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변소

by 진우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찮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싶어 눈치를 살피던 참에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아섭이를 불렀다.

“아섭아, 니 하루에 집에서 똥 몇 번이나 누노?”

“와? 동사무소에서 조사 하드나?”

“그기 아이고 글쎄 니 몇 번이나 누노?”

“음, 배 아플 때마다 가고, 음, 보통 두 번은 가는데……”

“인자 웬만큼 급한 거 아니면, 학교 가서 누라, 알겠제?”

“와?”


마당에 있는 공동 화장실을 펐는데 다른 때보다 요금이 많이 나왔다면서 집주인 정훈이 어머니가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다섯 집이 세 들어 사는데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떻게 아섭이가 항상 앉아 있는 거냐며, 남들 생각도 좀 하라는 말도 덧붙였단다. 그러면서 조그만 애가 어찌 그리 사나운지 교육 잘 시켜라, 변소 자주 가지 못하게 하라 따위의 다짐까지 받더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도 어이가 없었겠지만 오죽하면 내게까지 전하는 걸까 싶어 아섭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훈이 자식, 맨날 지가 더 많이 쳐 묵고 더 싸면서, 나쁜 놈.’

아섭이는 가방을 홱 던져두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숙제 안 하냐는 어머니의 말을 대문 깨에서 얼핏 들었다.




아섭이의 콧등에 땀이 송송 맺혔다. 자꾸 숨이 가빠졌다. 짐받이를 잡은 손이 또 미끄러질 것 같았다. 그냥 놓아 버릴까 하다가 그랬다간 달리는 속력에 내가 넘어질 것 같았다. 이젠 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매달린 채로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발아래로 휙휙 지나가는 돌멩이를 보고 있자니 속이 메스꺼웠다. 한 손으로 겨우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땀을 훔치며 다시 매달려 갔다. 이제 한 바퀴만 더 돌면 된다. 그냥 놓아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길 모퉁이를 돌 때 조금 속력이 늦어지면 놓아 버려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정훈이 녀석이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똑바로 밀어라, 임마!”


아섭이는 벌써 세 시간째 정훈이의 자전거를 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랫동네에서 우물터까지 동네 두 바퀴를 밀고 나면 한 번 타게 해 주겠다는 정훈이의 말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자전거 뒤꽁무니의 짐받이를 잡고 뛰고 있는 것이다.

두 바퀴라고 분명 약속해 놓고선 별의별 핑계를 다 대는 정훈이 때문에 아섭이는 여태 한 번도 타지 못했다. 진작에 때려치웠어야 했는데 이번엔, 이번엔 하면서 벌써 세 시간 동안 그 짓을 하고 있다.

정훈이를 믿지 말라던 찬우의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하지만 한 번만이라도 타게 되면 우물터에서 놀고 있을 현광이와 병철이 앞을 폼 나게 지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아섭이는 그런 찬우의 충고를 애써 무시했던 것이다.


정훈이는 잘 달리다가 브레이크를 꽉 잡아서 아섭이가 제 궁둥이에 머리를 처박게도 하고, 그냥 고이 앞으로만 가면 될 것을 이리저리로 손잡이를 움직여 아섭이의 발을 꼬이게도 했다. 그런가 하면 앞에 돌멩이가 있으니 후진을 해야 한다는 억지까지 부려가며 이젠 뒤로 끌라는 말까지 했다. 더럽다. 그래도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밀고 있는 걸 보면 제 녀석도 감동한 바가 있어서 한 번쯤은 꼭 태워 주겠지, 하고 아섭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다시 훔쳤다.


정훈이의 자전거는 정말 멋있었다.

은빛이 반짝거리는 앞 뒷바퀴엔 색색의 줄을 감아서 그것이 돌아갈 때마다 무지개가 떴고, 손잡이 양 끝엔 오색 테이프가 달려 있어서 자전거가 빠르게 달리면 정말 그럴싸하게 휘날렸다. 또 오른쪽 손잡이엔 까만 고무 단추가 붙어 있는데, 이것을 누르면 앞쪽에 얹힌 우주선 모양의 통에서 불이 번쩍거리며 왱왱 소리를 냈다. 그리고 우주선 모양의 불통 앞에는 그 이름도 찬란한, 태권 브이가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은 채로, 보는 방향에 따라서 주먹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정훈이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 줬다는 이 자전거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멋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이들 사이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이번 한 번만 더 돌면 틀림없이 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아섭이는 숨길 수 없었다. 처음 출발지인 진복 세탁소 앞으로 돌아왔을 때 아섭이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태워 주지 않고는 못 견딜 애절한 표정으로 정훈이의 선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훈아, 인자 내 차례……”

“웃기지 마라, 이번엔 손잡이 고무가 멋지게 안 날았다. 이게 옆으로 이렇게, 이렇게 나란히 날려야 된단 말이다. 다시!”

야비한 놈. 만화방 창수는 한 바퀴만 밀고도 잘도 태워주더니. 좋다. 이번엔 진짜 잘 밀어야지.


