지금 완전히 개구리 되어 뿠다. 앞다리에 깁스한 개구리.”

현광이가 통쾌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병철아, 이 참에 찬우하고도 한 판 해서 진정한 육 반의 승자를 가리는 게 어떻겠노?”

라고 말하는데 주먹 감자 두 개가 순식간에 현광이의 얼굴 앞에 들어왔다. 현광이가 혀를 내밀어 침을 바르려고 하자 아섭이와 병철이는 재빨리 주먹을 거둬들였다.

“나도 우리 아버지 목순데, 니같은 생각한 적 있거든. 근데 내가 만일 니처럼 그랬으면 나는 진작에 쫓겨났을 끼다. 쫓겨난 게 다 머꼬? 죽었을 끼다, 벌써. 하여튼 너그 아버지도 참 대단하신 분이다”

아섭이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맞다. 이제 니도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 은혜에 보답해라. 에헴.”

현광이가 뒷짐을 지고 교장 선생님이 훈계하는 듯한 흉내를 냈다.

"그나저나 찬우는 어데 갔노? 오늘 청소 당번도 아니잖아.”

병철이가 과학 상자 부품을 만지면서 말했다.

“맞네. 우리가 오늘 제일 먼저 나왔는데. 찬우, 아직 안 갔을 낀데.”

아섭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4교시 미술 시간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찬우를 교무실로 불렀다.

“선생님.”

“어, 찬우 왔구나.”

선생님은 잠시 말을 쉬었다가 다시 찬우를 보며,

“다른 게 아니고, 혹시 요새 명희한테 무슨 일 있니?”

라고 물었다.

“예? 박명희 말입니꺼?”

“응, 무슨 고민이 있다거나, 아니면 어디가 아프다거나……”

“글쎄예, 저는 잘 모르겠는데예.”

“그래? 응, 난 혹시 네가 아는가 하고 궁금해서…… 어쨌거나 같은 반 친구니까, 그리고 같은 동네 사니까, 찬우, 네가 명희를 잘 좀 챙겨 줘라, 알겠지?”

“……예. 선생님.”

선생님은 찬우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찬우는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오면서도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같은 동네 사는 애들이 한 둘이 아니고, 더구나 여자 급우 일을 왜 자기한테 물어보는 것인지, 명희의 무엇을 잘 챙겨주라는 것인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찬우가 교실로 돌아왔을 때 명기는 교실 바닥을 쓸고 있었다. 먼지가 뿌옇게 났다.

“명기야.”

“어, 찬우야.”

“니, 오늘 청소 당번 아니잖아?”

“응, 그런데 며칠 동안 내가 학교를 못 나와서, 당번인데도 청소를 못했잖아.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그냥 하고 있어.”

“맞나? 그럼 수고해라.”

“그래, 잘 가.”

찬우가 가방을 챙기러 자기 자리로 갔다. 그런데 다른 책상들은 다 뒤로 밀었는데 자기의 것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아, 내가 책상 위에 책을 그대로 두어서 애들이 아직 못 옮겼구나.

찬우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찬우는 서둘러 책들을 넣고 가방을 둘러멨다.

“찬우, 아직 안 갔네?”

언제 왔는지 수아가 옆에 섰다. 찬우는 순간,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나서 얼굴이 또 붉어졌다.

“으, 으응. 선생님이 불러서 교무실에 갔다 오느라 조금 늦었다. 내 땜에 청소 아직 못했제? 미안하데이.”

찬우는 의자를 엎어 책상 위에 올리고는 그것을 들어 옮기려고 했다.

“안돼, 찬우야. 그거 무거워. 혼자 못해. 같이 들어야 돼.”

수아가 책상의 한쪽을 잡고는 반대쪽을 잡으라는 눈짓을 했다.

“아, 고맙데이. 수아야.”