이제 제법 신이 나는지 정훈이는 노래까지 부르면서 아섭이가 미는 대로 방향을 잡았다. 어느 정도 속도가 붙었을 때 아섭이가 물었다.

“헉헉, 정훈아, 이제 고무가 날리제?”

“아냐, 임마, 더 빨리……”

“지금은?”

“더 임마.”

“그래, 더 빨리 밀 테니까 날리는지 잘 봐라.”

젖 먹던 힘을 다해 미는데 녀석이 또 무슨 심통인지 브레이크를 살짝살짝 잡는다. 아섭이는 그래도 열심히 밀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힘을 주었다. 아섭이가 더 힘을 쏟는 걸 느꼈는지 정훈이가 제법 세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그 순간.

자전거가 홱 자빠졌다. 그리고 정훈이는 보기 좋게 앞으로 고꾸라졌다. 달리던 속도를 미처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정훈이는 앞으로 코를 박고 두 다리를 공중에서 한참 동안 버둥거린 다음, 땅에 처박혔다. 아섭이도 길 옆으로 굴렀다.

“아, 정훈아……”

잠시 후 아섭이가 손을 털고 일어서려는데, 잠시 잠잠했던 녀석이 고무신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울기 시작했다. 곧 아섭이는 더욱 놀랐다. 억지로 일으켜 세운 정훈이의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가 박살이 났는지 피범벅이 되어 있고, 넘어질 때 땅을 짚었던 손도 까져서 피가 묻어 나왔다. 그냥 밀었을 뿐인데.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에 아섭이는 더럭 겁이 났다. 정훈이의 얼굴에 대충 흙을 바르고 굴러 다니는 종이를 주워 쓱쓱 문질렀다. 그러자 얼굴은 더욱 더럽게 되고 말았다.

“으아앙, 씨이 아섭이, 니, 다 일러 뿔 거다. 으아앙.”

“임마, 내가 멀, 나는 그냥 니가 밀라고 해서 밀었는데……”

그런데 정훈이의 얼굴보다 더 큰일이 난 것은 태권 브이, 아니 자전거였다. 번쩍거리는 우주선 불통은 완전히 박살이 나서 태권 브이는 앞으로 곧게 뻗었던 두 팔을 잃어버렸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비싼 자전건데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며 아섭이는 피를 흘리는 정훈이와 망가진 자전거를 끌고 겨우 집으로 왔다.


정훈이는 집이 가까워오자 더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다. 아섭이가 놀라서 정훈이의 우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 소리를 들었는지 집 안에서 누가 뛰어나왔다. 정훈이 아버지였다.

“야, 정훈아. 누가 이랬노? 어? 니 우짜다가 이래 됐노?”

그것을 지켜보던 아섭이가 조심스레 말을 했다.

“정훈이 아버지, 내가요 정훈이가 자전거 밀어달라 캐서 그냥 밀어줐는데요.”

짝. 순간 눈앞이 번쩍 했다. 정훈이 아버지의 그 큰 손이 아섭이의 뺨을 후려친 것이었다. 그리고 정훈이 아버지는 다짜고짜 아섭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철퍽철퍽 소리가 나고 세탁소 진복이 아버지가 달려 나와 말릴 때까지 아섭이는 맞고 또 맞았다. 볼이 얼얼했다.

“너 이 노무 새끼, 정훈이한테 무신 짓을 한 기고?”

“아저씨요, 그기 아니고……”

아섭이는 다시 걷어 차이고 또 얻어맞았다. 아저씨, 제 말 좀, 제 말 좀.

한참 맞고 있는데 갑자기 매질이 멈추었다. 아섭이는 숨을 몰아 쉬며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섭이 아버지가 정훈이 아버지 팔을 잡고 서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

아버지를 보자 아섭이는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와 끝내 눈물이 터졌다.

“정훈이 아버지, 우리 아섭이가 머를 잘못했능교?”

“보고도 모르겠능교? 이 자식이 우리 정훈이를……”

“아섭아, 맞나?”

“아닙니더, 엉엉. 나는 자전거 밀어주면 한 번 태워준다 캐서 하루 종일 밀고 다녔는데 정훈이가 까불다가 넘어진 것 뿐입니더, 엉엉.”

“거짓말 마라, 요 놈의 새끼야.”

정훈이 아버지가 또 손을 들려는데 아섭이 아버지가 다시 그 팔을 잡았다.

“정확히 알아보지도 않고 아를 이래 때리도 되는 깁니꺼?”

아섭이 아버지와 정훈이 아버지의 말싸움이 시작되었고 곧 고성이 오갔다. 정훈이 아버지는 평소에도 아섭이가 정훈이를 자주 때렸다느니 애가 사납다느니 하는 말까지 했다. 두 사람의 싸움은 그칠 줄 몰랐다. 이런저런 말이 오가던 끝에 정훈이 아버지가 다른 사람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아, 좋아. 됐으니까 방 빼. 집 비우라고.”

그 말에 덜컥 겁이 난 건 아섭이였다.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이 모두 쫓겨나는 건가? 조심스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정훈이 아버지는 기선을 잡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더 열을 냈다.

“남의 집에 얹혀살면 주제를 알아야지, 니미럴. 와 분수를 모르고 설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퍼억 소리가 났다. 아섭이는 아버지의 주먹이 그렇게 빠른 줄 몰랐다. 그건 동네 아저씨들이 술에 취해 밀치고 잡고 늘어지는 그런 식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어깨에 걸려 있던 작업복 가방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정훈이 아버지가 코를 감싸고 발라당 뒤로 드러누웠다. 그러고 나서 아섭이 아버지의 주먹이 두어 번 더 휙휙 소리를 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애들 앞에서, 욕 좀 하지 마라. 부끄럽지도 않나?”

그러면서 드러누운 정훈이 아버지를 세게 걷어찼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구경만 할 뿐, 아무도 아섭이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정훈이 아버지가 아섭이를 때릴 때 극구 말리던 진복이 아버지는, 이번엔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는 듯 차려 자세로 가만히 서서 아섭이 아버지가 정훈이 아버지를 때리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나중에 아섭이 아버지를 말린 것은 병철이 아버지였다.

정훈이 아버지는 길바닥에 누운 채로 코피를 자기 옷에 바르며 경찰을 부르라고 난리를 부렸다. 아섭이는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 갈까 봐 걱정했지만, 그날 저녁 아홉 시 뉴스가 끝날 때까지도 경찰은 오지 않았다.




아섭이는 공연히 걱정이 되고 겁도 좀 났기 때문에 숙제를 아주 열심히 해 놓고, 다음 날 가져갈 책가방까지 미리 챙겨 두었다.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자려는데 아버지가 아섭이와 진섭이를 불렀다.

아버지의 앞에는 술상이 놓여 있었고, 어머니는 근심 어린 눈빛으로 옆에 앉았다.

“아섭아.”

“예, 아버지.”

“진섭아.”

“예, 아버지.”

중학생인 진섭이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했다.

“아빠가 오늘은 우리 아섭이, 진섭이한테 좀 많이 창피하네.”

“……”

“친구들하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면서 아빠는 사람을 두드려 패고, 맞제?”

“……”

“너거는 오늘 일, 못 본 걸로 해라.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있게 마련인기라.”

“아버지예, 제가 잘못 했습니더. 제가 정훈이 자전거만 잘 밀어줐어도……”

아섭이는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진섭이가 아섭이의 머리를 소리 나게 쥐어박았다.

“아이다. 진섭아. 아섭이가 먼 잘못을 했노? 애들끼리 놀다 보면, 머리도 깨지고 코피도 터지고 하는 기다. 그라믄서 크는 거 아이가.”

"......"

“아섭이도 진섭이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진섭이도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돈 많이 벌어야 된다.”

“……”

“조금만 벌어도 살 수 있지만, 돈을 좀 더 많이 벌면 그만큼 불편한 것이 줄어든다. 너거가 지금은 이 아빠 말을 잘 모르겠지만 살아 보믄 다 알게 된다. 알겠습니까, 훌륭한 우리 아들들?”

“예, 아버지.”

진섭이와 아섭이가 소리를 맞추어 대답했다.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불편한 게 참 많은 거라 하더라. 우리 식구, 조금만 더 노력해서 불편한 거 조금 줄이도록 살아보자, 어이?”

아섭이 아버지는 그러면서 어머니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아섭이 어머니는 손으로 눈을 훔쳤다. 아섭이는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진섭이가 아섭이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아섭이네는 정확히 열흘이 지난 일요일 오전에 이사를 갔다.

명희 할머니가 소개를 해 준 덕분에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쉽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우물터를 조금 지나 윗동네로 향하는 길목, 파란 대문 집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하고, 아주머니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상환 형, 이렇게 두 식구가 사는 집이었다. 특히 주인아주머니가 상환이에게 동생이 둘이나 생겼다며 진섭이와 아섭이를 귀여워했다.

전에 살던 정훈이네 집보다 조금 더 넓었고, 아섭이에게는 난생처음으로 자기 방이 생겼다. 무엇보다 다행이었던 것은 아섭이나 진섭이 모두 학교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입문이 따로 있어서 편하게 드나들 수도 있었고 뒷마당에 화장실이 하나 더 있어서, 아섭이는 더 이상 눈치를 보면서 똥을 누지 않아도 되었다.


찬우와 병철이도 아침 일찍부터 이사를 거들었다. 병철이 아버지와 아섭이 아버지는 역사적인 싸움의 현장에 같이 있었다는 것과 목수 일을 한다는 공통점으로 금세 형 동생 하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날 아침 이사를 나오기 직전, 아섭이는 변소에서 일부러 똥을 변기 바깥 여기저기에다 흩어 쌌다. 자세가 불편해서 좀 힘들었다.

이삿짐을 나르던 도중, 마당에서 소리를 꽥꽥 지르며 물을 퍼 나르는 정훈이 어머니를 보면서 찬우는 이유를 궁금해했지만, 아섭이는 복수다,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이를 드러내어 웃었다.

부릉부릉 소리를 내는 트럭의 짐칸에 앉은 아섭이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 우리 집을 지으면 반드시 변소를 세 개 이상 만들 거라고 굳게 다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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