수아,라고 불러놓고 찬우도 조금은 쑥스러워서 웃음이 나왔고, 수아도 그런 찬우를 보면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그렇게 둘이 힘을 맞추어 책상을 뒤로 밀어 놓는데,

“야, 강찬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명희가 시뻘건 얼굴로 팔을 옆구리에 걸치고 교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어, 박명희. 와?”

“니, 정신 있나 없나?”

다짜고짜 명희는 찬우에게 따졌다.

“머, 멀?”

“니는 오늘 청소 당번 아니잖아? 근데 책상 옮기는 거, 와 도와주는데? 할 일이 그래 없나? 그라고 야, 이수아. 니는 니 혼자 할 수 있잖아. 머 땜에 찬우한테 도와 달라 하는데? 엉? 이 책상 옮길 힘도 없으면 숟가락 들 힘도 없겠네, 이 가시나, 웃긴다 아이가.”

찬우는 당황스러웠다.

“야, 박명희. 그게 아니고, 내가 교무실 다녀 온다꼬 늦어서 내 책상만 여기 있었다. 그래서 옮기는 걸 오히려 수아가 도와준 거다.”

“머, 수아? 수아? 니 언제부터 저 가시나 이름만 부르노? 내한테는 박명희, 박명희 하면서 저 가시나한테는 언제부터 수아, 수아 했노? 웃긴데이, 이 머스마.”

당황스럽긴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명희는 막무가내였다.

“이수아, 니는 물 당번이잖아. 가시나, 생기기는 배산 돌덩어리도 들게 생기 놓고 맨날 아야야, 아야야, 하니까 빙시 같은 머스마들이, 헤헤, 그래, 니는 물이나 주라, 이라니까, 어데 나도 그랄 줄 알았나? 나는 다 안다. 예쁜 척 고마 해라, 가시나야. 근데 머 할라꼬 교실에 있으면서 찬우 옆에 붙어 있노? 찬우한테 꿀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니 주전자 물 다 갈았나? 화분에 물 다 줐나?”

찬우는, 저렇게 쏘아대는 명희의 입에서 어쩌면 이빨이 총알처럼 투투투,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다 줬어. 나는 지금 내가 할 일들 다하고, 다른 친구들 교실 청소 도와주려는 거야. 찬우가 선생님께 갔다 오느라 늦어서 책상을 못 치웠어. 그래서 내가 도와준 거야. 그게 뭐 잘못됐니?”

똑 부러지는 수아의 대답에 명희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찬우에게 화살을 돌렸다.

“강찬우, 니는 수업 다 했으면 빨리 집에 가지, 손아섭, 장현광, 전부 다 지금 밖에서 니를 기다리는데, 니는 저 가시나 도와줄라꼬 너그 친구들을 밖에서 기다리게 하나? 선생님이 그렇게 가르쳐 줬나?”

“그래서 빨리 갈라꼬 책상 옮겼다 아이가.”

“거짓말하지 마라. 니 이수아가 청소하니까 도와 줄라꼬 일부러 늦게 가는 거제?”

“그, 그게 아니고 박명희.”

“내한테도 박명희라 하지 말고 명희라 불러라, 퍼뜩!”

“그, 그래. 명희.”

찬우는 할 수 없이 명희라고 부르고 말았다. 혹시나 들은 사람이 있나 싶어 교실을 재빨리 둘러보았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수아가 나섰다.

“그런데 박명희, 너는 뭔데 찬우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니? 궁금하면 네가 선생님께 가서 여쭤보면 될 거 아냐? 선생님께서 부르셔서 교무실 갔다 왔는데, 찬우가 그런 것도 너한테, 명희야, 나 교무실 간다, 그래서 책상 늦게 치울 거야, 하고 보고를 하고 가야 되니? 찬우가 무얼 하든 대체 네가 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찬우 친구들이 밖에서 찬우 기다리는 건 어떻게 알았니? 너 그런 조사하고 다니니? 네가 형사야? 그래, 책상을 혼자 못 옮기니까 내가 찬우 도와줄 수도 있고, 또 당번인 내가 옮겨야 되는데 찬우가 나 도와줄 수도 있는 거잖아. 우린 친구잖아. 같은 반이잖아. 친구가, 같은 반 친구가 서로 도와주는데 그게 뭐, 잘못 됐니?”

수아도 화를 내니까 보통이 아니구나, 하고 찬우는 생각했다.

“가시나야, 남자하고 여자하고 무슨 친구고?”

“아니 왜 친구가 안 돼? 그럼 넌 찬우한테 뭐야? 이웃 주민이야? 우리 반 남학생들, 전혀 몰라? 말도 안 해?”

명희가 한풀 꺾였다. 그래도 이를 앙 다물고 대들었다.

“청소 당번 중에 다른 애들 있잖아, 가시나야.”

“어디? 네가 한 번 보렴. 지금 교실에 누구 있는지?”

명희는 아차, 싶었다.

“아, 아까 채명기 여기 있었다. 다마네기끼리는 잘 보일 낀데?”

그 말에 수아가 갑자기 불끈했다.

“뭐? 다마네기? 표준말도 모르는 계집애.”

“머라꼬? 이 가시나가 죽고 싶나? 이 다마네기야.”

하며 명희가 갑자기 손톱을 세우고 으아, 하며 수아에게 달려들었다. 수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찬우가 순식간에 수아를 감싸 안으며 한 손으로 명희를 세게 밀쳤다. 명희가 교실 바닥에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명희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찬우를 올려다보았다.

“야, 강찬우. 니, 지금 머 하는 기고? 니 지금 저 다마네기 편드는 기가?”

찬우가 소리쳤다.

“야, 박명희. 정신차리라. 이게 편드는 거가? 친구들끼리 와 이라노? 니가 책상 혼자 옮기고 있었어도 수아가 도와줐을 끼다. 니 대체 와 그라노?”

“몰라서 묻나아아아!”

교실이 떠나갈 듯 명희가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수아는 잔뜩 겁에 질려 찬우 손을 잡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명희는 명희대로 분해서 일어날 생각도 않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찬우, 니 단디 들어라. 니 앞으로 한 번만 더 저 가시나 청소 도와주다가 내한테 들키면 내가 가만 안 있을 끼다. 알겠나?”

“박명희, 그기 아니라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고. 두고 봐라.”

명희는 교실 문을 꽝, 소리가 날 정도로 닫고 나가 버렸다.

찬우는 아무 말도 않고 명희가 나간 문을 그대로 보고 있었다.

“차, 찬우야.”

“응?”

“소, 손이……”

찬우는 잡고 있던 수아의 손을 그제야 놔주었다.

“아, 미안하데이.”

자신도 모르게 계속 수아의 손을 잡고 있었나 보다. 찬우는 수아가 걱정이 되었다.

“괘않나?”

수아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때, 짝, 짝, 짝, 하고 박수 소리가 났다.

찬우가 놀라서 돌아보니 열린 창문 한 칸 한 칸마다 현광이, 아섭이, 병철이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치 박물관에 줄줄이 걸린 초상화들 같았다.

“감동적이다.”

현광이가 말했다.

“눈물이 날라 한다.”

병철이가 말했다.

“둘이 인자 연애해라.”

아섭이가 말하는 순간, 찬우가 던진 칠판지우개가 아섭이의 얼굴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그것을 본 현광이와 병철이가 동시에 천천히 말했다.

“스, 트, 라, 이, 크.”


아이들과 교문을 나서면서 찬우는, 한편으로는 명희가 걱정되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다 같은 한 반 친구인데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 날, 누군가가 우물터 담벼락에다 명희 할머니도 알아볼 만큼 큰 글씨로 이렇게 써 놓았다.


[4학년 6반 강찬우는 같은 반 이수아를 좋아한다]


찬우는 누가 적었냐고 난리를 치며 물걸레로 그것을 지우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아섭이와 현광이와 병철이는 누군지 도통 모르겠다며 우물터 계단에 앉아 주머니 속의 분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계속]



* Image by Olga Oginskaya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